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조사 결과 역시 많은 정보와 뉴스 중 하나일 뿐이다. 무시해도 곤란하지만 그렇다고 맹신할 필요도 없다. 믿을만한 조사결과가 대부분이지만 쓰레기처럼 무용한 것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중앙일보 신창운(51·사진) 여론조사 전문기자가 최근 펴낸 책 <여론조사 저널리즘>의 서문에 쓴 글이다. 이 책은 신 기자가 블로그를 통해 지난 2007년부터 지난 6·2 지방선거 직전까지 여론조사와 여론조사 보도에 대해 비평해 온 글을 모아 낸 책이다. 6·2 지방선거 여론조사에서 오세훈·한명숙 서울시장 후보의 지지율을 맞히지 못했던 경험을 겪은 신 기자는 최근 좀 더 정확한 조사결과를 얻기 위한 개선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고 했다. 지난달 30일 서울 중구 순화동 중앙일보 사옥에서 신 기자를 만났다.

   
  ▲ 중앙일보 신창운 여론조사 전문기자  
 
- 2004년부터 여론조사와 여론조사 보도에 대한 내용을 블로그에 꾸준히 올려왔는데.

“언론과 여론조사는 태생적으로 ‘불화 관계’다. ‘누가 정확하게 잘 하느냐’보다는 ‘누가 빨리 먼저 보도하느냐’가 중요한 게 언론이다. 김태호 국무총리 내정자가 사퇴 의사를 밝히면 다음날 곧바로 국민들의 반응을 보도해야 직성이 풀리는 게 언론이다. 근본적으로 언론사가 여론조사를 잘 할 수 없는 구조인 셈이다. 이런 ‘불화 관계’ 때문에 블로그의 소재가 전혀 딸리지 않았다.”

- 한국의 여론조사 절반 가량, 특히 각 정당 산하 기관이 실시하는 여론조사는 대부분 ‘쓰레기’라고 혹평했는데.

“정당 지지율을 놓고 서로 자기 당이 더 높다고 한다. 한나라당의 경우엔 여의도연구소장이 친박인지 친이인지에 따라 조사결과가 다르다는 인식도 있다. 각 당이 ‘입맛에 맞는’ 조사 기관만을 통해 조사하기도 한다. 이런 결과가 정확할 리 없다.”

- 언론에 보도되는 각종 여론조사를 보며 느끼는 게 있다면.

“가끔 여론조사 대상이 아니거나 묻지 않아야 할 것들을 묻는 경우가 있다. 세종시 이전과 관련해 어느 부처를 옮겨야 하는지까지 국민에게 물어선 안된다고 본다.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 여부도 국민들의 응답이 너무 뻔하기 때문에 설문 대상이 아니다. 정치 여론조사에서는 출마 의사조차 없는 사람을 후보로 만들어 조사를 하는 경우가 있는데, 잘못된 조사다.” 

- 6·2 지방선거 여론조사가 투표 결과와 크게 달랐다.

“오세훈 후보가 당선될 것이라고 ‘예측’하지 않았기 때문에 ‘실패’라는 지적이 조금 억울하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틀렸다고 말하는 게 현실이고, 내부적으로도 왜 조사 결과가 실제와 달랐는지 보고서를 써서 제출하기도 했다. 실패 원인 가운데 첫째는 표본의 대표성 문제였다. 전화조사를 하다 보니 낮 시간에 주로 집에 있는 노인층과 주부만 응답하고 학생과 직장인 등은 별로 없었다. 여기에 여론조사 응답자와 투표자 간 차이가 있었고, ‘누구를 찍겠느냐’는 질문만으로 응답자의 실제 성향을 잡아내기 어려웠다. 여론조사 실패 이후 중앙일보는 여러 가지 개선된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올해 말까지 연구를 거듭해 내년부터는 새로운 방식으로 조사를 할 계획인데, KT 전화번호부에 등록되지 않은 가구까지 포함하는 RDD(임의번호걸기·Random digit dialing) 방식 등을 고민하고 있다.”

- 여론조사 보도와 관련한 한국 언론의 문제점은.

“많은 언론사가 여론조사 질문지를 공개하지 않는데, 질문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도, 여론이 왜곡될 수도 있다. 질문지와 조사 과정을 공개하면 정파성에 따라 여론조사를 실시하고도 보도하지 않았다거나, 입맛에 맞게 질문지를 구성했다는 오해를 피할 수 있고 공신력을 얻을 수 있다. 여론조사를 지속적으로 실시해 장기적으로 데이터를 축적하는 언론이 거의 없다. 이명박 대통령의 지지도가 계속 같은 수준이면 ‘기사도 안 되는데 왜 자꾸 돈을 들여 조사하느냐’고 하는 게 한국 언론이다. 하지만 여론조사는 하면 할수록 진가가 살아나는 과학이다. 지속적으로 조사해야 시사점을 발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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