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관 체제의 방송통신위원회는 98일 동안 언론을 겨냥한 전례 없는 ‘속도전’에 나섰다. 이동관 위원장이 지난 1일 기자회견을 통해 “오직 국가와 인사권자인 대통령을 위한 충정에서” 사임한다고 밝힌 대목에서 이동관 체제 방통위의 기조를 엿볼 수 있다. 전례 없는 2인 체제 의결을 강행했고 인터넷신문과 방송, 그리고 포털 압박이 이어졌다. 곳곳에서 반발을 불러일으키고 역풍이 불기도 했다.

▲ 윤석열 대통령이 8월25일 이동관 방통위원장에게 임명장을 주는 모습. ⓒ연합뉴스
▲ 윤석열 대통령이 8월25일 이동관 방통위원장에게 임명장을 주는 모습. ⓒ연합뉴스

 

2인 체제에서 36건 의결

이동관 위원장 체제의 방통위는 지난 8월28일부터 지난달 29일까지 안건 36건을 의결했다. 대통령이 민주당 추천 최민희 전 의원의 방통위 상임위원 임명을 보류한 가운데 대통령 추천 2인의 단독 의결이 이어졌다. 역대 방통위 역사상 2인 체제로는 전례를 찾아볼 수 없는 행보였다. 과거 2인 체제 때는 주요 안건 의결을 미뤄왔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전국언론노동조합은 지난달 17일 성명을 통해 “이동관 체제 방통위는 불법적 ‘2인 체제’에서 무리한 의결을 강행해 왔고, 그 결정들은 언론탄압·장악을 가리키고 있다”고 비판했다.

▲ 이동관 방통위원장이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연합뉴스
▲ 이동관 방통위원장이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연합뉴스

논의는 일방적이었을뿐 아니라 급작스럽게 추진됐다. 김효재 직무대행에 이어 공영방송 이사 해임을 단행했고 보궐이사 임명은 인사검증 기간이 있었는지 가늠하지 힘들 정도로 일사천리에 이뤄졌다. 보도전문채널 민영화(최다액출자자 변경) 기본계획 의결 회의는 유진기업의YTN 최대액출자자 변경접수 하루 만에 개최했다. 출입기자들은 이례적으로 회의 전날 저녁 급작스럽게 회의 개최 사실을 통보 받았다. 

공영방송 이사·감사 교체와 보도전문채널 민영화 시도 

이동관 위원장은 8월28일 첫 회의 때부터 공영방송 이사 교체를 시도했다. 이동관 위원장 임기 동안 이동욱 KBS이사, 김성근 방송문화진흥회 이사, 강규형·신동호 EBS이사, 최기화 EBS 감사를 임명했다. 

공영방송 이사 교체 작업은 임기가 남은 기존 여권(현 야권) 이사를 해임하고 빈 자리에 여권 이사를 채워넣는 방식이다. 이사회 다수를 점하면 공영방송 사장 해임과 임명이 가능하다. 실제 KBS 이사 교체 이후 논란 속에서 박민 KBS 사장이 임명됐고 ‘더라이브’ ‘주진우라이브’ 등 일방 폐지와 보도 논조 변화로 이어졌다. 

KBS와 MBC의 경우 이사회 교체를 추진했다면 보도전문채널인 YTN과 연합뉴스TV는 민영화에 속도를 높였다. 전례없는 속도로 심사를 진행했으나 논란 끝에 ‘보류’ 결정을 내렸다. 일각에선 인수 사업자에 대해 정부가 부정적으로 판단한 결과 ‘엎어졌다’고 보는 시각이 존재한다.

김만배 녹취록 보도 지렛대 삼아 무리한 가짜뉴스 대응 

이동관 방통위원장 체제에서 ‘가짜뉴스’ 대응이라는 이름으로 언론에 대한 전방위적 압박이 시작됐다. 지난 9월4일 이동관 위원장은 뉴스타파 보도를 가리켜 “심각한 범죄행위” “국기문란행위”라고 강조했다. 

이후 방통위가 방송통신심의위원회와 협의에 나선 이후 방통심의위가 ‘가짜뉴스 전담센터’(신속심의센터)를 만들고 법적 근거가 부실하다는 비판 속에서 뉴스타파 심의를 강행했다. 역대 최초의 인터넷언론사 대상 심의였다. 방통위는 “원스트라이크 아웃 처분을 받은 사업자가 다른 매체로 다시 활동하는 이른바 갈아타기 방지까지 강력한 대응책을 입법으로 보완하겠다”고 했다. 언론 등록취소는 물론 이후 재창간과 기자 활동까지 제한하겠다는 것으로 ‘위헌적’이라는 비판이 잇따랐다.

방송사에 대한 압박도 이어졌다. 뉴스타파 인용 보도에 대해선 최고수위 제재인 ‘과징금’이 연달아 의결됐다. 방통심의위 역사상 한 차례만 내려졌던 방송사 보도에 대한 과징금 조치가 남발됐다. 방통위는 김만배 녹취록 인용 보도를 한 지상파와 종편에 ‘팩트체크 점검’을 한다며 자료제출을 요구했다. 특정 보도에 대해 방통위가 검증 체계까지 들여다보는 것 역시 처음이었다. 

▲ 뉴스타파 녹취록 보도에 표시돼 있는 '심의 중' 문구. 현재는 없어진 상태다.
▲ 뉴스타파 녹취록 보도에 표시돼 있는 '심의 중' 문구. 현재는 없어진 상태다.

