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작가조합(WGA)에 이어 배우·방송인 노동조합(SAG-AFTRA) 파업이 마무리되면서 할리우드의 시계가 다시 돌아가기 시작했다. 창작자와 기업 간 갈등은 일단락됐지만 OTT 스트리밍 시대가 가져온 콘텐츠 업계 혼란은 계속될 전망이다. 워싱턴포스트(WP)는 “아직 산업 전반의 ‘고통스러운 전환’은 끝나지 않았다”고 평가했고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은 “스트리밍 전환은 업계 전체를 혼란에 빠뜨렸다”고 비판했다.

▲ 파업하고 있는 사람들. 사진=SAG-AFTRA
▲ 파업하고 있는 사람들. 사진=SAG-AFTRA

배우·방송인 노동조합(SAG-AFTRA)은 지난 8일(현지시간) “118일의 파업을 끝내는 영화·TV 제작자동맹(AMPTP)과의 잠정 합의를 승인했다”고 밝혔다. 드라마 ‘못말리는 유모’(The Nanny)로 유명한 프란 드레셔 배우노조 위원장은 인스타그램에 임금인상 등 계약의 효과가 “10억 달러 이상”이라며 “이전 계약의 3배”라고 설명했다. 계약 기간은 3년이다.

지난 5월 파업을 시작한 작가들과 발맞춰 할리우드 배우들은 지난 7월13일 ‘동반파업’을 시작했다. 상대는 넷플릭스, 디즈니 등 사업자단체에 해당하는 제작자동맹으로 배우와 작가 동반파업은 1960년 이후 63년 만이다. 작가들은 지난 9월 148일 만에 파업을 종료했다.

배우조합의 공식 합의안이 나오진 않았지만 언론 보도를 통해 윤곽이 잡히고 있다. 버라이어티는 노조가 협상 초기 스트리밍 수익의 2%를 요구했지만 거절당했고 이후 연간 약 4000만 달러로 합의했다고 보도했다. 뉴욕타임스(NYT)는 “스트리밍 수익의 일정 비율을 지급하는 대신 성과 지표를 기반으로 한 새로운 재상영분배금을 제안했다”고 보도했다. 넷플릭스 등 스트리밍 업체는 재생 횟수 등 흥행 데이터를 공개하지 않아 로열티 성격을 갖는 ‘재상영분배금’이 노사 갈등 핵심이었다.

▲ 프란 드레셔 배우노조 위원장 인스타그램.
▲ 프란 드레셔 배우노조 위원장 인스타그램.

미국 CBS는 “첫 90일 동안 총 국내 스트리밍 시간을 영화 또는 TV 시리즈의 총 러닝타임으로 나누어 ‘국내 조회수’를 계산하고 이 국내 조회수를 총 국내 구독자 수로 나누어 ‘성과지표’를 결정한다”며 “결과가 0.2 이상이면 보너스가 지급된다. 보너스의 75%는 연기자(performer)에게 지급되며, 나머지는 스트리밍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사람들을 보상하기 위한 새로운 ‘스트리밍 수익 분배기금’으로 사용된다”고 했다. 이외에도 배우들의 임금이 7%, 엑스트라 임금은 11% 인상된다.

작가들 역시 지난 9월 파업을 종료하며 더 큰 몫의 로열티를 얻어냈다. WGA는 제작진에 지급되는 재상영분배금(해외 스트리밍)이 약 76% 증가할 것이라 봤다. 예를 들어 넷플릭스 1시간 에피소드의 경우 해외 재상영분배금이 3년 동안 1만8684달러였지만 3만2830달러로 오르게 된다. WGA는 이번 합의안에 연간 약 2억3300만 달러 가치의 개선 사항이 포함돼 있다고 추산했다.

AI 활용에 대한 소통도 늘어난다. 현재 넷플릭스, 디즈니 등 OTT 기업들은 천문학적인 금액으로 AI 관련 기술자를 영입하는 등 AI를 활용한 비용 절감에 매달리고 있다. 이미 AI를 통해 배우 출연 없이도 목소리, 10년 전 얼굴 등을 복원할 수 있게 됐고 창작 현장에선 AI가 만든 대본 초안을 작가들에게 수정하라고 지시하는 등 AI와 작가의 분업이 이뤄지고 있는 상황이다.

