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가시티 개발에 저항하다 사형 선고를 받은 사람들이 있다. 2022년 10월 사우디 법원은 3명의 남성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자신의 고향에서 떠나기를 거절한 타부크(Tabouk)족 선주민들이다. 사우디 아라비아의 메가시티 프로젝트 ‘네옴(Neom)’ 개발을 위한 토지 수용 과정에서 대놓고 벌어진 국가폭력이다.

기후-생태 위기가 도래하면서 전 세계 곳곳에서 메가시티 프로젝트가 가동 중인데, 사우디 아라비아의 네옴이 대표적이다. 지난 10월 윤석열 대통령과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방문해 ‘도시건설 신화를 만들자’며 가열차게 수주전을 펼쳤던 바로 그 프로젝트다. 900만 명의 주민을 수용하기 위해 설계된 미래형 도시 ‘라인(The Line)’은 말 그대로 폭 200m, 높이 500m의 거울 벽으로 구성된 직선 형태다. 사막, 산, 계곡을 가로지르며 홍해에서 내륙까지 170km가량 길게 이어지는 바 벨기에보다 면적이 더 크다. 약 1조 달러의 천문학적 예산이 들어갈 예정이다. 배출가스 제로, 녹색 수소, 폐수 재활용, 스마트 기술 등 세계 최대의 탈탄소 그린 도시로 설계되었다. 모하메드 빈 살만 왕세자의 지휘 아래 2030년 완공이 목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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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0월 사우디 법원은 네옴 개발을 위한 토지수용 과정에서 자신의 고향에서 떠나기를 거절한 타부크(Tabouk)족 선주민들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네옴 메가시티 프로젝트인 미래형 도시 ‘라인(The Line)’ 조감도. 네옴 웹사이트

세계 2위 석유생산국의 ‘그린 도시’ 건설이라니

언뜻 사막 위의 녹색 유토피아처럼 보이지만, 사실 지상 최대의 그린워싱 프로젝트다. 사우디 아라비아는 세계 2위의 석유 생산국이며 수익의 70%를 석유에 의존한다. 기후위기 압력 하에서도 석유 채굴을 줄이는 대신, 녹색 도시를 짓는 것으로 그 책임을 모면하려는 것이다. 애초에 건설 과정 자체도 파괴적이다. 대략 1.8기가톤(18억톤) 이상이 배출될 것으로 추정된다. 한국의 연간 배출량의 3배다. 또 건설 과정에서 사막 생태계와 생물다양성이 파괴되고 있으며, 심지어 사막 부족들을 추방하고 있다. 녹색 도시를 짓기 위해 화석연료 자본으로 그곳의 고유한 생태계와 선주민의 삶을 여지없이 파괴하는 것이다. 게다가 공사 과정에서 막대한 양의 물을 쓰고, 또 도시 규모를 유지하느라 물 자원을 끊임없이 낭비할 수밖에 없다. 이미 물 위기가 도래한 마당에, 처음부터 지속불가능한 도시 계획이다. 설령 완공에 성공한다고 해도 그저 그린워싱을 도모하고, 기후위기 압력에 버틸 수 있는 부자들의 위선적인 사막 요새에 불과하다.

이집트의 ‘신행정 수도’도 비슷한 예다. 인구 과밀을 이유로 카이로에서 45km 떨어진 사막에 거대한 메가시티를 건설하고 있다. 친환경 교통, 재활용 프로그램, 녹색 건축뿐만 아니라 도심 한가운데를 생태 공원 ‘그린 리버’가 가로지를 예정이다. 공원 부지 면적이 무려 뉴욕 센트럴파크의 6배다. 사막 속의 오아시스처럼 보이지만, 막상 도시 개발을 추동한 건 이집트 군부와 부동산 자본의 이윤이다.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대통령과 군부가 막대한 경제적 이익을 위해 신도시를 건설하려는 것이다. 주택 가격이 워낙 높아 이곳에 입주할 수 있는 사람들은 부자들뿐이다.

▲네옴 프로젝트 건설 현장 모습. 네옴 웹사이트
▲네옴 프로젝트 건설 현장 모습. 네옴 웹사이트

녹색 수사를 동원해도 메가시티 개발은 ‘탄소폭탄’

최근의 녹색 유토피아 도시 열풍은 부동산 금융자본이 기후위기를 어떻게 절묘하게 수단화하는지를 보여준다. 열대우림을 파괴하고 생물다양성 도시를 짓겠다는 말레이시아의 ‘바이오다이버 시(Biodiver City)’에서부터 인도네시아의 새 수도 ‘누산타라(Nusantara)’에 이르기까지 친환경을 전면에 내세우지만 과정 자체가 반환경적일 뿐만 아니라 철저히 부동산과 부자들의 이익에 종속돼 있다. 설령 친환경 건축 자재를 사용한다고 해도, 가장 많은 탄소를 배출하는 게 철강과 시멘트 산업이다. 갖은 녹색 수사를 동원해봤자 메가시티 개발은 탄소폭탄과 진배없다.

최근 전 세계적으로 고급 주거용 건물 시장이 커지는 가운데, 녹색 지붕이나 태양광 패널처럼 단편적인 솔루션이 기후위기 대응에 실효적이지 않다는 의심과 비판이 쇄도하자 부동산 자본이 친환경 고급 도시 개발로 투자 방향을 선회했다. 막대한 자본 투입으로 부동산 시장도 키우고, 친환경과 지속가능성이라는 녹색 이미지를 잔뜩 치장함으로써 세간의 비판도 상쇄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 연구에 따르면, 2000년 이후 시장에 발표된 170개 신도시 중 최소 4분의 1이 ‘생태도시’라는 용어로 포장되어 있다.