다음 타깃은 포털이었다. 방통위는 포털 등 사업자에 ‘패스트트랙’을 도입해 가짜뉴스 심의 중인 사안의 경우 해당 기사에 ‘심의 중’이라는 표시를 하도록 했다.  미디어오늘 확인 결과 네이버와 카카오 모두 뉴스타파 보도에 ‘심의 중’ 표시를 해 특정 보도에 ‘낙인 효과’를 초래했다. 방통위는 국민의힘이 주장한 뉴스 알고리즘 조작 의혹에 대한 네이버 뉴스 서비스 대상 사실조사도 진행하고 있다. 다음의 항정우 아시안게임 축구 경기 응원페이지에서 중국 응원이 많아 논란이 되자 방통위는 범정부 TF까지 꾸리고 실태점검을 추진한다고 발표했다. 

과도한 가짜뉴스 대응에 우려가 쏟아졌지만 이동관 위원장은 10월27일 국정감사 자리에서 “순진짜 가짜뉴스는 단속하는 것이 약간의 (법적) 중복이 있더라도 맞다고 생각하는 것”이라며 굽히지 않았다. 

곳곳에서 역풍 맞고 반발 이어져

이처럼 전례없는 과잉 조치들을 쏟아내면서 곳곳에선 역풍과 반발이 이어지기도 했다. 특히 법원이 방통위가 해임한 김기중 방문진 이사에 대한 처분을 집행정지하고, 권태선 이사장에 대한 방통위의 항고까지 기각했다. 과도한 조치에 법원이 제동을 걸고 나선 것이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선 무리한 가짜뉴스 대응에 팀장 11명이 공동입장을 내며 반발했다. 가짜뉴스 신속심의센터에 소속된 평직원 전원은 업무의 문제를 호소하며 고충처리위원회에 고충을 접수했고 200여명의 직원 중 150명이 “가짜뉴스 신속심의센터의 역할과 기능에 대한 충분한 논의가 필요하다”며 연대 성명에 동참했다. 한 직원은 익명게시판(블라인드)을 통해 “정말 역대급이다. 20년 가량 온갖 풍파를 겪으면서도 묵묵히 버티면서 나름 자부심을 가지며 몸담아 온 내 소중한 일터가 불과 두 달만에 이토록 형편없이 망가지고 있다”고 밝혔다. 

언론계 곳곳에서도 반발이 이어졌다. KBS, YTN, 연합뉴스 등에선 노조의 반발 성명이 줄을 이었다. 언론노조와 기자협회는 지난 11월1일 기자회견을 열고 “이동관은 합의제 기구의 목적과 위상을 몰각한 채 대통령 하명 집행기구로 전락한 2인 체제 방통위에서 중대 사항들에 대한 불법적 결정을 내려왔다. 공영방송 이사회 구성과 운영에 있어 결격 인사들을 임명하고 운영상 파행을 초래했으며 방통위의 권한을 넘어서는 직권남용으로 전방위적 언론 검열 작업을 계획하고 지시했다”며 탄핵이 불가피하다고 강조했다. 

▲  전국언론노동조합이 지난달 27일 ‘이동관 탄핵 촉구 공동 행동의 날’을 갖고 언론노조 조합원들과 일반시민 200여명과 함께 서울시 프레스센터에서 KBS까지 3시간 가량 행진을 진행하는 모습. 사진=언론노조
▲ 전국언론노동조합이 지난달 27일 ‘이동관 탄핵 촉구 공동 행동의 날’을 갖고 언론노조 조합원들과 일반시민 200여명과 함께 서울시 프레스센터에서 KBS까지 3시간 가량 행진을 진행하는 모습. 사진=언론노조

급작스러운 사임, 다음 방통위원장은?

민주당이 탄핵소추안 표결을 예고하자 이동관 위원장은 지난 1일 “오직 국가와 인사권자인 대통령을 위한 충정에서” 사퇴한다고 밝혔다. 언론노조는 “100일 채 안 되는 기간에 저지른 만행은 사퇴 줄행랑이 아니라 수사 대상이 돼야 한다”고 비판했고 민주언론시민연합은 “공영방송 탄압, 언론장악에 제동이 걸릴 것을 우려한 윤석열 정권의 교묘한 책동”이라고 했다. 언론개혁시민연대는 이동관 체제 방통위를 “짧은 기간, 정부 코드에 맞춰 언론계를 쑥대밭으로 만들어 버렸다”고 지적했다. 

▲ 지난 1일 국무회의장에 입장하는 이동관 방통위원장. ⓒ연합뉴스
▲ 지난 1일 국무회의장에 입장하는 이동관 방통위원장. ⓒ연합뉴스

차기 방통위원장에 김홍일 국민권익위원장이 유력한데 일각에선 이동관 위원장이 법적 절차를 미비하게 한 점을 고려해 언론인이 아닌 법조인을 선호한다고 분석한다. 연합뉴스는 지난 4일 <다시 법조인 수장 거론되는 방통위…본질은 ‘실수 없는 규제’> 기사를 내고 “법리적으로나 절차적으로나 크고 작은 실수가 있을 경우 소송과 거센 비판 여론 등으로 이어져 정부 차원에서 큰 부담을 질 수 있기 때문”이라고 보도했다. 

이와 관련 김동찬 언론개혁시민연대 정책위원장은 “그대로 임명한다면 현재의 방통위 기조는 유지하되 위법 논란을 더 잘 피해갈 수 있는 인물을 선임하는 것 밖에 안 된다”며 “그런 방식은 적절하지 않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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