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논란의 중심에 있다. 윤석열 정부 ‘가짜뉴스’ 대응의 ‘전위대’ 역할을 하며 안팎에서 우려가 쏟아지고 있다. 심의의 문제, 나아가 기구의 정당성 문제까지 대두되는 상황이다. 민간독립기구이지만 사실상 대통령의 권한 아래 놓인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심의와 기구 전반의 문제를 파헤치고 새로운 심의 모델을 제안한다.

5기 방송통신심의위원회를 거쳐갔거나 현직인 총 11명의 심의위원 중 여성 위원은 2명 뿐이었다. 국민의힘과 보수정부는 10년 동안 남성 위원만 추천했다. 방통심의위에 다양성 부족하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된 배경이다. 50대~60대 남성 위주 위원으로 콘텐츠를 심의하고 있어 ‘다양성’ 측면에서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 사진=Getty Images Bank
▲ 사진=Getty Images Bank

실제 방통심의위 심의내역을 보면, 성인지 감수성이 부족하거나 이른바 ‘꼰대 심의’라는 평가를 받을 만한 심의가 반복되고 있다. 현재 방통심의위에 정치적으로 편향된 심의를 근절해야 한다는 요구가 커지고 있는데, 다양한 계층과 연령의 심의위원으로 구성해야 한다는 과제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대다수 심의위원 5060 남성…구성 변화 없었다

이정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서 받은 역대 심의위원 프로필 자료에 따르면, 총 56명의 심의위원 중 여성은 10명 뿐이었다. 2기 방통심의위에는 여성 위원이 1명, 3기엔 없었다. 3기부터 5기까지 10년 간 국민의힘과 보수정부에서 추천한 위원 중 여성은 없었다.

▲ 남성 위원밖에 없었던 3기 방통심의위(위). 5기 방통심의위(아래)도 여성이 2명에 불과했다. 사진=방통심의위
▲ 남성 위원밖에 없었던 3기 방통심의위(위). 5기 방통심의위(아래)도 여성이 2명에 불과했다. 사진=방통심의위

연령별로 보면, 대다수 심의위원이 50~60대다. 위촉 당시 나이를 기준으로 출범 이래 가장 나이가 어린 위원은 40대, 가장 나이가 많은 위원은 70대였다. 3기 방통심의위는 10명 전원이 50대 이상이며, 위촉 당시 51세인 윤석민 위원이 최연소였다. 방통심의위 기수별로 분석하면, 1기 총 15명 중 11명, 2기 총 9명 중 7명, 4기 총 11명 중 8명, 5기 총 11명 중 9명이 50대 이상이었다.

현재 5기 방통심의위도 정연주 전 위원장(남성, 70대), 이광복 부위원장(남성, 60대), 정민영 위원(남성, 40대)이 해촉되고 류희림 위원장(남성, 60대)이 위촉돼 2명의 위원 자리가 공석인 상황이다. 역대 심의위원 56명 중 60대 이상은 21명, 50대 이상은 45명, 40대는 11명이었다.

▲ 방심위 역대 위원 성비(보궐 포함) 그래프.
▲ 방심위 역대 위원 성비(보궐 포함) 그래프.

최근 김진표 국회의장이 보궐위원으로 황열헌 인천공항시설관리 사장을 추천했는데, 황 사장 또한 60대 남성이다. 총 11명의 위원이 5기 방통심의위를 거쳤지만, 여성은 김유진 위원(50대), 윤성옥 (50대)위원 두 명 뿐이다.

위원 구성 다양성에 대한 지적은 꾸준히 제기됐다. 정민영 전 5기 방통심의위원은 3기 방통심의위 체제였던 2016년 미디어오늘 칼럼에서 심의위원의 다양화가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정 전 위원은 “심의위원 9명 중에는 30대는 고사하고 40대 위원도 전무하다”며 “직업 구성을 보더라도 제작에서 손을 놓은 지 한참 지난 방송사 고위 간부 출신 언론인들, 신문방송학 등을 전공한 교수, 공안검사를 거친 변호사로 다양성이 떨어진다. 다양한 시청자들의 정서를 이해하지 못하는 경직된 심의가 나올 수밖에 없는 조건”이라고 지적했다.

