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만 전 대통령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건국전쟁’의 흥행을 계기로 이승만 전 대통령 재평가에 다시 시동이 걸린다. 전부터 조선일보와 보수세력은 이승만 전 대통령 재평가를 꾸준히 추진해왔다. 문제는 명백한 ‘과’마저 감추고 ‘공’으로 둔갑하려 한다는 데 있다. 

건국전쟁 릴레이 관람과 조선일보의 재조명

윤석열 대통령은 ‘건국전쟁’ 관람 후 “역사를 올바르게 인식할 수 있는 기회”라고 했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김영호 통일부 장관 등 정부여당 인사들이 영화관을 찾아 메시지를 냈다.  

조선일보는 적극적으로 이승만 전 대통령 재평가 작업에 힘을 싣고 있다. 영화 개봉일인 지난 1일부터 18일까지 총 28건의 ‘건국전쟁’ 관련 기사를 썼다. 

조선일보의 논조는 일관되고 일방적이다. 지난 3일 ‘건국전쟁’ 김덕영 감독을 인터뷰한 <“이승만 죽이기는 北의 공작…이제 ‘진짜 이승만’을 마주하세요”> 기사를 낸 데 이어 <6·25 때 도망? 이승만, 美대사 앞에서 “인민군 쏘고 날 쏘겠다” 망명 거절>(2월6일), <‘이승만 죽이기’ 60여년, ‘팩트’를 지어내는 역사가들>(2월11일), <“난 이승만을 너무 몰랐다”...‘건국전쟁’ 상영관마다 눈물과 박수 [만물상]>(2월12일), <[광화문·뷰] 그들이 이승만을 덮쳤을 때>(2월16일) 등 기사를 냈다. 

▲ 조선일보 기사 갈무리. 이승만 전 대통령이 독재자가 아니고 부정선거와 관련이 없다는 내용이 담겼다.
▲ 조선일보 기사 갈무리. 이승만 전 대통령이 독재자가 아니고 부정선거와 관련이 없다는 내용이 담겼다.

조선일보는 지난 16일 기사에서 “‘건국전쟁’은 좌파의 ‘이승만 악마화’를 바로잡는 영화”라고 했다. 영화는 이승만 전 대통령의 농지개혁과 안보정책 등을 조명하고 그가 교육정책에 관심을 쏟은 결과 의식이 높아져 4·19혁명이 일어나게 됐다는 내용을 담았다. 3·15 부정선거는 이승만 전 대통령과 무관하다는 주장도 담겼다.

조선일보는 지난 6일 이승만 전 대통령에 관해 잘못 알려진 사실을 바로잡는 기사를 통해 영화 속 주장에 힘을 실었다. 잘못 알려진 사실은 △분단 책임자 △친일파 등용 △6·25 때 도망 △미제의 앞잡이 △독재자 △부정선거 원흉 등이다. 조선일보는 “독재 체제였다면 의회와 언론의 역할이 봉쇄돼야 했을 텐데 그런 일은 없었다”고 했고 “3·15 부정선거는 이기붕의 부통령 당선 공작으로, 이승만과는 무관했다”고도 했다. 

조선, 1995년 ‘거대한 생애 이승만’ 연재
보수정부 들어설 때마다 재평가 시도

조선일보와 보수정부가 이승만  전 대통령 재평가를 추진한 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1995년 시사저널 기사에 따르면 표면화된 이승만 재평가 작업의 시초는 당시 허문도 통일원 장관이 월간조선 1995년 1월호에 기고한 ‘거대한 인물 이승만 90년’ 글이다. 이승만 전 대통령을 부활한 모세에 빗대며 뛰어난 지도자라고 평가하는 내용이다. 직후인 1995년 1월 조선일보는 ‘거대한 생애 이승만’ 장기 연재를 시작하고 ‘이승만과 나라세우기 기획전’ 전시까지 열었다. 

▲ 영화 '건국전쟁' 스틸컷
▲ 영화 '건국전쟁' 스틸컷

참여정부 시절 전면에 등장한 뉴라이트 세력에 의해 재평가 작업은 박차를 가하게 된다. 2007년 11월 민간 차원의 ‘건국 60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가 발족한다. 박근혜 정부 때 방송통신심의위원장을 맡게 되는 박효종 서울대 교수가 공동위원장으로 참여했다. 추진위원에는 안병훈 전 조선일보 부사장, 류근일 전 조선일보 주필 등 조선일보 출신들이 참여했다. 이후 이명박 정부가 집권하면서 1948년 8월15일 대한민국 정부 수립일을 건국절로 제정하자는 주장과 이에 따른 논쟁이 이어졌다.

박근혜 정부 때인 2015년 이승만 전 대통령 50주기 행사에 참석한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이승만 대통령에 대한 평가도 성숙해져야 한다”며 재평가를 다시 공론화했다. 이정현 대표 체제의 새누리당은 건국절 법제화를 추진했다. 이 시기 조선일보는 ‘이승만 서거 50주년’ 특집연재 기사를 썼고 <건국 대통령 제대로 평가해야 우리 현대사가 바로 선다> 사설을 냈다. 이후 박근혜 정부가 추진한 역사 국정교과서에는 이승만 대통령의 외교 중심 독립운동과 교육정책에 대한 공헌, 한미상호방위조약 등을 성과로 담는다.

