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빙이미지크리에이터로 제작한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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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최다 법정제재 추세를 보이고 있는 선거방송심의위원회(선방심의위)가 총선과 관련성이 떨어지는 방송 심의를 반복하고 있다. 민원인이 선거와 관련됐다고 주장하면 모두 선방심의위 심의가 가능한 구조다. 선방심의위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보다 빠른 심의가 가능해 ‘패스트트랙’으로 정부 비판 보도를 제재하려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나온다.

지난 21일 선방심의위는 cpbc가톨릭평화방송 ‘김혜영의 뉴스공감’에 법정제재 ‘주의’를 의결했는데, 김준일 시사평론가가 이태원 참사에 정치적으로 책임 지고 사퇴한 사람이 없다는 취지로 발언한 것이 문제가 됐다. 방송에 총선과 관련한 논평은 없었다.

▲ 지난 14일 오후 서울 목동 방송회관 앞애서 10·29이태원참사 유가족협의회, 10·29이태원참사 시민대책회의, 언론장악저지공동행동이 기자회견을 열고 이태원 참사 관련 방송에 심의를 중단할 것을 촉구했다. 사진=참여연대 제공
▲ 지난 14일 오후 서울 목동 방송회관 앞애서 10·29이태원참사 유가족협의회, 10·29이태원참사 시민대책회의, 언론장악저지공동행동이 기자회견을 열고 이태원 참사 관련 방송에 심의를 중단할 것을 촉구했다. 사진=참여연대 제공

‘입틀막’ 논란을 부른 SBS 행정지도도 마찬가지다. 선방심의위는 지난달 22일 ‘김건희 특검’에 ‘여사’를 안 붙였다는 등의 이유로 SBS ‘편상욱의 뉴스브리핑’(2024년 1월15일)에 행정지도 ‘권고’를 의결했다. 민원을 보면 출연자가 영부인을 ‘김건희’라고 호칭하고, ‘윤석열 정부의 폭정’이라고 언급한 것이 공정성을 위반했다는 주장뿐으로 선거 관련 문제는 없었다.

선방심의위는 ‘김혜영의 뉴스공감’에 출연한 변상욱 전 CBS 기자가 ‘대통령 거부권’이 아닌 ‘재의요구권’이라고 표현한 보도를 비판적으로 다뤘다는 이유로 지난 21일 법정제재를 전제로 한 의견진술을 결정했다. 

이외에도 가족, 지인 등을 동원했다는 류희림 방심위원장 ‘민원사주’ 의혹 관련 보도를 심의하거나, 윤석열 대통령의 ‘바이든-날리면’ 논란에 대해 심의위원들이 평가하기도 한다.

지난 14일 ‘바이든-날리면’ 관련 방심위 제재에 MBC가 자사에 유리한 입장만을 전달했다는 민원에 대해 손형기 위원(TV조선 추천)은 “MBC가 자사 보도를 통해 일방적으로 변명하고 방심위를 비난한다. 청부심의 의혹은 현재 수사 중인데도 아무 소식이 없지 않나”라며 “MBC 일부 인사들이 국민들을 위험하게 선동하고 있다. 법정제재 가야 한다”고 말했다.

‘신장식의 뉴스하이킥’에 진행자와 출연자가 김건희 여사의 범죄 혐의가 중한 것처럼 발언해 편향됐다는 민원이 제기되자 최철호 위원(국민의힘 추천)은 지난달 15일 “어떤 성직자가 와서 가방을 하나 두고 아버지 이야기를 한다. 거절하기 힘든 성질이 있다”며 “이건 여성에 대한 테러고 모든 성직자에 대한 모욕”이라고 말했다.

