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빙과 웨이브가 MOU(양해각서)를 체결하면서 합병이 예고됐지만 실제 성사까진 넘어야 할 산이 많아 아직은 불투명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주주들(방송사 및 통신사)의 이해관계가 서로 얽혀 있어 어떻게 풀 것인지가 관건이다. 적자를 개선하는 동시에 투자로 성과를 내야 하는 가운데 OTT 기업들은 플랫폼의 ‘글로벌화’에 시선을 두고 있다.

▲ 합병을 위한 MOU 체결을 밝힌 티빙과 웨이브.
▲ 합병을 위한 MOU 체결을 밝힌 티빙과 웨이브.

국내 OTT(온라인동영상서비스) 티빙과 웨이브가 5일 합병을 위해 MOU를 체결했다고 밝혔다. 양측은 “경쟁력 강화를 위한 협의를 거쳐, 주주사간 합병 양해각서(MOU) 체결했으나 현재 상세 내용은 확인해 드릴 수 없다”고 했다.

소문만 무성하던 합병설이 결실을 맺는 모양새다. 수년 전부터 넷플릭스 독주로 여타 국내 OTT 업체가 성과를 내지 못하자 티빙·웨이브 합병설이 피어올랐다. 특히 웨이브가 돌파구가 절실했다. 2019년 웨이브는 2000억 원 규모의 투자를 받으면서 5년 이내 상장해야 한다는 조건이 강제됐지만 적자가 지속되고 경기 상황이 좋지 않아 상장을 판단하기 쉽지 않았다.

그동안은 티빙과 모회사 CJ ENM이 선을 그었다. 2020년 합병설이 수면 위로 떠올랐을 때도 티빙은 “제안받은 바 없다”고 했고 지난 8월 2분기 실적발표 자리에서도 “사실상 많은 어려움이 있어 (합병을) 적극적으로 고려하고 있지는 않다”고 했다. 하지만 결국 CJ ENM이 1대 주주, SK스퀘어(웨이브 모회사)가 2대 주주가 되는 방식으로 합병이 검토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아직 불투명” 갈 길 먼 티빙 웨이브 합병

▲ CJ ENM 사옥 ⓒ연합뉴스
▲ CJ ENM 사옥 ⓒ연합뉴스

MOU가 체결됐지만 실제 합병이 성사되기까진 ‘첩첩산중’이다. 우선 주주들의 이해관계가 다양하다. 올해 3분기 누적 기준 티빙은 CJ ENM(48.85%), 네이버(10.66%), SLL중앙(12.75%), KT스튜디오지니(13.54%) 등의 지분 구조를, 웨이브는 SK스퀘어(40.5%), SBS(19.8%), MBC(19.8%), KBS(19.8%)의 지분 구조를 갖고 있다.

특히 웨이브는 각 지상파가 독자적으로 콘텐츠를 공급하고 성과도 다르지만 동등한 지분으로 운영돼 불만이 생길 수 있는 구조였다. CJ ENM이 1대 주주가 되는 합병 구조도 마찬가지다. 콘텐츠 사업자 입장에선 합병 이후 타 기업이 주도하는 플랫폼에 콘텐츠를 공급하기 꺼릴 수 있다. 

CJ ENM이 인수 여력이 있는지도 의문이다. 공정거래법상 지주사는 비상장 자회사 및 손자회사의 지분을 40% 이상 보유해야 한다. CJ ENM이 지분율 유지를 위해 지분을 추가로 매수해야 한다는 뜻이다. 수천억의 비용이 예상되지만, CJ ENM이 최근까지 적자를 계속 봤다는 게 문제다. 올해 3분기 깜짝 흑자를 기록했지만 1분기와 2분기엔 연속 적자를 냈다. 1조 원 가량을 투입하며 사활을 걸었던 미국 스튜디오 피프스시즌의 성과가 아직 본격적으로 나오지 않았다.

