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일 중앙노동위원회가 방송작가의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노동자) 지위를 처음으로 인정한 심문회의는 공개 회의 원칙에 근거해 언론도 참관한 최초의 회의였다. 작가들은 이 자리에서 “저희가 실제로 일하는 모습을 봐달라”는 호소를 반복했다. ‘작가에게 업무 자율성이 있었다’는 방송사와 ‘PD가 업무 과정 전반을 결정했다’는 작가 간 공방이 회의 내내 이어졌다.

중앙노동위원회는 19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전 MBC 보도국 작가 2명이 MBC를 상대로 제기한 부당해고 구제신청 사건 심문회의를 열었다. 재심 청구 접수 4개월여 만이다. 회의는 오후 2시 시작해 오후 3시30분께 끝났다. 5시간 후 중노위는 ‘초심을 취소한다’고 결정해 통보했다. ‘작가들이 근로기준법상 근로자가 아니기에 부당해고 여부를 검토할 필요가 없다’는 서울지방노동위원회 결정이 잘못이라는 취지였다.
(관련 기사 : MBC 보도국 작가들, ‘근로기준법상 노동자’ 최초 인정)

공익위원 3명, 근로자·사용자 위원 각 1명 등 5명의 중노위원이 참석한 가운데 MBC 측에서 7명, 작가 측에서 8명이 회의에 나왔다. 회의 공개를 원칙, 비공개를 예외로 정한 노동위원회법 제19조에 따라, 뉴스타파·미디어오늘·한겨레 등 언론사 기자 3명이 작가 측 참관인으로 회의를 방청했다. 취재기자가 노동위 심문회의를 방청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지난 19일 오전 서울 상암동 MBC 앞 기자회견에 참가한 전 MBC 보도국 작가 김아무개씨. 사진=손가영 기자
▲지난 19일 오전 서울 상암동 MBC 앞 기자회견에 참가한 전 MBC 보도국 작가 김아무개씨. 사진=손가영 기자
▲작가 김아무개씨 근무 당시 모습.
▲작가 김아무개씨 근무 당시 모습.

심문장엔 1시간 30분 내내 팽팽한 긴장감이 흘렀다. 중노위원들은 작가들이 자신의 업무 과정과 내용을 결정할 권한이 있는지를 집중적으로 물었다. MBC 측은 “작가 업무는 위임 계약 내용 내에서 이뤄졌고, PD는 뉴스 아이템을 최종 확정하는 과정에만 제한적으로 개입했다”고 일관되게 밝혔다. PD와 작가는 협업 관계였다고도 강조했다.

이와 관련 ‘아침신문보기’ 코너를 맡았던 김아무개 작가는 업무지시를 했던 한 차장기자와의 녹취록, 카카오톡 대화 등을 증거로 냈다. 매일 6~8꼭지씩 고르는 뉴스 아이템 선정부터 순서, 아이템 검토 시 유의점 등을 지시한 내용이다.

양 측은 서로가 허위를 말한다고 맞섰다. MBC 관계자는 “이 기자는 이를 ‘당시 지각을 해 이례적으로 특이하게 통화하거나 카카오톡을 주고 받았다’고 설명했고, 내가 데스크를 볼 땐 이렇게 지시한 적이 한 번도 없다”며 “특수 상황을 일반화할 수 없다”고 밝혔다. 반면 작가 측은 “제출한 녹취는 한 건이 아니라 여러 건이다. 특수한 날의 상황이 아니”라며 “증거 중엔 ‘이건 차장님이 고르신건데요’ 등의 말이 자주 등장한다. 아이템은 작가가 자율로 고르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작가들이 9년 넘게 일주일에 6일씩 같은 장소와 시각에 출근한 사실도 주요하게 다뤄졌다. 작가 2명은 2011년부터 지난해 6월까지 9년 넘게 MBC 보도국이 있는 7층 사무실에 출근했다. 이들은 출·퇴근 시간과 장소 모두 방송사에 종속됐다고 강조했다.

