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희림 방송통신심의위원장. ⓒ연합뉴스
▲류희림 방송통신심의위원장. ⓒ연합뉴스

류희림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 위원장의 ‘민원사주’ 의혹에 대한 진상규명을 요구하다 해촉된 야권 추천 김유진 위원이 법원 판단으로 복귀한 가운데 류희림 위원장이 강제로 김 위원을 이슈가 덜한 광고심의소위원회(광고소위)에 배정하면서 다시 ‘파행 기류’가 불고 있다. 김유진 위원은 “비상식적이고 폭압적”이라고 반발했고 강제로 소위를 배정 당한 윤성옥 위원(야권 추천)도 “개인일정이 전혀 고려되지 않았다”며 정상적 회의 진행이 불가능하다고 항의했다.

8일 방심위에 따르면, 류희림 위원장은 해촉 전 방송소위, 광고소위를 맡던 김유진 위원(문재인 대통령 추천)을 디지털성범죄소위(디성소위), 광고소위에 배정했다. 디성소위를 맡던 윤성옥 위원(더불어민주당 추천)도 광고소위에 배정했다. 반면 이정옥 위원(윤석열 대통령 추천)은 광고소위에서 빠지고 방송소위와 통신소위를 맡게 됐다.

류희림 위원장의 ‘민원사주’ 의혹에 대해 끝까지 책임을 물을 것이라 선언한 김유진 위원을 가장 정치적으로 예민한 방송소위와 통신소위에서 제외시킨 것이다. 반면 방심위 구조의 부당함을 비판하며 ‘심의 보이콧’을 선언했던 윤성옥 위원은 방송·통신·광고소위를 모두 맡게 됐다. 윤 위원은 지난 1월 이후 방심위 심의에 참여하지 않고 있다.

이번 배정으로 지상파, 종편 등을 심의하는 방송소위는 여권 추천 4인(류희림·황성욱·이정옥·문재완), 야권 추천 1인(윤성옥)으로 기존과 변동이 없게 됐고 지난번 대통령 풍자 영상 차단으로 논란이 된 통신소위 역시 여권 추천 4인(황성욱·이정옥·허연회·김우석), 야권 추천 1인(윤성옥)으로 변동이 없게 됐다. 방송소위와 통신소위는 본래 여야 3대2로 운영되지만 이러한 관행을 깬 것이다.

광고소위만 여권 추천 3인(허연회·문재완·김우석), 야권 추천 2인(김유진·윤성옥)으로 비교적 균형을 맞췄다. 디성소위는 여권 추천 2인(허연회·김우석), 야권 추천 1인(김유진)으로 운영된다.

▲ 지난 1월 해촉 의결 뒤 서울 양천구 방송회관 17층에서 기자회견하고 있는 야권 추천 방통심의위원들. 왼쪽부터 윤성옥, 옥시찬, 김유진 위원. 사진=박재령 기자
▲ 지난 1월 해촉 의결 뒤 서울 양천구 방송회관 17층에서 기자회견하고 있는 야권 추천 방통심의위원들. 왼쪽부터 윤성옥, 옥시찬, 김유진 위원. 사진=박재령 기자

류희림 위원장이 전례 없이 위원 간 협의를 무시한 채 일방적으로 소위 배정을 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김유진 위원은 8일 입장문을 내고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조치”라며 “관례는 물론 최소한의 균형성을 상실한 조치”라고 반발했다.

김유진 위원은 “류 위원장은 제가 해촉 전까지 방송소위를 맡았고, 법원 판결로 위원 지위를 유지하게 되었음에도, 방송소위를 여권 위원 4인으로 운영하겠다는 방침을 고수했다”며 “방송심의 과정에서 최소한의 이견과 반론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의도다. 그렇지 않다면 왜 제가 방송소위로 돌아갈 수 없는지에 대한 합당한 이유를 제시하기 바란다”고 했다.

김 위원은 “디성소위 배정은 소위 특성을 악용해 저를 방송소위에서 배제하려는 꼼수”라며 “디성소위는 3인이 모두 심의해야 매일 성범죄물을 차단, 삭제할 수 있다. 제가 전자심의에 참여하지 않으면 매일 성범죄물 심의가 차질을 빚는다. 제가 소위원회 재배정을 거부할 수 없게 하면서, 방송소위에서 배제한 것”이라고 했다. 김 위원은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2021년 7월 위원 위촉 이후 1년 반 동안 이미 디성소위 위원장을 맡았었다. 다른 소위 활동 후 다시 디성소위에 배정하는 건 전례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심의 보이콧’을 진행하다 방송·통신·광고소위를 모두 맡게 된 윤성옥 위원은 8일 소위 배정에 반발하면서도 심의 복귀를 선언했다. 윤 위원은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위원장이) 소위 배정을 하며 아무 소통이 없었다. 이건 위원장의 인사권이 아니다. 위원들하고 협의해서 하는 자리”라며 “강의시간과 같은 개인 일정이 전혀 고려되지 않았다. 일부러 저의 불참을 유도한 게 아닐까 의심된다”고 말했다. 

이어 “류희림 위원장에게 분노를 금치 못한다. 앞으로 공개된 회의에서 모든 문제점을 낱낱이 밝히고 류희림 위원장을 비롯한 관련자들이 이 사태에 대한 사법적 책임을 반드시 지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윤 위원은 지난 1월 류희림 위원장이 윤 위원을 강제 소위 배정할 때도 “한 명의 야권 추천인사에게 4개의 소위 중 3개의 소위를 맡아서 심의하라는 일방적 배정은 최소한의 예의와 도의마저 저버린 행위”라고 반발한 바 있다.

류희림 위원장은 지난 5일 김유진 위원의 회의 참석을 ‘불허’하며 위원들과의 소위 배정을 고려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야권 추천 위원들은 전혀 소통이 없었다고 반발하고 있어 위원장의 기존 입장과 배치되는 결과가 나온 셈이다. 류 위원장은 지난 5일 당시 “소위 배정이 간단한 게 아니다. 새로 오신 위원님들은 심의위원 계약 전에 소위 배정을 고려해 강의 시간 등을 조정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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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심위 홍보팀 관계자는 미디어오늘에 “통상 위원님들하고 상의해서 위원장님이 (소위를) 정하시는 절차로 진행해 온 건 맞다”면서도 “근거 법률을 보면 위원장이 반드시 위원과 협의를 거쳐야 한다는 게 명시돼 있지는 않다”고 설명했다. 방송통신위원회 설치법엔 ‘소위원회는 위원장이 지명하는 5인 이내의 위원회 위원으로 구성·운영한다’고 적혀 있다.

미디어오늘은 8일 오후 5시 류희림 위원장에 입장을 묻고자 했으나 전화를 받지 않았다. △위원들과 소통이 없었던 것이 사실인지 △어떤 의도를 가지고 야권 추천 위원들을 배정한 것인지에 대해 문자를 통해 물었으나 현재까지 답을 들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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