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에는 ‘괴짜’ 기후 활동가가 있다. 이 유난스러운 70대 할아버지는 이 동네 언론계 종사자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다. 이름은 ‘박 선생’으로 칭하겠다.박 선생은 경남도민일보 편집국에 이따금 주전부리 들고 찾아온다. 편집국장 혹은 사회부장을 앉혀놓고 기후 위기의 심각성을 설파한다. 그 말을 엿듣고 있노라면 당장 지구가 멸망할 것만 같다.무수한 말을 관통하는 주제는 하나다. ‘지구 평균 온도 1.5도 상승을 막아야 한다’는 것. 골든타임은 2025년이라고 이라고 한다. 즉, 2025년부터 탄소 배출량을 마이너스 추세로 만들지 못하면
경남도민일보 기자 동료들과 술자리에서 종종 서울에 살아보고 싶지 않느냐는 이야기를 나눈다. 그러면 약속이라도 한 듯이 저마다 ‘그럼에도 내가 경남도민일보를 떠나지 않을 100가지 이유’를 읊는다. 심술궂은 부장 흉을 보고, 박봉의 지역신문 기자 생활이 얼마나 고단한지 실컷 말하면서도 막상 회사는 절대 떠나지는 않겠다는 야릇한 애사심! 서로 어깨 걸고 함께 가보자는 다짐은 직업인으로서 경남지역에서 궂은일을 다 해내며 버텨내는 데 힘이 된다. 하지만 생활인으로서 ‘지방살이’는 얘기가 좀 달라진다. 나와 동료들은 기자 딱지를 떼고 말을
한덕수 국무총리가 평생 쌓은 커리어는 화려하다. 서울대 경제학과 수석 졸업, 미국 하버드대 석·박사쯤은 제쳐둬도 될 정도다. 포털 네이버에서 ‘한덕수’를 검색해서 경력사항을 보니 웬만한 ‘난 사람’ 두 세명이 쌓은 이력에 버금간다. 나무위키에서는 그를 ‘문민정부,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 이명박 정부, 윤석열 정부 5개 정부에 걸쳐 보수 정부와 진보 정부를 가리지 않고 차관급 이상 고위직을 역임한 진기록을 보유한 원로’라고 소개한다.한덕수 총리에겐 한끗 다른 무언가가 있다. 서울대-하버드대 초고학력 코스는 비단 한 총리만 밟은 것이 아
경남 마산에는 남성동파출소가 있다. 정확히는 ‘옛’ 남성동파출소다. 지금은 펌프차만 한 대 갖춘 동네 소방서로 바뀐 그 건물. 마산 토박이들에게는 여전히 남성동파출소로 통한다. 택시기사에게 “남성동파출소로 가입시더”라고 말하면 군말없이 그곳 구도심으로 달려갈 테다. 한때는 번성했던 옛남성동파출소 사거리는 이제 젊은이들은 구태여 찾지 않는다. 골목골목 남은 낡은 다방 몇곳이 과거의 활기를 아스라이 떠올리 게 할 뿐이다. 나는 지난해 여름 오후 그 골목 보리수다방에서 한 노인을 만났다.그는 3·15 의거 생존자다. 꽤 다부진 체형에 짙
올해 5명이 조선소에서 일하다가 죽었다. 모두 하청업체 소속이었다.1월12일 한화오션 거제 옥포조선소에서 가스 폭발 사고 나 20대 하청 노동자가 숨졌다. 1월18일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에서는 60대 하청노동자가 3m 높이 계단에서 추락해 중태에 빠졌다가 끝내 사망했다. 1월24일엔 한화오션 거제 옥포조선소에서 30대 하청노동자가 물속에서 선체 이물질 제거 작업을 하다가 사망했다. 2월5일 통영 HSG성동조선에서는 50t 크레인에 깔린 40대 하청노동자가 목숨을 잃었다. 이달 12일 HD현대중공업 울산조선소 공장에서는 60대 하청노
