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1년 11월27일, 최초 기자들 모임인 ‘무명회’가 결성됐다. 

신문, 잡지, 통신사에서 일하는 한국인 기자들이 가입해 만든 친목단체다. 일제강점기 언론 탄압을 겪고 있었기 때문에 언론자유를 수호하는 목적도 가졌다. 

1922년 1월26일 첫 월례회에서 언론에 대한 검열과 허가제도 철폐를 위해 노력하자고 결의했다.

1925년 1월 무명회 임시총회에서 당시 동아일보 정치부장이던 최원순의 제안으로 ‘전조선기자대회’를 열기로 해 준비위원 33명을 뽑았다. 위원에는 조선일보 7명, 동아일보 6명, 시대일보 3명, 매일신보 5명, 개벽 5명, 기타 7명이 참여했다. 매일신보는 당시 조선총독부 기관지다. 

다음은 전조선기자대회 준비위가 작성한 취지서 일부다.

“언론은 권위가 그의 생명이다. 현하 우리의 언론은 과연 어떠한 언론인가? 우리는 힘껏 그 권위를 북돋우고 그 생명의 발약(潑躍)함을 보아야 하겠다. 우리는 한 번도 원만히 모여보지 못했다. 원만히 모이면 반드시 그만한 효과가 있을 것이다. 본대회의 권위가 여기에 있다. 만천하 언론계의 동지들이여! 모이자! 그리하여 언론의 권위를 신장하고 동직자의 친목을 도(圖)하자.”

앞서 1924년 ‘언론·집회 압박 탄핵회’가 당일에 금지당했고, 총독부가 기자대회에 매일신보와 대동신보 기자들을 포함하라고 요구해 허락된 것이다. 대동신보는 친일단체 대동동지회 기관지다. 

이에 4월15~17일 열린 최초 기자대회에 전국에서 무려 723명의 기자가 신청했다. 조선기자대회 첫날 이상재 조선일보 사장이 의장으로 선출됐고 부의장에 안재홍 조선일보 주필이 선출됐다. 

▲ 수첩. 사진=pixabay
▲ 수첩. 사진=pixabay

1924년 8월 평안북도 지역에서 일본 경찰들이 주민들을 학살했는데 무명회는 공동취재 대표로 이석 조선일보 기자를 현지에 파견하기도 했다. 그 밖에도 기자가 구속되면 경찰이나 총독부에 항의하는 활동에 나섰고, 광무신문지법·출판법 개정 등 언론정책에도 목소리를 냈다. 
 
1921년 11월27일은 서울 종로에서 시인 김수영이 태어난 날이기도 하다. 김수영은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 <풀>, <김일성 만세> 등 시로 유명하다. 1968년 6월16일 사망했다. 

1945년 11월27일은 강원일보가 탄생한 날이다. 같은 해 10월24일 ‘팽오통신’으로 창간해 11월27일 제27호부터 강원일보로 제호를 변경했다. 1980년 언론통폐합으로 1도 1사 제도가 시행될 때 강원도 유일의 지역신문으로 있다가 1992년 강원도민일보가 창간되면서 강원 지역 2대 일간지 자리를 유지하고 있다. 

※참고 문헌
동아일보, “우리를 얕보지 말라” 기자들 대거 한자리 모여 기염 [동아플래시100]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조선일보, 오늘의 역사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