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OTT(온라인동영상서비스) 업체들의 불공정 계약을 비판하며 파업 중인 미국작가조합(WGA)에 한국 작가들이 지지하는 집회를 열었다. 이들은 국내 방송사·제작사에서 이미 일반화된 불공정 관행이 OTT와 AI(인공지능)의 발달로 심각해질 것을 우려했다. 세계 각국의 작가들도 전 세계 작가들의 불안정한 근무 환경에 공감하며 파업을 지지했다. 

▲ 14일 오후 서울 종로구 넷플릭스 한국지사 건물 앞에서 진행된 미국작가조합 파업지지 연대 시위. 사진=윤유경 기자.
▲ 14일 오후 서울 종로구 넷플릭스 한국지사 건물 앞에서 진행된 미국작가조합 파업지지 연대 시위. 사진=윤유경 기자.

한국시나리오작가조합(SGK)·웹툰작가노동조합·전국언론노동조합 방송작가지부·국제사무직노동조합연맹 한국협의회는 14일 오후 서울 종로구 넷플릭스 한국지사 건물 앞에서 미국작가조합 파업지지 연대 시위를 진행했다. 

▲ 14일 오후 서울 종로구 넷플릭스 한국지사 건물 앞에서 진행된 미국작가조합 파업지지 연대 시위. 사진=윤유경 기자.
▲ 14일 오후 서울 종로구 넷플릭스 한국지사 건물 앞에서 진행된 미국작가조합 파업지지 연대 시위. 사진=윤유경 기자.

WGA는 지난달 2일(현지시간) 1만1500여명 규모의 조합원들과 함께 대규모 파업에 돌입했다. 이들은 글로벌 스트리밍 업체들이 작가에게 적절한 집필 시간과 환경, 정당한 보상을 보장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AI가 생성한 글은 작가의 저작을 위한 기초자료일뿐 ‘어문 저작권’이 아니라고 주장하며 대본 작업에 AI를 활용하는 것을 규제해야 한다고도 했다.

▲ WGA는 지난달 2일(현지시간) 대규모 파업에 돌입했다. WGA 유튜브 갈무리.
▲ WGA는 지난달 2일(현지시간) 대규모 파업에 돌입했다. WGA 유튜브 갈무리.

14일 시위 현장에 모인 한국 작가들은 국내 방송사·제작사에서 벌어지고 있는 불공정 관행이 OTT와 AI의 발달로 심각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제작사들이 AI가 만든 대본 초안을 작가들에게 수정하라고 지시하는 상황을 설명하며, AI가 작가의 창작성을 빼앗아가는 착취의 도구로 기능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하신아 웹툰작가노동조합 위원장은 레진코믹스 대표가 미성년자 작가 저작권을 편취하거나 검정고무신 작가 저작권 편취사건을 언급했다. 한희성 레진코믹스 대표는 2013년 만 17세이던 웹툰 작가와 웹툰 연재 계약을 맺은 후, 글 작가에 본인의 필명 ‘레진’을 표시해두고 저작권 수익의 15~30%를 떼 갔다. 1심과 2심 재판부는 한씨에게 벌금 1000만 원을 선고했다. 만화 ‘검정고무신’을 그린 고 이우영 작가는 지난 3월 제작사 대표와 만화 저작권과 관련한 소송으로 갈등을 겪다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 14일 오후 서울 종로구 넷플릭스 한국지사 건물 앞에서 진행된 미국작가조합 파업지지 연대 시위에서 발언하는 하신아 웹툰작가노동조합 위원장(왼쪽). 사진=윤유경 기자.
▲ 14일 오후 서울 종로구 넷플릭스 한국지사 건물 앞에서 진행된 미국작가조합 파업지지 연대 시위에서 발언하는 하신아 웹툰작가노동조합 위원장(왼쪽). 사진=윤유경 기자.

