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은 아직 작다.’ 

내가 선정한 2023년 올해의 문장이다. 박수영 국민이힘 의원이 지난달 31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의 제목이다. 이 일곱 글자에 나는 제대로 한 방 먹었다. 지역신문에 일하면서 수도권 일극 체제를 타파하자는 구호는 수없이 봤다. 그런데 수도권 일극 체제를 더욱 공고히 하자는 주장은 처음 봤다. 웬 말인가 싶었다.

서울쪽 일간지를 살펴보니,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에서 패배한 국민의힘이 ‘수도권 위기론’에 휩싸이자 반전카드로 ‘김포 서울 편입’ 의제를 꺼내든 것이라고 해석했다. 명분도 있단다. 국제도시로서 서울의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고(그럼 지방도시는 어쩌나?) 역설하는 이들이 있고, 생활권역과 행정권역을 일치시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지역신문 기자에게 흥미로운 이른바 ‘메가 서울’ 찬성론자들은 따로 있다. “이왕 이렇게 된 김에”라고 말하는 사람들이다.

▲ 김포시의 서울 편입안이 이슈로 떠오르고 있는 가운데 11월5일 오전 경기도 김포시 한 거리에 서울 편입을 환영하는 현수막이 걸려있다. ⓒ 연합뉴스
▲ 김포시의 서울 편입안이 이슈로 떠오르고 있는 가운데 11월5일 오전 경기도 김포시 한 거리에 서울 편입을 환영하는 현수막이 걸려있다. ⓒ 연합뉴스

2일 매일경제 기사 <“메가 서울? 오히려 좋아” 지방에서 더 환영하는 이유 있다는데> 들머리 인용문을 보자.

“메가서울은 전국에 초광역경제권을 촉발하는 기폭제가 될 것이다. 수도권이 커지는 건 ‘제로섬’이 아니고, 지방의 역량을 키울 수 있는 기회다.”

매일경제가 지난 7일 주최한 좌담회에서 우동기 지방시대위원회 위원장이 한 말이다. 이날 또 다른 참석자인 이철우 경북도지사는 “메가시티 서울은 런던이나 뉴욕 같은 도시와 경쟁하고, 지방에도 메가시티를 만들면 된다”며 “부산·울산·경남(부울경) 등 인구 500만 명 이상을 모아 도시 자체적으로 힘을 갖고 성장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소멸위기에 빠진 지방 처지에서 권역별 메가시티 구축은 생존전략이다. 그런데 지방이 죽고 사는 문제마저 수도권 의제를 기폭제 삼아야 겨우 관심을 받을 수 있다는 점과, 그 기폭제가 수도권을 더 비대하게 만들자는 제안이라니 서글픈 일이다. 서울 중심으로 흘러가는 뉴스에 일단 올라타고 봐야 한다니! 

물론 우 위원장과 이 지사의 선의는 공감한다. 정부는 지난 1일 발표한 초광역권발전계획을 발표했다. 서울을 제외한 지역을 4대 초광역권(충청권, 광주·전남권, 대구·경북권, 부울경)과 3대 특별자치권(강원권, 전북권, 제주권)을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우 위원장과 이 지사는 ‘메가 서울’과 ‘초광역발전계획’이 함께 갈 수 있다고 판단하는 듯 하다. 정녕 그것이 가능한 것인지 따져보는 일은 제쳐두자. 어찌 됐든 그들조차 별안간 ‘메가시티’가 전국적인 이슈로 떠올랐을 때 논의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는 데는 이견이 없을 테니.

▲ 윤석열 대통령이 11월2일 대전시 유성구 대전컨벤션센터에서 열린 2023 지방시대 엑스포 및 지방자치·균형발전의 날 기념식에서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사진=대통령실 홈페이지
▲ 윤석열 대통령이 11월2일 대전시 유성구 대전컨벤션센터에서 열린 2023 지방시대 엑스포 및 지방자치·균형발전의 날 기념식에서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사진=대통령실 홈페이지

‘메가 서울’ 관련 기사를 연일 본다. 한동안은 마르지 않는 샘이리라. 지역 기자로서는 적잖이 무력감을 느낀다. 동남권 지역언론에서는 최근 3년 동안 ‘부울경 메가시티’를 중대한 의제로 끌고 갔다. 부울경 통합 청사는 어디에 둘 것인지, 특별지자체 의회 의원 정수는 몇 명으로 할 것인지 등 구체적인 안건부터 부울경 지역 간 기 싸움, 대선후보의 ‘부울경메가시티’ 공약 등 크고 작은 내용을 꾸준히 다뤘다. 그런데 편집국 안에서 메가시티에 대해 격론을 벌이고 퇴근해서 TV를 틀면 누구도 ‘메가시티’를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또래 친구들과 만나봐도 메가시티가 무엇인지 제대로 알지 못했다. 지역언론에서 메가시티를 중요하게 다뤄도 사실상 일반 시민들에게는 닿지 못한 것이다.

구체적인 사례를 보자. 2022년 4월 19일 ‘부울경특별연합(메가시티)’이 공식 출범했는데 당시 출범식 행사를 서울 정부청사에서 대대적으로 열었다. 부울경 일간지는 일제히 이 소식을 1면에 싣고 그 의미를 해설하는 기사도 크게 썼다. 하지만, 서울 일간지 상당수는 이 소식을 단신 기사로 편집했다. 1면에 배치한 곳은 경향신문과 국민일보뿐이었다. 당시 ‘검수완박’이 뜨거운 이슈였고 부울경 메가시티는 중대성에 비해 지역민들에게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부울경 메가시티는 올해 2월 최종 무산됐다.

씁쓸하지만 서울 대형 언론사가 뉴스 시장을 주도하니 중요한 지역 이슈는 묻힐 때가 많다. 물론 중요한 이슈를 지역에서 충분히 의제화하지 못하는 지역 저널리즘의 문제이기도 하다. 지금껏 지방은 대형사건·사고가 터지거나 재난이 일어날 때, 혹은 유명인사가 방문할 때 정도나 전국적으로 중요하게 다뤄지는 것 같다. 늘 아쉽다. 나는 지역 의제를 전국지를 지향하는 대형 언론사에서도 자주 중요하게 다뤄주길 바란다. 지역언론에서 길어올린 이슈를 전국적인 의제로 키울 수 있는 힘은 그곳에 있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