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ttyim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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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균 배우 사망을 계기로 피의사실공표죄 개정 움직임이 일고 있는 가운데 공표죄 주체로 언론의 책임을 물어 징벌적손해배상제를 도입하자는 주장이 나왔다.

30일 국회의원회관 제3간담회의실에서 열린 ‘故 이선균 수사 정보 유출 재발방지를 위한 피의사실공표죄 개정 입법토론회’(주최 국회의원 박주민 김승원 민병덕,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사법센터)에서 민변 사법센터 소속 백민 변호사는 “피의사실공표는 수사기관의 실적홍보와 언론기관의 선정적 보도라는 양측의 이해관계가 일치하기 때문에 서로 확대, 증폭하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언론사에 대한 실효적인 대책도 필요하다”며 “수사기관이 제공하는 정보를 받아 위법하게 피의사실을 보도한 ‘언론사’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 책임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백민 변호사가 제안한 방안은 언론중재법에 징벌적 손해배상 조항을 신설하는 내용이다. 피의사실공표죄 주체가 “범죄수사에 관한 직무를 수행하는 자 또는 이를 감독하거나 보조하는 자”로 정의돼 있어 언론의 책임을 해당 법률에 반영하기 어려운 구조를 우회해 실효성을 확보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백민 변호사는 현 피의사실공표죄상 언론의 행위에 대한 책임을 직접적으로 묻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전했다. 백 변호사는 “제3자는 본죄(피의사실공표죄)의 독자적인 주체는 될 수 없다”면서 “헌법상 언론의 자유와 중요성에 비추어 처벌할 수 없다거나, 법리적 측면에서 ‘대항법’ 구조이므로 피의사실을 공표받은 자를 처벌한다는 규정이 없는 이상 불가하다고 한다. 이에 따르면 언론기관 종사자를 본죄의 공범으로 의율하는 문제는 신중한 접근을 요한다”고 밝혔다.

언론보도상 ‘위법한 피의사실공표’ 행위 즉, ‘수사기관이 제공하는 정보를 받은’ 것을 과연 가릴 수 있을지도 관건으로 남는다. 피의사실공표에 관한 언론의 책임은 적지 않지만 공익의 가치를 벗어난 내용을 보도하고, 수사기관과 ‘공모’했다는 것을 입증하는 건 여전히 어려운 현실이다. 권력자 견제 감시 차원의 내용인데, 기사 대목 중 수사정보에 준하는 내부 자료가 있다고 하면 되려 징벌적손배 조항이 언론을 위축시키고 압박할 수 있다는 반론도 가능하다.

백 변호사는 피의사실공표죄가 사문화된 원인을 크게 두가지로 꼽았다. 피의사실공표 행위가 발생해도 단순한 의견 표명이라든지 언론 질문에 확인해준 것이라고 회피하거나 수사기관들이 내부 공보규정을 만들어 어떤 내용을 공표할지 자체 판단함에 따라 피의사실공표 행위에 대한 통제를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 30일 국회의원회관 제3간담회의실에서 열린 ‘故 이선균 수사 정보 유출 재발방지를 위한 피의사실공표죄 개정 입법 토론회’. 사진=이재진 기자 
▲ 30일 국회의원회관 제3간담회의실에서 열린 ‘故 이선균 수사 정보 유출 재발방지를 위한 피의사실공표죄 개정 입법 토론회’. 사진=이재진 기자 

과거 발의됐던 피의사실공표죄 개정안도 한계로 지적됐다. 백 변호사는 “피의사실공표를 예외적으로 허용할 수 있는 경우로 ‘공익, 공공, 중대 사건, 국민적 관심’이라는 추상적인 단어로 사용하자는 입법 시도에 대해서는 우려를 표한다”며 “또다시 경찰이나 검찰이 셀프 판단을 하게 될 것이고, 이는 곧 셀프 면죄부로 이어져 현재와 다를 바 없이 피의사실공표 행위는 만연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에 따라 백 변호사는 피의사실공표 행위를 할 수 있는 구체적인 조건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공표행위의 동기나 목적이 국민의 알권리를 위한 것(정당성)이고, 그 수단이나 방법을 공식적인 언론 브리핑에 의한 것(상당성)이어야 하며, 범죄의 성격상 범죄 발생 자체를 반드시 공소제기 전에 널리 알려야 할 상황(긴급성)이 인정되고, 피의자의 인권침해 방지나 예단배제를 통한 재판의 공정성 확보의 이익보다 더 큰 경우에 해당되어야 할 것(법익균형성 및 보충성)이라는 내용을 조건으로 추가하자는 것이다.

