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없는 일상을 상상할 수 없다. 질 좋은 콘텐츠가 넘쳐나 뭘 봐야 할지도 모를 정도다. 콘텐츠 풍요를 당연한 것처럼 느꼈지만, 그 착각을 미국작가조합(WGA) 파업이 깨버렸다. 쉼 없이 돌아가던 할리우드가 멈추면서 유명 프로그램들이 잇따라 제작을 중단했다. 사람들은 그제야 질 좋은 콘텐츠 이면에 ‘창작자’가 있다는 걸 깨달았다.

미국 시민 70% 이상이 파업을 지지했다. 넷플릭스를 필두로 한 OTT 업체의 불공정 계약에 공감했기 때문이다. 한국은 어떨까. 한국에도 WGA 파업에 대한 연대시위가 열렸다. 하지만 그뿐이다. 불길이 번지지 않았다. OTT 업체가 한국엔 없는 게 아닌데도 창작자들의 보상은 여전히 제자리걸음이다.

▲ 김병인 한국시나리오작가조합 대표. 사진=본인 제공
▲ 김병인 한국시나리오작가조합 대표. 사진=본인 제공

지난 20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한 김병인 한국시나리오작가조합 대표는 제작 현장의 인력난이 현실화됐다고 말한다. 정당한 보상이 창작자에게 주어지지 않는다면 지속가능한 생태계를 꾸릴 수 없다는 의미다. 미국에서 쟁점이 됐던 ‘재상영분배금’(Residual) 인상. 한국은 재상영분배금 자체가 없다.

“‘리스크’ 감안된 값 말고 성과에 비례한 보상 달라”

- 할리우드를 멈추게 했던 미국작가조합(WGA) 파업이 10월 종료됐다. OTT 시대 이후의 불공정 계약을 지적해 ‘넷플릭스 파업’으로 불리기도 했는데 한국은 비교적 잠잠하다.

“한국에서 파업을 하진 않았지만 이건 한국의 일이다. 같은 회사를 상대로 동일한 이슈를 가지고 있지 않나.”

- 미국 작가들은 OTT 도입 이후 업무 강도가 강해지는 동시에 임금은 줄어들었다고 불만을 표출했다.

“영화·드라마 제작 단계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받는 보상은 ‘리스크’가 계산된 값이다. ‘작품이 성공하지 못할 가능성도 있으니 일단 이만큼만 받읍시다’에 모두가 동의한 거다. 대신 작품 공개 이후 실적에 따라 충분한 보상이 주어졌다. 하지만 OTT가 등장하고 나서 실적에 따른 보상이 사라졌다. ‘리스크’가 계산된 값만 남았다. 리스크가 감안된 임금 형태는 그대로 가져오면서 이후 성과는 다 가져가겠다는 ‘매절계약’이다.”

▲ 지난달 16일 미국작가파업에 동참하고 있는 배우들. WGA 유튜브 갈무리.
▲ 지난달 16일 미국작가파업에 동참하고 있는 배우들. WGA 유튜브 갈무리.

- 개봉 이후의 보상은 ‘재상영분배금’(Residual)으로도 불린다. 미국 파업에서 쟁점이 됐는데 협상 결과 WGA는 재상영분배금(해외 스트리밍)이 약 76% 증가할 것이라 예상했다.

“한국은 아예 재상영분배금을 받지 못한다. OTT만 그렇다. 방송계는 작가나 배우들이 재방, 삼방 때마다 일정 금액을 받았다. 음악도 저작권 시스템이 잘 돼 있지 않나. 영화계도 순수익 40%까지 제작자와 창작자에 보상하곤 했다. 콘텐츠 투자 시점엔 할인된 상태의 대가를 받고 이후 성과에 비례하는 보상을 달라. 그게 미디어업계의 큰 합의였다.”

- 넷플릭스는 정당한 보상 관련 ‘글로벌 스탠다드’를 지키고 있다고 강조한다.