워싱턴포스트(WP)는 “이번 합의로 배우들이 AI 활용에 대한 ‘사전 동의’를 하고 디지털 복제본에 대한 ‘공정한 보상’을 받게 됐다”고 했다. 가디언에 따르면 작가 파업 이후엔 기존 작가가 이미 작성한 시나리오를 AI가 편집할 수 없게 됐고, 작가가 AI의 결과물을 각색하더라도 ‘오리지널’ 시나리오로 간주될 수 있도록 했다.

파업은 끝나도 OTT 혼란은 그대로 “업계 전반의 위기”

▲ 워싱턴포스트 8일자 기사.
▲ 워싱턴포스트 8일자 기사.

파업은 끝났지만 OTT가 가져온 변화의 물결은 돌이킬 수 없게 됐다. 워싱턴포스트(WP)는 지난 10일 <할리우드 파업은 끝났지만 업계 전반의 고통스러운 전환은 끝나지 않았다>는 기사를 통해 극심한 경쟁으로 위기에 몰린 스트리밍 업계를 설명했다. WP는 “디즈니플러스와 HBO 맥스 등이 넷플릭스와 경쟁하기 위해 콘텐츠 ‘물량 공세’를 폈었지만 몇 년 후 대부분은 TV시리즈와 영화 제작을 줄이고 인력을 감축하기 시작했다. 경쟁 심화로 수익성을 확보하기 위한 방법을 필사적으로 모색하는 것”이라고 했다.

넷플릭스는 매주 하나 이상의 새로운 오리지널 공개를 예정했던 목표를 절반으로 줄였고 밥 아이거 디즈니 CEO는 8000명 이상의 구조조정을 발표했다. 조나단 태플린 USC 아넨버그 혁신연구소 이사는 WP에 “스트리밍 비즈니스는 완전히 엉망이다. 콘텐츠는 너무 많은데 아무도 수익을 낼 수는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은 지난 8일 버라이어티 인터뷰에서 “할리우드 파업 중 가장 미친 것 같았던 건 스튜디오가 ‘돈이 부족해서 돈을 줄 수 없다’고 말하는 부분”이라며 “‘당신이 비즈니스를 제대로 관리하지 않아서 돈이 충분하지 않은 것이다. 당신들은 (스트리밍 시대) 이전과 같은 수익을 얻지 못하고 있다’고 답하고 싶다”고 말했다. 놀란 감독은 “스트리밍 전환은 업계 전체를 혼란에 빠뜨렸고 모두에게 문제를 야기했다”고 말했다.

▲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버라이어티 인터뷰.
▲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버라이어티 인터뷰.

OTT 시대 이후의 업계 위기는 한국도 마찬가지다. 넷플릭스를 제외하면 수익을 거두는 곳이 없다. 웨이브의 영업손실은 2021년 558억 원, 2022년 1213억 원으로 해를 거듭할수록 적자 규모가 커지고 있다. 티빙의 영업손실 규모 역시 2021년 762억 원, 2022년 1191억 원이다. 디즈니 또한 드라마 ‘무빙’의 성공으로 소폭 반등했지만 성과 부진으로 한때 한국 시장 철수 소문까지 돌았다. 그 결과 한국 콘텐츠 전반의 제작편수가 이전에 비해 크게 줄었다.

김병인 한국시나리오작가조합 대표는 지난달 미디어오늘 인터뷰에서 “영화는 거의 멈추다시피 했다. 구조적으로 힘든 상황에서 작품 100편 정도가 묶여있다고 하더라. 플랫폼을 선정하지도 않은 상태에서 100억, 200억 만들다 보니 플랫폼 업계가 침체해 (작품을) 안 걸어준다”며 “(OTT 시대 이후) 케이블, 공중파 힘이 다 빠져 버렸다. 방송국도 월화, 수목드라마 슬롯을 다 없애 버렸다. 투자자들도 발을 빼버린 상황에서 오롯이 서 있는 데가 넷플릭스밖에 없다. 창작자들에게 문이 3개 열려 있었다면 그 중 2개가 닫혀버렸다. 문 사이즈 자체가 커졌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미국 작가와 배우들이 인상에 성공한 ‘재상영분배금’도 한국에선 주어지지 않아 추후 계속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김병인 대표는 “OTT만 그렇다. 방송계는 (원래) 작가나 배우들이 재방, 삼방 때마다 일정 금액을 받았다”며 “이번 할리우스 파업으로 넷플릭스가 더 이상 핑계댈 것이 없어졌다고 본다. 파업이 비례적 보상을 이끌어냈기 때문이다. 미국에서도 비례적인 보상이 주어졌으니 글로벌 스탠더드라면 한국에도 적용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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