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의철 KBS 사장이 윤석열 대통령을 향해 TV수신료 분리징수 추진을 철회하면 사퇴하겠다고 밝혔다. 수신료 분리징수 추진 후 첫 기자회견에 나선 김의철 사장은 KBS를 둘러싼 여러 지적을 반박하며 분리징수 추진의 부당성을 강조했다.

김의철 사장은 8일 서울 영등포구 KBS아트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전임 정권에서 사장으로 임명된 제가 문제라면 제가 사장직을 내려놓겠다. 그러니 대통령께서는 공영방송의 근간을 뒤흔드는 수신료 분리징수 추진을 즉각 철회해 달라. 수신료 분리징수 추진이 철회되는 즉시 저는 자리에서 물러나겠다”고 했다. 윤석열 대통령과의 면담, 분리징수 업무를 담당할 방통위・산업부와 KBS의 협의체 구성도 정식 제안했다.

이날 기자회견은 5일 대통령실이 공영방송(KBS・EBS) TV수신료를 전기요금에서 분리하는 방안을 방송통신위원회・산업통상자원부에 권고하면서 마련됐다. 대통령실은 지난 3월9일부터 한 달간 국민제안 홈페이지(국민참여토론)에 수신료 관련 게시글을 올려 추천・비추천, 댓글 등으로 의견을 수렴한 뒤 국민제안 심사위원회 논의를 거쳤다고 밝힌 바 있다.

▲2023년 6월8일 서울 영등포구 KBS 아트홀에서 KBS 김의철 사장, 최선욱 전략기획실장, 오성일 수신료국장 등이 정부가 추진하는 수신료 분리징수 관련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KBS
▲2023년 6월8일 서울 영등포구 KBS 아트홀에서 KBS 김의철 사장, 최선욱 전략기획실장, 오성일 수신료국장 등이 정부가 추진하는 수신료 분리징수 관련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KBS

김 사장은 대통령실이 분리징수를 권고하기까지의 절차에 대해 “사회적 제도로서의 공영방송 의미와 역할에 대한 깊은 성찰과 고민이 있었는지 다양한 시각을 지닌 여러 분야의 전문가가 참여해 충분한 논의를 진행했는지 강한 의구심이 들 수밖에 없다”며 “KBS는 논의 과정에서 철저히 배제되었으며 별도로 의견을 물어 온 바도 없다는 점은 무척 유감”이라고 밝혔다.

김 사장은 이날 약 15분 분량의 입장문에서 KBS를 둘러싼 여러 지적을 반박하기도 했다. 먼저 ‘KBS가 비효율적이고 방만한 조직’이라는 것은 “고정관념”이라는 주장이다. 김 사장은 1981년 결정된 월2500원 수신료와 해외 공영방송 수신료를 비교하면 한국과 1인당 GDP 수준이 비슷한 이탈리아는 4배이고 일본은 4.8배, 영국은 8.6배, 독일은 10배라고 했다. 그런데 TV 도달률은 KBS가 68.5%로 프랑스・독일 공영방송사(67%)보다 높고 BBC(71.6%)보다 “약간 낮은 정도”라는 것이다. 직원・인건비에 대해선 KBS 직원이 4000명 대인 반면 영국 BBC는 2만 명, 일본 NHK는 1만 명 수준이며, 지난 10년간 KBS 직원의 연 평균 임금 인상률은 1.64%로 국내 연평균 인상률(3.76%)의 절반 수준이라고 강조했다.

수신료 수입을 활용해 온 공적 책무로는 “한민족방송, 국제방송, 장애인방송 등 다양한 공영 채널을 운영하고 있으며, 재난방송 주관방송사로서의 역할도 충실히 수행하고 있다. 대하드라마, 고품격 다큐멘터리, ‘대한민국 어게인 나훈아’같은 대형 이벤트처럼, 수익성은 낮지만 대자본 투입이 필수적인 프로그램들을 제작하여 상업방송이 범접할 수 없는 공영방송만의 콘텐츠를 공급하고 있다”며 “KBS교향악단과 국악관현악단의 운영, 한국어 연구 및 진흥사업, 소외계층을 위한 난시청 해소와 수신환경 개선, 그리고 콘텐츠 산업의 발전을 선도할 방송기술과 방송문화 연구 등 R&D 투자도 게을리 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김의철 KBS 사장이 수신료 분리징수 관련해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KBS
▲김의철 KBS 사장이 수신료 분리징수 관련해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KBS

KBS는 수신료 분리징수가 이뤄지면 연 6200억 원 정도(2022년)인 수신료 순 수입이 1000억 원대로 급감할 거라 보고 있다. 분리징수가 현실화되면 부족해질 재원을 충당할 방안에 대해 김 사장은 “현실적인 방안은 없다”고 답했다. 분리징수 추진이 사실상 KBS 존폐로 이어질 수 있는 기로에서 ‘조건부 사퇴’ 카드를 꺼내들기에 이른 것이다. 집권 여당인 국민의힘이 윤석열 정부 초기부터 공영방송 경영진 사퇴를 압박해온 만큼 정치권을 향해 메시지를 보낸 것으로 해석된다.

