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후배가 그런다. '우리 회사가 이런 회사였나.' 나 역시 12∼13년 됐으나 KBS가 이런 회사인지 겪어보지 못했다. 상식이 통하지 않는다. 상식이 통하는 상황으로 돌려놓기 위해 우리가 해나가야 한다."(정일서 라디오 PD)

KBS의 일방적 <미디어포커스> <생방송 시사투나잇> 사실상 폐지, 이명박 대통령 라디오 연설 일방 편성 등 가을개편안에 대해 시사투나잇 제작진과 함께 미디어포커스 제작진이 합류해 벌이고 있는 폐지반대 투쟁에 라디오 PD들도 합류했다.

KBS 기자 PD들 100여명, 9·17보복인사 이후 두 달 만에 연대집회 "굴욕적 관제개편 거부"

6일 낮 12시 서울 여의도 KBS 본관 2층 로비에서 이들 PD 기자 150여 명이 모여 '시사투나잇 미디어포커스 라디오제작진 졸속개편 반대 연대시위'를 열어 "굴욕적인 관제개편을 거부한다"고 회사 쪽을 규탄했다.

   
  ▲ 6일 낮 12시 서울 여의도 KBS 본관 2층 로비에서 PD 기자 150여명이 모여 '시사투나잇 미디어포커스 라디오제작진 졸속개편 반대 연대시위'를 개최했다. 이치열 기자 truth710@  
 

이날 집회는 지난 9월17일 밤 이병순 사장이 '공영방송 사수를 위한 KBS 사원행동' 소속 사원들에 대해 표적 보복인사를 단행한 다음 날 사원행동에서 반대시위를 연 이후 거의 두 달 만에 기자와 PD가 연대해 이루어졌다.

김덕재 KBS PD협회장은 모두 연설에서 "각자 외로운 싸움을 해오다 드디어 미포 시투의 기자와 피디가 회사의 부당한 관제개편에 반대하는 한목소리를 내기 시작해 회사는 큰일 났다"며 "가장 두려워하고 없애고 싶어하는 프로그램의 PD와 기자가 힘을 합쳤기 때문"이라고 평가했다.

김 회장은 <미디어포커스> <시사투나잇> 폐지 및 대통령 라디오연설 편성, MC 교체 등 이번 개편에 대해 "(여러 정황으로 볼 때) 제작·보도·편성본부장이 아닌 이병순 사장이 미디어포커스와 시사투나잇 폐지를 분명하게 명령한 게 사실"이라며 "이병순 사장은 간부들 뒤에 숨어있을 수 없다. 스스로 나와 직접 해명하고 이 문제도 원칙대로 다시 처리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김 회장은 "오늘부터 우리의 새로운 투쟁이 시작될 것"이라고 밝혔다.

   
  ▲ 김덕재 PD협회장. 이치열 기자 truth710@  
 
   
  ▲ 6일 낮 12시 서울 여의도 KBS 본관 2층 로비에서 PD 기자 150여명이 모여 '시사투나잇 미디어포커스 라디오제작진 졸속개편 반대 연대시위'를 개최했다. 이치열 기자 truth710@  
 

김덕재 KBS PD협회장 "드디어 기자 PD 힘 합쳐…새로운 투쟁 시작"

최경영 KBS 스포츠중계팀 기자는 "현재 사측에서 시사투나잇이나 미디어포커스에 대해 생각하는 것은 단순하다. (정부를) 비판한다고 해서 객관적이지 않고, 공정하지 않다는 것"이라며 "비판과 공정성 객관성은 같이 가는 것으로 각각 층위가 다른 이야기"라고 꼬집었다.

김경래 <미디어포커스> 기자는 "왜 이름 바꾸려하느냐고 물어보니 회사에서 내려오는 말은 '논란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럼 논란이 있을 때마다 뚜렷한 근거도 없이 바깥 시선에 다 따라줘야 하는 건가"라며 프로그램 타이틀(명칭)을 바꾸려는 시도에 이렇게 평가했다.

"새로 바꾸려는 이름은 <미디어비평>인데 이는 이미 MBC에서 5년 전에 용도 폐기한 것이다. 회사측은 '미디어비평'이 있었다는 사실 자체도 몰랐을 것이다. 그걸 알았다면 그런 제목을 내어놓지 않았을 것이다. 매체비평 프로그램이 뭔지 모르는 사람들이다. 시사투나잇 대신 대체하려는 <시사터치 오늘>이라는 이름은 더 상태가 안좋은 이름이다. 천박하다."

이에 <생방송 시사투나잇>의 최필곤 PD는 바로 "그런 천박한 이름은 과거에 있었다"며 "(10년 전에 종영된 바 있는) 시사터치 코미디파일"이라고 화답했다.

