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 공천비리 사태가 점차 그 진상을 드러내고 있다. 국민의 대표인 국회의원을 돈으로 사고 팔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격적이지만, 선거 때 마다 불거지는 경선비리를 접하는 국민들의 피로감은 높아지고 정치에 대한 관심은 끊어지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
특히 새누리당은 이 같은 구태 정치를 끊겠다며 출범한 정당이고, 총선 공천 당시 ‘개혁공천’을 언급하며 현역의원을 대폭 물갈이 했다. 그러면서 국민들로부터 지지를 얻고 원내 과반의석을 확보했다. 그런 정당에서, 또 다시 공천비리 의혹이 터졌다는 사실 만으로도 새누리당은 강한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또한 새누리당을 창당하고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총선을 진두지휘한 박근혜 전 위원장은 정치적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총선의 총 책임자였고, 당시 지도부와 공천심사 주체의 대부분은 친박계였다. 더욱이 공천비리에 연루된 현기환 전 의원은 친박계 핵심으로 불리고 있다. 공천비리가 사실이라면 ‘박근혜’라는 후광을 업고 ‘공천장사’를 한 셈이다.
한겨레는 3일자 2면 <현기환, 새누리 공천위서 사실상 ‘박근혜 아바타’ 역할> 기사에서 “현 전 의원은 19대 새누리당 공천 때 핵심적인 구실을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며 “그는 10명으로 구성된 새누리당 공천심사위원 중 한명의 위원이 아니라, 친박계를 사실상 대리하는 위원이었다는 게 대체적인 평”이라고 보도했다.
하지만 박근혜 전 위원장은 자신에게 쏟아지는 정치적 책임을 부인하고 있다. “검찰의 철저한 수사가 있어야 한다”, “공천파문은 용납할 수 없는 일”이라며 3자의 입장에서 이 사안을 바라보고 있다. 문제는 박 전 위원장의 이런 인식을 언론들이 그대로 받아쓰고 있다는 점이다.
때문에 이들 언론들은 야권과 비박 주자들의 ‘박근혜 책임론’을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중앙일보는 6일 사설 <초등학교에서도 없을 경선 거부 소동>을 통해 “현재까지 드러난 주장으로 보면 비례대표 공천헌금 의혹은 4.11총선 공천심사위원 중 한 명이었던 현기환 전 의원의 개인적인 문제”라고 주장했다. 공천비리의 정치적 책임까지 현 전 의원에게 돌린 것이다.
그리고 공천비리 문제에서 파생된 새누리당 비박 대선후보 진영의 경선거부를 단순한 정쟁으로 치부했다. 이번 사태가 정쟁으로 부상될 경우 효과를 얻는 쪽은 박 전 위원장이다. 박 전 위원장은 공천비리가 터질 당시 선거 총책임자였으나, 이것이 정쟁으로 치부될 경우 정쟁의 한 주체로 자리매김 된다. ‘똑같은 놈들’이란 비판을 얻을지언정, ‘공천비리 사태의 책임자’라는 치명적인 비판에선 한 발 물러설 수 있다.
대표적인 것이 한국일보는 7일 5면 <이회창·노무현·이명박도 ‘후보 사퇴론’ 시달렸다>제하 기사다. 한국일보는 “설령 의혹이 사실로 드러나더라도 박 전 위원장이 후보직을 사퇴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며 “역대 선거마다 제기된 후보 사퇴론은 대부분 경쟁 진영의 유력 후보 흔들기 차원에서 진행된 경향이 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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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도 6일 4면 <경직된 박-무책임 비박-무기력 지도부…3일간 경선파행 합작> 기사를 통해 새누리당 대선 경선 파행에 대해 박근혜 캠프, 비박진영, 당 지도부에 대한 3각 책임론을 부상시켰다. 특히 여기서 박 전 위원장의 책임은 공천비리 문제가 아닌, 비박진영과의 소통 부족에 대한 것이다. 박 전 위원장이 공천헌금 문제가 발생한 이후 “검찰에서 한 점 의혹 없이 밝혀야 할 문제”라고 밝힌 대목에 대해 타 언론들은 “무책임하다”고 강하게 질타했지만 동아일보는 “한가한 상황인식”이라는 정도로 비판했다.
조선일보 역시 35면 <박근혜, 경선 거부 파문을 대변화의 계기 삼아야>제하 사설에서 “대선 경선을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은 인과관계의 앞뒤를 혼동한 일”이라며 “2주 앞으로 다가온 경선(8월 20일)을 파장으로 몰고 가 새누리당 전체 운명에 치명상을 입히는 것은 차기 또는 차차기의 무대를 구상하는 개인적 정치 설계에도 도움이 될 리 없다”고 비박진영을 비판하기도 했다.
충격적인 공천비리 사태와 이에 부각되는 박근혜 책임론의 본질을, 일부 언론들은 애써 눈을 감고 있다. 한겨레는 6일 사설 <공천·경선 파동의 뿌리는 박근혜의 비민주성>에서 “이번 사태의 본질인 새누리당의 사당화와 박근혜 후보의 비민주성 문제가 전혀 해소되지 않았다”며 “공천 의혹과 불공정 경선 책임의 정점엔 박 후보가 있다. 공천을 총괄한 것도 그였고, 현 지도부를 구성한 것도 그였으며, 경선 룰도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후원은 더 좋은 기사에 도움이 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