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만배 그 친구는 대장동으로 돈 벌기 전에도 법조 후배 기자들에게 음으로 양으로 밥을 많이 샀다. 법조에서 터줏대감 노릇을 했으니까. 특별히 어떤 기사를 잘 써달라는 의미라기보다 (김만배에게) 돈이라는 건 그냥 있는 거니까. 그런 ‘김만배 스타일’을 봤을 땐 일상적 모습이라고 생각했다.”

지난 1월 신학림 전 전국언론노조 위원장(전 뉴스타파 전문위원·64)은 ‘기자들과 김만배의 돈거래’ 사태를 어떻게 바라보는지 묻는 미디어오늘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법조를 출입했던 한겨레, 중앙일보, 한국일보 고위 간부들이 ‘대장동 일당’ 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씨로부터 거액을 받은 사실이 드러난 직후였다.

언론 선후배 관계인 신 전 위원장과 김만배씨는 한국일보 계열사에 근무했다는 공통점이 있고, 신 전 위원장이 지난해 대선 직전 뉴스타파에 김씨와의 대화 녹취를 제공·보도했다는 점에서 ‘김만배 사태’ 보도에서 그는 우선순위 취재원이었다. 신 전 위원장은 당시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자신이 김씨와 1억6500만 원을 주고받았다는 사실은 밝히지 않고 김만배 사태를 논평했다.

▲ 뉴스타파가 지난 7일 ‘김만배·신학림 녹취 음성’ 전문을 공개했다. 사진=뉴스타파 보도 갈무리.
▲ 뉴스타파가 지난 7일 ‘김만배·신학림 녹취 음성’ 전문을 공개했다. 사진=뉴스타파 보도 갈무리.

신학림 “김만배에게 돈이란 그냥 있는 것”

그로부터 8개월이 지난 현재 신 전 위원장은 김씨에게 부정한 청탁과 금품을 받고 비영리 독립언론 뉴스타파를 통해 지난해 대선 사흘 전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에게 불리한 ‘허위 인터뷰’를 내보냈다고 의심 받고 있다. [관련기사 : ‘김만배·신학림 돈거래’에 보도검증 의심받는 뉴스타파]

현재까진 ‘대선개입 여론조작’은 정부·여당과 검찰 주장일 뿐이지만 신 전 위원장이 김씨에게 1억6500만 원을 받은 사실이 드러나면서 언론계에 큰 파장이 일었다. 신 전 위원장은 자신이 집필한 책 ‘대한민국을 지배하는 혼맥지도’ 1세트(책 3권)를 판매한 대가라고 해명하고 있고 김씨도 “예술적 작품으로 치면 그 정도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 샀다”고 주장하지만, ‘비상식적 거래’라는 게 대다수 반응이다.

월간 ‘말’ 기자 출신 칼럼니스트 박권일씨는 12일 통화에서 “1억6500만 원이 ‘책값’이라는 그의 비상식적 해명은 자신이 저지른 행위에 대해 반성과 성찰이 없다는 걸 보여준다”며 “언론노조가 진보언론과 소속 기자들에게 갖는 위상을 생각하면, 김만배와의 돈거래는 언론인에 대한 최소한의 기대와 기본 신뢰를 무너뜨린 것”이라고 비판했다.

신 전 위원장을 아는 한 중견 언론인은 “김씨 입장에선 자기 손에 쥔 돈이 많으니 선배 언론인을 도와줄 겸 책 구매를 명분으로 거액을 준 게 아닌가 싶다. 김씨가 내심으론 신학림과의 돈거래에 기대치도 가졌을 것”이라며 “문제는 세간의 눈에는 김만배·신학림의 돈거래와 뉴스타파 보도가 전혀 분리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언론인이라면 취재원과 거액이 오간 사실에 유구무언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인터넷매체 편집장을 지낸 바 있는 김민하 시사평론가는 “현재 상황에서 1억6500만 원을 기획 인터뷰에 대한 대가로 볼 수도 있겠지만, 김만배씨가 기자들에게 돈을 뿌리거나 거래하는 방식은 특별히 기자들이 자신에게 무엇을 해줘서 그 보상으로 거액을 준다기보다 일단 우리 편으로 만들어놔야 나중에 도움이 될 거라는 식의 언론관리 차원으로 비쳐진다”고 했다.