"미디어비평? 5년 전 MBC 용도폐기한 이름, 시사터치오늘? 10년 전 시사터치코미디파일 재탕?"

최 PD는 "폐지가 확정된 이후 일주일 동안 많이 분노와 고민 속에 피켓팅을 해왔다. 우리를 위로하려 했는지는 모르나 노근리평화상 언론부분상과 국가인권위원회의 대한민국 인권상 언론부문상을 수여했다"며 "이제 미디어포커스 제작진이 모이고, 라디오 PD들이 모이고 기자와 PD들이 더 모이니 목소리가 더 커지고 자신감도 더 붙는 것같다"고 말했다.

이명박 대통령의 라디오 주례연설 일방 편성에 대해 반대투쟁을 벌여온 정일서 라디오 PD는 "대통령 연설을 두 번째 방송할 때 우리는 '청와대가 발표한 날짜인 11월3일을 받아들일 수 없'고, '방송형식 편성권 제작자율성 보장을 전제로 일방연설이 아닌 국민 질문이 있어야 가능하다'는 원칙을 제시했으나 우리의 의견을 수렴하겠다고 약속했던 회사가 그 약속을 헌신짝처럼 버렸다. 이를 받아들일 수 없고, 이후 어떻게든 고쳐나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 PD는 이번 개편 가운데 라디오 분야와 관련해 "라디오는 DJ와 MC의 역할이 중요하다"며 "윤도현씨, 정관용씨 하차의 경우 우리는 정치적 목적이 있다고밖에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9년차 이하 기자들의 방송독립 선언에 동참했던 정창화 기자는 지원연설에서 "지난 8월부터 진행된 KBS 내부의 상황을 보면서 시청자들이 앞으로 '유인촌의 러브레터' '강만수의 경제야 놀자'를 봐야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며 "이렇게 막갈 것이라면 <단박인터뷰>에서 하듯 매일밤 이병순 사장 연결해 개그콘서트의 '안상태 기자' 버전으로 '난 미디어포커스가 싫고…조중동이 맞다고 보고…그냥 너희들이 싫고'라는 방송을 했으면 한다"고 풍자했다.

"KBS 원래 이런 회사였나"에 자괴감…"유인촌의 러브레터 나오는 것 아닌가"

정 기자는 "선배와 만나 'KBS 사태가 얼마나 길어질지, 과연 우리는 이겨낼 수 있는지'를 묻자 그 선배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 많은 분노 쌓일 것"이라며 "동지들을 믿고 앞으로 나아가라'고 했다"고 전했다. 그는 이어 "국민과 시청자에게 KBS가 정말 조롱거리가 되는 상황이 벌어지지 않도록 시사투나잇 미디어포커스 제작진, 라디오 PD들과 함께 어깨를 걸고 함께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번 개편에서 폐지대상이 된 <아시아투데이>의 김정중 PD는 "시사투나잇의 어린 후배들을 선배들이 이렇게 다 보내놓고 시련을 주는 게 정말 밉다. 이 상황 안타깝고 슬프다"고 개탄하기도 했다.

이날 모인 100여 명의 PD와 기자들은 김영인 <미디어포커스> 기자, 김명숙 <시사투나잇> PD의 사회로 "권력외압 굴복하는 KBS 부끄럽다" "창피해서 일 못한다 책임자는 사퇴하라" "제작진의 자존심도 정권에게 팔아먹냐" "이유없는 창씨개평 미포시투 폐지반대" "미포시투 폐지하고 명박연설 내보내나" "권력외압 굴복하는 KBS 부끄럽다"는 구호를 외쳤다. 이들은 집회를 마친 뒤 KBS 노동조합으로 몰려가 개편안에 대해 회사와의 공정방송위원회를 왜 열지 않느냐며 항의하며, 조속한 공방위 개최를 촉구했다.

   
  ▲ 집회를 마친 참가자들은 신관에 있는 KBS노동조합 사무실로 이동해 회사의 일방적인 개편안에 대한 노조의 입장과 공방위 구성의 진행상황등을 물었으나 조합실무자들이 자리에 없어 추후 공지해 줄 것을 요구하고 각자의 일자리로 돌아갔다. 이치열 기자 truth710@  
 

"최근 일련의 사태 굴욕감 넘어 비애감"

두 프로그램의 제작진과 라디오 PD 등 기자 PD 일동은 이날 집회에서 발표한 성명을 통해 "대통령 주례 연설을 필두로 일련의 개편 과정에서 청와대와 정권의 뜻을 받드는 KBS이고자 하는 이병순 사장과 간부들의 노력에 일선 기자, PD들은 굴욕감을 넘어 비애마저 느낀다"며 "국민을 위한 비판과 감시기능이 생명인 공영방송 제작진으로서 우리는 현재 KBS 편성과 개편이 정권의 방송, 관영방송으로 가는 위험수위에 이르렀다"고 밝혔다.

