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ttyim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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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한 인터넷 언론의 지난 1월4일자 기사 일부다. 

“대구지법 서부지원 형사1부(부장판사 임동한)는 특수공무집행방해치상 등 혐의로 기소된 A(42)씨에게 징역 3년을 선고했다고 4일 밝혔다.

A씨는 지난해 8월25일 대구 달성군의 한 자동차 부품 회사 앞 도로에서 불법체류 중인 외국인 근로자 36명을 태운 통근버스를 운전하던 중 불법체류자 단속을 나온 대구출입국사무소 소유의 차량 3대가 통근버스를 둘러싸고 통행을 가로막자 차량들을 들이받고 도주한 뒤 버스 안의 외국인 근로자들을 도망가도록 도왔다.

재판에서 A씨 측은 “A씨 역시 회사에 소속된 근로자에 불과한데 버스 안 외국인 근로자들이 모국어로 ‘살려달라’, ‘도와주세요’라고 외치니 안타까운 마음이 들어 범행을 저지르게 됐다”며 선처를 호소했다.”

대구경북지역언론 뉴스민의 박중엽 기자는 이 기사를 뒤늦게 읽었다. 박 기자는 4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기사를 보면 우발적인 범행처럼 보였지만 버스 안에 있던 이들이 ‘살려달라’고 외쳤다는 부분에 눈길이 갔다”며 “그때 그 버스 안이 어떤 상황이었을지, 운전대를 잡고 있던 사람의 심정은 어떠했을지 궁금했다”고 말했다.

▲ 2023년 3월 31일 대구에서 열린 뉴스민 후원의밤 행사 현장 모습. 현수막 속 박중엽 기자. 사진=윤유경 기자
▲ 2023년 3월 31일 대구에서 열린 뉴스민 후원의밤 행사 현장 모습. 현수막 속 박중엽 기자. 사진=윤유경 기자

이에 박 기자는 기사 속 A씨(가명 김민수)를 직접 대구교도소에서 접견했다. 10분짜리 짧은 만남으로 구체적인 내용까지는 묻지 못했지만 박 기자는 김민수씨가 일하던 공장 관리자, 김씨의 동생과 아내, 김씨 변호사, 고명숙 이주와가치 대표, 김헌주 경북북부이주노동자센터 대표, 김도균 전 한국이민재단 이사장 등을 취재해 해당 사건을 복기하고 미등록 이주노동자 강제단속 문제를 조명했다.

지난 1월 법원 판결을 중심으로 작성됐던 200자 원고지 4매짜리 기사는 뉴스민에서 지난달 28일 원고지 40매짜리 기사 <접견 시간은 10분, 동료시민이 이야기를 시작했다>로 다시 쓰여졌다. 김씨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왜 이주노동자들을 태운 채 도망가려 했는지, 이주노동자 정책의 근본적 문제가 무엇인지 등을 짚은 해당 기사는 SNS에서 뜨거운 반응을 보였다. 뉴스민은 4일 원고지 25매 분량의 두 번째 기사 <강제단속 일변 불법체류 대응, 또 다른 ‘김민수’ 만들까>를 내놨다.

뉴스민은 ‘불법체류자’ 대신 ‘미등록 이주노동자’로 표현한다. 첫 번째 기사에선 그가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을 태운 통근버스를 운전하다가 단속을 시작한 공무원들을 따돌리려 한 이유를 추적했다. 주변인들은 김씨가 평소에도 공장에서 이주노동자들을 따뜻하게 대했던 경험을 전했다. 공장 관리자는 뉴스민에 “움직이면 충돌할 거라고 생각은 못 했을”거고 “그냥 사람들이 울부짖으니까. 순간적으로 그 사람들을 보호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 지난달 28일 뉴스민 기사 '접견 시간은 10분, 동료시민이 이야기를 시작했다' 갈무리
▲ 지난달 28일 뉴스민 기사 '접견 시간은 10분, 동료시민이 이야기를 시작했다' 갈무리

김씨는 뉴스민과 접견에서 “그 사람들과 오래 함께 일했습니다. 나랑 같은 사람들이잖아요. 살려달라고 외치는데 그 말을 들으니까 저도 정신이 어떻게 됐었나 봅니다”라고 말했다. 뉴스민 기사도 그를 징역 3년짜리 범죄자이기보다는 누군가의 오빠이자 아내였던 ‘사람’으로 바라보고 있다. 김씨 항소심 법률대리인에 따르면 김씨는 2016년 공무원들이 이주노동자를 적발해 수갑을 채워가던 당시 노동자들이 ‘도와달라’고 외쳤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상황이 마음에 트라우마처럼 남았다.

