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의 태광그룹 비리의혹 수사는 어디까지 갈 것인가. 태광그룹 비리의혹 제보자인 박윤배 서울인베스트먼트 대표는 지난 15일 검찰에 출두해 "태광그룹이 케이블 방송 권역을 확장하는 과정에서 정·관계 인사들을 상대로 금품 로비를 벌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여기서 거론되는 '정·관계 인사들'은 과연 어느 선까지인지가 주목되고 있다. 일단 케이블 방송 권역 확장은 방송법이 아닌 방송법 시행령 개정의 결과다. 이 때문에 주 로비 대상은 정부 쪽, 특히 방송법 시행령 개정을 주도한 방송통신위원회(구 방송위원회)와 그 윗선인 청와대에 집중됐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종합유선방송사업자(SO)의 시장점유 제한 기준을 전체 종합유선방송권역의 5분의 1에서 3분의 1로 늘린 방송법 시행령 개정은 현 정부 출범 이후인 지난 2008년 11월 방송통신위원회에서 의결됐다. 하지만 태광그룹의 티브로드가 SO 권역 확대가 실현될 것으로 보고 큐릭스 지분 인수에 나섰다는 의혹은 전 정부가 집권하던 2006년 12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로비 시점이 2006년 12월 이전, 그러니까 노무현 정부 시절로 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는 이야기다. 

구체적인 전말은 이렇다. 태광그룹의 티브로드가 SO업계 1위를 굳건히 한 것은 지난해 5월 방송통신위원회가 ㈜티브로드홀딩스의 ㈜큐릭스홀딩스 인수를 승인함으로써 가능했다. 인수 전에도 SO업계 1위였던 ㈜티브로드홀딩스는 ㈜티브로드 계열 SO 15개사를 거느리던 지주회사였고, ㈜큐릭스홀딩스는 ㈜큐릭스 계열 SO 7개사의 지주회사로 SO업계 6위였다.

다른 SO들도 큐릭스를 인수해 몸집을 불리고 싶었지만, 큐릭스에 대한 잠재적 지배력을 이미 티브로드가 우회적으로 선점하고 있다는 소문이 관련업계에서는 파다했다. 티브로드홀딩스는 큐릭스홀딩스의 지분 70%를 약 2500억 원에 인수했다고 지난해 2월 공식 발표해 이 소문을 뒷받침했다. 그리고 한 달여 뒤인 그해 3월 25일에는 청와대 파견 행정관을 비롯한 방통위 간부가 티브로드 관계자로부터 '성 접대' 등을 받아 물의를 일으켰고, 이는 최종 승인을 앞두고 이뤄진 로비라는 의혹이 일었다.

그로부터 다시 한 달 뒤인 같은 해 4월 최문순 민주당 의원이 국회 상임위에서 군인공제회가 2006년 12월 이사회에서 의결한 '큐릭스홀딩스 지분인수(안)'이라는 문건을 공개했다. 업계에서 떠돌던 큐릭스홀딩스에 대한 티브로드의 '잠재적 지배력 선점'이 빈 말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이 문건에는 2006년 당시 군인공제회와 한국개발리스가 큐릭스홀딩스의 지분 30%를 각각 460억 원(15.3%)과 440억 원(14.7%)을 주고 인수하면, 2년 이내에 티브로드의 모기업 태광 쪽에 옵션을 붙여 이를 되팔 수 있는 것으로 적혀 있었다. 당시 방송법은 전국 77개 권역 중 15개 권역(20%)을 초과해 SO를 겸영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었다. 태광(당시 14개 권역)은 이 규정 때문에 큐릭스(6개 권역)를 곧바로 인수할 수 없었다. 최문순 의원은 "풋백옵션을 붙인 것은 시간이 지나면 인수할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던 것 아니냐"고 물었다. 

태광과 큐릭스 쪽은 이러한 '이면계약' 의혹을 전면 부인했다. 이를 조사하겠다던 방통위도 한 달 뒤 별 문제 삼지 않고 인수를 승인했다. 당시 방통위는 "옵션 계약은 의결권을 행사하거나 경영권을 지배할 수 없는 것으로서, 티브로드는 '주주가 될 가능성'을 보유한 것이지 방송법상의 '주식 또는 지분의 소유'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는 이유를 댔다. 야당이 추천한 이경자 방통위 상임위원이 "일종의 위장전입"이라고 문제를 제기했지만, 승인을 막을 수 없었다.

2008년 11월의 방송법 시행령 개정은 이미 2007년 11월 IPTV특별법 국회 통과와 함께 사실상 예고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CATV의 경쟁 플랫폼인 IPTV 사업자가 전국을 단일 권역으로 하고 있는 만큼 CATV의 SO 권역 확대가 이뤄져야 한다는 점에서는 대략적인 '합의'가 이뤄진 상태였다. 따라서 이후 태광의 로비가 이뤄졌다고 한다면 시행령 개정 자체를 위한 것이었다고만 보기는 어렵다. 큐릭스 공식인수 일정을 당기기 위해 로비를 했을 것이라는 게 업계의 해석이었다.

그러나 군인공제회 이사회 등이 태광에 대한 풋백옵션을 조건으로 큐릭스의 지분을 인수했던 2006년 12월에는 IPTV특별법 통과 전이다. SO들의 권역 규제 완화 전망도 불확실한 상태였다. 방송법 시행령 개정을 위한 로비가 이뤄졌다고 한다면 이 때 방송위 등을 상대로 집중됐을 개연성이 크다. 전 정권 시절이라는 점에서 MB 검찰이 칼날을 날카롭게 세울만도 했지만, 지난해 경찰과 검찰, 방통위의 수사 및 조사는 관련 의혹을 구체적으로 밝히지 못한 채 흐지부지됐다.

태광의 비자금 등이 문제가 된 것은 노무현 정부 시절부터다. 노무현 정부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18일 미디어오늘과의 통화에서 "2007년도에도 태광의 비자금 조성 등과 관련해 범법행위 정황이 있다고 보고 홍보수석실 자료를 받아 검찰에 넘겼다"고 말했다. 하지만 검찰 조사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고 한다.

노무현 정부 때 청와대는 티브로드의 불공정 행위 시비와 관련해 방송위원회에 조사할 것을 지시했으나 이마저도 방송위 실무진과의 유착 의혹으로 제대로 안된 것으로 전해졌다. 실제로 지난해 3월 '성 접대 로비' 의혹을 받은 김모 청와대 행정관과 신모 방통위 과장은 현 정부가 출범하기 전인 옛 방송위에서 SO업무를 맡아온 이들이다.

검찰이 현 시점에서 관련 수사를 재개한 것은 우선 구체적인 비자금 조성 내역 등이 나왔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제보자가 제출한 자료 역시 이와 관련된 것들이 많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와 함께 검찰이 압수수색 과정에서 확인했다고 하는 이른바 '정관계 로비 명단'의 내용이 밝혀질 수 있을지 여부가 이 사건의 파장의 척도가 될 것으로 보인다.

1차적으로는 이미 드러난 방통위(혹은 방송위) 실무자 수준을 넘어 방통위 위원 등 방통위 '실세'와 그 윗선인 청와대의 어느 선까지 연루됐을 것인지가 관전 포인트가 될 것이다. 이명박 정권 이전 노정권 때의 인사들이 '로비리스트'에 들어 있는지 여부도 주목되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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