영화감독 봉준호, 가수 윤종신 등 문화예술인들이 혐의 사실과 동떨어진 배우 이선균씨의 사생활을 공개한 KBS 보도를 비판했다. 12일 한 자리에 모인 문화예술인들은 이선균씨 죽음에 책임 있는 언론이 목적에 부합하지 않는 기사를 삭제해야 한다고 요구하면서, 수사 과정에 대한 철저한 진상규명과 인권보호 방안 마련을 함께 촉구했다.

▲ 문화예술인연대회의(가칭)은 12일 오전 11시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고(故) 이선균 배우의 죽음을 마주하는 문화예술인들의 요구’ 성명을 발표했다. 사진 출처=미디어오늘 영상 캡쳐.
▲ 문화예술인연대회의(가칭)은 12일 오전 11시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고(故) 이선균 배우의 죽음을 마주하는 문화예술인들의 요구’ 성명을 발표했다. 사진 출처=미디어오늘 영상 캡쳐.

문화예술인연대회의(가칭)는 이날 오전 11시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고(故) 이선균 배우의 죽음을 마주하는 문화예술인들의 요구’ 성명을 발표했다. 배우 최덕문의 사회로 진행된 이날 기자회견엔 봉준호, 장항준, 이원태 등 영화감독들과 배우 김의성, 가수 겸 작곡가 윤종신 등 문화예술계 관계자 10여 명이 참석했다. 현장엔 약 300여 명의 취재진이 몰렸다. 

이날 기자회견에서는 감독 봉준호, 가수 겸 작곡가 윤종신, 배우 김의성, 감독 이원태 등이 순서대로 성명을 낭독했다. 고인과 영화 <기생충> 작업을 함께 한 영화감독 봉준호는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정밀감정 결과 음성판정이 나온 지난 11월24일 KBS 단독보도엔 다수의 수사 내용이 포함돼 있는데 어떤 경위와 목적으로 제공된 것인지 면밀히 밝혀져야 할 것”이라며 “세 번째 소환조사에서 고인이 19시간의 밤샘 수사에도 불구하고 일관되게 혐의를 부인한 후인 12월26일에 보도된 내용 역시 그러하다”고 지적했다.

▲ 문화예술인연대회의(가칭)은 12일 오전 11시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고(故) 이선균 배우의 죽음을 마주하는 문화예술인들의 요구’ 성명을 발표했다. 기자회견에 참석한 감독 봉준호. 사진 출처=미디어오늘 영상 캡쳐.
▲ 문화예술인연대회의(가칭)은 12일 오전 11시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고(故) 이선균 배우의 죽음을 마주하는 문화예술인들의 요구’ 성명을 발표했다. 기자회견에 참석한 감독 봉준호. 사진 출처=미디어오늘 영상 캡쳐.

가수 윤종신은 언론을 향해 “고인에 대한 내사 단계의 수사 보도가 과연 국민의 알권리를 위한 공익적 목적에서 이루어졌다고 말할 수 있는가”라고 물으며 “대중문화예술인이라는 이유로 개인의 사생활을 부각하여 선정적인 보도를 한 것은 아닌가. 대중문화예술인이라는 이유로 고인을 포토라인에 세울 것을 경찰측에 무리하게 요청한 사실은 없었는가”라고 물었다.

윤종신은 특히 “혐의사실과 동떨어진 사적 대화에 관한 고인의 음성을 보도에 포함한 KBS는 공영방송의 명예를 걸고 오로지 국민의 알권리를 위한 보도였다고 확신할 수 있는가”라고 물으며 “KBS를 포함한 모든 언론 및 미디어는 보도 목적에 부합하지 않는 기사 내용을 조속히 삭제하기 바란다”고 했다. 이어 “대중문화예술인이 대중의 인기에 기반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이용하여 악의적으로 검증되지 않은 소스를 흘리거나 충분한 취재나 확인절차 없이 이슈화에만 급급한 일부 유튜버를 포함한 황색언론들, 이른바 ‘사이버 렉카’의 병폐에 대해 우리는 언제까지 침묵해야 하는가”라고 했다. 

▲ 문화예술인연대회의(가칭)은 12일 오전 11시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고(故) 이선균 배우의 죽음을 마주하는 문화예술인들의 요구’ 성명을 발표했다. 기자회견에 참석한 가수 윤종신. 사진 출처=미디어오늘 영상 캡쳐.
▲ 문화예술인연대회의(가칭)은 12일 오전 11시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고(故) 이선균 배우의 죽음을 마주하는 문화예술인들의 요구’ 성명을 발표했다. 기자회견에 참석한 가수 윤종신. 사진 출처=미디어오늘 영상 캡쳐.
▲ 지난해 11월 KBS 보도 화면 갈무리. 유흥업소 실장의 주장을 통해 이선균의 사생활을 공개한 보도
▲ 지난해 11월 KBS 보도 화면 갈무리. 유흥업소 실장의 주장을 통해 이선균의 사생활을 공개한 보도

배우 김의성은 경기신문의 첫 단독보도 문제를 지적했다. 그는 “지난 10월19일 한 일간지의 ‘배우 L씨의 마약과 관련한 정보를 토대로 내사 중이다’라는 인천시경 관계자의 말을 인용한 최초 보도 이후 10월23일 그가 정식 입건된 때로부터 2개월여 기간 동안, 그는 아무런 보호 장치 없이 언론과 미디어에 노출됐다”며 “간이 시약 검사부터 음성 판정까지의 전 과정, 3차례에 걸친 경찰 소환조사에 출석하는 모습이 모두 언론을 통해 생중계됐으며 사건 관련성과 증거능력 유무조차 판단이 어려운 녹음파일이 언론과 미디어를 통해 대중에게 공개됐다”고 비판했다. 

