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8년 11월29일, 동아일보는 1면에 <본사 기자 5명 심문>이란 기사를 실었다. 

“중앙정보부(현 국가정보원)는 본사 발행 월간 ‘신동아’지 12월호에 실린 <차관> 제하의 기사 내용과 관련 필자인 동아일보 정치부 김진배 기자와 경제부 박창래 기자를 비롯, 신동아부 손세일 부장 및 심재호 기자 이정윤 기자 등 5명을 차례로 연행 또는 자진 출두케 하여 지난 23일부터 그중 몇 사람에 대해 반공법 위반 혐의로 조사를 벌이고 있다.”

▲ 1968년 11월29일 동아일보 1면 '본사 기자 5명 심문' 기사(왼쪽 파란박스)
▲ 1968년 11월29일 동아일보 1면 '본사 기자 5명 심문' 기사(왼쪽 파란박스)

‘신동아 필화사건’이다. 필화는 발표한 글을 문제 삼아 제재하는 일을 말한다. 신동아는 1968년 12월호에서 ‘차관 도입’에 대해 보도했다. 200자 원고지 250매 분량의 심층기사에는 박정희 정권이 외국에서 들여온 차관 중 일부를 정치자금으로 사용한 이야기도 있다. 박정희 정권이 외자도입에 대한 지불보증을 해주고 일정액을 정치자금으로 떼어간다는 공공연한 비밀을 대놓고 심층보도한 곳은 처음이었다. 

다음은 신동아 12월호에 게재된 기사 본문 첫 부분이다. 

“특혜와 폭리가 말썽 되어 국민의 지탄으로 특별 국정감사까지 받게 된 차관업체들의 실태와 정부의 외자도입정책의 공과를 분석하고 앞으로의 상환 능력 등을 진단한 총 보고서. 정부가 일부 업자에게만 치부할 수 있도록 특혜를 베풀고 있다는 비난을, 그리고 또 이들 혜택을 받은 업자로부터는 그 시혜의 반대급부로 정권을 유지하기 위한 자금 공급을 받고 있다는, 권력과 기업과의 함수관계는 비단 어제오늘에 비롯된 것이 아니다.”

신동아 12월호 잡지가 발행되고 11월23일부터 실무진이 차례로 검거됐다. 박창래 기자는 23일 오전 11월23분 출입처인 수산청 기자실에서 정보부원에게 연행됐고, 26일 낮 12시 신동아부에 보관 중인 ‘차관’ 원고를 임의제출 형식으로 가져갔다. 김진배 기자는 한국기자상 수상으로 기자협회가 마련한 해외 여행을 마치고 귀국한 25일 낮 12시경 김포공항에서 중앙정보부로 연행됐다. 신동아부 손세일 부장은 25일 오후 4시 중앙정보부에 연행됐고, 신동아부 심재호·이정윤 기자는 자진출두 형식으로 28일 오전 10시 중앙정보부에서 심문을 받았다. 신동아 홍승면 주간은 29일 중앙정보부에 연행됐고, 동아일보 정치부 유혁인 차장도 29일 반공법 위반 혐의로 연행됐다. 

▲ 동아일보 11월29일 2면 사설 '신동아 필화' 일부
▲ 동아일보 11월29일 2면 사설 '신동아 필화' 일부

11월29일 1면 보도는 동아일보의 반격이다. 동아일보는 이날 2면 <신동아 필화>라는 사설에서 “ 이 기사에서 다루어진 대부분의 자료와 논거는 이미 그때 그때 보도 논평된 것들이고, 이 기사가 크게 다른 것이 있다면, 그것은 과거의 개별적인 보도의 내용이나 논평의 취지를 종합하여 차관과 그에 관련되는 사상(事象)의, 되도록 전모를 독자들 앞에 정리 제공한 점”이라며 “정부는 차관에서 온 긍정적인 성과를 종합 선전하는 그만큼의 성의를 가지고, 차관에서 오는 부정적인 부작용도 인정해야 마땅할 것이며, 만일 그러한 부작용이 우려할 만한 것이 아니라는 소신이 정부에 있다면 그 소신대로 국민을 합리적으로 납득시켜야 할지언정, 그것은 결코 차관의 당사자들이나 정책수립자들 사이에서 어둠에서 어둠으로 은폐될 성질의 것이 아니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민중이 당연히 알아야 할 것을 알리지 않으려 하고, 매스컴이 당연히 알려야 할 것을 알리지 못하도록 하는 압력이 집요하다면 그럴수록 그런 독선과 이기(利己)는 전 국민의 이름으로 배격되어야 한다”며 “우리가 암흑 아닌 광명의 민주주의를 키우고, 그것을 바탕으로 승공통일을 이룩해야 한다면, 알 권리, 알릴 권리는 모든 무엇에 앞서 완전히 전취되어야 한다”고 사설을 마무리했다. 동아일보는 사설에서 중앙정보부가 이 사건을 수사하는 것이 부당하고 반공법 혐의를 적용한 것 등을 비판하면서 알권리를 주장했다. 

다음날인 11월30일 동아일보 1면기사 <국회서 따진터>를 보면 신민당은 ‘신동아 필화사건’에 대해 “관변 측이 음성적으로 언론을 탄압하던 수법의 일단이 노출된 것으로 보고 신민당은 국회에서 진상을 규명할 작정이며 정부 측에도 해명을 요청하겠다”는 성명을 29일에 발표했다. 송무영 신민당 대변인은 여야 8인 대표자회담에서도 수사기관의 정치참여를 막고 언론자유가 침해되지 않도록 하는 방법을 거론할 생각이 있다고 했다.  

동아일보 30일자 1면 다른 기사를 보면 이날 한국신문편집인협회와 한국기자협회는 공동성명을 발표해 “이는 언론의 자유에 미치는 영향이 클 것으로 판단한다”고 지적하며 “중대한 관심을 가지고 귀추를 예의주시키로 했다”고 했다. 

신동아 필화사건 나머지 이야기는 이후 기사에서 다룰 예정이다. 1968년 11월29일과 30일, 동아일보와 언론계, 야당까지 언론탄압이라며 비판하자 오히려 박정희 정권은 탄압 강도를 높였고 사태는 12월에도 이어진다.

※참고 문헌 
자유언론실천재단, ‘신동아 필화 사건’
신동아, ‘신동아’ 90년 ‘대경륜’의 장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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