노창희 디지털산업정책연구소장은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이전에 유료방송 합병 때는 IPTV가 가파르게 성장하는 반면 케이블 SO(종합유선방송사업자)가 상황이 좋지 않아 이동통신사들이 SO를 많이 사들였다”며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한국 미디어 기업들이 누구도 좋지 않다. 인수 합병엔 여러 형태가 있겠지만 CJ ENM이 충분한 여력이 있는지에 대한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 ‘2023 국제 OTT 포럼’에서 발표하고 있는 최주희 티빙 대표. 사진=코바코 제공
▲ ‘2023 국제 OTT 포럼’에서 발표하고 있는 최주희 티빙 대표. 사진=코바코 제공

공정거래위원회 기업결합 심사도 불확실성을 준다. 지난해 티빙이 KT 시즌을 인수할 땐 합산 점유율 18.05%로 넷플릭스 점유율(38.22%)과 차이가 커 심사가 통과됐지만 웨이브는 시즌보다 더 큰 점유율을 차지한다. 한 업계 전문가는 “통과는 되리라 보지만 무난하진 않을 것 같다”며 “상당히 여러 가지를 봐야 한다. 시장 획정 문제도 있고 OTT 기업들이 이통사와 제휴가 된 형태인데 두 회사가 결합하면 그 제휴 관계를 어떻게 볼 것인지 등 쟁점이 꽤 많이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넷플릭스 대항마? “합병 자체는 긍정적이지만… ”

▲ 넷플릭스 로고.
▲ 넷플릭스 로고.

지난 10월 기준 티빙은 510만 명의 월간활성이용자수(MAU)를 기록했다. 웨이브(423만 명)와 단순 합산하면 933만 명으로 넷플릭스 MAU 1137만 명에 육박한다. 하지만 중복 가입자를 고려해야 한다.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이 지난해 발간한 ‘OTT 리포트’에 따르면 응답자 60.7%가 두 개 이상의 유료 OTT를 이용한다고 응답했다. 한정훈 다이렉트미디어랩연구소 대표는 “중복 가입자가 상당했기 때문에 합병 후 실제 구독자는 크게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이럴 경우 여전히 1강, 1중, 1약 구도가 될 수도 있다”고 했다.

합병이 성공적으로 끝나도 ‘꽃길’ 보장이 아니란 뜻이다. CJ의 콘텐츠를 가진 티빙과 지상파 콘텐츠를 가진 웨이브가 현재 가진 특성을 유지하며 구독자 이탈을 막아야 하는데 변수는 주주들(콘텐츠 공급자)이다. 경쟁사가 포함된 하나의 플랫폼에 모두가 순순히 탑승할지 의문이다. 웨이브와 지상파 방송사 간 계약은 내년 9월 종료된다.

▲ 티빙과 웨이브. 디자인=이우림 기자
▲ 티빙과 웨이브. 디자인=이우림 기자

한정훈 다이렉트미디어랩연구소 대표는 통화에서 “‘비독점’으로 가지 않을까 싶다”며 “예를 들어 MBC 혹은 SBS가 이 프로그램은 넷플릭스에 주겠다고 하는 것이다. IP를 독점하고 싶으면 돈을 많이 줘야 하는데 지금은 불황 합병이지 않나. 여력이 없다. 비독점이 만연해지면 사실상 합병 실익이 적은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방송사들은 서로 다 다른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다. 지분에서 빠지겠다고 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노창희 소장은 “중복 가입자가 빠져서 1200만 명(넷플릭스) 대 700만 명(티빙·웨이브) 정도가 된다고 해도 유럽 등 다른 나라 사례를 봤을 때 굉장히 긍정적”이라면서도 “하지만 콘텐츠가 남아 있어야 한다. CJ 콘텐츠를 선호하는 것과 지상파 콘텐츠를 선호하는 것은 다르다”고 말했다.

▲ 디자인=이우림 기자.( 영업이익 자료는 공시 자료 분석. 시장점유율 자료는 지난해 공정거래위원회가 모바일인덱스 조사를 기반으로 KT 시즌 합병 당시 추산한 정보.)
▲ 디자인=이우림 기자.( 영업이익 자료는 공시 자료 분석. 시장점유율 자료는 지난해 공정거래위원회가 모바일인덱스 조사를 기반으로 KT 시즌 합병 당시 추산한 정보.)

