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로부터 해방된 지 약 3개월이 지난 1945년 11월23일, 조선일보와 서울신문이 복간했다.  

조선일보는 1940년 8월10일을 끝으로 폐간 당했다. 폐간 당시 조선일보는 3대의 윤전기가 있었는데 1대는 대만으로 갔고, 또 1대는 만선일보에 강제 매각됐으며 나머지 1대는 총독부 일어판 기관지 경성일보에 강제 매각됐다.

해방 이후 1945년 10월 복간을 이끌 조선일보 편집위원회(편집 9명, 업무 12명, 공무 11명)를 구성해 인쇄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하던 중 미군정이 접수해 운영하던 매일신보 인쇄 시설을 이용해도 좋다는 허가를 받았다. 

당시 매일신보는 서울신문으로 바꿔 복간을 준비 중이었다. 그런데 미군정이 임명한 간부들에 자치위원회가 반기를 들면서 내부 주도권 다툼이 있었다. 이 분쟁이 수습되면서 1945년 11월23일 매일신보가 서울신문으로 이름을 바꿔 복간호를 발행했다. 조선일보도 신문 발행이 가능해져 복간일이 같다. 

▲ 1945년 11월23일 조선일보 복간호
▲ 1945년 11월23일 조선일보 복간호

조선일보는 이날 1면 ‘속간사’에서 “만천하의 환호와 기대 속에 조선일보가 오늘부터 속간된다. 삼천만동포가 못내 사랑하고 열렬히 지지하든 조선일보가 조선의 자주독립의 큰 물결에 따라 오늘부터 역사적 재출발을 하게 됐다”며 “우리는 군정청의 우호적 지지와 이해 있는 알선에 의해 오늘부터 재기한다”고 복간 소식을 알렸다. 

조선일보는 이날 1면에 <민중과 함께 나가라>는 ‘이승만 박사’ 글을 싣기도 했다. 이승만은 기고에서 “공화자유의 권위를 가진 이때에 조선일보가 인민의 지식을 발전하기와 동포의 애국심을 배양하기에 중대한 책임을 가지고 분발용진하기를 바라며 다시 열정으로 축하한다”고 했다. 

서울신문은 이날 신문 지령을 제1호가 아닌 1만3738호로 했다. 대한매일신보 때부터 매일신보까지 지령을 그대로 계승한 것이다. 서울신문은 당시 사설을 통해 “대중의 적진이었던 매일신보는 8월15일의 역사적 대전환을 계기로 청산돼 마땅하다”고 했다. 매일신보는 조선총독부 기관지였다. 

서울신문은 당시 석간으로 발행됐는데 1면 사설 <혁신에 즈음하여>를 통해 “일당일파에 기울어지지 않는 공정하고 적확한 보도”를 제작 이념으로 했다. 현재 서울신문은 대한매일신보의 지령만 계승하고 있다. 

1936년 11월23일, ‘타임’의 발행인 헨리 루스는 미국 뉴욕에서 사진잡지 ‘라이프(LIFE)’를 창간했다. 창간 1년 만에 100만 부를 발행하는 등 TV가 대중화되기 전까지 큰 영향력을 끼쳤다. 주간지였던 라이프는 1972년 격주간지로 바뀌었고, 1978년 월간지로 바뀌며 쇠퇴했다. 2000년 폐간됐지만 2004년 미국 70여개 일간지 부록으로 부활했다가 2007년 4월20일 최종 중단됐다. 공식 누리집 Life.com에서 과거 사진과 기사를 무료로 볼 수 있다. 

한편 1988년 11월23일은 전직 대통령을 지낸 전두환씨가 재임 중 정치 자금 비리에 대국민 사과한 후 강원도 인제 백담사로 떠난 날이고, 2021년 11월23일은 전씨가 사망한 날이다.   

※참고 문헌 
조선일보, [격동의 역사와 함께한 조선일보 90년] [11] 광복으로 5년여 만에 복간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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