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권은 지난 대선 사흘 전 ‘허위 인터뷰’를 내보냈다는 이유로 비영리 독립언론 뉴스타파에 전방위적 공세를 펴고 있다. 윤석민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는 “뉴스타파가 분명 실수를 했다. 그 실수를 인정하고 사과해야 한다”며 “김용진 뉴스타파 대표가 자진사퇴로 결자해지해야 한다. 그래야 대안 언론 뉴스타파를 살릴 수 있다”고 밝혔다. 윤 교수를 18일 오후 서울대 IBK커뮤니케이션센터에서 만났다.

보수성향으로 평가받는 윤 교수는 “뉴스타파 같은 언론이 있어야 한다”며 뉴스타파에 깊은 애정을 보이면서도 “제대로 된 사과 없이 지금처럼 버틴다면, 향후 후원이 끊겨 어려워지거나 아니면 편향적 후원자만 남게 되어 균형을 잃은 ‘전투적 언론’으로 퇴보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윤 교수는 최근 ‘김만배·신학림 녹취록’ 논란이 불거진 뒤, 지난 6년 동안의 뉴스타파 후원을 고심 끝에 끊었다.

▲ 윤석민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는 18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뉴스타파가 분명 실수를 했다. 그 실수를 인정하고 사과해야 한다”며 “김용진 뉴스타파 대표가 자진사퇴로 결자해지해야 한다. 그래야 대안 언론 뉴스타파를 살릴 수 있다”고 밝혔다. 사진=미디어오늘.
▲ 윤석민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는 18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뉴스타파가 분명 실수를 했다. 그 실수를 인정하고 사과해야 한다”며 “김용진 뉴스타파 대표가 자진사퇴로 결자해지해야 한다. 그래야 대안 언론 뉴스타파를 살릴 수 있다”고 밝혔다. 사진=미디어오늘.

뉴스타파는 지난해 3월6일 ‘대장동 일당’ 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씨와 신학림 전 전국언론노조 위원장(전 뉴스타파 전문위원)의 대화 육성을 단독 보도했다. 뉴스타파는 두 사람 발언 가운데 “박영수 변호사(전 특검)와 윤석열 검사를 통해 부산저축은행 사건을 해결했다”는 취지의 김만배 음성을 12분짜리 리포트로 내보냈다. 보도 골자는 대장동 개발 종잣돈을 끌어모은 대출 브로커이자 천화동인 6호 실소유주 조우형씨가 김씨의 법조 로비를 통해 2011년 대검 중수부 윤석열 수사팀에서 특혜 수사를 받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김·신 두 사람 사이 거액 1억6500만 원이 오갔다는 점 △뉴스타파 보도에서 수사 무마 주체를 윤석열로 부각하는 편집이 확인된 점 △대장동 일당이 진술을 번복한 점 등이 지적되며 ‘부실 보도’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윤석열 정권은 뉴스타파 보도를 ‘대선 개입 여론조작’으로 규정하고 전방위적 압박에 나섰다. 검찰이 지난 14일 윤석열 명예훼손 혐의로 서울 중구 뉴스타파 사옥에 들어가 압수수색을 진행했고,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19일 뉴스타파를 인용한 방송 보도에 중징계를 내리는 등 정권 차원의 언론통제가 정점을 향하고 있다. 윤 교수는 “대안 언론을 상대로 강압적으로 수사하는 방식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윤 정권이 속전속결로 공영방송 이사·사장을 해임하며 강경 일변도 언론관을 보이고 있는 데 대해선 “점령군이 약탈하는 모습을 연출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 윤 교수는 “뉴스타파가 제대로 된 사과를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어떤 의미인가?

“뉴스타파 보도 전 빼도 박도 못하는 돈거래가 있었고, 보도에 짜깁기가 있어서 오해하게 한 대목도 있었다. 국민 알 권리가 우선이라는 생각에 과도하게 추정을 앞세웠고 검증에 최선을 다하지 못했다는 내용이 사과에 담겨야 한다. 뉴스타파가 의존한 것은 대장동 일당들 진술이었다. 그들 증언이 얼마나 취약한지, 말을 어떻게 바꿔왔는지 잘 알지 않느냐. 뉴스타파는 진실게임에서 졌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뉴스타파는 분명 실수를 했다. 책임과 사과에도 타이밍이 있는데 이를 놓친 것 같다.”

- 자사 보도를 성찰할 시간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뉴스타파에 대한 정부·여당 공세가 거친 것도 사실이다.

