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통심의위)가 이른바 ‘가짜뉴스’ 대응을 위해 세운 ‘가짜뉴스 신속심의센터’(이하 센터)에 접수된 민원 60% 이상이 SBS 게임업계 여성혐오, MBC 당근칼 보도 등 ‘안티 페미니즘’ 성격의 민원인 것으로 나타났다. 센터 설립 근거가 없다는 비판이 계속되는 가운데 센터에 접수된 다수 민원이 기존팀으로 이첩될 것으로 보여 센터의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이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가짜뉴스를 이유로 방통심의위가 제재를 내리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에서 센터 직원들은 ‘월권적 업무 행태’라며 전보를 요청했다 사측으로부터 거절당한 상태다.

▲ 가짜뉴스 신속심의센터 이슈별 민원 내역. 자료=이정문 의원실
▲ 가짜뉴스 신속심의센터 이슈별 민원 내역. 자료=이정문 의원실
▲ 가짜뉴스 신속심의센터 방송사별 민원 내역. 자료=이정문 의원실
▲ 가짜뉴스 신속심의센터 방송사별 민원 내역. 자료=이정문 의원실

이정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서 받은 ‘가짜뉴스 신속심의센터 접수 및 처리 현황’을 미디어오늘이 분석한 결과 지난 9월25일 개소 이후 지난 22일까지 방송 영역 607개 민원 중 SBS <“괴롭힘은 놀이” 이직해도 여전…혐오에 갇힌 게임업계>(10월17일) 보도가 222건, MBC <당근칼에 빠진 초등학생들‥장난감 칼에 부상 늘어>(11월 21일, 22일) 보도가 141건으로 가장 많았다.

커뮤니티발 ‘안티 페미니즘’ 이슈가 방송심의 민원 중 약 60%를 차지한 것이다. 자료가 MBC 당근칼 보도 당일까지 계산돼 현재 시점으로는 관련 민원이 더 많을 것으로 보인다. 안티 페미니즘 이슈 다음으로는 MBC <PD수첩>, SBS <그것이 알고 싶다> 등의 JMS(기독교복음선교회) 고발 방송과 한동훈 장관의 국가배상법 법안발의 여부 주장이 담긴 MBC라디오 <신장식의 뉴스하이킥>, 지드래곤 마약 보도 순으로 나타났다. 종교나 팬층이 두터운 인물 관련 민원이 압도적이었다.

문제가 된 SBS와 MBC 보도를 ‘가짜뉴스’로 심의할 수 있을까. SBS <“괴롭힘은 놀이” 이직해도 여전…혐오에 갇힌 게임업계> 보도는 게임업계 종사자들을 상대로 한 인터넷 커뮤니티 이용자들의 비방과 괴롭힘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는 내용을 다뤘다. SBS는 SNS 등에서 여권 옹호 발언을 했다는 이유로 온라인상에서 집단 괴롭힘을 당한 A씨를 소개하며 “사이버불링 피해자의 90%는 여성이었고, 10명 중 9명은 회사가 방치하거나 심지어 불이익을 줬다고 답했다”고 했다.

▲ SBS 괴롭힘은 놀이 이직해도 여전…혐오에 갇힌 게임업계 보도 갈무리.
▲ SBS 괴롭힘은 놀이 이직해도 여전…혐오에 갇힌 게임업계 보도 갈무리.
▲ 왜곡 자막 논란을 부른 MBC 뉴스데스크 21일 자 리포트 갈무리.
▲ 왜곡 자막 논란을 부른 MBC 뉴스데스크 21일 자 리포트 갈무리.

보도 이후 남초 커뮤니티에선 “소비자의 집단행동을 ‘스포츠’, ‘놀이문화’로 폄하했다”, “남성혐오 행위가 기업 매출과 직결되는 민감한 문제임을 기사에서 언급하지 않았다” 등의 날 선 반응이 나왔다. SBS 유튜브엔 “애초에 본인들이 뿌린 씨앗 아닌가? 그렇게 표현의 자유라며 혐오를 일삼았는데 그 정도 각오도 안한 거냐”, “SBS도 페미한테 먹혔다. 어떻게 이런 보도를 내보내냐” 등의 댓글이 이어졌다.

MBC <당근칼에 빠진 초등학생들‥장난감 칼에 부상 늘어> 보도는 사실관계 오류를 인정했다. 당근칼의 위험성을 소개하며 초등학생을 인터뷰할 때 ‘여자애들도 해요’라는 부분의 자막을 ‘여자애들 패요’로 잘못 내보냈다. MBC가 공식 사과하자 커뮤니티상에선 “기자의 페미니즘 사상 때문”이라는 반응이 나왔다.

‘가짜뉴스’(허위조작정보)라고 규정하기 위해선 사실관계 오류를 넘어 언론의 ‘의도’를 확인해야 한다. 허위 보도가 ‘조작 의도’에서 나왔다는 것을 입증해야 하는 것이다. 수사기관이 아닌 방통심의위가 판단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한 지점이다. 대통령실이 ‘정치공작’이라고 비판한 뉴스타파 ‘김만배·신학림’ 녹취록 보도조차 방통심의위가 제재하지 못하고 서울시로 법률 위반 검토를 요청한 데 이어 서울시 또한 당국의 수사 결과를 지켜보겠다는 입장을 냈다. 윤성옥 위원은 지난 27일 전체회의에서 “명백하게 허위 조작이라 하려면 법원 판례라든지 언론중재위원회 결정을 통해서만 우리가 알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우리가 심의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고 지적했다.

