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의 이스라엘 기습 후 전쟁에 돌입하면서 2000명이 넘는 사망자가 나온 가운데 혼란을 틈타 각종 허위정보가 현장에서 무분별하게 유포되고 있다. 특히 그간 언론자유가 제한된 곳에서 현장 소식을 전하는 등 민주주의에 기여했다는 평가까지 받았던 ‘엑스’(옛 트위터)가 허위정보 근원지로 꼽혀 지난해 엑스를 인수한 일론 머스크에 대한 비판 여론이 커지고 있다.

▲ 이스라엘 공습 시작을 알리는 이 영상은 허위로 드러났다. NYT 갈무리.
▲ 이스라엘 공습 시작을 알리는 이 영상은 허위로 드러났다. NYT 갈무리.

다수의 미사일이 하늘로 치솟는 영상에 ‘하마스가 공격을 다시 시작했다’는 캡션이 달리자 현지인들은 다시 불안에 떨 수밖에 없었다. 조회수가 50만 회에 달하며 공포에 몰아넣었던 이 영상은 허무하게도 하마스 공격이 아닌 ‘게임영상’(ARMA3)이었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해당 영상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때도 등장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 푸틴이 팔레스타인 지원을 선언하는 영상. 역시 허위다. CNBC 갈무리.
▲ 푸틴이 팔레스타인 지원을 선언하는 영상. 역시 허위다. CNBC 갈무리.

이러한 허위정보 사례는 수도 없이 많다. 헬리콥터가 격추되거나, 건물이 폭발하지만 이번 전쟁이 아닌 몇 년 지난 영상인 경우가 대다수다. 체포된 여성이 불길과 함께 고문을 받아 화제를 모았던 현지 영상도 이스라엘이 아닌 2015년 중앙아메리카 사례인 것으로 드러났다. 미국이 이스라엘에 80억 달러 규모의 지원을 승인했다는 백악관 문서, 팔레스타인 지원을 선언하는 푸틴 영상 등 외교적 분쟁까지 번질 수 있는 허위정보도 수많은 계정에 공유됐다.

소셜미디어 중에서도 ‘엑스’(옛 트위터)가 가장 심각하다. 지난 11일(현지시간) 미국 CNBC에 따르면 엑스에서 전쟁 관련 허위·선동 콘텐츠를 조직적으로 올리는 계정이 67개나 되는 것으로 밝혀졌다. CNBC는 “허위정보가 확산되는 상황에 실제로 의도를 가지고 프로파간다를 퍼뜨리는 사람들이 있다는 최초의 구체적 증거”라며 “게시물과 동영상을 합치면 조회수가 수백만 건에 달한다”고 했다.

▲ 유럽연합(EU)이 지난 9월 발행한 ‘허위정보에 관한 실천 강령’(Code of Practice on Disinformation).
▲ 유럽연합(EU)이 지난 9월 발행한 ‘허위정보에 관한 실천 강령’(Code of Practice on Disinformation).

엑스가 허위정보를 방치한다는 지적은 이전부터 있었다. 유럽연합(EU)이 지난 9월 발행한 ‘허위정보에 관한 실천 강령’(Code of Practice on Disinformation)에 따르면, 다른 소셜 미디어보다 엑스에서 허위정보가 많이 발견됐고, 허위정보 유포자들의 참여도 다른 플랫폼보다 활발했다.

본래 엑스는 이란, 중국 등 언론자유가 제한된 곳에서 시위 현장 사진을 전하는 등 민주주의에 기여했다는 평가까지 받았던 플랫폼이다. 하지만 지난해 10월 일론 머스크 인수 후 상황이 달라졌다. 지난해 11월 머스크는 윤리·인공지능팀을 해체하고 팀원 중 한 명을 제외한 전원을 해고했으며 신뢰 및 안전 부서의 15%도 해고했다. 표현의 자유와 비용 절감을 위해서다.