중노위원의 관련 질문에 MBC는 “원고를 송고하기 위해서 특정 프로그램(MARS)을 써야 했고, 외신 영상 등을 볼 때도 특정 프로그램을 써야 해 사무실로 나온 것”이라고 반박했다. 작가 측은 “본질은 생방송 뉴스프로그램이기 때문에 현장에서 즉각 지시를 받는 등 직원들과 협업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라고 맞섰다.

▲작가 김씨가 퇴사 전 후임 작가에게 적어 준 MBC 뉴스투데이 '아침신문읽기 코너 작가' 업무 인수인계서.
▲작가 김씨가 퇴사 전 후임 작가에게 적어 준 MBC 뉴스투데이 '아침신문읽기 코너 작가' 업무 인수인계서.

“원고 창작? 보도국 작가들 하는 일 사실상 기사 쓰기“

심문회의 의장은 종료 직전 참고인으로 나온 방송작가노조 측에 발언 기회를 줬다. 김한별 언론노조 방송작가지부장은 “방송작가들은 사실상 PD들에 종속돼 업무지시를 받고 있다”며 “판례가 없기 때문에 법적으로 따지기 어렵다고 여기지 말고 작가들의 근로 실질을 따져 달라”고 주장했다.

김 작가는 최종진술에서 “저희가 MBC 보도국 간판 프로그램인 생방송 아침뉴스에서, 그 새벽에 상암에 나가 과연 무엇을 자유롭게 창작했을까요”라 물으며 “부디 ‘작가’라는 프레임과 사용자 측이 우월한 지위를 이용한 근로 형태 등만 보지 마시고, 저희가 제출한 구체적이고 객관적인 사실관계를 봐달라”고 말했다.

이 작가는 “작가라고 불렸지만 실제 한 일은 기사쓰기였고, 기사를 내보내려면 차장급 이상의 기자 선배들에게 확인을 받고 수정을 거쳐야 했다. 9년 넘게 일하면서 내가 MBC 구성원이라는 착각 아닌 착각을 했다”며 ”그런 회사가 인적 쇄신이라는 납득하기 어려운 이유로 10년 가까이 방송한 작가 2명만 콕 찍어 해고했다“고 주장했다.

MBC 측 노무사는 “당시 개편으로 작가 3명, 리포터 3명의 계약이 종료됐지만 방송 특성상 개편 때마다 다시 일하기도 하는 등 계약이 영원히 종료된 게 아니”라며 “신청인은 ‘보도국 작가’라고 구분하지만 방송계에선 드라마·비드라마 작가로 구분한다. 구성작가와 같은 형태이지 또 다른 작가 형태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또 “업무 위임 계약에서 을이 갑인 의뢰인의 요구에 종속되는 등 갑을 관계가 나타날 수 있는데 지위가 대등하지 않다는 사실이 곧 (노동자성이 인정되는) 사용·종속관계가 아니”라며 “방송 프로그램은 PD가 주도하는 특별한 사정이 있고 이에 따라 작가의 아이템 선정에 관여했다. 이를 사용자의 지휘·감독으로 볼 수 없다”고 강조했다.

분위기가 고조되면서 작가 1명은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근로자위원이 ‘(작가들이) 교통사고를 당한 날, 아버지가 돌아가신 날에도 출근했던 이유가 뭐냐’고 물었을 때다. 이아무개 작가는 2019년 새벽 고속도로에서 교통사고를 당했으나 출근을 먼저 해 일을 끝낸 후 병원에 갔다. 수 년 전 김아무개 작가는 부친이 사망한 날에도 회사에 출근해 업무를 먼저 본 뒤 빈소를 찾았다.

MBC 측 노무사는 “방송업 종사자로서의 사명감과 투철한 직업 정신”을 언급했다. 이에 김아무개 작가는 “방송이 나가지 못하면 바로 해고될 수밖에 없는 불안정한 상황에서 일하기 때문”이라 반박하며 울먹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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