“여당 대표라는 사람이 ‘사형’, ‘1급 살인죄’, ‘반역’을 운운하는 등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뉴스타파도 여러 생각을 할 텐데 여권의 초강세 압박이 뉴스타파로 하여금 ‘결코 굴복할 수 없다’는 결의를 다지게끔 하고 있다. 공포정치에 대한 반발로 버티는 모양새인데, 이대로 지속되면 뉴스타파가 문을 닫을 수 있겠단 생각이다. 제대로 된 사과 없이 지금처럼 버틴다면 향후 후원이 끊겨 어려워지거나 아니면 편향적 후원자만 남게 되어 균형 잃은 ‘전투적 언론’으로 퇴보할 것이다. 기자들이 전사로 기능하는, 즉 밀리턴트 저널리스트(Militant Journalist)가 돼서는 안 된다. ‘전투적 언론의 길’은 사실상 문을 닫는 것과 마찬가지다.”

▲ 대선개입 여론조작 의혹 특별수사팀은 지난 14일 오전 9시 윤석열 대통령 명예훼손 혐의로 서울 중구 뉴스타파 사옥 압수수색에 나섰다. 뉴스타파 취재진이 검찰의 수사와 정권의 언론탄압을 규탄하는 성명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김도연 기자.
▲ 대선개입 여론조작 의혹 특별수사팀은 지난 14일 오전 9시 윤석열 대통령 명예훼손 혐의로 서울 중구 뉴스타파 사옥 압수수색에 나섰다. 뉴스타파 취재진이 검찰의 수사와 정권의 언론탄압을 규탄하는 성명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김도연 기자.

- 정부·여당이 주장하는 것처럼 뉴스타파가 고의로 선거에 영향을 미치기 위해 녹취록을 보도했다고 보는가?

“대안 언론이 악의적으로, 선거에 영향을 미치기 위해 조직적인 반민주적 행위를 벌였다? 그렇게까지 보지 않는다. 뉴스타파에 관한 수사를 더 지켜봐야겠지만 부산저축은행 불법대출 수사무마 건 역시 전모를 단정할 수 없다. 다만 뉴스타파가 실수를 인정하고 사과할 땐 사과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과한다고 해서 권력 비판을 못하는 것도 아니지 않나. 최근 자사 간부가 김만배씨로부터 돈을 받은 사실이 드러나자 한겨레는 대대적으로 사과문을 내고 그에 관한 진상조사 보고서도 공개했다. 그런 과정을 거쳤다고 해서 지금 한겨레가 권력 비판을 못하고 있는가? 그렇지 않다. 조선일보 역시 조국·조민 일러스트 논란 당시 전면에 사과하고 보도 과정을 밝힌 바 있다. 이런 과정이 있어야 독자들이 ‘그래도 잘못을 인정할 줄 안다’고 평가하고 다시 신뢰를 보낸다. 뉴스타파도 난관에 봉착했다고 본다. 김용진 대표가 뉴스타파 보도가 미숙했고 사실 검증이라는 원칙을 지키지 못했음을 인정하고 사퇴를 통해 책임지는 모습을 보인다면 다시 신뢰를 회복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뉴스타파를 지키는 길이기도 하다.”

- 지난 6년간 뉴스타파를 후원했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뉴스타파 같은 대안 언론은 있어야 한다. 뉴스타파는 진보성향이고 현 정부에 비판적 탐사 보도를 해온 것도 사실이다. 이는 대부분의 대안 언론이 가진 특징이기도 하다. 과거 MBC ‘PD수첩’ 황우석 보도는 좌우를 생각하지 않고 팩트에 입각한 탐사 보도라고 평가한다. 그때는 응원도 많이 했다. 그러나 광우병 보도부터는 신념에 의해, 정의감에 매몰된 진영 미디어 역할을 한다는 생각에 PD수첩 비판을 많이 했다. 뉴스타파는 사실에 입각해 성역 없는 비판을 하는 대안 언론을 표방했고, 독립적 후원 모델로서 특정 정치 세력 편을 들지 않는 탈 진영 저널리즘 가능성을 보여줬다.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 저널리즘의 가능성을 뉴스타파에서 본 것이다. 뉴스타파 구성원을 여럿 알고 있다. 그들은 순수한 열정 하나로 취재하는 이들이다. 진짜 언론 근본주의자들이 만드는 언론이었다. 이를테면, 뉴스타파는 김어준의 세월호 보도 음모설을 계속 추적하면서 팩트에 기초해 비판했다. 이런 모습을 진심으로 응원했다. 현재는 ‘권력과 맞서다가 장렬하게 전사하겠다, 이는 영예로운 훈장이다’라고 생각하는 듯한데 유아적 판단이다. 사과는 패배하는 게 아니라 성장의 과정이다. 뉴스타파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해온 김 대표도 뉴스타파를 살리는 길이 무엇인지 아실 거라 믿는다.”

