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1일 충남 태안에서 걷기대회가 열렸다. 시원한 가을 주말, 전국에서 해수욕장이 가장 많은 태안의 해변 길을 걷는 이 행사에 태안군민 등 무려 1000여명이 참석했다. 이날 태안에선 태안군 주최 행사를 비롯해 크고 작은 다양한 행사가 열렸는데 걷기대회에 가장 많은 인원이 모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걷기대회를 주최한 곳이 지역 내에서 가장 건강한 언론으로 평가받는 태안신문사란 사실과 무관하지 않다.

현재 세종특별시에 위치한 충남산림연구소를 충남도 중 한 곳으로 이전할 예정이다. 이번 걷기대회에선 해당 연구소를 태안 안면도에 유치하자는 기원을 담았다. 지역신문이 지역주민들과 지역 현안을 내걸었기에 뜨거운 관심을 모았고, 군수를 비롯해 지역 정치인들도 이 행사에 얼굴을 내비칠 수밖에 없었다. 군과 의회는 물론 지역 농협과 수협, 대기업 등 13곳이나 후원사로 이름을 올린 것도 인상적이다.

그럼에도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행사를 주최한 곳으로 태안신문과 함께 태안신문 독자권익위원회가 이름을 올린 점이다. 소위 ‘전국지(중앙지)’로 불리는 신문사의 독자권익위는 기사를 충실히 읽고 다양한 의견을 내서 견제와 격려를 하는 정도의 역할을 담당한다.

▲ 태안신문과 태안신문독자권익위원회가 공동주최한 태안사랑 가족걷기 대행진 포스터 일부.
▲ 태안신문과 태안신문독자권익위원회가 공동주최한 태안사랑 가족걷기 대행진 포스터 일부.

하지만 태안신문 독자권익위 역할을 이를 뛰어넘는다. 독자권익위원은 20여명으로 태안신문 기자 수를 압도한다. 독자권익위는 행사 10여일 전에 모여 걷기대회 추진 상황과 계획을 점검해 신문사 측에 의견을 전할 뿐 아니라 1000명이 모인 당일 행사에 필요한 경품 등을 직접 제공했다. 이들이 뒷풀이에서도 주인공인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서울에서 보기 힘든 ‘독자권익위’ 활동이다.

전북 완주군을 취재하는 완주신문은 26일 <178만원의 가치>라는 사설을 냈다. 사설은 완주신문 누리집(홈페이지) 유지 비용이 월 16만5000원인데 1년 비용을 한번에 결제하며 10% 할인받아 178만 원을 지불했다는 이야기로 시작한다. 지자체 여러 사업 등과 비교하면 178만 원이 적은 금액일지 모르지만 풀뿌리 지역언론에서 주민들이 십시일반으로 모아준 돈으로서 “완주군의 어떤 사업 예산과 비교해도 밀리지 않는다”는 내용이다.

완주에 대한 기록, 즉 완주신문이 창간 이래 4년간 ‘권력의 눈치 보지 않고’ 쓴 기사들과 앞으로 1년간 쓸 기사를 주민들이 볼 수 있도록 보관하는 비용으로서 178만 원은 그 이상의 가치를 가질 수밖에 없다.

누리집 결제 금액에 대한 사설을 낸 이유는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첫째는 신문사를 후원해준 독자들에 대한 감사 인사고 둘째는 초심을 잊지 않겠다는 다짐이었다. 완주신문은 사설에서 창간 당시 지키겠다고 다짐한 내용을 소환했다. 정조대왕의 어록인 ‘홍재전서’에 나오는 ‘말하지 말아야 할 때 말하는 죄는 작으나, 말해야 할 때 말하지 않는 죄는 크다’는 격언이다.

눈치 보지 않는 언론의 배경은 탄탄한 독자들의 지원이고, 끊임없는 독자 관심의 배경은 정론직필이다. 이 선순환 흐름이 원활하지 않을 때 신문사는 어려워진다.

수익의 상당수가 독자에게 나오는 언론사 운영은 민주주의 원리에 기반한다. ‘모든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 원리를 인용하면 신문 권력은 독자로부터 나와야 한다.

서울의 상당수 언론사 수익이 네이버와 같은 포털이나 대기업 등 광고·협찬주에 의존하기 때문에 이들 언론사에 독자란 ‘클릭 노동’을 해줄 대상에 지나지 않는다. 지역언론은 포털과 기업이 아닌 지자체 행정 권력이 그 자리를 대신할 뿐이다. 독자들이 아무리 선정적 광고를 없애달라거나 그 외 다양한 저널리즘 윤리를 요구하더라도 수익 구조상 근본적으로 독자 의견을 받아들이기 어렵다.