메가시티 건설 비용이면
낙후지역 재지역화 가능

미국 억만장자들의 유토피아 메가도시 계획들도 궤를 같이 한다. 일론 머스크는 사막에 ‘스네일브룩’과 ‘스타베이스’ 같은 기업 도시를 건설하고 있고, 빌 게이츠는 ‘벨몬트’라는 스마트 도시를 건설하기 위해 4000만 달러를 들여 애리조나 사막 땅을 사들였다. 또 월마트의 전 CEO인 마크 로어는 2050년까지 유토피아 도시 ‘텔로사(Telosa)’를 네바다 사막에 짓고 500만명을 수용할 계획이다. 블록체인 갑부 제프리 번스와 실리콘 벨리의 억만장자들도 녹색과 스마트 기술이 합체된 메가시티를 짓기 위해 수만 에이커의 땅을 야금야금 사들이고 있다. 공공성이 사라진, 완벽히 사유화된 도시 계획들이다.

사우디 아라비아의 ‘라인’에서부터 빌 게이츠의 ‘벨몬트’에 이르기까지, 오늘날 가장 왕성하게 기획되는 메가시티 프로젝트들은 녹색과 평등주의적 언어들으로 위장한 채 ‘부유층의 요새화된 교외도시’를 지향한다. 녹색을 선언하지만 녹색이 없고, 평등을 말하지만 부자들을 위한 공염불에 지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메가시티 기획들은 한결같이 인구 과잉, 과밀화, 불평등, 환경오염에 시달리는 기존의 대도시들에서 탈출해 ‘외부’에서 유토피아를 건설하는 것이 유일한 선택지처럼 닦달한다. 여기에서 저기로, 안에서 밖으로 성장하지 않으면 파국을 맞이할 것처럼 극성을 피운다. 외부의 메가시티를 건설할 비용이면 고장난 도시에 삶의 온기를 불어넣고 낙후된 지역을 충분히 재지역화할 수도 있다는 자명한 진실은 아예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그 천문학적 예산으로 불평등을 대거 해소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감쪽같이 은폐한다.

서울 메가시티 타령,
도시 문제에 최악의 자충수

한편, 여기 한국에서도 메가시티 열풍이 한참이다. 송도와 새만금 같은 간척지 위에 스마트와 그린이 합체된 신도시 유토피아를 짓자더니 그것도 영 시원찮았는지 부울경 메가시티 같은 지역 개발을 하자며 한참 호들갑을 떨던 터였다. 그러다 이제는 온통 서울 메가시티 타령이다. 가뜩이나 비대하고 과밀화된 서울에 김포를 포함시키고, 행정구역을 늘어진 풍선처럼 잡아당기며 부동산 투기 욕망을 자극하면 우리 삶의 문제가 해결될 것처럼. 총선 표를 끌어모을지는 모르겠지만, 도시 문제 해결에 관한 한 최악의 자충수다. 서울 메가시티가 그렇게 효과적인 대안이라면 제주도와 울릉도까지 모두 편입시키고, 국호도 서울로 바꾸면 되겠다. 어차피 서울공화국 아니던가.

▲대통령 직속 지방시대위원회가 이달 1일 발표한 제1차 지방시대 종합계획(2023~2027년).
▲대통령 직속 지방시대위원회가 이달 1일 발표한 제1차 지방시대 종합계획(2023~2027년).

혹자는 ‘지역 소멸’을 걱정하면서도 ‘서울 팽창’을 주장하는 집권 여당의 분열증을 지적하지만, 사실 그 논리는 전혀 모순적이지 않다. 도시 문제에 대한 대안도 메가시티, 지역 소멸에 대한 대안도 메가시티, 농촌 공동화에 대한 대안도 메가시티, 기후위기에 대한 대안도 메가시티. 다시 말해, 암 세포처럼 끊임없이 성장해야만 삶이 존속될 거라는 성장주의의 지독한 중독 하에서 메가시티는 끊으려야 끊을 수 없는 달콤한 마약과 같기 때문이다. 공동체 문제의 해결을 마약으로 대체하는 중독된 어리석음이다.

오스카 와일드는 ‘유토피아를 포함하지 않는 세계 지도는 쳐다볼 가치가 없다’고 말했다. 과연 우리는 메가시티, 박람회, 새만금, 신공항 같은 공염불의 개발과 성장의 수치들 말고, 서로를 돌보는 우애의 도시, 삶의 존엄성이 빛나는 농촌의 풍경을 지도에 그릴 수는 없는 걸까. 메가시티처럼 부동산 금융자본과 부자들의 돈가방을 위한 게 아니라, 여기 이곳에서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위한 지도를 그릴 수는 없는 걸까. 오히려 농촌과 지역을 재발명하고, 대도시를 지속가능한 수준으로 재설정하는 기획들을 상상할 수는 없는 걸까. 어려운 일이라고? 말은 바로 하자. 세상의 모든 자원을 끊임없이 빨아들이는 메가시티의 개미지옥에 속아 그 안에서 바둥거리는 것보다는 훨씬 쉬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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