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작가는 방송사가 고용한 근로기준법상 노동자에 해당한다는 법원의 첫 판결이 나왔다. 법원은 방송사 MBC가 방송작가를 ‘프리랜서’로 계약한 뒤 개편을 이유로 해고한 것이 부당해고라고 판결했다. 방송사들이 거듭된 노동행정기관 판정에도 방송작가를 ‘프리랜서’라 부르며 사용해온 관행에 제동을 걸 것으로 보인다.

서울행정법원 12부(재판장 정용석)는 14일 오후 MBC가 중앙노동위원회를 상대로 낸 방송작가 부당해고 판정 불복 행정소송에서 “원고의 청구를 기각하고 소송비용은 원고가 부담한다”고 판결했다. 중노위가 두 방송작가를 MBC의 근로기준법상 노동자로 판단해 부당해고를 인정한 판정을 재차 인용한 것이다.

작가 이아무개씨와 김아무개씨는 10년 동안 매일 새벽 6시~7시40분에 방영된 MBC ‘뉴스투데이’ 작가로 일하다 2020년 6월 MBC 측으로부터 구두로 해고 통보를 받았다. 해마다 갈던 ‘프리랜서 계약’을 6개월 남기고서다. 이들은 뉴스 아이템 선정부터 원고 작성, 출퇴근 시간, 근무장소, 방식까지 MBC의 지시와 감독, 관리 아래 수행해왔다며 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제기했다.

중노위는 지난해 3월 이들 작가의 손을 들어줬다. 중노위는 MBC에 작가들을 원직에 복직시키고 이들이 정상적으로 일했다면 받았어야 할 임금을 지급하라고 명령했다. 그러나 MBC는 판정에 불복해 사건을 법원으로 가져갔다.

▲서울행정법원. 사진=김예리 기자
▲서울행정법원. 사진=김예리 기자

“판결 받아야” 한다던 MBC “내용 받아봐야” 


이 사건은 방송작가들이 근로기준법상 노동자성을 법적으로 다툰 첫 사건이다. 2002년 마산MBC 구성작가들이 중노위에서 ‘노조법상 노동자성’을 인정받았지만 2003년 서울고등법원에서 판정이 뒤집힌 바 있다. 이후 뉴스투데이 작가들이 노동자성 인정 판정을 받은 뒤 TBS와 YTN, MBC 등에서 방송작가의 부당해고 구제신청과 인용 판정이 이어졌다.

노동부는 두 작가의 노동자성 확인을 계기로 지난해 KBS·MBC·SBS를 근로감독한 결과 152명의 방송작가(조사 대상의 42%)의 노동자성을 확인했다. 이중 MBC 보도국 작가 대다수(16명 중 14명)가 노동자로 인정됐다.

방송작가 노동자성이 거듭 법적으로 인정받는 흐름 속에서 방송작가들을 ‘프리랜서’로 유지해온 방송사 조치에 이번 판결이 미칠 영향이 주목된다. MBC는 불복소송을 제기하면서 “방송작가 2인의 문제가 아니라 방송사 전반의 프리랜서 작가 고용 문제로 볼 수 있기 때문에 법원의 판단을 받아보겠다”고 밝힌 바 있다.

MBC 관계자는 이번 판결에 “판결문을 받아 내용을 살펴봐야 입장을 정리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전국언론노동조합 방송작가지부(방송작가유니온)는 14일 서울행정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MBC에 소송전 중단과 해고방송 작가복직을 요구했다. 사진=김예리 기자
▲전국언론노동조합 방송작가지부(방송작가유니온)는 14일 서울행정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MBC에 소송전 중단과 해고방송 작가복직을 요구했다. 사진=김예리 기자

작가들 “MBC, 무모한 법적 공방 여기서 멈추길”


전국언론노동조합 방송작가지부(방송작가유니온)는 선고 직후 서울행정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MBC에 소송전 중단과 해고방송 작가복직을 요구했다.

김 작가는 “지노위, 중노위, 법원까지 2년의 시간동안 MBC 측에서 서면을 내기 전엔 또 어떤 거짓이 잔뜩 적혀 있을까 불안에 떨었고, 서면이 오면 말도 안 되는 말 때문에 분노로 며칠을 힘들어야 했다”고 했다. 그는 메인 목을 가다듬으며 “저는 사실 MBC가 저희를 해고한 진짜 이유가 무엇인지 밝히고자 이 힘든 싸움을 시작했다. 그리고 이제 노동권을 인정받았으니 MBC로 돌아가 다시는 저희와 같은 희생자가 나오지 않도록 적극적으로 이유를 밝힐 것”이라고 했다.

▲염정열 언론노조 방송작가지부장. 사진=김예리 기자
▲염정열 언론노조 방송작가지부장. 사진=김예리 기자

이 작가는 “MBC는 즉각 저와 제 동료를 노동자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무모한 법적 공방을 여기서 멈추길 간곡히 요청한다. 비정규직에 대한 부조리를 보도하는 언론사로서, 자사를 위해 헌신한 두 작가에 대해 지금이라도 책임 있는 자세를 보이길 바란다”고 했다.

두 작가들을 법률대리한 강은희 변호사(공익인권법재단 공감)는 이 자리에서 “MBC는 소송에서 10년 간 함께 근속한 작가 업무 능력을 부당하게 폄훼했고, 여러 차례 기일 직전에 증거를 제출하는 방식으로 소송을 지연시켰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MBC는 12년 전 근로자로 고용했어야 할 작가들을 10년 간 프리랜서로 쓰며 노동자 권리를 부정했다는 점에서 이번 판결은 어쩌면 2년이 아니라 12년 늦었다”고 했다.

윤지영 변호사(공감)는 “이번 판결이 을의 지위에서 온갖 고된 일은 다하면서도 노동법을 적용 받지 못한 방송 비정규직에 큰 힘이 되기를 바란다”며 “프로그램 제작이라는 공동의 목표를 위해 근로자들과 유기 결합해 업무한다는 점, 여러 단계의 제작과 협업을 거쳐야 하고 단계마다 방송사의 기획에 맞춰 수정·보완을 거쳐야 한다는 점, 무엇보다 방송사가 최종 결정권자일 수밖에 없다는 점을 감안하면 방송사의 비정규직 태반이 방송사의 직원”이라고 했다.

이수진 더불어민주당 의원(비례)은 “보도국 작가들의 승소를 환영한다. 그러나 MBC가 소송 대응하지 않고 진작 작가들을 원직복직 조치했다면 방송작가의 노동권을 존중하려는 것임을 보여줄 수 있었을 것”이라고 판결에 입장을 밝혔다.

방송작가 말고도 방송사 비정규직들의 노동자성을 다투는 소송이 이어지고 있다. 객원PD, 외부제작PD, VJ, FD, 드라마 촬영 감독, 프리랜서 아나운서가 법원에서 노동자로 인정받은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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