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어도 우리나라가 민주주의국가라면 위에서 아래로 가는 방향만 생각해서는 안 된다. '전 국민을 위해 옳은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국책사업 입안자들이 시민 개인의 중요성은 망각하고 있다. 이러면 공공갈등을 절대로 해소할 수가 없다."

박태순(44·사진) 사회갈등연구소장은 최근 격화되고 있는 제주해군기지 논란에 대해 공공갈등 해소를 위한 중앙정부의 역할을 강조했다. 아울러 지역 현지주민들의 반발을 지역이기주의로 폄하하는 일부 시각에 대해서도 경계했다.

박 소장은 대통령 자문 지속가능발전위원회 전문위원·영국 캠브리지대 행동학연구원·환경운동연합 시민환경연구소 책임연구원을 지냈고 현재 KDI 국제정책대학원 갈등조정협상센터 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다음은 지난 16일 가진 박 소장과의 일문일답이다.

   
   
 
-부안·경주 방폐장 논란에 이어 제주 해군기지 등에서 공공갈등이 해소되지 않고 있다. 공공갈등을 해소할 방법은 무엇인가.
"기본적인 원칙 몇 가지가 있다. '주민들 의사를 존중하겠다' 수준 가지고는 안 된다.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 지역주민간의 이해관계가 충돌할 때 어떻게 하느냐는 것은 (방폐장 논란이 일었던) 부안이나 경주, 제주 해군기지 모두 마찬가지다.

적어도 우리나라가 민주주의 국가라면 위에서 아래로 가는 방향만 생각해서는 안 된다. 지역주민들이 반대하는 경우에는 반드시 사업을 유보해야 한다. 지역에서 갈등이 발생하면 대개의 지자체장은 정치적인 판단을 하려 한다. 이럴 때 중앙정부는 자기 의도대로 일을 진행하려 하지말고 찬반논쟁이 원활하게 될 수 있도록 도움을 줘야 한다.

이견 조정자로서의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전국민에 미치는 영향은 추상적이지만, 지역 주민들에게는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일이다. 중앙정부는 원만한 논의과정을 유도해 이를 보증하는 쪽으로 가는 게 옳다. 전제는 결론을 열어놓고 가야 한다는 것이다. 결론을 갖고 시작하면 이전과 다를 게 없다."

-2003년 부안 방폐장 논란 당시 주무부처 관료가 현지에 내려가 책임 못질 '현금보상' 발언을 하는 등 중앙정부가 조정자 역할을 하기는커녕 갈등을 부추기는 모습을 보이곤 했다.
"방폐장이나 해군기지나 '권위주의적이다' '일방통행이다'라고 지적 받는 이유는 사업을 기획하는 사람들의 생각과 그 사업으로 인해 구체적으로 영향을 받는 사람들 사이에 공평성이 보장되지 않기 때문이다.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큰 사업 입안자들이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는 사람들의 의사는 도외시하고 있다. 사업 입안자들은 '전국민을 위해 옳은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사업의 궁극적인 목적은 국민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사업 입안자들은 시민 개인의 중요성은 망각하고 있다. 이게 바로 지난 시대의 밀어붙이기 방식이다. 이러면 공공갈등을 절대로 해소할 수가 없다. 중요한 의사결정의 한 축이 지역에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하고, 이를 안다는 것은 곧 사업을 유보할 줄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사업에 대한 판단 유보 없이 논의를 하는 것은 허울뿐인 논의다."

-중앙정부의 책임 있는 모습이란 무엇인가. 지자체에 요구되는 역할은.
"일례로 (중앙정부가 갈등을 부추긴 부안과 달리) 경주를 보면 책임주체인 산자부가 2005년 11월 주민투표 후 골치 아픈 문제를 털었다면서 오히려 자신의 역할을 방기했다. 방폐장은 산자부가 주체임에도 조정자로서의 역할을 방기한 것이다.

게다가 지역 내부에서도 갈등을 해결할만한 역량이 없었다. 지역에 들어간다고 해서 부안처럼 밀어붙여서도 안되고, 경주처럼 방기해서도 안 된다. 국가가 제대로 일을 못하는 경우에는 지역의 공적 기관이 제 구실을 해야 한다. 현재 제주도청은 중앙정부의 눈치를 보고, 일부 시민사회단체는 방관하거나 시류에 편승하고 있다. 원칙과 기준을 제시하고 원만하게 해결할 수 있도록 하는 조정자로서의 역할이 드물다."

-일부 언론은 제주도 현지 주민들의 반발을 '님비(NIMBY)'로 폄하하기도 한다.
"잘못된 지적이다. 전국민이 이익을 본다는 것은 현지 주민들이 그만한 비용을 치르기 때문이다. 지역이기주의라는 지적을 할 때에는 공익과 사익의 형평성 측면에서 국민들이 현지 주민들에게 뭔가 줄 각오를 하고 말해야 한다.

환경파괴와 지가 하락의 위험성, 이미지 훼손 등 여러 가지 발생 가능한 문제에 대해서 어떻게 책임 질 것인가에 대한 문제의식부터 갖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담보도 없고 책임도 안 지면서 지역이기주의라 말하는 것은 자기 이익을 극대화하는 방편일 뿐이며 옳은 일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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