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통신심의위원회. ⓒ연합뉴스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연합뉴스

윤석열 정부 ‘가짜뉴스’ 규제를 논하는 토론회에서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가짜뉴스’ 심의는 국가가 진실을 독점하겠다는 위헌적 발상이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14일 오후 서울 뉴스타파 함께센터 리영희홀에서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미디어언론위원회와 언론인권센터가 공동 주최한 <표현의 자유에 대한 위협, ‘가짜뉴스’ 규제> 토론회에 언론계, 학계, 법조계 인사들이 모였다.

앞서 지난 9월 방송통신위원회가 ‘가짜뉴스’ 근절을 위한 제도와 입법을 추진하겠다고 밝힌 가운데 방통심의위도 인터넷 언론사 콘텐츠를 심의하겠다고 나섰다. 방통심의위는 그간 온라인 불법·유해정보 등을 다뤄온 통신심의 대상에 인터넷 언론의 보도를 포함시키겠다면서 ‘가짜뉴스(허위조작뉴스·정보) 신속 심의센터’를 만들었다. 방통심의위 내부에선 사무처 직원 약 200명 중 150명이 이 센터에 대한 역할과 인사발령 문제를 지적하는 성명을 내는 등 전례 없는 반발이 이어지고 있다.

이희영 변호사(민변 미디어언론위)는 토론회에서 “방통위법, 정보통신망법, 언론중재법 등 관련 법령의 종합적인 해석에 의하면 인터넷 언론에 대한 심의는 언론중재법에 따르게 되므로, 인터넷 언론의 보도는 방심위의 통신심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허위사실 표현이 초래하는 피해에 대해 기존의 법률(언론중재법·형법상 명예훼손·모욕·공직선거법·정보통신망법 등)을 적용한 법적 대응과 구제가 가능한 상황에서 소위 ‘가짜뉴스’ 규율을 위해 추가적인 입법을 하게 된다고 해도 이는 헌법상 과잉금지 원칙에 위배될 수 있다”며 “대부분의 보도가 인터넷을 통해 배포되는 상황에서 방심위가 심의대상으로 하는 인터넷 언론의 범위조차 불분명하다”고 했다. 실제 류희림 방통심의위원장은 지난 10월 인터넷신문협회와의 간담회에서 “협회 등에 소속된 제도권 언론은 자율규제가 원칙”이라고 발언해 ‘인터넷 언론 심의’ 범위에 대한 혼란을 가중시킨 바 있다.

이 변호사는 “객관적 사실에 대한 ‘의견’ 표명이나 ‘실수’에 의한 ‘오보’, 근거 있는 ‘의혹’ 제기 등을 의도적으로 조작한 허위사실과 어떻게 구별할 것인지는 쉬운 문제가 아니다. 특히 이번 ‘김만배-신학림 인터뷰’ 보도에서 윤석열 검사(현 대통령) 등의 부실 수사는 믿을 만한 상당한 근거가 있는 의혹제기로 볼 수 있다”며 “‘의혹’ 제기의 근거 유무라는 기준조차 근거 유무 판단이 매우 어렵고 불명확하다”고 했다. 나아가 “행정기관이 ‘의도적인 허위사실’ 여부를 판단해 표현을 통제하는 것은 국가가 진실을 독점하겠다는 위헌적인 발상”이라고 강조했다.

이 변호사는 또한 한국언론진흥재단의 ‘가짜뉴스 신고 상담센터’ 설치를 두고 “신문법 조항을 보면 설치 근거나 목적, 기능 어디에도 언론재단이 ‘가짜뉴스 신고 상담센터’를 설치할 법적 근거가 없다”며 “언론재단은 언론진흥기금을 운영하는 공공기관이다. 이곳은 언론인이나 언론사를 지원하는 곳이지, 기사 내용을 심의할 수 있는 기관이 아니다. 또 정부 광고 대행을 독점하는 기관에서 ‘가짜뉴스’ 신고를 받는다는 것 자체가 돈 줄을 쥐고 언론사를 길들이게 하려는 목적이 아닌가라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고 우려했다.

▲2023년 12월4일 서울 중구 뉴스타파 리영희홀에서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미디어언론위원회와 언론인권센터가 주최 및 주관한 '표현의 자유에 대한 위협, '가짜뉴스' 규제' 토론회가 진행되고 있다. 사진=언론인권센터
▲2023년 12월4일 서울 중구 뉴스타파 리영희홀에서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미디어언론위원회와 언론인권센터가 주최 및 주관한 '표현의 자유에 대한 위협, '가짜뉴스' 규제' 토론회가 진행되고 있다. 사진=언론인권센터

이동관 전 방송통신위원장이 ‘가짜뉴스’ 규제 방안으로 주장한 ‘원 스트라이크 아웃’, ‘갈아타기 방지’ 등이 법안 형태로 추진될 경우 위헌 논란을 피하기 어려울 거란 지적도 나온다. 장제원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국민의힘)은 지난 9월 ‘가짜뉴스 근절 입법청원 긴급 공청회’에서 “(가짜뉴스 규제 관련) 입법 지원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김종천 변호사(법무법인 태웅)는 ‘허위(조작) 정보’ 관련 해외 입법 사례에 비춰 “‘가짜뉴스’를 유포했다는 사정만 갖고 추가적인 개인의 인격권 침해 등이 확인되지 않는 상황에서 단순히 허위의 정보를 유통했다라는 것만으로 제재가 가능할 것인가. 외국 사례를 보면 단순히 허위 사실을 유포했다는 것 자체만으로 처벌하는 입법이 이뤄진 예는 없다”고 분석했다.

프랑스 ‘정보조작대처법’은 선거 전 3개월간 법원이 허위정보 유포중지를 명령할 수 있는 내용인데 이를 근거로 한 제재 사례는 2019년 1건에 그쳤다. 독일 ‘네트워크 집행법’은 이용자 200만 명 이상 플랫폼이 대상이기에 사실상 구글·페이스북 타깃이며 언론 보도는 규제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유럽연합(EU) 디지털서비스법(DSA·Digital Services Act)의 경우 구글(검색·유튜브·쇼핑·구글플레이), 페이스북, 트위터, 틱톡, 인스타그램, 애플(앱스토어), 아마존 등 유럽 내 이용자가 월 4500만 명 이상인 19곳을 대상으로 플랫폼 책무를 포괄적으로 규제하는 내용이다.

김 변호사는 “‘법기술적’으로 위헌 논란을 피해가는 입법을 할 수는 있지 않겠나라는 생각은 든다”면서도 “집권자에게 유리한 내용의 정보가 유통되도록 하는 결과를 초래할 우려가 있기 때문에 사전 검열을 허용하지 않고 있는데 만약 폐간이나 전파 송신 금지, 방송사업자 허가 취소 등의 조치를 규정한다면 언론이 스스로 자기 검열을 하게 되어서 실질적인 검열의 효과를 초래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생각 된다. 검열을 금지하는 헌법 정신에 기본적으로 반하지 않겠나”라고 밝혔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