심의를 받는 방송사에선 “이해가 안 된다”는 반응이 나온다. ‘민원사주’ 의혹 관련 방심위원장에 대한 진중권 교수 비판을 심의위원들이 심의하자 CBS 제작진은 “진중권 교수의 표현이 과했다는 건 저희가 인정하고 그런 표현 삼가달라는 뜻도 제작진이 전한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도 “사실 방심위에 대해 얘기하는 것이 지금 왜 선거방송에 저촉되는지 저희로선 이해하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 22대 총선 선방심의위원들. 사진=방심위 제공
▲ 22대 총선 선방심의위원들. 사진=방심위 제공

미디어오늘 취재에 따르면 백선기 위원장은 22대 선방심의위를 시작하면서 별도 판단 없이 들어온 모든 안건을 최대한 상정하라고 지시했다. 기존에는 사무처가 ‘해당없음’ 안건을 판단해 각하하기도 했지만 민원 취지를 최대한 반영하기 위해 선거 관련성을 위원들 판단에 맡기겠다는 것이다. 현재 선방심의위는 민원인이 선거와 관련됐다고 주장한 안건은 모두 회의에 올라오고 심의위원들이 비판하는 구조다. 선방심의위와 방심위는 중복 심의를 할 수 없다.

20대 대통령선거 선방심의위원으로 참여했던 김언경 미디어인권연구소 뭉클 소장은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이전 기수에선 구분이 있었다. 선거와 무관하다고 판단되면 사무처가 방심위로 넘기기도 했다”며 “선방심의위는 엄격하게 선거와 관련된 심의를 해야 한다. 선거와 무관한 내용에 자꾸 비판하고 심의하는 건 월권이다. 정치심의로 보일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 선방심의위에 접수된 민원은 다수가 보수성향 시민단체 공정언론국민연대(공언련)가 제기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공언련 전·현직 임원 2인이 위원으로 참여하고 있어 ‘이해충돌’ 논란도 벌어진 가운데 민원 취지를 반영한다는 이유로 선거와 관련성이 모호한 심의가 반복되면서 ‘정치심의’ 논란이 가중되고 있다.

김언경 소장은 “김건희 뒤에 ‘여사’를 안 붙인 게 어떻게 선거와 관련이 되나. 이런 거 (심의)할 수 없다고 방심위로 넘기는 게 선방심의위 역할”이라며 “정치적 의도까지 있을 수 있다고 본다. 여당 입장에선 선방심의위 구성이 더 맘에 들 수도 있다. 방심위보다 더 신속한 제재도 이뤄진다. 또 선거방송 규정을 위반했다고 하면 더 중대해 보이지 않나”라고 말했다.

▲사진=Pixabay.
▲사진=Pixabay.

방심위는 방송심의소위원회(방송소위)에서 법정제재를 의결해도 전체회의에서 다시 한 번 의결을 확정해야 한다. 반면 선방심의위는 확정절차(전체회의)가 따로 없어 법정제재를 의결하면 바로 징계가 확정된다. 기본적으로 민원이 접수되고 심의에 나서는 시간 자체가 선방심의위가 훨씬 빠르다. 별도 신속심의 절차를 거치지 않으면 방심위 방송소위는 대략 심의 절차가 1년 정도 걸린다.

이태원 참사 관련 발언으로 선방심의위 지적을 받은 김준일 평론가는 통화에서 “대체 선방심의위는 어디까지 다룰 수 있는 건가. 민원인이 자기가 불편하다고 주장하면 모두 선거방송 기준으로 다룰 수 있는 건가”라며 “굉장히 자의적이고 문제가 많다. 이런 식이면 모든 방송을 다 다룰 수 있다. 제도 자체가 대폭 개선돼야 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미디어오늘은 21일 백선기 위원장에 △선거와 관련성이 모호한 심의가 반복된다는 지적에 대한 입장과 선거와 관련됐다고 주장하면 다 심의로 이뤄지는 것이 자의적으로 비칠 수 있지 않겠냐고 물었지만 답을 들을 수 없었다. 방심위에도 같은 질의를 했지만 ”선방심의위는 방심위와 별도로 독립된 기구“라며 ”방심위 사무처가 관련 답변을 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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