정 전 위원은 “9명의 위원 가운데 최소한 3명은 30~40대로, 4명 이상은 여성으로 구성해야 심의의 경직성을 조금이나마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며 “성소수자나 장애인 등 우리 사회의 소수자들의 목소리를 대변할 수 있는 사람도 위원으로 들어가야 한다. 지금처럼 교수, 변호사, 언론사 고위간부 출신 60대 남성 일색으로 심의위가 구성된다면, 방심위가 ‘꼰대 심의’라는 오명을 벗기 어렵다”고 했다. 하지만 7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방통심의위의 현실은 달라지지 않았다.

안건으로 올라오지도 못한 성차별 민원들…올라와도 ‘문제없음’

▲ 지난 8월 ‘그 심의 결과, 문제 있음’ 공론장에서 공개된 서울YWCA 심의 신청 현황.
▲ 지난 8월 ‘그 심의 결과, 문제 있음’ 공론장에서 공개된 서울YWCA 심의 신청 현황.

다양성이 결여된 방통심의위의 구성 문제는 차별적 방송을 심의할 때도 나타난다. 소위원회 안건으로 상정조차 되지 못하거나, 상정돼도 ‘문제없음’ 혹은 경미한 수준의 제재가 의결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심의 제재가 최선이라고 볼 수는 없지만 ‘정치적 쟁점’에는 과잉 심의가 이뤄지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시민단체 서울YWCA 여성운동팀은 지난 8월 성차별적 방송통신심의에 대해 논의하는 ‘그 심의 결과, 문제 있음’ 공론장을 열었다. 여성운동팀은 시민들과 함께 매달 성차별적 방송·통신 사례를 모니터링하고 방통심의위에 민원을 넣고 있다. 하지만 심의신청을 넣은 사례들은 방통심의위에서 소위 안건으로 상정조차되지 못하는 경우가 상당수다. 공론장 발표 자료에 따르면, 서울 YWCA가 지난해 방통심의위에 제기한 성차별적 방송 관련 민원 총 140건 중 제재 받은 건은 4건에 불과했다. 나머지는 문제없음 처리되거나, 대다수는 안건에 상정되지 않았다.

85세 할머니가 자신을 성폭행한 마을이장을 고소했지만 검찰에서 불기소처분이 된 사건을 다루며 성폭행 장면이 담긴 CCTV 화면을 반복적으로 방송한 SBS <궁금한 이야기 Y>(2021년 1월 방송)는 행정지도 중 가장 낮은 단계인 ‘의견제시’로 의결됐다. 당시 5기 정민영·윤성옥 위원은 피해자의 인권 보호 관련 조항도 추가 적용해 강하게 제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 서울YWCA가 방심위에 보내는 한 마디.
▲ 서울YWCA가 방심위에 보내는 한 마디.

하지만 이상휘 위원은 “핵심은 CCTV에 대한 시청자의 판단을 묻는 것”이라며 “피해자로서의 억울함을 대변할 수 있는 프로그램의 형태”라고 주장했다. 이광복 소위원장도 “방송 취지가 ‘이게 불기소사건이 맞습니까?’”라고 물어보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다 했다. 방송은 성폭력·성희롱 사건을 선정적이고 자극적으로 다뤄선 안된다는 ‘성폭력 성희롱 사건보도’ 관련 조항 위반으로 상정된 안건임에도 성폭력 진위를 규명하기 위해서는 선정적 보도를 해도 된다고 판단한 것이다.

애니맥스의 어린이 프로그램 <이상한 과자가게 전천당>(2022년 7월 방송)에선 여자주인공이 남자주인공을 향해 ‘어쩌지. 난 돈 때문에 저 남자랑 사귀고 있는건데’, ‘좋은 남자를 잡아 결혼하는 게 목표였는데 나한테는 딱이지 뭐’라고 생각하고, 남주인공의 부모님 마음에 들기 위해 숙녀를 위한 예절 교육에 참여하면서 ‘부모님 마음에 쏙 드는 요조숙녀가 되고 말거야’라고 다짐한다. 청소년에게 성차별적 고정관념을 재생산하고 특정 성에 대한 혐오를 조장하는 내용임에도 이에 대한 심의 결과는 ‘문제없음’이었다.

심의 과정 중 위원들이 성차별적 주장을 하거나 성인지 감수성이 결여된 발언을 하는 경우도 있다. 야구선수 황재균의 아내 가수 지연이 화면에 나올 때마다 중계진이 “황재균 활약에 따라 반찬 종류가 달라진다”고 반복해 발언한 SBS 스포츠 <2023 KBP리그>(2023년 6월 방송)를 심의하던 중, 옥시찬 위원은 “운동선수에게 배우자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며 “운동선수는 체력 관리 차원에서 식사 문제가 매우 중요하게 평가를 받고 있다. 양성평등 조항을 적용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발언했다.