▲ 신학림 전 전국언론노조 위원장이 지난 2016년 7월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족벌언론과 한국사회 지배세력 혼맥’에 관해 강의하고 있다. 사진=미디어오늘.
▲ 신학림 전 전국언론노조 위원장이 지난 2016년 7월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족벌언론과 한국사회 지배세력 혼맥’에 관해 강의하고 있다. 사진=미디어오늘.

“신학림, 주변에 책 1억 이하엔 팔지 않겠다 말해”

신 전 위원장은 한국사회를 지배하는 기득권이 ‘혼맥’으로 긴밀히 연결돼 있다고 생각한다. 언론계 대표 ‘혼맥 전문가’로 알려진 그는 2016년 7월 한겨레21 인터뷰에서 “족벌 신문은 재벌과 함께 거대한 기득권 세력을 이루고 지배세력 중심에 있다”면서 “언론노조 위원장 임기(2003~2007년)가 끝나자 바로 사표를 쓰고 10년간 대한민국의 지배세력이 유력 가문과 어떻게 연관되는지만 팠다. 혼맥의 정체 탐구였다”며 “헌책방을 뒤지며 자서전과 전기, 평전을 수집해 3000~4000권을 읽었다. 책에서 인물의 성공, 성장 스토리에 등장하는 가족 이야기를 퍼즐 맞추듯 해 족벌 가계도를 그려나갔다”고 밝혔다.

신 전 위원장과 교분이 깊은 명진스님은 “신학림 위원장은 이전부터 혼맥에 관한 자기 자료에 자부심이 컸고 자랑도 많이 했다. 한국사회 권력 지형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혼맥지도라며 돈으로 따질 수 없다는 것”이라며 “자기 책 가치가 1억5000만 원이라는 이야기는 (김만배 사태 전에도) 말한 적 있다. 저쪽(정부·여당)은 대선 공작이라는 식으로 말하는데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특히 1억6500만 원과 관련해서는 큰 문제가 안 될 거라고 본다”고 주장했다. 신 전 위원장과 가까운 인사인 탁종열 노동인권저널리즘센터 소장도 “신 위원장은 주변에 자기 책을 1억 원 이하에는 판매하지 않는다고 자주 이야기했다. 책 판매를 했다는 말씀은 하셨는데, 누구에게 팔았는지는 나한테 이야기하지 않으셨다”며 “또 실제 책을 팔기 위해 언론사나 사람들을 만나 제안한 것으로도 안다”고 했다.

언론인의 거액 돈거래는 그 자체로 부적절하다는 비판이다. 하물며 거래 상대방이 법조·언론계 인맥을 활용하는 ‘대장동 로비스트’ 김만배라는 사실에서 언론·취재윤리 문제가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김민하 시사평론가는 “설사 신씨가 본인 책 한 권 가치가 5000만 원 이상이라 생각했대도 김씨를 취재 목적으로 만났다면 ‘기자와 취재원’ 관계가 되는 것”이라며 “그런 관계에서 오가는 금전거래가 부적절하다는 건 언론인이라면 누구나 알 수 있다. 매우 부적절한 처신”이라고 비판했다. 한 언론학자는 “(신 전 위원장은) 책 세 권을 1억6500만 원에 팔았다고 하면서 그 가운데 1500만 원은 부가세라고 했다. 책은 면세 대상인 데다가 납부할 수 없는 세금 명목으로 돈을 받았다면 돌려줬어야 하는 것 아닌가. 납득하기 어려운 해명”이라며 “신 전 위원장 본인 생각이 어떻든 사회적으로는 합리적 기준에 따라 판단하고 법 제도 역시 일반인의 평균적 상식에 비춰 판단을 내린다는 점에서 두 사람 돈거래는 문제의 소지가 크다”고 지적했다. 김만배씨가 책 가치가 아니라 언론인 선배 신학림의 이용 가치를 보고 거액을 건넸을 것이라는 게 일반 상식에 가깝다는 지적이다.