“OTT를 처음 시작한 게 넷플릭스인데 본인들이 그런 기준을 만든 것 아닌가. 글로벌 스탠다드인데 왜 한국엔 재상영분배금을 안 주나. 이번 할리우스 파업으로 넷플릭스가 더 이상 핑계댈 것이 없어졌다고 본다. 파업이 비례적 보상을 이끌어냈기 때문이다. 미국에서도 비례적인 보상이 주어졌으니 글로벌 스탠더드라면 한국에도 적용이 돼야 한다.”

“넷플릭스가 말하는 글로벌 스탠다드? 이제 바뀌어야”

- 미국은 작가와 배우들이 노조를 통해 거대한 목소리를 냈다. 한국도 시나리오작가조합, 웹툰작가노동조합 등이 연대시위를 열었지만 미국만큼의 파괴력은 없었다.

“할리우드에서 일하고 있는 작가, 감독들은 단일한 노조에 속해 있다. 미국 제작자들이 노조에 속하지 않은 사람을 고용할 수 없다. 지금처럼 노조가 파업을 선언하면 할리우드 전체가 멈출 수밖에 없는 구조다. 미국은 창작자들을 근로자로 구분해 노조 결성이 가능하다. 하지만 한국은 자영업자로 분류돼 노조를 결성할 수 없다.”

- 창작자를 한국처럼 자영업자, 즉 프리랜서로 분류하는 건 유럽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유럽은 저작권법 개정을 통해 창작자들에 정당한 보상을 주기로 했다. 2019년에 똑같이 OTT 매절계약이 시장을 지배하자 저작권법을 개정해 비례적인 보상이 창작자들에 주어지도록 강제했다. 유럽연합에 속한 27개 회원국들이 지침에 따라 법을 개정해야 한다. 올해 6월쯤 회원국이 다 개정해서 넷플릭스가 각 나라 창작단체와 협상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이제 법적 근거가 생겼기 때문에 유럽은 상황이 개선될 것이다.”

▲ 지난 6월22일 서울 광화문 포시즌즈호텔에서 7년 만에 방한한 테드 서랜도스. 사진=넷플릭스 제공
▲ 지난 6월22일 서울 광화문 포시즌즈호텔에서 7년 만에 방한한 테드 서랜도스. 사진=넷플릭스 제공

- 넷플릭스가 한국에 주목한 지 꽤 됐다. 한국 콘텐츠가 세계에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고 강조하는데 정작 이런 부분은 다른 나라보다 미흡한 것 아닌가.

“그래서 넷플릭스가 말하는 글로벌 스탠다드가 틀린 것이다. 유럽에서도 정당한 보상이 들어 가고 미국도 파업을 통해 비례적인 보상이 들어왔는데 한국 창작자들만 받지 못한다. 지금 넷플릭스에서 한국이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나 큰가.”

- 넷플릭스는 제작비는 100% 이상 지원하지만 제작 후 콘텐츠 지적재산권(IP)는 독점해 부가적인 수익을 모두 가져간다. 오징어게임의 성공 이후 이 문제가 불거졌지만 넷플릭스는 시즌2가 나올 경우 시즌1의 인기를 계산해 보상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시즌1이 성공하게 되면 그에 따른 창작자 협상력이 높아지니까 거기에 반응하는 것일 뿐이다. 시즌2를 하는 것에 대한 보상은 다른 문제다. 우리는 지금 당장 콘텐츠를 만들 때 리스크가 반영된 상태에서 계약을 했으니 이후의 정당한 보상을 달라는 거다. 정당한 보상에서 시즌2를 얘기하는 건 옳지 않다.”

- 시즌2 제작에 따른 보상이 ‘정당한 보상’이 아니라는 건가.

