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가 이번 회기에 표결 처리해주시길 바란다. 국회의원 한 분 한 분이 여야를 떠나 역사적 책임을 염두에 두면서 현명한 판단을 내려주시기를 바란다. 정부는 국회가 표결로 내린 결정을 존중할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14일 KBS 1TV로 생중계된 '방송연설'에서 세종시 수정안 논란의 해법을 제시하자 언론은 '출구전략'이라고 분석했다. 세종시 수정은 지방선거 여당 참패로 사실상 동력을 잃었다는 점에서 청와대도 접는 수순에 들어갔다는 분석이었다.

세종시 수정은 둘러싼 정치권 안팎의 기나긴 갈등과 혼란은 정리되는 것처럼 보였다. 실제로 여야는 관련 상임위원회인 국회 국토해양위원회에 세종시 수정안을 상정해 표결처리하는 방안을 합의했다.

국토해양위는 세종시 수정을 반대하는 야당 의원들과 여당 친박근혜계 의원들이 다수를 차지한다는 점에서 상임위 상정은 '세종시 수정안 폐기'로 해석됐다. 그러나 청와대와 친이명박계 쪽에서 다른 해법을 들고 나왔다.

   
  ▲ 이명박(사진 오른쪽) 대통령과 정운찬 국무총리. ⓒ연합뉴스  
 
국회 상임위원회에서 부결되더라도 국회 본회의에 상정해 의원들이 표결을 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세종시 수정안에 대한 여야 찬반 의견을 '역사적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는 논리였지만, 이런 시도는 세종시를 둘러싼 정치권 갈등을 재점화하는 계기가 됐다.

야당은 물론 한나라당 내 친박근혜계도 반대 기류가 뚜렷한 상황이다. 청와대와 여권 주류의 이러한 선택에는 정치적 노림수가 분명하게 담겨 있기 때문이다. 세종시 수정을 반대하는 야권을 비판 견제하려는 목적도 있겠지만, 최종 목적은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 견제라는 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친박근혜계가 반대해 세종시 수정이 좌초됐다는 논리를 뒷받침하는 '결과물'을 끌어내 정치적으로 활용하겠다는 의도가 담겨 있다는 설명이다. 박근혜 전 대표를 이명박 정부 핵심 정책에 발목을 잡은 정치인으로 기록해 차기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 과정에서 정치적 부담을 안겨줄 의도가 담겨 있다는 분석도 있다.

   
  ▲ 야5당과 시민사회단체는 21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앞에서 <세종시 수정안 폐지 원안 추진 촉구>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치열 기자 truth710@  
 

 

청와대는 세종시 수정이 좌초되고 원안으로 갈 경우 혜택을 줄이겠다는 협박성 발언도 서슴지 않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의 세종시 출구전략은 또 다른 갈등의 불씨가 될 수밖에 없는 것도 이 때문이다.

경향신문은 21일자 지면에 <세종시 문제로 끝까지 괴롭히는 '스토커 정권'>이라는 제목의 사설을 실었다. 경향신문은 "이 정권은 진정 고집스럽고 징그러운 '스토커 정권'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미 끝난 문제를 두고 여야 간 대결로 사회적 대립을 다시 부추기는 것은 물론 여당내 친이계·친박계간 갈등의 불씨도 한 번 더 지필 요량"이라고 지적했다.

   
  ▲ 경향신문 6월21일자 사설.  
 
경향신문은 "나중에 표결 결과를 친박게와 야당 공격용으로 한 번 더 써먹기 위해 그런 것인지 모르겠지만 국정운영을 이렇게 자해적 막가파식으로 할 줄은, 돌격대 정신으로 할 줄은 정말 상상도 못했다"고 주장했다.

'스토커 정권'이라는 언론 비판까지 나왔다는 점은 주목할 대목이다. 언론의 강도 높은 비판 정도로 넘길 수 없는 이유는 이런 비판이 6·2 지방선거에서 여당이 참패를 겪은 이후에 나왔다는 점이다.

언론의 이런 비판은 여권이 선거민심에 대한 뼈저린 자성은커녕 다시 오만과 독선의 국정운영을 하고 있다는 문제의식을 담고 있다. 야당의 분석도 이와 다르지 않다.

이회창 자유선진당 대표는 21일 주요 당직자회의에서 "여당인 한나라당이 상임위에서 부결되더라도 본회의 표결까지 강행하여 수정안 통과를 시도하는 것은 결국 대통령을 또 한번 거짓말하는 지도자로 만드는 것밖에 되지 않음을 알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회창 대표는 "여권 일각에서 세종시 원안으로 가게 된다면 기업유치나 과학비즈니스벨트 등 플러스알파는 없다고 협박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원안에 따라 당연히 유치되어야 할 기업유치를 방해하거나 대통령 자신이 대통령 선거 당시 공약한 과학비즈니스벨트도 이행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참으로 유치한 작태"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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