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논란의 중심에 있다. 윤석열 정부 ‘가짜뉴스’ 대응의 ‘전위대’ 역할을 하며 안팎에서 우려가 쏟아지고 있다. 심의의 문제, 나아가 기구의 정당성 문제까지 대두되는 상황이다. 민간독립기구이지만 사실상 대통령의 권한 아래 놓인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심의와 기구 전반의 문제를 파헤치고 새로운 심의 모델을 제안한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방송심의 제재 결정이 재판에서 완전패소한 8건 중 6건이 ‘정치심의’ 비판을 받았던 제재였던 것으로 드러났다. 류희림 방통심의위원장 체제가 정부에 비판적인 보도에 무더기 중징계를 추진하는 가운데, 향후 방송사의 불복 소송을 통해 패소할 가능성도 있다. 

방송심의제재 완전패소 8건 중 6건 ‘정치심의’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자체 파악한 소송 패소 내역을 미디어오늘이 확인한 결과 방통심의위 출범 이래  방송심의 제재는 총 8건의 소송에서 완전패소했다. 그 중 6건은 정부에 비판적이거나 불편한 내용의 시사·보도 프로그램에 대한 제재로, 모두 ‘정치심의’ 논란이 일었던 사안들이다. 

△천안함 사고 의혹을 다룬 KBS ‘추적60분’(2010년) △서울시 공무원 간첩조작 사건을 다룬 KBS ‘추적60분’(2013년) △정부 축산정책을 비판한 CBS ‘김미화의 여러분’(2012년) △박창신 신부의  정부 비판 인터뷰 발언으로 논란이 불거진 CBS ‘김현정의 뉴스쇼’(2013년) △박근혜 대통령과 인공기를 나란해 배치한 MBC ‘뉴스데스크’(2013년)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 행적을 비판적으로 다룬 다큐멘터리 ‘백년전쟁’을 방송한 시민방송 RTV(2013년)에 법원은 제재를 취소하는 확정 판결을 내렸다.

▲ 방송통신심의위원회 방송심의 제재 완전패소 내역
▲ 방송통신심의위원회 방송심의 제재 완전패소 내역

나머지 두 건은 △특정 주식프로그램에 대한 과도한 광고효과로 논란이 된 한국경제TV ‘장외주식 4989’(2016년) △음주 장면을 긍정적으료 묘사한 TV조선 ‘연애의 맛’(2018년)으로 각각 ‘금융·부동산 등에 대한 투자자문행위’, ‘건전성’ 조항 위반으로 제재를 받았다가 법원이 패소 판결을 내렸다.

공정성 객관성 심의에 의문 제기한 법원

‘정치심의’ 논란이 일었다 완전패소한 6건은 ‘공정성’, ‘객관성’, ‘품위유지’ 조항 위반을 이유로 제재한 방송이다. 해당 조항들은 모두 주관적 해석 소지가 커 심의위원들이 자의적으로 심의할 수 있는 문제가 있는데, 법원에서도 이를 지적했다. 

방통심의위에 따르면, 법원은 천안함 사고 의혹을 다룬 KBS ‘추적60분’에 대해 “공익성 의무를 충실히 이행한 것으로 보아야 하지 공정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볼 것은 아니다”고 판단했다. CBS ‘김미화의 여러분’에 대한 판결에선 “방송의 공정성과 객관성은 정부 정책에 대한 비판과 관련돼서는 민주주의 유지 및 발전, 알 권리 보장 측면이 더 고려돼야 한다”고 했다. 

▲ CBS 김미화의 여러분. 사진=CBS제공
▲ CBS 김미화의 여러분. 사진=CBS제공

아울러 “공정성 준수 여부는 매체별·채널별 특성 뿐만 아니라 프로그램의 성격에 따라 달라지는데, 해당 프로그램은 시사·교양 프로그램으로써 뉴스 프로그램과는 성격이 다르며 논평 프로그램에 가깝다”고 했다. 현재 방통심의위는 정부 비판 내용을 담은 KBS 라디오 ‘주진우 라이브’, MBC ‘김종배의 시선집중’, ‘PD수첩’ 등 시사·교양 프로그램에도 ‘공정성’, ‘객관성’ 조항을 위반했다며 중징계를 추진하고 있다.

법원은 인터뷰 대상자가 박근혜 정부 대선 과정에 국정원과 정부 기관이 개입했다고 발언해 제재받은 CBS ‘김현정의 뉴스쇼’에 대해 “인터뷰 대상자의 의견을 듣는 것을 주된 목적으로 하므로, 적극적으로 진위를 파헤치지 않았다고 해서 객관성을 상시했다고 볼 수 없다”고 했다. 아울러 “진행자는 박 신부(인터뷰 대상자)의 주장에 반박하는 취지의 의견을 제시했고, 박 신부의 발언이 객관적 사실에 근거한 것이 아닌 박 신부 독자적인 생각에 불과함을 청취자는 충분히 인식했을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기계적으로 공정성, 객관성 조항을 적용해선 안된다는 지적도 나왔다. 현재 여권 추천 위원들은 여야 주장을 실은 분량을 각각 초 단위로 비교하며 편파성을 지적하고 있다. 30분 간격으로 여야 측 패널 인터뷰를 진행한 MBC <김종배의 시선집중>을 두고는 청취자들이 차를 타고 내리면서 한쪽 주장만 듣고 오해할 수 있다며 패널이 동시에 나와서 같은 질문에 답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기계적으로 방송의 공정성을 따지는 심의 예시다.