지난달 22일 밤 충남 서천군 서천특화시장에서 큰불이 났다. 밤사이 점포 227개가 탔다고 한다. 보도사진 속 피해 상인들의 표정에는 허망함이 묻어났다. 23일 MBC ‘뉴스데스크’ 보도에서의 한 상인의 토로는 더욱 직접적이었다. “두 눈으로 볼 수가 없어요. 이렇게 처참하게 우리의 삶의 터전이 망가지다니….”이 폐허가 된 ‘삶의 터전’에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갔다. 윤석열 대통령도 뒤이어 도착했다. 서울 쪽 언론은 이날 두 사람의 만남에 집중했다. 한-윤 갈등이라는 서사가 극으로 치닫던 중이었다. 서천시장에서의 만남은
최근 전북일보 유튜브 채널에서 흥미로운 영상을 봤다. 기자가 길거리에서 시민들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했다. “전북일보와 넷플릭스 중 한 달 무료 구독 혜택을 준다면 무엇을 선택할 건가요?” 영상에서 상당수가 넷플릭스를 선택했다. 지역신문도 넷플릭스도 ‘구독’ 형식으로 ‘콘텐츠’를 공급하니까 일대일 비교를 할 수 있겠다 싶다. 지역신문이 글로벌 미디어 공룡 넷플릭스와 ‘맞짱’ 떠야 하는 운명인가. 지역신문은 존재 이유가 있다. 단지 그것이 너무 희미해졌을 뿐. 전북일보의 다소 자조적인 질문에는 지역신문의 가치가 가려진 현실이 반영돼
지역신문사에서 유튜브를 운영하다 보면 종종 듣는 말이 있다.“김 기자, 재밌게 좀 해봐.”이세돌 9단이 해준다고 한들 달갑지 않은 게 훈수다. 그래도 뭐 이까진 ‘끄덕끄덕’으로 응수한다. 그런데 뒤에 따라붙는 말에는 표정 관리가 어려워진다.“충주시 홍보맨처럼 말이야!”(내 귀에는 “드리블 좀 잘 해 봐 메시처럼”이라고 들린다.)최근 충주시 유튜브 채널 담당자인 ‘홍보맨’ 김선태 주무관이 9급에서 6급으로 초고속 승진을 했다고 한다. 김 주무관 혼자 기획, 촬영, 편집까지 도맡아서 구독자 50만 명을 모았다고 하니 눈부신 성과다. 그
경남 합천군 합천읍에는 일해공원이 있다. ‘일해’는 전두환 아호다. 공원 입구에 있는 표지석은 압권이다. 앞면에는 전두환의 ‘일해공원’ 친필 휘호가 새겨져 있고, 뒷면에는 '전두환 대통령이 출생하신 자랑스러운 고장임을 후세에 영원히 기념하고자 표지석을 세웁니다'라는 글이 적혀 있다. 2008년 합천군이 3000여 만 원을 들여서 세웠다고 한다. 이 낯 뜨거운 조형물이 15년째 그 자리에 그대로 있다.일해공원에서 1km 남짓 떨어진 곳에는 작은 영화관이 하나 있다. 합천읍에서 유일한 영화관인 ‘합천 시네마’다. 군에서 민간업체에 위탁
스물네 살이 되어서야 서울 여의도에 처음 가봤다. 생애 첫 서울여행이기도 했다. 초저녁에 한강 공원 잔디에 앉아보고 싶었다. 라면도 한젓가락 후후 불어보고팠다. TV로 배운 낭만이었다. 낯선 길이었지만, 씩씩하게 갔다. 분명 한강이 보이고 잔디밭도 있는 곳에 도착했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낯선 그곳에는 사람도 라면도 낭만도 없었다. 사람들이 즐겨찾는 ‘그’ 한강공원이 아니었 것. 정처없이 여의도 길바닥을 걸었다. 늦겨울 바람이 차서, 눈에 물이 좀 고였다. 여의도에 관한 기억은 이게 전부다. 짠한 여의도 기행이 문득 다시 떠오른
