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자가 양혜왕을 만났다. 왕이 말했다. "노인께서 천리를 멀다 하지 않고 오셨으니, 역시 장차 내 나라를 이롭게 할 방도가 있으십니까?"

결국 문제는 경제라고 한다. 친기업이 친시장은 아니라고 인정하면서도 결론은 기업하기 좋은 나라가 돼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김성호 법무부장관, 김문수 경기도지사, 윤증현 전 금융감독위원장은 '관대한' 면모를 보였다.

정몽구 현대기아차그룹 회장과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항소심 선고공판이 각각 다음달 6일과 11일 열린다. 정 회장은 900억원대의 회삿돈을 횡령한 혐의로, 김 회장은 보복폭행 혐의로 각각 기소된 상태다. 정 회장과 김 회장은 각각 지난 27일과 28일 열린 항소심 공판에서 재판부의 선처를 호소했다.

정 회장은 27일 최후진술에서 "심려를 끼쳐 죄송하다. 같은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겠으니 회사와 국민에 기여할 수 있도록 기회를 달라"고 말했다. 김 회장도 28일 "모든 잘못을 뉘우치고 있으며 기회가 주어지면 한화를 세계 일류 기업, 국민에게 사랑과 존경을 받는 기업으로 성장시켜 국가 경제 발전에 기여하겠다. 관대한 처분을 내려달라"고 말했다.

   
  ▲ 한국경제 8월28일자 12면.  
 
김 회장은 이날 서울대병원 환자복 차림으로 휠체어를 타고 법정에 들어서 건강상태를 묻는 재판부 질문에 "불면증과 우울증이 여전하다"고 답했다. 증인으로 나온 성하현 한화 부회장은 "김 회장은 신용과 의리를 중시하는 선이 굵은 스타일로 평소 남자답게 행동해 왔다. 일상적 업무는 시스템에 의해 잘 작동되고 있지만 투자 확정 등의 면에서는 상당한 지장을 초래하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정 회장에게도 선처를 호소할 이유는 있었다. 2012여수엑스포유치위원회 명예위원장이자 1조원의 사회환원을 약속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28일자 일부 언론은 정 회장의 선처 호소를 기사 제목으로 뽑았다. 같은 날 지면에 여수엑스포 기사가 배치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 매일경제 8월29일자 39면.  
 
비단 28일자 기사 <정몽구 회장 "사회공헌 예정대로">(매일경제 39면), <여수엑스포 유치 사회공헌 최선>(한국경제 12면), <정몽구 회장 "사회공헌 순수한 의도"/항소심서 밝혀>(파이낸셜뉴스 2면), <정몽구 회장 "사회환원 계획 연말까지 세울 것">(서울경제 25면), <"여수엑스포 유치에 최선…1조 사회기부 차질 없이"/정몽구 회장 밝혀>(문화일보 33면), < MK "1조원 사회환원 계획 11월 발표"/비자금 공판서 밝혀>(헤럴드경제 8면)만 두드러진 것은 아니다.

   
  ▲ 파이낸셜뉴스 8월28일자 2면.  
 
지난해 2월 편법증여 논란이 해소되지 않은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과 회삿돈 횡령 및 비자금 조성 혐의로 기소된 박용성 현 두산중공업 회장 사례도 이와 다르지 않았다. 당시 매일경제는 사설과 칼럼에서 "국익과 스포츠 외교 역량을 감안해 IOC 위원에 대한 현실적인 고려도 필요하다", "온 사회가 지나치게 사과·사죄를 요구하는 방향으로 흐르게 되면 엄청난 국가적 에너지 손실을 초래할 수 있다"라고 주장했다.

   
  ▲ 머니투데이 8월28일자 22면.  
 
그러나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 상 횡령·배임 액수가 50억 원 이상이면 무기징역 또는 5년 이상인 중형임에도 당시 검찰은 불구속 수사를 진행했고, 박 회장은 이 특혜와 언론의 지원사격을 받고도 IOC위원 자격정지라는 망신을 당했다. 올해 들어서도 이 회장과 정 회장에 대해 <민간 외교 회장님들이 뛴다>(머니투데이 5월28일자), <스포츠외교전 뜨겁다>(서울신문 6월4일자), <스포츠외교 빛난다>(스포츠칸 6월4일자) 등 재판에 우호적인 영향을 끼치는 보도가 쏟아졌다.

최한수 경제개혁연대 연구팀장은 28일 "'사회공헌을 고려해 정상 참작하라'는 논리를 확대하면 '재벌 총수나 고위 관료의 경우 형사처벌을 받아도 실형을 살지 않는다'는 결론에 다다르게 된다"며 "미국 등 선진국은 사회공헌이 범죄의 불법성을 감해줄 만한 사안이 아닌 당연한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조국 서울대 교수(법학) 역시 "경제범죄를 엄격하게 처벌하는 것이 경제를 살리는 길이라고 보는데 일부 언론은 기본적인 접근부터 차이가 있는 것 같다"고 지적한 바 있다. "경제범죄를 대충 벌하다 보면 우리 경제의 투명성과 신뢰도가 떨어져 오히려 경제가 가라앉게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29일자 김승연 회장 관련보도도 28일자 정몽구 회장 보도와 다를 게 없었다. <수감 못 견딜 만큼 아프다며 새 사업·투자 활동은 가능?>(한겨레 10면)과 같은 상식적인 질문을 던지는 기사가 오히려 이상해 보일 지경이다.

   
  ▲ 한겨레 8월29일자 10면.  
 
최근 경제개혁연대는 2000년 이후 137개 화이트칼라범죄의 71%가 1심에서 집행유예를 받았다는 보고서를 내기도 했다. 그런데도 국가경제 발전과 사회공헌을 고려해, 평창의 눈물을 여수에서 닦기 위해, 평소 남자답게 행동해왔기 때문에, 부정(父情)을 감안해 정 회장과 김 회장의 범죄에 관대해야 할까. 양혜왕의 질문에 맹자는 이렇게 답했다.

"왕께서는 하필 이로움을 말씀하십니까? 역시 인의가 있을 뿐입니다. 왕께서 '무엇이 내 나라를 이롭게 할 것인가' 하면 대부들은 '무엇이 내 집안을 이롭게 할 것인가'하고 사(士)와 서민들은 '무엇이 내 몸을 이롭게 할 것인가' 하게 될 것이니, 위아래가 서로 이로움을 취하려 들면 나라가 위태로워집니다.…왕께서는 역시 인의를 말씀하셔야 할 것입니다. 하필 이로움을 말씀하십니까?"

의로움이 이로울 수는 있어도 이로움이 의롭긴 어려운 법이다. 지금 우리나라에 필요한 건 이로움일까, 아니면 의로움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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