▲ 뉴스타파저널리즘스쿨 포스터.
▲ 뉴스타파저널리즘스쿨 포스터.

수익의 상당수가 국민에게 나오는 ‘독립언론’들이 존재하고, 뉴스타파가 ‘뉴스쿨’(뉴스타파저널리즘스쿨)을 통해 독립언론 창업을 지원할뿐 아니라 중앙일보 등 대형 신문사가 유료독자 모집에 적극 나서고 있지만 독자 후원모델에 관해 언론계 전반은 여전히 회의적이다. 기사 조회수를 늘리거나 광고·협찬을 받아오는 게 익숙한 언론사 조직에서 독자 한 명, 한 명 접촉해 지갑을 열도록 설득하는 고단한 과정은 소위 ‘가성비 떨어지는 일’이기 때문이다.

지난달 독립언론 비마이너의 편집장은 기자협회보 기고 <비마이너, 뉴스민, 그리고 참세상>에서 “이제까지 누구도 독립언론 운영을 같이 고민해 주지 않았다”며 “기자협회로부터 기자 한 명의 인건비라도 지원받을 수 있다면 좋겠다”고 했다. 슬프지만 기자협회는 독립언론을 돕겠다는 답을 주지 않았다. 차라리 독립언론을 인큐베이팅하고 있는 뉴스타파나 뉴스쿨을 통해 활동 중인 인천 지역 독립언론 ‘뉴스하다’ 등과 머리를 맞대는 편을 추천한다.

용인시민신문의 지난 19일자 <만 원의 가치>란 칼럼을 보면, 돈 만 원에 대해 다양한 고민을 하게 된다. 영화 비용은 만 원이 훌쩍 넘은 지 오래고, 만 원으로 밥 한 끼 먹는 것도 어렵다. 용인시민신문은 “떳떳하게 구독료를 받기 위해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지 반문해보면 부족한 점이 강산만큼 떠오른다”는 반성문과 함께 “한 끼 밥값인 만 원은 지역신문에는 양식이고, 또 진실이 있는 곳이라면 먼 곳 마다하지 않고 가는데 필요한 노잣돈이다. 용인에서 용인 사람을 만나 용인을 말하는데 들어가는 화수분이기도 하다”라고 했다.

▲ 2023년 3월 31일 뉴스민 후원의밤 행사를 준비하는 천용길 대표(왼쪽)와 박중엽 기자. 사진=윤유경 기자.
▲ 2023년 3월 31일 뉴스민 후원의밤 행사를 준비하는 천용길 대표(왼쪽)와 박중엽 기자. 사진=윤유경 기자.

지난 4월 존폐 위기를 목도한 대구·경북 독립언론 뉴스민은 기자들이 모두 나서 후원자 모집에 나섰다. 당시 후원의밤 행사에서 뉴스민 기자들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끌어 모아 독자와 만났다. 후원 티켓을 판매하며 후원 호프를 열어 음식을 나르고 ‘뉴민스’(후원회원 애칭) 티셔츠를 만들어 팔았다. 그 ‘독자’는 후원자이자 취재원이자 일부는 사회적 소수자였고 또 다른 일부는 타사 기자들이었다.

뉴스가 공짜인 시대에 대한민국 어떠한 언론사도 독자 지갑을 여는 게 쉽지 않다. 독립언론 시사인 측의 애절한 구독 요청 전화를 받아 본 이들이 주변에 한둘이 아니다. 후원모델로 가장 성공한 뉴스타파의 모바일 페이지에 들어가면 어떤 페이지로 넘어가더라도 상단에 ‘후원하기’ 탭이 고정돼 있다. 진실탐사그룹 셜록은 한술 더 떠 셜록의 어떠한 페이지라도 상단과 하단 양쪽에 ‘후원하기’ 탭을 고정시켰다.

▲ 진실탐사그룹 셜록 모바일 페이지 갈무리.
▲ 진실탐사그룹 셜록 모바일 페이지 갈무리.

이들은 왜 이렇게까지 절박하게, 소위 ‘메이저’ 언론이 보기에 구질구질할 정도로 독자를 찾을까. 질문을 바꿔보자. 대다수 언론사가 공적 역할을 수행하는 민간기업이라면, 여기서 공적 역할은 다수 유권자 입장에서 권력을 감시하는 민주주의 원리와 얼마나 다른가. 언론장악이란 표현이 익숙해진 요즘, 신문권력은 독자에게서 나오는가. 언론사들은 유권자이자 후원자인 독자 의견을 권력이나 광고·협찬주 입장보다 무게감 있게 받아들이고 있는가. 언론계에서 과연 구독자가 낸 만 원의 가치는 얼마나 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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