나아가 백 변호사는 피의사실공표 범위와 관련 수사상황 또는 그 내용을 추단할 수 있는 증거자료 일체까지 포함해 공표를 금지하자고도 주장했다. 수사의뢰, 고소·고발, 압수·수색, 출국금지, 소환조사, 체포, 구속, 석방, 수사과정에서의 입수 증언 등이다. 백 변호사는 “이를 알리면서 사실상 피의사실을 공표하는 것과 같은 연출을 하고 있다”며 “본 개정을 통해 수사기관발 언론보도를 원천적으로 차단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이 같은 개정 내용은 공소제기 전 일체의 내용을 금지한다는 내용으로 해석돼 국민 알권리와 충돌할 가능성이 높다.

백 변호사는 “수사기관이 취재기자에게 정보를 흘리는 경우”를 예로 들어 ‘공표’ 행위 뿐 아니라 ‘유출’ 행위도 개정안의 처벌범위에 포함시키자고 제안했다. 종합하면 백 변호사는 피의사실공표죄 실효화 방안으로 언론에 징벌적손배 책임을 묻는 것을 포함해 △피의사실 공표가 금지되는 경우와 예외적으로 허용되는 경우를 구별하고, 공식적인 공표 절차를 마련하는 방안 △피의사실 공표시 공판기일 연기, 위법공표증거 배제 등 사법부 통제 방안 △법무부와 공수처 등 제 3공식기관이 형사처벌과 징계를 내리는 역할을 맡기는 방안을 제시했다.

이날 다른 토론자들도 언론 책임 문제를 비중있게 다뤘다. 최정학 민주주의법학연구회 교수는 징벌적손해배상 방안에 대해 “현실적으로 효과적인 제어책이 될 수도 있을 것”이라면서 “언론사에 한해 인정하기보다 해당 행위를 한 당사자와 수사기관에 대해서도 청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더욱 효과적이지 않을까”라는 의견을 냈다.

박영선 민생경제연구소 언론특위위원장은 징벌적손배 도입에 대해 신중한 접근을 주문했다. 박 위원장은 “지난해 허위조작정보 뉴스와 징벌적손배 도입 입법에 대해 언론 현업인들은 권력기관에 감시 비판을 하고 발로 뛰어서 비리 혐의를 밝혔는데 이런 걸 가리지 않고 적용했을 때 언론의 감시 비판 본 기능이 상실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있었다. 피의사실공표죄에 징벌적손배 도입은 찬성하지만 (과거 우려가 나왔듯이)언론 현업인들과 충분한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류신환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미디어언론위원회 변호사는 “수사기관이 의도적으로 (금지) 정보를 유출하고 언론이 받아서 보도한 경우를 언론 스스로 취재한 경우와 구분하여 책임을 인정”해야 한다면서 수사기관과 공모하는 수준의 피의사실 공표에 관해서는 언론의 공범 책임을 명시함으로써 형사 규제의 실효성을 확보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류 변호사는 “형사책임이 과도하다면 기자 개인이 아닌 언론사에 대한 행정제재를 입법화하는 방향”도 대안으로 제시했다. 언론사 제재는 삭제 및 정정보도 명령, 임시조치, 재승인 심사 반영 등이다.

류신환 변호사는 “수사기관 피의사실 공표 및 언론책임에 관한 별도 독립적인 전담 수사기관을 설립하는 방향", "언론중재위원회 등에 특별수사 기능을 부여하는 방향”도 제시했다. 아무리 피의사실공표죄가 개정돼도 이를 적극 집행할 주체가 마땅히 없다면 실효성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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