윤석열 정부 들어 다시 재평가에 박차를 가하게 된다. 국가보훈부가 2024년 1월 ‘이달의 독립운동가’로 이승만 전 대통령을 선정했다. 보훈부는 이승만 기념관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국방부는 이승만 전 대통령을 “혜안의 지도자”로 치켜세우는 정신전력교육 교재를 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광복절 경축사에서 ‘건국’을 강조했다. 

반공 보수 뿌리 내세우고 공 키우기

왜 이승만 전 대통령을 재평가 하려는 걸까. 이 작업은 보수세력의 뿌리찾기로 해석하는 견해가 있다. 1993년 김종필 민자당 대표는 이승만을 ‘기’, 박정희를 ‘승’, 김영삼을 ‘전’으로 놓는 기승전결론을 제시해 파장을 일으켰다. 

3당합당 이후 탄생한 김영삼 정부를 과거 독재정권과 이질적 세력이 아닌 연장선에 놓고 보며 ‘보수’의 기원을 정립하려는 시도라는 분석이다. 1995년 고성국 나라정책연구회 상임운영위원은 ‘이승만 되살리기’는 역사 재조명이 아니라며 “김영삼 정부를 길들이고 개혁을 보수와 수구의 틀 안에 가두어 놓겠다는 구체적인 목표를 가진 현실적 정치행위”라고 주장했다. 

▲ 2010년 7월19일 서울 동작동 국립서울현충원 현충관에서 열린 ‘우남 이승만 박사 45주기 추도식'에서 참석자들이 분향 후 고개를 숙여 묵념하고 있다. ⓒ 연합뉴스
▲ 2010년 7월19일 서울 동작동 국립서울현충원 현충관에서 열린 ‘우남 이승만 박사 45주기 추도식'에서 참석자들이 분향 후 고개를 숙여 묵념하고 있다. ⓒ 연합뉴스

재평가 시도가 건국절과 함께 논의된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도 있다. 1995년 조선일보 연재 기사엔 “자신의 건국기념일을 정부에서조차 제대로 기념하지 않는 나라”라는 언급이 있다. 뉴라이트 계열 인사들의 주장과 일맥상통한다. 건국을 중심에 놓고 반공을 핵심 기치로 강조하면 건국에 참여한 이들의 공이 커진다. 반면 사회주의 계열이나 남한 단독정부 수립에 반대한 독립운동가들은 배제된다. 때문에 뉴라이트의 건국절 주장은 반민족 행위를 합리화하기 위한 시도라는 의심을 받기도 한다.

독재 아니다? 4·19는 이승만 덕? 
보수도 동의 못하는 무리수 

이승만 전 대통령의 독립운동 행보가 축소됐다는 주장은 타당한 면이 있다. 대통령으로서 남긴 업적도 있다. 그러나 ‘과’를 가리긴 어렵다. 친일 청산작업을 하는 반민특위의 활동을 방해한 점, 제주 4·3의 비극을 초래한 점, 3·15 부정선거와 무수한 희생을 낳게 된 데 대한 책임은 지울 수 없다. 

‘건국전쟁’과 조선일보식 재평가는 ‘과’를 가리고 숨기는 정도를 넘어선다는 점에서 심각하다. ‘과’를 비틀어 ‘공’으로 둔갑시키거나 책임 소재를 떠넘긴다. 영화와 조선일보는 공통적으로 이승만 전 대통령이 장기집권을 했을뿐 독재자가 아니라고 항변한다. 종신 집권을 위한 정적 제거와 무리한 개헌 등은 이승만 전 대통령이 아닌 이기붕 부통령 책임으로 돌린다. 

‘건국전쟁’은 이승만 전 대통령이 교육 정책에 힘을 쏟은 결과 4·19 혁명의 발판이 됐다는 상식을 벗어난 주장까지 담는다. 헌법전문에 수록된 4·19 혁명이 이승만 전 대통령 영웅 만들기와 충돌할 수밖에 없기에 논리를 비튼 것으로 보인다.

‘건국전쟁’과 조선일보식의 무리한 재평가는 보수의 완전한 동의를 구하기 힘들다. 지난 14일 고정애 중앙선데이 편집국장대리가 쓴 중앙일보 ‘시시각각’ 칼럼은 ‘건국전쟁’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취사선택한 사실의 나열”이라며 “이 전 대통령의 공은 크게 증폭됐고 과는 크게 축소됐다. 이승만 정권은 놀라운 성취 못지않게 재난적 말로를 보였다”고 지적했다. 

현 여권 인사들도 이 정도 수준까지 재평가를 하려는 건 아니다. 국민의힘의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은 이승만 전 대통령 재평가를 말하면서도 사사오입 개헌에는 “비판을 하면 된다”고 했다. 안철수 의원 역시 공을 언급하면서도 “발췌개헌, 사사오입개헌 등 부정선거와 영구집권을 꾀하다 4·19 혁명으로 하야한 과가 있다”고 했다. 박근혜 정부가 만든 역사 국정교과서조차도 이승만 정권을 ‘독재’로 규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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