법원은 서울시 공무원 간첩조작 사건을 다룬 KBS ‘추적60분’에 대한 판결에서 “공정성과 균형성이란 사회적 쟁점·대립적 이해관계를 방송할 때 그에 대한 반대 입장 역시 방송하거나 방송기회를 합리적으로 제공하는 것이며 분량만으로는 판단하긴 불가능하기 때문에, 이를 수학적 기준으로 판단하면 방송의 자유를 지나치게 제한하거나 침해할 수 있다”고 했다. 

▲  지난 2013년 9월 7일 방송된 KBS ‘추적 60분’ ‘서울시 공무원 간첩 사건 무죄판결의 전말’ 예고편. 사진=KBS ‘추척 60분’ 방영화면 갈무리
▲  지난 2013년 9월 7일 방송된 KBS ‘추적 60분’ ‘서울시 공무원 간첩 사건 무죄판결의 전말’ 예고편. 사진=KBS ‘추척 60분’ 방영화면 갈무리

아울러 “정부기관의 정책과 활동 등에 관한 내용에 대한 탐사보도의 경우, 의혹을 품을 만한 합리적 이유가 있고, 그 공개가 공익을 위해 필요하다고 인정되면 공정성과 균형성 판단을 엄격하게 할 필요가 있다”며 정부 비판 보도에 대해선 심의를 최소한으로 해야 한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품위유지 조항은 다소 모소해 자의적 해석이 가능하다는 비판이 있다. 법원에서도 이를 언급하며 자의적 적용은 표현의 자유를 위축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법원은 박근혜 대통령과 인공기를 나란해 배치한 MBC ‘뉴스데스크’에 대해 “‘방송의 품위’가 불확정적인 개념인 점, 뉴스 배경화면의 배치 및 정렬은 방송편성 자유의 영역에 속하고 이는 기본적으로 방송사업자의 자율적 결정에 맡겨져야 하는 점, 이에 대한 간섭과 통제는 방송편성의 자유 제한 효과를 발생시키므로 ‘방송의 품위’가 명백히 손상된 예외적 경우에만 허용되는 점을 고려할 때 품위유지 위반을 사유로 한 제재조치는 객관적이고 엄격한 기준에 의해 평균적 일반인의 기준으로 판단돼야 한다”고 판단했다.

▲ 디자인=이우림 기자.
▲ 디자인=이우림 기자.

법원, 심의 통한 표현의 자유 침해 우려

최근 방통심의위가 정부 비판적 내용에 적극 심의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는 가운데, 법원에선 완전패소 판결 배경으로 방통심의위가 정부비판 보도 심의에 신중해야 하는 이유를 언급했다. 

법원은 천안함 사고 의혹을 다룬 KBS ‘추적60분’에 대해 “방송심의를 통한 제재조치는 언론·표현의 자유에 속하는 방송의 자유를 과도하게 제한할 우려가 있고, 허위사실이나 진실을 오인케 하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권한 행사에 극히 신중해야한다”며 “특히 국가는 홍보자료 등을 통해 당해 보도에 대해 스스로 반박하고 이를 통해 잘못된 정보로 인한 왜곡된 여론형성을 막을 수 있어, 정부비판 보도에 대한 심의는 신중해야 한다”고 밝혔다. 

법원에선 공적 인물에 대한 평가에 대한 심의에도 신중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 행적을 비판적으로 다룬 다큐멘터리 ‘백년전쟁’을 방송한 시민방송 RTV에 대해선 “공적 인물에 대한 사안으로서 진실과 다소 다른 부분이 있어도 진실한 사실이라고 믿을 상당한 이유가 있을 경우 명예훼손으로 볼 수 없다”고 봤다. 

▲ RTV에서 방영된 다큐멘터리 ‘백년전쟁’.
▲ RTV에서 방영된 다큐멘터리 ‘백년전쟁’.

현재 방통심의위도 정부를 비판한 시사·보도 프로그램을 대상으로 무더기 중징계 제재를 의결하고 있다. 류희림 위원장이 호선된 후 열린 첫 회의에서 ‘객관성’, ‘공정성’ 위반으로 KBS, MBC, TBS 시사보도 프로그램 안건 8건에 전부 법정제재 혹은 제작진 의견진술을 의결했다. 지난 16일 전체회의에선 대통령, 정부 관련 의혹을 제기한 시사보도 프로그램 안건 13건에 전부 법정제재 이상의 제재가 결정돼 ‘대통령과 정부 수호 조직이냐’는 야권 위원의 비판이 이어지기도 했다. 

▲ 류희림 방송통신심의위원장. 사진=방통심의위 제공.
▲ 류희림 방송통신심의위원장. 사진=방통심의위 제공.

대선 전 윤석열 당시 대통령 후보의 수사 무마 의혹을 담은 ‘김만배 녹음파일’을 보도한 뉴스타파에 대해선 ‘국가적 근간을 흔드는 가짜뉴스’라며 첫 인터넷언론 심의에 나섰고, 해당 녹음파일을 인용한 보도와 시사·토론 프로그램을 긴급 심의 안건으로 상정해 최고 수의의 제재인 ‘과징금 부과’ 제재를 의결했다. 

이에 야권 추천 김유진 위원은 “행정소송에서 패소할 걸 알면서도 이렇게 무리한 과징금 결정을 한 것이라면, 알면서도 과한 징계로 해를 끼친 것”이라며 “정부 여당에 불리하다고 해도 독립성을 갖고 판단해야 하는 게 방통심의위의 자세”라며 비판해왔다. 윤성옥, 김유진, 옥시찬 등 야권 위원 3인은 지난 23일 호소문을 내고 “현재 심의위원회는 자의적 유권해석과 무리한 의사진행으로 향후 수많은 제재결정 번복과 행정소송이 예견되고 있다”며 “줄세우기식 불공정한 정치심의로부터 방송사를 보호해달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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