하 위원장은 “앞으로는 더 교활한 편취가 발생할 것”이라며 “AI가 누구나 생각할 수 있을 만한 초안을 내놓으면, 그 초안을 가지고 작가를 고용해 ‘내가 초안을 썼으니까 너는 저작권이 없다’고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아울러 “AI로 초안까지는 잡을 수 있지만, 제대로 된 완성도 있는 작품을 만들어내지 못한다”며 “결국 그 초안을 보정하는 건 작가인데, AI를 도입해 AI가 만들어낸 초안에 작가의 생명력을 갈아 넣어서 작가의 창작물을 쉽사리 회사의 것으로 만들기 위한 착취의 도구로 사용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승현 한국시나리오작가조합 소속 작가도 “AI의 초안은 인터넷 상에 있는 기존 작품, 문장을 긁어모아서 취합한 것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어문 저작물이 될 수 없다”며 “넷플릭스 등 결정권자들은 글을 한 번도 만져보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에게는 AI가 뽑아낸 초안도 글로 보이는 것이다. 하지만 초안을 각색하는 작가 입장에서는 처음부터 다시 다 고쳐야한다. (제작사는) AI가 만들어낸 초안을 아주 낮은 단가에 작가에게 각색하라며 맡기게 되고, 작가는 매우 적은 돈을 받고 각본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시 써야하는 상황이 도래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 14일 오후 서울 종로구 넷플릭스 한국지사 건물 앞에서 진행된 미국작가조합 파업지지 연대 시위에서 발언하는 이승현 한국시나리오작가조합 소속 작가. 사진=윤유경 기자.
▲ 14일 오후 서울 종로구 넷플릭스 한국지사 건물 앞에서 진행된 미국작가조합 파업지지 연대 시위에서 발언하는 이승현 한국시나리오작가조합 소속 작가. 사진=윤유경 기자.

국내 방송사에서 벌어지고 있는 불공정 관행에 대한 지적도 제기됐다. 김순미 언론노조 방송작가지부 정책실장은 “아직도 많은 방송사에서 방송작가들을 프리랜서로 계약하며 ‘저작권을 방송사에 귀속한다’는 내용을 담은 계약서를 작성하고 있다”며 “심지어 공영방송인 KBS에서는 외부 규정을 이유로 지역 방송사 작가들에게 수십년 동안 재방송료와 사용료를 지급하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최정식 국제사무직노조연합 한국협의회 사무총장은 “한국은 현재 상황을 방치할 것이 아니고, 지금 현실에 맞는 새로운 입법과 정책이 필요하다”며 “우리는 단순히 WGA의 파업을 지지하는 것을 넘어서 한국 내 모든 작가들과 창작자들의 요구를 함께 담을 예정이다. 앞으로 방송작가지부, 시나리오작가지부, 웹툰작가지부와 협업해 새로운 장을 여는 데 적극 지지하고 연대할 예정”이라고 했다. 

▲ 14일 오후 서울 종로구 넷플릭스 한국지사 건물 앞에서 진행된 미국작가조합 파업지지 연대 시위에 참석한 최정식 국제사무직노조연합 한국협의회 사무총장(왼쪽), 이씬정석 문화예술노동연대 대표. 사진=윤유경 기자.
▲ 14일 오후 서울 종로구 넷플릭스 한국지사 건물 앞에서 진행된 미국작가조합 파업지지 연대 시위에 참석한 최정식 국제사무직노조연합 한국협의회 사무총장(왼쪽), 이씬정석 문화예술노동연대 대표. 사진=윤유경 기자.

아울러 “OTT 산업의 2025년도 예상되는 수익이 2280억 달러라는 업계 리포트가 나왔다. 2021년 넷플릭스는 56억 달러의 이익을 냈다”며 “그정도로 어마어마한 수익을 내는 넷플릭스 등 OTT 압체가 작가, 창작자, 노동자들의 보상은 제대로 하지 않고 있다. 반드시 이 부분을 현실화시키고 정당한 보상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 작가 단체들은 “스트리밍의 선두주자 넷플릭스가 시작한 약탈적 사업모델은 전 지구로 퍼져나가 영상산업의 근간을 위협하고 있다”며 “장르와 분야를 막론하고 창작자들 간의 연대를 지속해 해외보다 더 끔찍한 현실 속에서 창작을 지속해 나가는 우리의 권리를 지켜나갈 노력을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정부와 국회에도 “‘K-콘텐츠 육성’이라는 공허한 구호만 외칠 것이 아니라 1987년 저작권법을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춰 속히 개정하라”며 “현재의 스트리밍 플랫폼뿐만 아니라 미래에 어떠한 새로운 미디어와 플랫폼이 출현한다고 하더라도 창작자에게 작품의 사용량에 비례하는 보상이 주어질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요구했다.

▲  14일 오후 서울 종로구 넷플릭스 한국지사 건물 앞에서 진행된 미국작가조합 파업지지 연대 시위. 사진=윤유경 기자.
▲  14일 오후 서울 종로구 넷플릭스 한국지사 건물 앞에서 진행된 미국작가조합 파업지지 연대 시위. 사진=윤유경 기자.

한편 런던, 파리, 베를린, 로마, 바르셀로나, 멕시코시티, 부에노스아이레스 등 세계 23개 국가의 작가들은 ‘온 세상 작가들과 함께(Screenwriters Everywhere)’를 외치며 각자의 시간을 기준으로 6월14일 일제히 시위에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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