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인건비 1101억 원 삭감안이 포함된 KBS 예산안이 확정됐다.

KBS 이사회는 지난달 31일 서울 영등포구 KBS 본관에서 이사회를 열고 2024년도 KBS 종합예산안을 의결했다. KBS는 올해 1431억 원의 적자 예산을 편성했다. 수입 1조2450억 원, 비용 1조3881억 원 규모다.

수신료 수입의 경우 2월부터 분리 고지가 시행된다는 전제 하에 전년(7020억 원)보다 2613억 원이 줄어든 4407억 원으로 추산됐다. 다만 2월 분리고지 계획은 법적 쟁점 등을 이유로 다시 유예된 상태다.

감액 규모가 큰 예산 항목 가운데 인건비가 두드러진다. KBS는 지난해 4953억 원이었던 인건비 예산을 올해 3852억 원으로 1101억 원 줄인다는 계획이다.

KBS 경영진은 인건비를 줄이는 방안으로 신규 채용 중단에 따른 자연 감소, 연월차 수당 소진, 업무추진비 삭감, 명예퇴직 등에 더해 임금 협상을 통한 인건비 삭감(10%가량) 등을 제시했다.

▲서울 영등포구 KBS 본사 사옥. 사진=KBS
▲서울 영등포구 KBS 본사 사옥. 사진=KBS

그러나 노사간 합의가 불투명한 인건비 삭감안은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야권 이사들 중심으로 나왔다. 김찬태 이사는 “유례없는 엄청난 규모의 적자를 방어하기 위해 뼈를 깎는 자구노력이 보이지 않는다. 선택과 집중은 말 뿐이지 구체적으로 사업이나 예산안에 드러난 걸 찾아보기 힘들다. 특히 과감한 사업 구조적 노력을 보기 힘들다”며 “(인건비 예산은) 대부분 정규직 임금 삭감이 전제되어야 하는 부분이기에 올해 노사 관계에 있어서도 태풍의 핵이 될 수 있는 중요한 문제”라고 했다.

류일형 이사는 지난달 박 사장이 국장 임명동의제를 무시한 인사를 낸 것을 두고 “제일 중요한 사내 신뢰가 허물어지는 마당에 얼마 깎고 올리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라면서 “지금이라도 노조나 해당 국원들과 대화를 해서 본래 취지에 걸맞는, 서로 살릴 수 있는 대화를 더 하실 생각은 없나”라고 물었다. 이에 여권 이사들은 예산안 관련 질의만 하기로 하지 않았느냐며 류 이사 질의에 대해 항의했다.

인건비 예산에 포함되지 않는 비정규직 인력 감축 계획도 논란이 예상된다. KBS 사측은 본부별 요원 수수료 항목으로 분류되는 한시인력 예산을 지난해 263억 원에서 74억 원가량 줄인다는 방침이다.

야권 조숙현 이사는 “(각 본부별) 한시인력 예산 감축이 어떻게 되는지 자료를 요청했고 그에 따라 한 장 짜리 자료를 받았는데 통으로 된 내용 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조 이사는 이날 영상 제작 관련한 보조 인력을 예로 들며 “보조 인력 없이 촬영하다가 촬영기사가 떨어져서 사고를 당했다는 것도 전달을 받았다”면서 “불필요한 인력인지 아닌지에 대한 검토와 확인이 언제까지 되느냐”며 구체적 로드맵을 재차 물었다.

조 이사는 나아가 “(수신료 분리징수 등으로) 공영방송 정체성 관련된 공적 재원이 줄어드는 부분에 대한 대안을 논의하자는 계획도 없이 분담안을 요구하는 방식은 제대로 된 경영 목표라고 볼 수 없다”며 “인건비 삭감 1000억 원을 전제로 짠 것에 직원들에게 어떻게 협조를 구하고 통합을 이룰 건지” 등 지적을 했다.

여권 이석래 이사도 이날  “KBS가 소외된 파견 근로자들에 대해 너무 가혹하다는 평가가 나오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박 사장은 이날 “재정 상태가 안 좋으니 임시직 근로자를 희생시키자는 취지는 아니다”라면서 “그간 임시직이나 보조인력 운영 실태가 방만했다는 부분은 현장에 있는 사람들이나 여러 방면에서 지적된 사항”이라고 했다.

▲박민 KBS 사장. 사진=KBS
▲박민 KBS 사장. 사진=KBS

이런 가운데 일부 여권 이사들은 KBS 경영진에 대한 내부 평가를 폄훼하면서 경영진을 격려하기도 했다. 이사회 전날인 지난달 30일 KBS 교섭대표노조인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는 조합원 1030명이 참여한 설문조사(1월 22~26일) 결과 응답자 88%가 박 사장 취임 후 KBS 상황이 나빠졌다는 평가를 했다고 밝혔다.

이동욱 이사는 이를 두고 “너무 신경쓰지 마시기 바란다. 상당히 기분 나쁜 것”이라면서 “흔들리지 마시고 집행부 여러분도 마음을 다잡길 바란다”고 했다. 이 이사는 “압박도 심하겠지만 사장님과 여러 집행부 간부들은 이사들과 호흡하면서, 힘들 때 저희가 어떤 큰 도움이 될지 모르겠지만 많은 응원을 해드릴 테니 함께 그 고민을 나눠 가면 좋겠다”고 했다.

서기석 이사장도 이날 “집행부가 출범한 지 2개월 만에 이런 예산을 제출하는데 얼마나 스스로 고통을 감내했는지 느낄 수 있었다. 집행부는 당연히 직원들에게 월급 올려주고 제작비 올려주고 싶었을 것”이라면서 “집행부가 잘 설득해서 직원들 사기가 떨어지지 않도록 해주시라”고 했다.

KBS의 대대적인 인건비 감축 계획은 지난해 12월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과방위) 전체회의에서 여야를 막론한 국회의원들 우려를 샀다. 장제원 과방위원장(국민의힘)은 당시 박 사장에게 “굉장히 충격적”이라며 “아무리 수신료가 없더라도 1000억의 인건비가 감소될 수 있다는 게 가능한 얘기인가”라고 물은 바 있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