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가 뻔뻔해졌다. '나'와 내 '남자', 내 남자의 '여자'의 끈적끈적한 애정 구도를 전면에 내세운 드라마 <내 남자의 여자>(김수현 극본, 정을영 연출)의 그녀 '이화영(김희애 분)'이 "나한테는 지금 이 순간만 있어. 색정녀가 돼버린 느낌이야"라고 속삭이면서 여고 동창의 남편 '홍준표(김상중 분)'를 유혹한다. 그리고 한정 없이 착한 천사표 여고 동창 '김지수(배종옥 분)'에게는 그녀의 남편을 사랑한다고 뻔뻔하게 말한다.

이처럼 아침부터 밤까지 일주일 내내 불륜 일색의 드라마가 방송되는 현실에서 '불륜'을 전면에 내세운 또 한 편의 드라마, 그것도 대중적 흡입력이 뛰어난 작가 김수현의 신작이라는 점에서 SBS <내 남자의 여자>가 시청자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여자의 바람기 때문에 남편이 자살했다고 뭇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받으면서 외로움의 바닥으로 떨어진, 그러나 내면의 열정을 어쩌지 못하는 여자 이화영. 남부럽지 않을 만큼 안락한 가정을 꾸렸지만, 언제부터인가 반복되는 일상과 아내에게 지루함을 느끼면서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고 싶은 남자 홍준표. 그런데 이상하게도 친구의 남편이고, 아내의 친구로 만나 사랑에 빠진 불륜 남녀에게 돌팔매질보다 연민의 시선이 먼저 간다. 불륜의 피해자를 동정하고 그녀의 입장에서 분노를 해도 시원찮을 판국에 불륜 남녀가 가련하게 느껴지다니, 이게 어찌 된 조화인가?

<내 남자의 여자>는 기존의 불륜 소재 드라마와 두 가지 측면에서 다른 색깔을 가지고 있다. 첫째, 구조적인 측면에서 드라마의 도입부에 이화영과 홍준표의 불륜을 폭로함으로써 '불륜' 이후의 문제를 다루겠다는 의도를 분명히 하고 있다. 둘째, '운명적 사랑'이라는 말로 불륜을 치장하지 않음으로써 역설적으로 '사랑'과 '욕망', 그리고 '가족'의 문제를 객관화시키고 있다. 이 같은 두 가지 색깔은 드라마의 제목 <내 남자의 여자>에서의 '나'는 '이화영'과 '김지수'를 동시에 의미하는 인칭대명사로 해석하게 만들고, 가해자와 피해자라는 기존의 이분법적인 구도에서 벗어나게 만든다. '진부한' 소재 불륜을 전면에 내세운 드라마 <내 남자의 여자>가 새롭게 느껴지고, 불륜 남녀에게 연민의 시선을 보내는 것도 이 때문이다.

   
  ▲ SBS 드라마 <내 남자의 여자> ⓒSBS  
 
<내 남자의 여자>의 차별화된 색깔은 기존의 불륜 소재 드라마와 비교할 때 보다 분명해진다. MBC <나쁜 여자 착한 여자>(이홍구 극본, 이대영·이동윤 연출)는 첫사랑을 잊지 못하고 각기 다른 남녀와 결혼한 '윤서경(성현아 분)'과 '송건우(이재룡 분)'의 불륜 때문에 '김태현(전노민 분)'과 '이세영(최진실 분)'이 불행해진다는, 기존의 이분법적인 구도를 반복한 '불륜' 소재 드라마이다. KBS 주말연속극 <행복한 여자>(박정란 극본, 김종창 연출) 역시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어렵게 결혼해서 행복하게 살아가던 '최준호(정겨운 분)'와 '이지연(윤정희 분)' 부부가 최준호를 잊지 못하던 고교 동창 '조하영(장미인애 분)'의 적극적인 애정 공세 때문에 결국 이혼하는 것에서부터 이야기를 풀어가는 '불륜' 소재 드라마이다.

<나쁜 여자 착한 여자>의 윤서경이나 <행복한 여자>의 조하영은 '첫사랑'의 환상을 가지고 있으며, 자신의 불륜 행각으로 피해를 입은 상대 여성에게 죄의식을 느끼기는커녕, 오히려 당당하고 세련된 태도를 보인다는 점에서 비슷한 인물들이다. 이들의 '불륜'이 '첫사랑'의 환상과 겹쳐지면서 사랑 앞에 당당한 새로운 세대의 출현을 반영한 것처럼 포장되고 있다는 것은 참으로 심각한 문제이다. 이와 달리 <내 남자의 여자>는 '불륜'을 통해 사랑과 결혼, 가정의 의미를 성찰하게 만든다. 친구 남편과 아내 친구가 불륜에 빠진다는 점에서 파격적이기는 하지만 기존의 불륜 소재 드라마처럼 '첫사랑'의 환상이 있는 것도 아니고 불륜 행각의 발각에 초점을 맞춘 이야기도 아니기 때문이다.

김수현과 정을영은 이미 2000년 봄에 결혼을 앞둔 네 명의 미혼 남녀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불꽃>을 통해 "사랑이라는 이름 속에서 혼돈과 혼란을 겪으면서 진정한 사랑을 찾기 위한 삶의 이야기"를 성찰한 바 있다. 그로부터 7년이 지난 2007년, "또 하나의 사랑 앞에서 흔들리는 남녀를 통해 삶의 의미와 사랑의 무게를 가늠"하겠다는 기획 의도 아래 김수현과 정을영이 다시 호흡을 맞춘 <내 남자의 여자>는 <불꽃>의 연장선상에 있는 드라마라고 할 수 있다.

그런 만큼 청순가련형의 대명사격이었던 배우 이영애가 <불꽃>을 통해 파격적인 이미지 변신을 했던 것을 기억한다면, 순종적인 현모양처의 대명사격인 배우 김희애의 파격적인 이미지 변신을 비교해 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이다. 

■  윤석진 교수(충남대 국문과)는 <1960년대 멜로드라마 연구 - 연극·방송극·영화를 중심으로>로 문학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현재 드라마평론가와 MBC-TV 옴부즈맨 프로그램 < TV 속의 TV> 전문 패널로 활동 중이다.  <한국 멜로드라마의 근대적 상상력>, <한국 대중서사, 그 끊임없는 유혹> 등의 저서와 < TV드라마의 현실성 확보 방식 고찰>, <극작가 한운사의 방송극 연구>등 다수의 논저가 있다. 현재 원로 극작가 한운사 선생의 방송극을 체계적으로 정리하는 일과 ‘한국TV드라마’의 미학적 특징을 밝혀 한류(韓流)를 뒷받침할 학문적 이론 정립에 관심을 가지고 연구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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