▲ 신학림 전 전국언론노조 위원장이 지난 1일 경기도 고양시 탄현동에서 검찰 수사에 대한 기자회견을 열고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이날 검찰은 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씨와 윤석열 대통령의 부산저축은행 사건 수사 무마 의혹에 대한 허위 인터뷰를 해주고 금품을 수수한 혐의로 신 전 위원장 수사에 나섰다. ⓒ연합뉴스
▲ 신학림 전 전국언론노조 위원장이 지난 1일 경기도 고양시 탄현동에서 검찰 수사에 대한 기자회견을 열고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이날 검찰은 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씨와 윤석열 대통령의 부산저축은행 사건 수사 무마 의혹에 대한 허위 인터뷰를 해주고 금품을 수수한 혐의로 신 전 위원장 수사에 나섰다. ⓒ연합뉴스

언론인으로서 이해충돌 회피 책무 이행했는가

신 전 위원장이 언론 민주화 운동을 위해 몸담았던 단체들도 이번 사태를 비판한다. 언론노조는 지난 4일 “신학림 전 뉴스타파 전문위원과 김만배 사이의 금전거래는 유무죄에 대한 사법적 판단과 별개로 취재원 및 취재 정보의 객관성과 신뢰성, 정보의 가치 중립성을 훼손한 것으로 언론윤리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신 전 위원장이 2008~2009년 집행위원장으로 활동한 언론개혁시민연대(언론연대)도 “신학림 전 뉴스타파 전문위원의 금전거래 사실은 이해충돌을 방지해야 하는 언론인의 의무 원칙을 위배하고 있다”며 “신 전 위원은 본인 저서가 그만한 금액 가치가 있다고 주장한다. 저서의 고가 구매를 대화 보도와 별개의 개인 간 거래로 설명하지만 이는 보편 상식이나 일반 판단에서 벗어난다. 엄격히 준수해야 할 언론 취재 윤리에서 어긋난다”고 지적했다.

김동찬 언론연대 정책위원장은 “신학림 전 위원은 언론 운동에 있어 주요 인물로 활동했다. 이번 사건은 그가 몸담았던 여러 곳에 어떤 방식으로든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조심스레 말했다. 김동찬 위원장은 “우리가 신 전 위원의 언론윤리 위반을 지적한 까닭은 이해충돌을 방지해야 하는 언론인의 의무 원칙을 위배했다고 봤기 때문”이라며 “언론인의 이해충돌 문제에서 중요한 것은 실제 보도에 자신의 이해관계가 반영됐는지 여부뿐 아니라 언론인으로서 이해충돌을 회피해야 할 책무를 이행했는지 여부”라고 밝혔다. 즉, 신 전 위원장이 지나치게 고액의 책값을 내놓는 김씨 의도와 돈 출처를 의심해야 했고, 시비가 따를 수밖에 없는 책값이라면 애당초 받지 않았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한편, 뉴스타파는 지난 5일 ‘김만배·신학림 금전거래 사실’에 사과 입장을 발표하고 보도 경위를 조사하는 진상조사위원회를 구성키로 했다. 조사 진행 과정과 결과도 투명하게 공개하겠다고 했다. 심인보 뉴스타파 기자는 12일 통화에서 “최고의결기구인 집행위원회에서 진상조사위 위원 구성 방식에 합의했고, 위원 선임은 아직 이뤄지지 않았다”고 했다. 뉴스타파가 진상조사를 통해 무너진 신뢰를 회복할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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