결국 대다수 민원이 방통심의위 기존 업무인 방송·통신심의로 넘어갈 가능성이 크다. 그렇게 되면 무엇을 위해 센터를 만들었냐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김유진 위원은 28일 통화에서 “긴급심의 대상이 아니면 그냥 방송심의국과 통신심의국으로 이첩하겠다는 것”이라며 “일반적인 절차에 따라 하면 될 것을 호들갑으로 센터를 만든 상황이다. 결과적으로 지금 민원인들이 자의적으로 가짜뉴스라고 생각하면 다 넣고 있는 것 아닌가. 센터로 들어온 페미니즘 관련 민원에 문제 없다고 해보자. 그럼 남성들이 또 들고 일어날 것이다. 기준이 모호한 상황에서 젠더갈등을 더 증폭시키는 엉뚱한 결과를 초래했다”고 지적했다.

가짜뉴스 신속심의센터의 기준이 모호하다는 것은 신고 절차를 봐도 알 수 있다. 방통심의위는 가짜뉴스를 신고할 수 있는 근거로 방송심의에 관한 규정 9조(공정성)·14조(객관성)와 정보통신에 관한 심의규정 8조(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 위반 등)을 들고 있다. 이에 따라 같은 방송에 대한 민원이어도 ‘공정성 위반’, ‘거짓 정보’, ‘악의적 조작 보도’, ‘처벌 요구’ 등 내용이 제각기 다르다.

▲ 방송통신심의위원회 가짜뉴스 신속심의센터 참고사항 갈무리.
▲ 방송통신심의위원회 가짜뉴스 신속심의센터 참고사항 갈무리.

센터 참고사항에선 가짜뉴스 신고도 개인·단체 등 당사자나 당사자에게 위임장을 받은 대리인만이 가능하다고 나와 있다. 페미니즘 이슈처럼 불특정 다수를 향한 보도는 어떻게 처리될지 불분명하다. 당사자성이 센터에서 어떻게 적용되는지 묻자 방통심의위 관계자는 미디어오늘에 “방송심의도 공공성 객관성 위반 민원 같은 경우 누구나 심의 신청이 가능하다. 통신심의 역시 기존 명예훼손 이외에는 누구든지 신청이 가능하다. 그렇게 보시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기존 심의와 차이가 불명확한 것이다.

센터 절차에 대한 문제제기는 방통심의위 내부에서도 나왔다. 류희림 위원장이 지난 27일 전체회의에서 대리인 위임장을 통해서도 가짜뉴스 신고를 할 수 있다고 말하자 윤성옥 위원은 “문제가 있어 보인다. 의도성이 있을 위험이 있다. 당사자 말고 대리인까지 인정해준다고 하면 제3자가 누구든 신청할 수 있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윤성옥 위원은 “방송은 지상파 방송팀, 통신은 정보문화보호팀, 사회혼란정보 또는 권리침해정보팀에서 이미 처리하고 있는데 이게 지금 가짜뉴스센터랑 기능이 중복돼 있다. 만약 제가 민원을 접수할 때 윤석열 대통령이든 김건희 여사든 한동훈 장관이든 (이들이) 문제 제기할 때 어느 팀으로 보내는 게 맞나”라고 묻자 류희림 위원장이 “당사자가 판단할 문제”라고 말했고 윤 위원은 “그거 봐라. 당사자 판단을 따라 우리가 결정하나. 센터로 들어오면 신속 심의하고 방송심의로 들어오면 늦게 처리할 건가”라고 지적했다.

▲ 가짜뉴스 신속심의센터 통신 영역 민원 내역. 자료=이정문 의원실
▲ 가짜뉴스 신속심의센터 통신 영역 민원 내역. 자료=이정문 의원실

방송뿐 아니라 통신 영역에도 495개의 민원이 들어왔다. 이 중 유튜브가 314개로 가장 많고 기타가 133개다. 인터넷신문은 48개로 가장 민원이 적었다. 유튜브 민원엔 한동훈 법무부 장관과 윤석열 대통령, 김건희 여사 등과 관련 내용이 다수 포함된 것으로 확인됐다.

센터 운영에 대한 방통심의위 직원들의 반발도 계속되고 있다. 방통심의위는 방통위와 가짜뉴스 대응 관련 협의를 거쳐 지난 9월 센터를 개설했는데 그때부터 방통심의위에 이 같은 기구 설치 전례가 없고, 가짜뉴스 대응을 이유로 언론을 심의를 하는 것이 ‘법적 근거가 부실하다’는 지적이 계속됐다. 센터 설립을 전후해 방통심의위 팀장 11명이 반발하는 입장을 냈고 센터장은 발령 직후 병가를 냈다. 센터 소속 직원들이 업무 문제를 지적하며 타 부서 발령을 요청하자 평직원 200명 중 150명 일동이 지난 14일 연대 성명을 내기도 했다.

▲ 방통심의위 평직원 150명 연대서명서.
▲ 방통심의위 평직원 150명 연대서명서.

지난 22일 직원들이 제출한 전보요청 고충사항을 놓고 노사가 참여하는 인사위원회를 열었지만 사측은 “센터 파견 중지와 대체 인사발령 금지 등의 내용은 인사위원회 심의 결정 권한을 넘어선 것”이라며 사실상 거부 입장을 밝혔다. 노측 위원들은 인사위 이후 입장문을 내고 “센터의 문제는 법·제도적 검토 및 내·외부 의견 수렴 등의 사전 준비 없이 졸속으로 센터를 운영․설치하여 발생한 구조적 문제이자, 일방적 의사결정과정의 병폐”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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