▲ 2023년 4월9일 TV조선 '노래하는 대한민국' 방송화면 갈무리.
▲ 2023년 4월9일 TV조선 '노래하는 대한민국' 방송화면 갈무리.

지역 순회 노래 대결 프로그램에서 진행자가 참가자에게 “지방에 인구가 줄고 있다. 아기를 잘 낳지 않는 여성분들에게 한 말씀 해달라”고 말한 TV조선 <노래하는 대한민국>(2023년 4월 방송)도 성차별적 발언으로 안건에 상정됐는데, 황성욱 위원은 “요즘 아이를 낳지 않는 것은 꼭 여성분들의 문제만 아니라 젊은 남성들도 그런 생각을 많이 갖고 있기 때문에 여기 여성을 남성으로 치환해서 봤을 때 큰 차이점을 잘 못 느꼈다. 문제없다”고 했다. 김우석 위원도 “개인적으론 다른 고령의 참가자들이 출연한 프로그램에 유사사례가 많이 있어 ‘큰 문제가 있나?’ 생각했다”고 말했다.

▲ KBS '머슬퀸 프로젝트' 2016년 2월9일 방송화면 갈무리.
▲ KBS '머슬퀸 프로젝트' 2016년 2월9일 방송화면 갈무리.

특히 심의위원 전원이 50대~60대 남성이었던 3기 방통심의위에선, 위원 개개인의 성차별적 발언 문제가 심각했다. 여성 출연자들의 신체부위를 부각하며 ‘한국 남성들이 가장 좋아하는 몸매’라는 자막을 내보내는 등 성상품화로 논란된 KBS 파일럿 프로그램 <머슬퀸 프로젝트>(2016년 2월 방송)를 심의하던 하남신 위원은 “눈요기는 됐다”고 말한 뒤 “속기록에는 남기지 말라”고 사무처에 지시했다.

3기 방통심의위는 여고생끼리의 키스 장면을 내보낸 JTBC 드라마 <선암여고 탐정단>(2015년 2월, 3월 방송)엔 중징계인 ‘경고’를 의결했다. 전체 9명의 위원 가운데 6명이 ‘경고’ 의견을 냈으며, 문제없음이나 가장 낮은 수준의 경징계인 ‘의견제시’를 낸 위원은 한 명도 없었다. 당시 함귀용 위원은 “동성애는 인정은 하되 올바른 가치관은 아니다 라는 걸 짚고 넘어가자는 거다”, 조영기 위원은 “이성간의 교제가 아니라 동성 간의 교제를 조장하고 있는 것”이라고 발언해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폭력’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기준 모호한 ‘꼰대 심의’ 논란, 신조어 제재는 현재진행형

“앞으로 직업정신을 갖고 조심히 하겠습니다.” 아프리카TV 인기 BJ 철구형이 2016년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출석해 진술한 내용이다. 방통심의위는 당시 통신소위에서 인터넷 방송 진행자 6명을 불러 꾸짖었다. 위원 중 한 명이 “저렇게 예쁜 아가씨가 왜 저렇게 욕을 해?”라고 발언한 것이 알려지자 ‘꼰대 심의’ 논란에 불이 붙었다. 다양성, 높은 연령대 탓에 인터넷 문화에 미숙한 상태로 심의를 진행해 ‘교무실 같다’는 비아냥이 일었다.

3기 방통심의위는 MBC계열 케이블채널에서 방영되는 ‘주간 아이돌’을 통신용어, 신조어 등 부적절한 언어사용으로 중징계까지 내렸다. 진행자인 김성규가 당황하자 ‘규들짝(김성규+화들짝)’ ‘규절부절(김성규+안절부절)’ 이라는 자막이 나가는 장면이었다. 이외에도 출연자 켄이 변희봉 성대모사를 하자 ‘빼박캔트 변희봉’이라는 자막이 나갔고 그룹 트와이스 출연분에서는 ‘is 트밍아웃(트와이스+커밍아웃) 유발곡’, ‘이로써 너도나도 트밍아웃’이라는 자막을 썼다.