[관련 기사 : 민주주의 지킨 트위터를 민주주의 위협하게 만들어버린 머스크]

머스크의 엑스 유료화 정책도 허위정보 확산을 가속화시켰다. 유명인·기자 등 공인된 계정에만 달던 ‘블루체크’ 표시를 월 8달러 상품으로 만들면서 허위정보 판별이 더 어렵게 됐다. CNBC는 “허위정보 게시물 일부는 ‘인증된’(블루체크) 사용자가 작성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 전 뉴욕타임스 특파원 리디아 폴그린은 지난해 11월 칼럼에서 머스크의 트위터가 민주주의를 위협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NYT 갈무리
▲ 전 뉴욕타임스 특파원 리디아 폴그린은 지난해 11월 칼럼에서 머스크의 트위터가 민주주의를 위협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NYT 갈무리

허위정보 추적까지 어렵게 만들었다. 로이터는 지난 10일 “올해 초 머스크의 정책 변경으로 엑스 내 허위정보의 전체 규모를 추적하기가 더 어려워졌다”고 보도했다. 로이터에 따르면, 엑스는 학계에 무료로 제공하던 데이터 도구(이벤트 키워드, 해시태그 등 기타 정보)에 대한 접근을 차단했다.

마가렛 설리반 칼럼니스트는 지난 10일 영국 가디언 칼럼에서 “필수불가결했던 소셜미디어 플랫폼(엑스)이 사라진 것만으로도 충분히 나쁜 일”이라며 “더 최악인 건 머스크가 고의로 또는 적어도 공익에 대한 책임을 무시한 채 무모하게 이 모든 일을 저질렀다는 점”이라고 했다. 머스크는 전쟁에 유용한 정보를 알려주는 곳이라며 자신의 계정에 허위정보 계정 2개를 추천하기도 했다.

문제가 심각해지자 티에리 브르통 EU 내수시장 담당 집행위원은 지난 10일 머스크에 허위정보 확산 대응을 촉구했다. 브르통 위원은 “엑스가 유럽에서 불법 콘텐츠와 허위정보를 유포하는 데 사용되고 있다는 징후를 발견했다”며 “회사의 시스템이 효과적인지 긴급히 확인하고 취한 대응에 대해 보고해달라”고 지시했다. 이에 머스크는 “엑스의 회사 정책은 모든 것이 투명하다”며 “대중이 볼 수 있도록 당신이 언급한 위반 사항을 나열해달라”고 맞서기도 했다.

유럽은 엑스와 같은 디지털 플랫폼에 책임을 물을 수 있는 ‘디지털서비스법’(DSA)이 지난 8월부터 시행 중이다. 플랫폼에 인종·성·종교에 대한 편파적인 발언이나 테러, 아동 성학대 등 콘텐츠의 유포를 막기 위한 책무를 부과한 내용이 골자다. DSA를 준수하지 않을 시 EU는 글로벌 연매출 최대 6%에 달하는 벌금을 부과할 수 있다.

▲ 지난 10일 나온 엑스 공식 입장.
▲ 지난 10일 나온 엑스 공식 입장.

엑스는 지난 10일 회사 공식 계정을 통해 “지난 며칠 분쟁 지역에서 엑스의 일일 활성 사용자 수가 증가했으며, 이스라엘 테러 공격에 대한 게시물이 전 세계적으로 5000만 건 이상 올라오고 있다. 사건이 빠르게 전개됨에 따라 회사 리더십그룹은 지금이 최고 수준의 대응이 필요한 위기 상황이라고 평가했다”고 밝혔다.

규제 당국의 대응이 엑스만 향한 건 아니다. EU는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을 소유한 메타에도 지난 11일 서한을 보내 허위정보 확산에 대응하기 위해 취한 ‘비례적이고 효과적인’ 조치에 대해 24시간 내 보고할 것을 요구했다. 메타 대변인은 “면밀히 대응하기 위해 히브리어와 아랍어 사용자를 포함한 전문가로 특별 센터를 신속하게 꾸렸다”며 “24시간 내내 플랫폼을 안전하게 유지하고 위법 콘텐츠에 조치를 취하기 위해 제3자 팩트체커와 협력하고 있다. 계속 노력할 것”이라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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