지난 14일 경남도민일보 표세호 기자가 토론해볼만한 주제라며 내부소통망에 ‘경남도민일보는 포털에 기사를 전송하지 않을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남겼다. 상상만해도 아찔한 질문이다. 그런데 불과 얼마 뒤 진짜 ‘탈포털’을 심각하게 고민해야봐야 할 일이 일어났다. 포털 다음이 22일부터 뉴스 검색이 되는 기본 설정을 기존 전체 언론사에서 '콘텐츠 제휴 언론사'(CP사)로 변경한 것. 그야말로 날벼락이었다. 뉴스 유통 업무를 맡고 있는 나에게는 탈포털이 당면 과제로 다가왔다.포털에 기사를 전송하지 않는다면, 살아남을 수 있을까? 결국 언
‘서울은 아직 작다.’ 내가 선정한 2023년 올해의 문장이다. 박수영 국민이힘 의원이 지난달 31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의 제목이다. 이 일곱 글자에 나는 제대로 한 방 먹었다. 지역신문에 일하면서 수도권 일극 체제를 타파하자는 구호는 수없이 봤다. 그런데 수도권 일극 체제를 더욱 공고히 하자는 주장은 처음 봤다. 웬 말인가 싶었다.서울쪽 일간지를 살펴보니,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에서 패배한 국민의힘이 ‘수도권 위기론’에 휩싸이자 반전카드로 ‘김포 서울 편입’ 의제를 꺼내든 것이라고 해석했다. 명분도 있단다. 국제도시로써 서울의 경쟁력
지난 주말 친척댁에 갔다. 그간 이모에게는 기별만 겨우 건너 전하던 터였다. 봉오리 맺힌 이야기가 활짝 펴 한참 화기애애했다. 그참에 “미디어오늘에 고정 칼럼을 쓰게 됐다”고 넌지시 뽐냈다. 이모는 속삭이는 자랑을 크게 맞받아쳤다.“오, 김 기자! 드디어 서울로 진출하는거야?”나는 일단 짐짓 반달눈을 지었다. 그러고는 “하하, 그렇게 됐네요”라고 답했던가.며칠 뒤 회사 선배 차를 얻어타고 가던 중이었다. 약간은 깔깔대며 이 일화를 말해줬다. 선배는 저의를 알아챘다는 듯 입을 열었다. 얼추 20년 된 이야기가 봉인 해제됐다. 요컨대
수도권 지역신문에서 일 잘한다고 두루 인정받던 후배 기자가 있었다. 각 부서를 고루 돌며 지역 현안 취재 경험을 고루 쌓았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지역에 애착이 형성될 수밖에 없다. '갈등을 부추기면서 먹고 사는 언론'이라고들 하지만 지역은 조금 다르다. 사람과 사람, 지역과 지역 사이 벌어진 틈을 무작정 헤집어 놓고 방치하기보다 봉합을 지향한다. 갈등이 터져 나오는 선거 국면에서도 어느 한쪽을 편들지도 않는다. 이런 태도가 어정쩡하고 부적절해 보일 수도 있겠다. 실제 지역에 밀착한 기자에게 '감시'와 '유착' 사이의 거리가 그리
처음엔 새만금 세계 스카우트 잼버리 대회 입영이 시작된 사실조차 몰랐었다. 비슷한 시기 여름 휴가를 떠나면서 인천공항에 간 동료 기자도 “왜 스카우트 복장을 입은 외국 아이들이 공항에 많이 있었는지 나중에 알게 됐다”고 전했다.해외 100여개 국가의 스카우트 대원 수만명이 몰리는 국제행사로 ‘청소년 문화올림픽’으로 불린다지만 국내 언론 다수는 이를 비중있게 다루지 않았다. 잼버리 입영식이 열린 시기 국내 언론 보도는 이동관 그리고 LH 건설 카르텔에 쏠려 있었다.입영식 첫날 8월1일은 행정안전부가 폭염 위기 경보를 가장 높은 수준인