“창작자들이 원하는 건 떼돈이 아니다. 오히려 확률상 개봉해서 대박을 치는 것보다 중박 이하의 성적을 거두는 작품이 훨씬 많다. 창작자들은 단 1000만 원이라도 받을 수 있게 해달라는 거다. 그 돈이면 5~6개월은 알바 뛰지 않고 다음 작품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다. 미국서도 그렇게 소소한 성공을 통해 나온 재상영분배금으로 다음 작품을 써서 대박을 낸 경우도 심심치 않게 나온다. 재상영분배금은 일종의 시나리오 R&D 자금이다. 작가들은 업을 온전히 이어갈 수 있기 위해 달라는 건데 그것도 싫다고 하면서 무슨 생태계를 운운하는지 모르겠다.”

국내 OTT 업계 상황에 저작권법 개정은 제자리걸음

- 결국 법 개정이 필요해 보인다. 한국에서도 저작권법 개정 필요성이 많이 제기됐는데 성과가 안 나는 이유가 무엇인가.

“법이 발목 잡힌 논리가 하나 있다. 국내 OTT들이 너무 힘들다는 거다. 넷플릭스와 경쟁하는 것만으로도 힘들어 죽겠는데 창작자들 보상까지 주면 더 힘들어진다는 논리에 막혀 있다.”

▲ 디자인=이우림 기자.( 영업이익 자료는 공시 자료 분석. 시장점유율 자료는 지난해 공정거래위원회가 모바일인덱스 조사를 기반으로 KT 시즌 합병 당시 추산한 정보.
▲ 디자인=이우림 기자.( 영업이익 자료는 공시 자료 분석. 시장점유율 자료는 지난해 공정거래위원회가 모바일인덱스 조사를 기반으로 KT 시즌 합병 당시 추산한 정보.

- 국내 OTT들이 힘든 건 사실이다. 웨이브와 티빙 모두 지난해 1000억 대 영업손실을 봤다.

“OTT 당사자들은 그런 얘기를 할 수 있다. 하지만 문체부가 일방적으로 OTT 얘기만 듣고 있는 게 문제다. 넷플릭스 포함 모든 OTT들이 다 적자를 보고 있는 상황이면 구조적 문제가 있다는 뜻이니 법안에 신중을 기할 수 있다. 하지만 절대적 강자인 넷플릭스가 막대한 영업이익을 올리는 가운데 탈세 정황으로 800억 원 가량의 추징금이 부과되지 않았나. 넷플릭스에 작품 걸었던 창작자들은 다 구조적으로 피를 빨리고 있는 상황이다. 국내 OTT들이 흑자 전환할 때까지 창작자들은 피 빨리면서도 계속 견디라는 게 말이 되나.”

- 창작자 입장에서도 국내 OTT 와의 상생을 고민할 것 같다.

“우리도 넷플릭스만 살아남아선 당연히 곤란하다. 국내 OTT가 잘 되길 바라는 마음은 하나다. 그래서 계속 제안했던 게 차등 보상금 시스템이다. 미국은 구독자수에 따라 티어를 나눈다. 낮은 티어는 창작자에게 낮은 보상을, 높은 티어는 높은 보상을 준다. 한국도 비슷하게 도입해 국내 OTT 부담을 완화시키겠다 했는데 들어주지 않는다.”

이해관계 여럿 얽힌 창작자 보상 “넷플릭스 전략 고민할 것”

▲ OTT. 사진=gettyimagesbank
▲ OTT. 사진=gettyimagesbank

- 코로나19 이후 영화를 넘어 콘텐츠 산업 자체가 침체됐다는 평가다. 제작편수가 주는 등 콘텐츠 기반이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넷플릭스 이후 한국 콘텐츠가 세계에서 각광받는 흐름과 상반된다.

“영화는 거의 멈추다시피 했다. 지금 만들어졌는데도 못 나오고 있는 작품들이 많다. 오징어게임이 히트하면서 OTT 시장에 돈이 엄청 몰렸었다. 황금기인가 싶었는데 지금 보니 무분별하게 투자를 많이 한 모양이다. 플랫폼을 선정하지도 않은 상태에서 100억, 200억 만들다 보니 플랫폼 업계가 침체해 (작품을) 안 걸어준다.”