이들은 이에 따라 △시대착오적 청와대 기획작품인 대통령 정례연설의 즉각 중단과 편성책임자 징계 △매체비평의 새 역사를 쓴 미디어포커스 폐지 결정 철회 및 타이틀 원위치 △시사터치 오늘 거부, 시사투나잇 폐지결정 철회 △이병순 사장은 일련의 사태에 책임지고 사과할 것을 요구했다.

   
  ▲ 연대집회에 참가한 KBS PD, 기자들이 맞춰입은 검은 상의의 가슴에는 'I love KBS', 등에는 '미디어포커스, 시사투나잇, KBS radio' must go on! 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이치열 기자 truth710@  
 

다음은 '굴욕적 관제개편을 거부하는 기자 PD 일동'으로 발표한 성명 전문이다.

굴욕적인 관제개편을 거부한다.

한심하고 굴욕적인 상황이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관제 사장과 ‘한자리’하려고 절치부심해 온 간부들이 합심해 KBS를 관영방송으로 만들려는 시도는 노골적이다. 대통령 주례연설을 필두로 일련의 개편과정에서 청와대와 정권의 뜻을 받드는 KBS이고자 하는 이병순 사장과 간부들의 노력에 일선 기자, 피디들은 굴욕감을 넘어서 비애마저 느낀다.

미디어포커스와 시사투나잇은 KBS가 공영방송으로서 새로운 영역을 개척해 경쟁력을 갖춘 대표적인 프로그램으로 꼽힌다. 그만큼 제목이 갖는 상징성과 경쟁력이 큰 프로그램이다. 이런 프로그램에 제목은 얼마든지 바뀔 수 있는 것 아니냐는 사측의 논리는 정권이, 보수언론이 불편해 하는 프로그램을 그냥 둘 수 없다는 말을 차마 못해 하는 궤변일 뿐이다.
대통령 정례연설은 말할 것도 없다. 대통령의 생각과 발언은 이미 충분히 뉴스와 프로그램으로 나가고 있다. 독점 인터뷰도 아닌 정례연설에서 뉴스가치 운운은 공영방송의 채널과 편성을 통째 청와대에 갖다 바치지 못하는 안달을 숨기기 위한 뻔뻔함,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우리 KBS 채널과 프로그램의 주인은 청와대와 정권이 아닌 수신료를 내는 국민과 시청자다. 국민을 위한 비판과 감시기능이 생명인 공영방송 제작진으로서 우리는 현재 KBS 편성과 개편이 정권의 방송, 관영방송으로 가는 위험수위에 이르렀다고 판단하며 다음과 같이 결의한다.

하나. 대통령의 정례연설은 애초 시대착오적인 청와대 기획 작품이다. 공영방송의 채널과 편성을 통째로 정권에 갖다 바친 정례연설을 즉각 중단하고 편성책임자를 징계하라

하나. 미디어 포커스는 보수, 상업언론이 과점한 한국의 미디어환경에서 미디어 감시기능을 독보적으로 수행해 온 KBS만이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매체비평의 새로운 역사를 쓴 미디어포커스 폐지결정을 철회하고 타이틀을 원위치시키라.

하나. ‘시사투나잇’은 ‘시사투나잇’일 때만 의미를 가진다. PD들은 ‘시사터치 오늘’을 거부한다. 권력과 자본에 눈치보고 굴복하며 만들어진 프로그램이 성공한 역사는 없다. 시사투나잇 폐지결정을 철회하라.

하나. 이병순 사장은 더 이상 임원들 뒤에 숨어 ‘본부장들에게 일임했으니 모른다’로 일관하는 무책임함을 집어치우라. 위와 같은 결정이 본부장들만의 결정이 아님은 누구나 다 알고 있다. 이병순 사장은 일련의 사태에 대해 책임지고 사과하고 KBS를 정권의 방송으로 만들려는 어떠한 시도도 중단하라.

우리는 사실을 바탕으로 진실을 추구하는 기자와 피디들이다. 그런 우리에게 사실도 진실도 아닌 비상식의 강요가 제작현장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우리는 더 이상 이러한 비상식을 인내할 수 없으며 정치적인 졸속개편을 거부한다. KBS를 관영방송으로 되돌리는 사장과 간부들은 반드시 기록해 역사의 책임을 물을 것이다.

2008년 11월 6일 굴욕적 관제개편을 거부하는 KBS 기자, 피디 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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