티빙과 웨이브 모두 지난해 1000억 원대 적자를 본 기업들이다. 건정성을 확보하기 위해선 합병 이후 가격 인상도 예상된다. 한정훈 대표는 “합병 실익이 소비자에게 긍정적으로 될지는 의문이다. 1인당매출(ARPU)를 높이기 위해 점유율이 높아지면 가격 인상을 할텐데 소비자 저항이 거셀 것”이라며 “또 다른 방법은 새로운 매출(광고)을 확대하는 것이다. 하지만 광고 시장이 침체됐고 웨이브와 티빙 등 주주 대부분은 광고를 주 재원으로 하는 실시간 채널 방송사들이라 걸림돌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국내 아닌 국외 방점” 합병으로 플랫폼 ‘글로벌화’ 꾀한다

▲ 북미 진출 기반을 닦은 코코와. 사진=웨이브
▲ 북미 진출 기반을 닦은 코코와. 사진=웨이브

플랫폼 업계는 한국 OTT의 ‘글로벌화’ 여부에 관심을 쏟고 있다. 한국 콘텐츠는 세계에서 각광받지만 그 효과를 받아낼 수 있는 한국 플랫폼이 없다는 지적이 반복됐다. 티빙 역시 글로벌 로드맵을 세우는 등 현지화 사업을 꾀했지만 어려움을 겪었고 웨이브가 지난해 12월 ‘웨이브 아메리카’(코코와)를 인수하며 성과를 거뒀지만 코코와를 제외하면 한국 플랫폼의 마땅한 글로벌 사례가 없다.

박근희 코코와 대표는 지난달 16일 ‘국제OTT포럼’에서 “콘텐츠는 글로벌화돼 있는데 플랫폼이 그렇지 못해 적자가 날 수밖에 없는 구조”라며 “글로벌 OTT가 빨리 탄생해줘야 보조를 맞출 수 있다. 버려지는 콘텐츠가 없도록 플랫폼이 백업을 해줘야 한국 콘텐츠 업계의 선순환이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성민 한국방송통신대학교 미디어영상학과 조교수는 “글로벌 벨류체인(가치사슬) 관점에서 우리의 역할이 최하단에 있을 것이냐 아니면 어느 정도 상단에서 가져갈 것인지 게임을 하고 있다고 본다”며 “그것은 결국 우리 OTT가 어느 정도로 글로벌 역량을 가져가는지의 게임이다. 어떻게 보면 할 수 있는 데까지 밀어 붙여야 하는 곳이 아닌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내 플랫폼 글로벌화에 이번 합병이 꼭 필요했다는 것이 공통된 목소리다. 티빙과 웨이브의 분리된 형태로는 마케팅, 자본 여력 등 글로벌화가 쉽지 않겠다는 내부 판단도 있었다. 특히 티빙에서 코코와에 대한 관심이 높았을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노창희 소장은 “웨이브가 코코와를 통해 법인을 설립한 상황이다. 글로벌 기반이 티빙보다는 갖춰져 있으니 시너지가 날 수 있다고 기대할 수 있다”고 말했다.

▲ '국제OTT포럼'에서 발언하고 있는 노동환 웨이브 정책협력리더. 사진=코바코
▲ '국제OTT포럼'에서 발언하고 있는 노동환 웨이브 정책협력리더. 사진=코바코

한정훈 대표는 “한국 플랫폼에 대한 홍보가 아직 힘들다. 대부분 콘텐츠는 넷플릭스에 의존한다”며 “합병이 성공하기 위해선 국내보다 국외에 방점을 둬야 한다. 소비 패턴을 보면 스트리밍 시대가 되면서 반복 시청이 늘었다. 콘텐츠를 많이 모을수록 유리한 상황이 온다. ‘이 콘텐츠 어디서 봐야 하지’ 사람들이 생각할 때 넷플릭스 이외의 선택지 정도는 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 대표는 “오리지널 전략이 성공의 키워드다. 해외 매출을 늘리고 해외에서 통할 만한 사이즈의 오리지널을 만들어야 수익을 맞출 수 있다”며 “미국에서 번들(합병에 준하는) 서비스 이탈률이 낮은 이유는 볼만한 오리지널이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어 “외부 자금 유치도 중요하다. 코코와는 필요시 국내외 자금을 유치해 더 키워야 한다. 주주들이 비독점 전략을 쓰더라도 K콘텐츠의 최종 종착점은 필요하다. 적자 감소를 위해 국내는 통합, 해외는 각자 도생이라면 결과는 불 보듯 뻔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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