- 방송국은 넷플릭스의 제작비 수준을 따라가지 못한다.

“1~2년 사이에 OTT가 시장을 지배하면서 케이블, 공중파 힘이 다 빠져 버렸다. 방송국도 월화, 수목드라마 슬롯을 다 없애 버렸다. 영화도 구조적으로 힘든 상황에서 작품 100편 정도가 이렇게 묶여있다고 하더라. 투자자들도 발을 빼버린 상황에서 오롯이 서 있는 데가 넷플릭스밖에 없는 거다. 창작자들에게 문이 3개 열려 있었다면 그 중 2개가 닫혀버렸다. 문 사이즈 자체가 커졌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 넷플릭스에 사회적 책임을 물 수밖에 없는 건가.

“테드 서랜도스 넷플릭스 CEO가 7월 한국에 왔었다. 와서 건강한 창작 생태계 성공을 강조하고 갔다. 그걸 보고 창작자들은 넷플릭스가 작업을 하고 있다고 느꼈다. 국회와 업계를 상대로 액션을 취한 것이다. 넷플릭스가 절묘하게 거액의 한국 투자 계획을 발표하지 않았나. 법 개정 목소리가 있기 때문에 다 관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은 넷플릭스에게 지금 미국 다음으로 중요한 나라다. 전략적인 수를 고민할 것이다.”

“정당한 보상 없으면 오징어게임 더 이상 나오지 못해”

▲ 지난 6월 14일 오후 서울 종로구 넷플릭스 한국지사 건물 앞에서 진행된 미국작가조합 파업지지 연대 시위. 사진=윤유경 기자.
▲ 지난 6월 14일 오후 서울 종로구 넷플릭스 한국지사 건물 앞에서 진행된 미국작가조합 파업지지 연대 시위. 사진=윤유경 기자.

- 여러 이유로 창작자들이 정당한 보상에 대한 목소리를 내기 쉽지 않은 구조 같다.

“문체부가 중요한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국내 창작자들이 살아야 국내 OTT도 산다. 단기적인 입장에 매몰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우리는 우리 나름대로 합리적이라 생각한다. 차등해서 보상받을 수 있다는 것 아닌가. 국회 권한으로 밀어붙일 수 있지만 쉬운 건 아니다. 넷플릭스 독주를 어떻게 차단하고 창작자를 보호할 것인지 동등한 무게를 자지고 고려했으면 좋겠다. 두 가지를 다 만족시킬 수 있는 대안은 분명히 존재한다.”

- 대중의 지지도 필요하다. 콘텐츠를 즐기는 사람은 다수여도 창작자의 고충은 별로 알려지지 않았다.

“OTT 이후 현재 나오는 콘텐츠들에 사람들이 얼마나 만족하는지 모르겠다. 볼 게 더 많아졌다는 분들도, 볼 게 없다는 분들도 있을 것이다. 하나 확실한 건 정당한 보상 시스템이 마련되지 않으면 창작자층이 무너질 수 있다는 점이다. 특히 최근 젊은 세대가 공정성에 예민하지 않나. 지금 업계가 정당한 보상이 없는 생태계라는 걸 알면 누가 앞으로 들어오고 싶겠나. 인력난은 실제 현실이 되고 있다. 영화나 드라마에 신진 작가가 들어오는 경우가 많이 줄었다. 예를 들어 웹툰, 웹소설 분야가 정당한 보상을 준다는 인식이 생기면 그곳으로 다 옮겨갈 수 있다. 스토리텔링 재능이 있는 인재가 한 분야에 쏠리는 것이다. 음악만 놓고 봐도 노래방에서 틀어지면 보상이 간다. 영상 콘텐츠에도 그런 메커니즘이 도입되지 않는다면 오징어게임은 더 이상 만들어지지 못한다. 쇠락의 길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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