이런저런 자리에서 지역신문 기자라고 소개하면 '지방의회 무용론'을 종종 듣는다. 지방의회가 제 역할을 못하지 않느냐는 질문을 받는다. '술자리 추태', '막말 파문' 등과 같은 기사를 접한 이들은 지방의회 수준이 크게 떨어져 있다고 판단하고 지방의회를 싸잡아 비난하곤 한다. 우리 동네 지방의원이 어느 정당 소속의 누구인지는 알지 못해도 지방의회가 형편없다고 말하기에 주저함을 갖지 않아도 될 정도의 분위기가 형성돼 있다. 잊을 만하면 한 번씩 '지방 의회 이대론 안 된다'와 같은 기획 기사가 여기저기서 나온다. 높은 빈도로 나오는 기
“충격이었습니다. 그럼 내가 지금부터 하려는 건 묘지에서 하는 운동회 같은 게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묘지에서 하는 운동회. 장일호 시사인 기자의 에세이 ‘슬픔의 방문’(낮은산)에서 읽은 구절이다. 일본 종이 장인들 이야기를 쓴 오다이라 가즈에의 ‘종이의 신 이야기’(책읽는수요일)에 나온 것을 재인용한 문구로, 염색 공예 작가 유노키 사미로 씨가 대학생 시절 ‘그림은 죽었다’는 주위 말을 듣고 떠올린 장면이라고 한다. ‘그림’ 대신 ‘종이 신문은 죽었다’로 바꿔 읽어도 무방하다.종이 신문의 위기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어서 특
TV수신료 분리징수 논란이 한창이다. 현재의 찬반 구도에서 한 발 비켜서서, 인천·경기 지역 주민 관점에서 그 문제를 들여다보고 있다. 지난 6월5일 인천에서는 ‘인천 방송주권찾기 범시민운동본부’가 발족했다. 인천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인천사랑운동시민협의회, 인천시민사회단체연대, 인천 YMCA, 인천 YWCA 등 22개 시민·사회 단체가 참여했다. 인천 방송주권찾기 범시민운동은 갑작스레 조직된 것이 아니다. 그 전신인 인천주권찾기조직위원회는 2년 여 전부터 방송주권 찾기 캠페인을 시작했다. ‘방송주권’이란 말이 생소할 텐데, 쉽게 설
불의의 사건, 사고로 혈육을 잃은 유족. 이들을 취재하러 나서는 기자의 발걸음은 무겁다. 사랑하는 이를 허망하게 떠나 보내고 망연자실한 유족에게 다가서는 일조차 쉽지 않다. 특히 사회 초년생 기자에게 빈소 취재는 낯설면서도 무척 곤혹스러운 일이다. 유족에게 어떤 방식으로 위로의 뜻을 전해야 할지부터 난감하다. 슬픔에 쌓인 이들에게 말을 걸고, 질문하고, 대답을 들어야 한다. 기자 직업에 대한 불만과 불신을 가감 없이 드러내며 문전 박대 당하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기자를 직업으로 선택한 누구나 감당해야 할 몫’으로 여기고 마음을 다
인천에서 ‘GM대우(현 한국GM) 차 타기 범시민 운동’이 대대적으로 벌어진 적이 있었다. 실업극복국민운동인천본부를 비롯한 인천의 시민·사회단체 21곳이 동참했다. 인천시도 뒷짐만 지고 있지는 않았다. 관용차를 GM대우차로 교체하는 흐름이 가속화됐다. 시장·군수·구청장과 지역 정치인도 차량을 GM대우차로 바꿨다.지역 언론사 역시 이런 움직임을 적극 취재·보도하며 캠페인의 성공을 유도했다. 당시 기자도 GM대우차 소비를 권장하는 기사를 쓴 적이 있다. 제목은 였다. GM대우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