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을 총리 후보자로 발탁한 것부터가 자못 신선하다.…비록 흡족하지는 않지만 전반적으로 현 정권 출범 이후 가장 돋보이는 인사다."

이명박 대통령의 지난해 9월3일 개각은 언론의 찬사를 받았다. 한겨레는 9월4일자 사설에서 가장 돋보이는 인사라는 평가를 내렸다. 이 대통령은 정운찬 국무총리 기용으로 '중도 실용' 이미지를 각인시키는 효과를 봤다. 포용력 있는 정치지도자라는 평가도 덤으로 얻었다.

정확히 말하면 언론이 그렇게 몰아갔다. 중앙일보는 지난해 9월4일자 1면에 <'쓴소리' 해도 필요한 사람은 쓴다>라는 1면 머리기사를 내보냈다. 정운찬 전 총리 발탁에 대한 이 대통령의 판단을 평가한 내용이다.

정운찬 총리 기용에 찬사 쏟아낸 언론

   
  ▲ 중앙일보 2009년 9월4일자 1면.  
 
조선일보 역시 1면에 <'비판자'를 총리로>라는 기사를 머리기사로 실었다. 조선일보는 "민주당 잠재 주자 빼오며 박근혜 견제효과까지 다목적 정치 카드로 활용"이라는 기사 중간 제목을 뽑았다.

조선일보 분석은 핵심을 지적했다. 정운찬 총리는 2007년 대선을 앞두고 '한나라당 대세론'이 일었을 때 대항마로 유력하게 거론됐던 인물이다. 당시 여권에서는 이명박 후보의 '경제대통령' 슬로건에 맞상대하기 위해서는 서울대 출신의 저명한 경제학자인 정운찬 총장을 내세워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다.

이명박-정운찬 대결이 될 수도 있었던 2007년 대선은 정운찬 총리가 '대선 불출마' 기자회견을 하면서 정리됐다. 당시에도 정운찬 총리의 '정치력'이 검증 받지 않았다는 신중론도 있었지만, 대선 경쟁에서 고전을 면치 못했던 당시 여권에서는 정운찬 카드도 아쉽기만 했다.

이명박 대통령이 어쩌면 자신의 대항마가 될 수도 있었던 인물을 국무총리로 품었으니 언론의 찬사는 이어졌다. 이명박 대통령은 취임 초부터 고소영(고려대 소망교회 영남) 등 학연 지연 종교적 인연까지 '편향 인사'로 입방아에 올랐는데, 정운찬 카드를 통해 평가의 반전에 성공했다.

MB 대항마에서 MB 예스맨으로

 

   
  ▲ 이명박(사진 오른쪽) 대통령과 정운찬 국무총리. ⓒ연합뉴스  
 
정운찬 총리 역시 대통령 다음 자리인 총리까지 올랐다는 점에서 더 큰 꿈을 꾸기 위한 발판을 마련했다. '성공한 총리'가 된다면 차기 대선에서 다크호스로 떠오를 수 있는 기회를 잡았다.

그러나 정운찬 총리의 꿈이 흔들리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흐르지 않았다. 충남 출신에 경제 전문가, 세련된 이미지와 중도·개혁 성향 색깔까지 정운찬 총리는 정치인으로 성공할 수 있는 배경을 갖고 있었지만, 치명적인 약점도 있었다.

정치적 검증이 전무하다는 점이었다. 게다가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세금탈루, 병역기피, 스폰서 논란 등 각종 의혹이 불거졌다. 이 때 생긴 별명이 '양파 총리'라는 불명예스러운 별명이다.

이미지 강점을 보이는 인물의 치명적인 약점은 이미지가 무너질 때 방어수단이 만만치 않다는 점이다. 정운찬 총리는 임기 시작 전부터 흔들리고 있었다. 그를 결정적으로 흔들리게 한 문제는 바로 세종시 문제였다.

충청 민심, 환호에서 싸늘한 시선으로 바뀐 이유

충남 출신 총리 배출에 기뻐했던 지역민들은 정운찬 총리가 세종시 원안 폐기 입장을 밝히자 싸늘한 시선으로 바뀌었다. 정운찬 총리는 인사청문회 첫날 "국가적 차원에서 보면 행정적 비효율이 있다"면서 세종시 수정의 뜻을 밝혔다.

정운찬 총리는 '세종시 총리'로 불렸다. 이명박 대통령을 대신해서 세종시 수정(세종시 원안폐기) 여론몰이에 앞장섰다. 대통령의 신임이라는 무기가 있었지만, 그를 뒷받침할 정치적 기반은 사실상 전무했다.

그를 지지하는 국회의원 그룹을 확보하지 못했고, 지역적 기반도 없었다. 정책과 소신을 통해 국민을 향한 정치를 해야 하는 상황이었지만, 그의 정책과 소신은 여론의 동의를 구하기 쉽지 않은 내용이었다.

정운찬 총리는 '양파 총리' 불명예를 안은 채 어렵게 국회 인준을 받았지만, 쉽지 않은 앞길이 기다리고 있었다. 정운찬 총리는 임기 내내 세종시 수정에 힘을 쏟았다. 홍보와 여론전에 힘을 실었다.

홍보에 공을 들이면 세종시 관련 충청 여론이 바뀔 것이란 이명박 정부의 판단은 결과적으로 패착이었다. 이는 다시 말하면 충청 여론이 잘 모르고 있기에 잘못된 판단을 하고 있다는 오만과 독선이 내포돼 있기 때문이다.

충청의 자존심과 정서를 건드리는 행보였다. 결과적으로 여권은 6·2 지방선거에서 충청권 참패라는 결과를 맞이했다. 충남지사, 충북지사, 대전광역시장 모두 패배했다. 여권 쇄신론이 내부에서 제기됐고, 그 칼끝은 정운찬 총리를 향하고 있었다.

실패로 끝나는 정운찬 카드

   
  ▲ 한국일보 7월1일자 사설.  
 
정운찬 총리는 3일 이명박 대통령과 독대했다. 사의를 표명했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정운찬 총리의 하차는 시간문제로 보인다. 그는 차기 대선 구도를 흔들 카드라는 평가를 받으며 국무총리 자리에 올랐지만, '양파 총리'라는 불명예만 남은 채 물러나게 됐다.

 정운찬 총리의 실패는 무엇 때문일까. 그는 국민의 마음을 얻지 못했다. 정치적 소신도 진정성도 정책도 '함량미달'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무엇보다 'MB의 남자'로 전락해버린 그의 모습은 스스로 실패의 길로 인도했다. 

대통령이 잘못된 길로 간다면 국무총리로서 할 말은 하는 그런 모습을 보일 때 국민은 환호하고 그를 '큰 정치인' 반열에 올리게 된다. '예스맨 국무총리'는 국민의 마음을 얻기 어렵다. 이회창 자유선진당 총재가 한나라당 대선후보를 두 번이나 지낼 수 있었던 것은 김영삼 정부 시절 '대쪽 국무총리'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정운찬 총리는 여전히 대선 후보군 중 한 명으로 분류된다. 그러나 국무총리로 보여줬던 모습에서 '치명적 약점'이 드러났다는 점은 두고두고 부담으로 남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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