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선균 배우 사망을 계기로 사문화된 피의사실 공표죄의 실효성을 확보하는 방향으로 형사법률개정안 추진 움직임이 일고 있어 주목된다.

도종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2일 국회 소통관에서 ‘故 이선균 배우 사망 사건 진상규명 촉구 기자회견’(더불어민주당 문화예술특별위원회 주최)에 참석해 “이선균씨 사건은 내사 단계의 정보가 한 언론을 통해 알려지며 시작됐다. 수사기관은 세 차례 공개 소환을 하며 수백대의 카메라가 배치되도록 했다. 언론은 사건과 연관성을 알 수 없는 사생활까지 그대로 보도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수사한 사람이 아니면 알 수 없는 자료가 언론 취재 형식으로 보도가 됐다. 언론을 통한 피의 사실의 편법적 공표”라며 “이선균씨는 누구나 보장받아야 할 인권을 보장받지 못했고, 공인도 아닌데, 유명인·대중문화예술인이라는 이유로 수사기관과 언론의 폭력적인 인권침해를 오롯이 받아내야 했다”고 말했다.

도 의원은 특히 “피의사실공표죄는 지켜지지 않았고, 경찰수사 사건 등의 공보에 관한 규칙은 있으나 마나한 것이었다. 수사기관인 경찰은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지적했다. 수사공보규칙에 규정돼 있는 수사사건 등 공개금지 원칙(제 5조), 사건 관계인 출석 정보 공개금지(제 15조), 수사과정의 촬영 등 금지(제 16조) 등을 위반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도 의원은 13대부터 20대 국회에 이르기까지 이 같은 피의사실 공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11차례 형법 개정안을 발의했지만 임기만료로 폐기됐던 상황을 전하면서 “사문화 되다시피한 형법 제126조 피의사실공표죄를 보다 명확하게 개정을 해야 한다. 피의 사실과 수사 정보 공개 금지 및 공표에 대한 원칙을 지키지 않거나, 수사 정보 수사 자료나 내용을 유출하거나 누설할 때는 형사처벌 하는 것 등을 법에 새롭게 명확하게 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도 의원은 “사실을 왜곡하거나, 사건과 관계없는 사생활이 노출되지 않도록 하고 오보나 왜곡된 보도는 정정·반론·삭제 청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도 의원은 미디어오늘과 만나 형법 개정안을 빠른 시일 내에 발의하겠다고 밝혔다. 도 의원은 언론 보도 문제와 관련해 “이선균 배우가 사망하기까지 3000여 건의 기사가 쏟아졌다. 언론 매체들은 국민 알권리라고 주장하지만 그렇지 않은 보도들이 나왔다. 공적인 보도와 아닌 보도들을 가려 판단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2008년부터 2018년까지 피의사실공표죄 처분현황에 따르면 피의사실공표죄에 대한 접수 건수는 발생해왔지만, 처벌되거나 기소된 사례는 없었다.

▲더불어민주당 문화예술특별위원회는 22일 국회 소통관에서 '고 이선균 배우 사망 사건 진상규명 촉구' 기자회견을 열었다.
▲더불어민주당 문화예술특별위원회는 22일 국회 소통관에서 '고 이선균 배우 사망 사건 진상규명 촉구' 기자회견을 열었다.

그동안 발의된 피의사실 공표에 관한 법률 개정안은 피의사실 공표 대상이 되는 사건 기준을 제시하고 ‘피의사실 공표 심사위원회’를 설치해 위원회 판단에 따라 사건을 공개하는 것이 주 내용이다.

피의사실 공표죄는 국민 알권리 문제와 충돌할 수 있고, 법 적용 문제에 있어 명확하지 않아 사문화돼 있었는데 이번에는 수면 위로 끌어올려 처벌 대상과 행위를 명확히 하고, 언론 보도 문제 역시 바로 잡겠다는 취지다. 다만, 언론 문제의 경우 보도 경위를 파악해 사실관계 왜곡이라고 단정짓거나 공적 보도 취지 여부에 대한 판단이 쉽지 않은 게 사실이다.

지난 1999년 대법원은 언론기관이 피의사실을 보도할 때는 보도에 앞서 피의사실의 진실성을 뒷받침할 적절하고도 충분한 취재를 해야 하고, 보도내용이 객관적이고 공정해야 하며, 무죄추정의 원칙에 입각해 유죄를 암시하거나 유죄의 인상을 줄 우려가 있는 용어나 표현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고 판시했다.

이날 기자회견에선 이선균 배우 사망 사건을 수사 당국와 언론의 인격적 살인으로 규정하고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더불어민주당 문화예술특별위원회는 “수사 과정은 지나치게 공개적이었고 그를 소환할 때마다 포토라인에 세웠다. 검증되지도 않은 조사 내용을 언론에 흘렸고 추측성 기사들이 재생산되었다”며 “처음부터 무죄 추정의 원칙을 박탈당했을 뿐 아니라 정당한 비공개 수사 요청도 거부했다”고 비판했다.

이들은 “그에게 행해진 사법의 폭력이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한 윤석열 정부의 지나친 욕심이 불러일으킨 참사는 아니었는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며 진상규명을 촉구했다.

언론을 향해서도 “언론과 미디어는 사건과 관련 없는 가십거리까지 생산해 고인을 맹공격했다”며 “인격적 살인과 같은 보도 행태에 심각한 우려를 표명하며, 성숙한 언론으로서의 자정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