▲ MBC '마이리틀텔레비전'은 인터넷방송을 그대로 방송에 옮긴다는 컨셉으로 자막 역시 'ㅋㅋㅋ'등 인터넷용어를 사용하다가 방송통신심의위에서 '권고'제재를 받았다. 이후 '마리텔'에서 'ㅋㅋㅋ'자막은 '크크크' 등으로 바뀌었다.
▲ MBC '마이리틀텔레비전'은 인터넷방송을 그대로 방송에 옮긴다는 컨셉으로 자막 역시 'ㅋㅋㅋ'등 인터넷용어를 사용하다가 방송통신심의위에서 '권고'제재를 받았다. 이후 '마리텔'에서 'ㅋㅋㅋ'자막은 '크크크' 등으로 바뀌었다.

한 지상파 현직 PD는 2016년 미디어오늘에 MBC ‘마이리틀텔레비전’ 제재를 놓고 “심의 자체가 나쁘다는 것은 아니지만, 인터넷생방송을 그대로 방송으로 옮기는 방송 특성상 방송 특성을 조금 이해해줘야한다고 생각한다”며 “‘무한도전’ 이후 자막이 예능프로그램의 재미에 기여하는 정도가 높아졌는데, 무조건 정제된 방송용어를 사용하라는 것은 예능PD에게 재미를 포기하라는 소리”라고 불만을 표출했다.

2009년 MBC ‘지붕뚫고 하이킥’에 대한 제재는 전국적 관심을 불렀다. 초등학생 해리가 ‘빵꾸똥꾸’라는 표현을 쓴 것을 놓고 버릇없는 행동의 반복이라며 `권고조치'를 내린 것이다. 제작진은 “극의 수정 없이 그대로 나갈 것”이라고 반발했고 소설가 이외수씨는 당시 트위터에 “대한민국에서는 시간이 거꾸로 흐르고 있다. 이러다 통금도 부활하는 것이 아닐까”라고 했다.

▲ 2020년 9월12일자 MBC ‘놀면 뭐하니?’ 유튜브 갈무리.
▲ 2020년 9월12일자 MBC ‘놀면 뭐하니?’ 유튜브 갈무리.

중징계까지는 아니지만 ‘권고’ 수준의 제재는 반복된다. 방송심의 의결 내역을 보면, 2021년에도 9건의 가까운 신조어 제재 사례가 있었다. 예를 들어 2020년 9월12일자 MBC ‘놀면 뭐하니?’에서 ‘Ctrl+c / Ctrl+v’, ‘애티튜드’, ‘판타스틱한 혼자만의 티 타임’, ‘This is 뭉클!’, ‘We don't 때려!’ 등의 표현이 문제가 됐다.

2020년 9월12일자 tvN ‘놀라운 토요일 도레미 마켓’에서도 ‘숨듣명’, ‘꾸준 갑’, ‘왕건이는 없는데 잔잔바리로’, ‘‘Like 땡깡’, ‘ㄴㄴ’, ‘하ㅎ’, ‘푸ㄹㄹㄹ웁’ 등의 표현이 문제가 됐다. 방통심의위는 “예능 프로그램으로서 특성을 감안하더라도, 출연자의 발언이나 상황을 자막으로 표현하는 과정에서 신조어, 줄임말, 출처불명의 표현, 영어 혼용 표현 등을 반복하여 고지한 것은, 다양한 연령·계층의 시청자를 대상으로 하는 방송의 특성상 오히려 방송내용의 올바른 이해를 저해하거나 바른 언어생활을 해칠 우려가 크다는 점에서 관련 심의규정에 위반되는 것으로 판단된다”고 했다.

▲ 방송통신심의위원회 현판. 사진=방송통신심의위원회 제공.
▲ 방송통신심의위원회 현판. 사진=방송통신심의위원회 제공.

방통심의위는 현재 2명의 위원 교체를 기다리고 있다. 제도적으로도 위원회 다양성을 보장할 수 있는 방안이 필요하다. 김유진 위원은 미디어오늘 인터뷰에서 “지금까지 40대 후반이 위원 최연소였다. 쿼터의 개념을 적용해서라도 여성 비율을 늘리고 적어도 30대 위원이 한 명 정도 포함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세대 대표성을 반영할 수 있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김유진 위원은 “심의 과정에 직접적 영향을 미치진 않더라도 현재 방심위엔 여러 특위가 있다. 특위 구성에서도 분야별, 성별, 연령별 대표성이 더 고려돼야 한다. 그런 것들을 조금씩 정착시켜가다 보면 이렇게 구성을 해도 위원회가 운영되는데 아무 문제가 없다는 걸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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