박 기자는 “두 번째 기사(4일자)에서 김헌주 대표의 이야기를 다뤘는데 알고 지내던 이주노동자가 추방됐을 때 트라우마가 있어 이번 사건에 마음 아파한 모습을 다뤘고 미등록 이주노동자 강제단속이 사회문제로 대두되는데 잘못 설계된 제도에 초점을 맞췄다”고 말했다.

지난달 29일 대구의 한 교회에서 김씨를 위한 기도회가 열렸다. 이날 기도회 소식을 타 언론사에서도 전했다. 같은 사안이지만 부정적 반응은 뉴스민 기사가 덜했다. 정치성향·계급·지위 등이 다른 위치에서 나온 의견이라도 구체적인 ‘사람’으로 등장하는 순간 사람들은 쉽게 비난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보여준 기사다.

박 기자는 “이번 기사가 왜 더 주목을 받는지 사실은 잘 모르겠다”며 “(김씨의) 행동이 의로운 행동이라고 조명하고 싶었던 건 아니지만 나중에 보니 그렇게 읽힐 부분이 있다는 생각은 들었는데 독자들이 평소 접하지 못했던 ‘이야기’에 목말라 있던 게 아닐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씨 항소심 재판은 오는 6일 대구고등법원에서 열린다. 이를 앞두고 지역 시민사회에서는 탄원서를 모집하고 있는데 박 기자는 탄원서 링크도 기사에 첨부했다. [탄원서 바로가기]

▲ 뉴스민 4일자 기사 갈무리
▲ 뉴스민 4일자 기사 갈무리

대구·경북도 지역소멸 예외 지역이 아니다. 정부는 강제단속을 하는 동시에 이주노동자 유치에 열을 올린다. 미등록 이주노동자도 늘 수밖에 없다. 박 기자는 “이주민이 단지 소수자라서 깊게 다루는 건 아니고 지역언론에선 체감하는 게 다르다”며 “지역소멸이란 말이 많이 나오는데, 실제 현장에는 이주민이 많고 이주민과 관련한 갈등도 많아 오랫동안 관심을 가졌다”고 말했다. 

지난해 8월9일 <돼지머리에 묻힌 이슬람 사원 갈등…“종교계 자성 필요”> 기사를 보면 대구 북구 이슬람 사원 건축을 둘러싼 사회적 갈등에 대해 뉴스민이 토론회를 직접 열고 박 기자가 사회를 봤다. 이슬람 사원을 둘러싼 갈등의 원인을 분석하고 각자의 입장 차, 행정이 제대로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비판의 목소리를 듣고 기사로도 전했다. 박 기자는 “인권 이슈에 대해 갈등을 완화하는 방향으로 미디어가 할 수 있는 역할을 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뉴스민도 작은 언론사로서 기자들마다 담당 출입처가 있고 처리해야 할 이슈도 눈앞에 많이 보일 텐데 어떻게 이미 기사로 나왔던 사안에 꽤 시간을 들여 심층 취재할 수 있었을까. 박 기자가 답했다. 

“우리도 정해진 출입처가 있지만 출입처에서 나오는 정보를 모두 팔로우한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뉴스민 편집 기조에 맞는 기사들을 선별하고 집중할 수 있는 유동적인 조직이다. 이번 기사도 선고 결과만으로 이야기하기는 아까운 사건이다. 이면에 이 사건이 벌어지게 된 과정과 제도의 문제는 기자들이 출입처 시스템에 갇혀있으면 취재할 여력이 안 된다. 한 발 더 들어가고자 하는 방식으로 탄력적으로 취재를 해보려 한다.”

그는 이번 기사 후속으로 오는 6일 김씨 항소심도 취재할 예정이다. 다음달 총선을 앞두고 뉴스민 기자들이 다함께 준비중인 기획 기사도 기대를 갖게 한다. 박 기자는 “기후위기는 전 세계가 마주하는 민생 의제로 21대 국회에서 우리 지역 국회의원들은 어떻게 다뤘는지 키워드를 몇 개 뽑아서 관련 국회 회의록을 전부 분석했다”며 “관련해 시민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앞으로 국회가 기후위기 관련해 어떤 법안을 다루고 어떤 점을 보완해야 하는지 보도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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