한국독립영화협회 대표 고영재는 “디지털 감옥에 살 수밖에 없는 고인의 유가족을 위해서라도 간곡하게 부탁한다. 공공의 이익에 부합되는게 아니라면 제발 기사를 삭제해 주시길 바란다”고 했다. 정상민 한국영화제작가협회 부대표도 “조사 중인 피의사실을 기정사실인 것처럼 언론에 노출한 수사기관과 이를 선정적으로 받아쓰기한 언론이 있었단 사실을 우리 모두는 알고 있다”고 했다. 

고인 수사에 대한 내부 정보가 언론에 노출되는 등 경찰의 수사 및 보안에 대해서도 여러 문제가 제기됐다. 봉준호는 “(고인의) 수사가 진행되는 동안 공보책임자의 부적법한 언론 대응은 없었는지, 공보책임자가 아닌 수사업무 종사자가 개별적으로 언론과 접촉하거나 기자 등으로부터 수사사건 등의 내용에 관한 질문을 받은 경우 부적법한 답변을 한 사실은 없는지 한치의 의구심도 없이 조사해 그 결과를 공개하기를 요청한다”고 했다.

이어 “언론 관계자의 취재 협조는 적법한 범위 내에서 이루어져야 함에도 불구하고, 세차례에 걸친 소환절차 모두 고인의 출석 정보를 공개로 한 점, 당일 고인이 노출되지 않도록 대비하는 어떠한 조치도 취하지 않은 점이 과연 적법한 범위 내의 행위인지 명확하게 밝힐 것을 요청한다”며 “수사당국은 적법절차에 따라 수사했다는 한 문장으로 이 모든 책임에 대해 자유로울 수 없다. 수사 과정에 대한 철저한 진상조사만이 잘못된 수사관행을 바로잡고 제2, 제3의 희생자를 만들지 않는 유일한 길”이라고 강조했다. 

▲ 문화예술인연대회의(가칭)은 12일 오전 11시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고(故) 이선균 배우의 죽음을 마주하는 문화예술인들의 요구’ 성명을 발표했다. 사진 출처=미디어오늘 영상 캡쳐.
▲ 문화예술인연대회의(가칭)은 12일 오전 11시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고(故) 이선균 배우의 죽음을 마주하는 문화예술인들의 요구’ 성명을 발표했다. 사진 출처=미디어오늘 영상 캡쳐.

수사 과정에서 피의자 인권을 보호할 수 있도록 법 개정을 촉구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감독 이원택은 정부와 국회를 향해 “형사사건 공개금지와 수사에 관한 인권보호를 위한 현행 법령에 문제점은 없는지 점검하고 필요한 법령의 제·개정 작업에 착수해야 한다”며 “피의자 인권과 국민의 알 권리 사이에서 원칙과 예외가 뒤바뀌는 일이 없도록, 수사당국이 법의 취지를 자의적으로 해석∙적용하는 일이 없도록 명확한 입법적 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연대회의엔 한국영화프로듀서조합, 한국독립영화협회, 한국영화제작가협회 등 약 29개의 문화예술 단체가 참여했다. 성명엔 배우 송강호 등 2000여 명의 개인이 동참했다. 한국영화프로듀서조합에 소속된 BA엔터테인먼트 대표 장원석은 “장례 기간 내내 고인과 함께 교류해왔던 문화예술인들의 조문이 있었고, 수사 및 언론보도 과정에서 나타난 여러 문제점들에 대해 목소리를 낼 필요성과 함께 다시는 이런 일이 반복되선 안된다는 폭넓은 공감대가 형성됐다”며 성명 발표 계기를 밝혔다.

연대회의는 이날 발표한 성명을 국회의장과 경찰청, KBS에 전달할 계획이다. 한국영화프로듀서조합 대표 최정화는 기자회견 말미에 “피의사실 공표 및 유출로 인한 부당한 피해를 막기 위한 입법적 보완을 촉구하기 위해 성명서를 국회의장에게 전달할 계획이다. 불법적 수사관행과 황색 저널리즘으로 치우치고 있는 언론의 자성을 촉구하기 위해 경찰청과 KBS에도 성명서를 전달할 것”이라며 “속칭 ‘이선균 방지법’을 제정하기 위해 뜻을 같이하는 모든 단체와 함께 적극적으로 협력해 나갈 것”이라고 했다. 

고 이선균씨는 지난달 27일 피의자 신분으로 마약 수사를 받던 중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지난해 10월19일 경기신문의 <톱스타 L씨, 마약 혐의로 내사 중>이란 단독보도 이후 이선균씨의 마약 투약 혐의는 끝내 입증되지 않았고, 다음달인 11월24일 KBS는 이선균씨와 유흥업소 직원의 통화내용을 공개하면서 사안은 유명연예인의 사생활 문제로 변질됐다. 고인이 사망한 당일 TV조선은 <[단독] “이것 밖에 방법이 없어”…‘거짓말 조사’ 자청> 리포트를 통해 유족의 반대에도 고인의 유서를 공개했다가 논란이 되자 삭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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