▲ 뉴스타파 취재진이 지난 14일 오전 검찰 수사에 항의하는 피켓을 들고 있다. 사진=김도연 기자.
▲ 뉴스타파 취재진이 지난 14일 오전 검찰 수사에 항의하는 피켓을 들고 있다. 사진=김도연 기자.

- 여당은 이 사건을 ‘대선 개입 여론조작’으로 규정하고 뉴스타파를 향해 “사형”, “1급 살인죄” 발언을 하며 압박하고 있다. 어떻게 평가하나?

“명백히 반대하며 분명히 잘못됐다. 권력이 언론을 향해 말할 때는 비판 자체에 신중해야 한다. 하물며 이번 과격한 언사들은 굉장히 옳지 못한 처사로 현 정부 수준을 보여주고 있다. 검찰이 압수수색을 진행했고 이를 통해 기소하게 되면 재판이 이어지는 등 일련의 사실 검증 과정이 있는데도 여당 대표가 마치 사실이 다 밝혀진 양 귀를 의심케 하는 발언을 쏟아냈다. 전혀 이해할 수 없다. 현재 최선은 ‘수사 결과를 지켜보겠다’ 정도에서 입을 다물고 있는 것이다.”

- 윤석열 정권은 속전속결로 KBS 이사와 사장을 해임하며 이른바 ‘방송 정상화’에 나섰다. 이를 방송 정상화라 볼 수 있는가? 야권에서는 ‘방송 장악’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윤 정권의 언론정책과 언론관을 어떻게 평가하나?

“지난 문재인 정부, 또 그전 정부들이 되풀이한 행태를 반복했다. 지극히 실망스럽다. 나는 윤석열 정권이 과거와 다를 거라고 기대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경우 핍박을 감수하고 자신이 딛고 있던 진영을 거부한 인물이고 국민들이 이런 모습을 평가해 권력으로 세웠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지금 모습은 진영권력이 해온 일을 반복하고 있을 뿐이다. 특히 미디어 영역에서의 정권 행보는 너무도 실망스럽다. 누가 윤 대통령에게 미디어에 관해 조언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정말 시대에 뒤떨어진 최악의 인물일 거라 생각한다.”

▲ 윤석열 대통령과 이동관 방송통신위원장. ⓒ연합뉴스
▲ 윤석열 대통령과 이동관 방송통신위원장. ⓒ연합뉴스

- 대통령실이나 정권 내, 특히 미디어 관련 부처나 기관에 ‘합리적 보수’로 평가되는 인사들이 보이지 않는다.

“인수위원회 때 참여했던 합리적 학자들의 모습이 지금은 보이지 않는다. 보수진영에서 합리적 인사로 평가받는 학자들이 체계적으로 배제된 모습이다. 내년 선거를 앞두고 있어서 그런 것일 수도 있지만 내가 볼 때는 미디어판을 진영논리, 장악의 논리로만 사고하고 공영방송을 전리품으로 간주하는 수준 이하의 구시대적 인물이 주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공영방송 사장을 교체하고 포털을 압박하는 것만이 전부인 이들이 똬리를 틀고 있고, 그러다 보니 합리적 인물들은 뒷전으로 물러나게 됐다. 너무나 잘못된 길로 들어섰다. 진정한 의미의 보수가 아닌, 점령군이 약탈하는 모습을 연출하고 있다. 국민이 이를 모를 것 같나. 이 모든 일이 결과로 돌아올 것이다. 그러나 (보수진영의) 그 누구도 이 문제를 지적하지 않는다.”

윤 교수는 깊게 한숨을 쉬며 “언론에 대한 인식이 결여돼 있는, 천박한 사고에 갇힌 이들이 난폭하게 미디어 판을 흔들고 있다”며 “비이성적 상황이 지속되고 있는데 결국 그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진영에 장악된 미디어 정책기구 및 공영방송 문제를 시스템 차원에서 해결하는 모습을 보였어야 했다. 이런 대승적 모습을 보였다면 국민들이 뜨겁게 지지했을 것이다. 그게 윤 대통령 정체성에도 부합했다. 현재 전개되는 사태들은 지난 문재인 정부의 위선적 행태와 전혀 다를 바 없다.” 그는 “뉴스타파 역시 ‘언론탄압’이라는 여론에 편승해 강경 투쟁에 나선다면 다시는 신뢰를 회복하지 못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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