이와 관련 ‘정치권 압박으로 물러난다면 잘못된 역사가 반복되는 것 아니냐’는 취지의 질문에 김 사장은 “KBS 사장으로서 중요한 임무가 수신료 분리징수를 막아내는 것”이라며 “이 시점에서 KBS를 지키기 위해 사장으로서 어떤 일을 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 차원에서 이런 결심과 의견을 말씀드렸다. 공영방송 KBS 독립은 사장 한 사람의 몫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정말 수신료 분리징수가 철회되어서 제가 물러나더라도 KBS 구성원들이 방송 독립을 유지하고 공영미디어 역할을 충실히 할 수 있을 거라 믿기에 이런 결심을 했다”고 답했다.

기자회견에선 공영방송으로서 KBS 존재가치를 보이기 위한 방안이 있느냐는 질문이 집중됐다. 일례로 한 기자는 ‘KBS 드라마・예능이 공영성과 재미를 갖고 있나. 일일드라마는 ‘가족극’ 아니라 ‘복수극’이지 않나’라고 했다. 이에 김 사장은 “뼈아픈 지적이다. KBS의 수신료 포함한 공적 재원이 45% 정도이고 나머지는 콘텐츠나 광고 수입 기반으로 1조5000억 원대 운영을 하고 있다. 예능・드라마 경쟁력을 위해 상당히 노력하고 있지만 힘에 부치는 측면도 있다”며 “드라마센터장 중심으로 PD들도 새로운 코드의 드라마들을 다양하게 고민하고 있다”고 했다. 

▲2023년 6월8일 서울 영등포구 KBS 아트홀에서 KBS 김의철 사장, 최선욱 전략기획실장, 오성일 수신료국장 등이 정부가 추진하는 수신료 분리징수 관련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KBS
▲2023년 6월8일 서울 영등포구 KBS 아트홀에서 KBS 김의철 사장, 최선욱 전략기획실장, 오성일 수신료국장 등이 정부가 추진하는 수신료 분리징수 관련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KBS

한 기자는 최근 여권 비판이 집중된 KBS 보도를 언급했다. 윤 대통령 일본 순방을 중계하던 앵커가 화면을 잘못 설명하고, 민주노총 집회에 대한 경찰 발표 취지를 잘못 전달한 뉴스9 앵커멘트 부분을 재녹화한 사례 등이다. 김 사장은 “여러 노력을 하고 있지만 시스템상으로 사람이 하다보니 약간의 실수가 있었고 설명책임 강화를 강조하고 있다. 실수에 대해 즉각 사과하고 조치 취하겠다는 말씀을 드린다. 일각에서 제기되는 ‘조작’ ‘은폐’는 전혀 아니다”라고 했다.

최 실장은 공정성과 수신료 관계에 대해 “국민 입장에선 공정성이 무엇인가에 많은 논란이 있을 수 있다. 다만 법원은 (수신료는) 수행하는 공적・공익 사업에 대한 대가, 즉 내용 관련해선 법률적으로 수신료와의 관계를 인정하지 않는 판결을 내린 바 있다”며 “공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건 아니다. 수신료라는 공적 자원이 들어가는 근간은 KBS가 수행해야 하는 사업과 관련돼있다는 것”이라고 했다. 

방만경영 지적 관련해 최 실장은 “정량적 데이터로 볼 때 과연 KBS가 얼마나 방만한가에 대해 잘 알리지 못한 부분이 있다고 내부적으로 판단하고 있다”고 했다. 김 사장은 입장문에서 “2019년 4726명이던 직원 수를 2022년 4151명으로 불과 3년 만에 12% 이상 감축했으며 인건비 비율은 그보다 높은 15% 이상 감축시켰다”고 밝혔다.

한편 최 실장은 해외 사례에 비춰 “이렇게 갑작스럽게 단 한 번의 온라인 토론을 갖고 (수신료 제도를) 바꾸는 경우는 없던 것 같다”고 강조했다. 예컨대 핀란드는 2007년 논의하기 시작한 수신료 제도를 2013년 1월 적용했고, 독일은 수신료 징수 기관을 바꾸는 데에만 10년이 걸렸다는 것이다. 특히 ‘영국이 수신료를 폐지하기로 했다’는 일각의 주장・보도를 두고 최 실장은 “(영국에선) 2022년부터 10개의 재원 모델을 두고 2027년까지 어떤 방안으로 갈 것인지에 대한 사회적 논의나 숙의 과정, 의회에서의 다양한 견해들이 있다”고 했다. 수신료 3%를 배분 받는 EBS와의 논의 여부에 대해선 “부정기적으로 유관부서 정책 책임자들끼리 자주 보고 있고 사안에 따라서 그와 관련된 논의들을 충분히 할 예정”이라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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