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권의 다큐멘터리 ‘건국전쟁’ 띄우기가 한창이다. 문화 콘텐츠를 놓고 이렇다할 정치 이슈를 만들어내지 못했던 여권 입장에선 ‘건국전쟁’ 흥행이 반가울 수밖에 없다.

실제 지난해 10월 이승만 일대기를 담았던 ‘기적의 시작’이라는 영화는 소리소문 없이 막을 내렸다. 시사회를 국회의원 회관을 빌려 여는 등 여권과 연계해 흥행을 노렸지만 실패했다.

그런데 ‘건국전쟁’이 지난 1일 개봉하고 누적 관람객수 40만 명을 넘어서면서 여권이 적극 호응하고 나섰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건국전쟁을 관람하는 등 여권 인사들이 릴레이 관람 후기를 내놓으면서 화제성이 증폭되고 언론 보도로 이슈가 확산 중이다.

특히 이승만 재평가에 운동권 청산 이슈가 끼어들면서 여야 공방 수위가 높아졌고, 윤석열 대통령까지 호평을 남기자 민주당이 “충격적”이라고 비판하면서 여야 대립 구도가 형성됐다.

결국 ‘건국전쟁’이 노리는 것은 이승만 재평가이고, 이를 통해 보수 진영에 득이 될지 여부가 핵심이다. 헌법 전문에 이승만을 쫓아낸 4.19 혁명 이념이 명시돼 있고, 제주 4·3 민간인 학살의 주범이라는 이승만의 과(過) 역시 동시에 언급될 수 밖에 없다. 반발 여론을 극복해야 이승만 재평가가 가능하다. 지지층 결집엔 효과적일 수 있지만 반대급부로 여권의 극우적 색채를 짙게 할 위험도 있다. 그럼에도 ‘건국전쟁’ 흥행에 반색하고 있는 것은 현재까지 보수의 아이콘이라고 할 수 있는 콘텐츠가 전무했기 때문이다.

▲ 다큐멘터리 '건국전쟁' 포스터.
▲ 다큐멘터리 '건국전쟁' 포스터.

나경원 전 의원이 15일 라디오에 출연해 한 말은 보수 진영이 ‘건국전쟁’ 흥행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 응축해서 보여준다. 나 전 의원은 “어떻게 보면 좌파들의 아주 집요한 그동안에 어떻게 보면 집요한 계속적인 비판이나 집요한 왜곡도 있었지만 우파들이 게을렀던 것도 있었다고 생각한다”며 “이제 나라가 좀 바로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우리의 역사, 우리 대한민국에 대한 정체성부터 바로잡는 것이 굉장히 중요한데요. 그런 목마름을 채워주는 다큐”라고 말했다.

이승만 재평가 움직임이 보수진영을 결집시켜 4월 총선에서도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라고 판단하겠지만 논쟁적 이슈인만큼 여론의 추이를 예단할 수 없다.

▲ 2020년 12월 당시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서울을 사수하겠다고 방송하고는 혼자서만 남쪽으로 갔던 이승만 대통령. 지도자의 책임 방기가 대표적 예”라고 말했다. 사진=JTBC 보도 화면.
▲ 2020년 12월 당시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서울을 사수하겠다고 방송하고는 혼자서만 남쪽으로 갔던 이승만 대통령. 지도자의 책임 방기가 대표적 예”라고 말했다. 사진=JTBC 보도 화면.

사실 과거 이승만의 공과에 대한 평가는 여권 내에서도 논쟁의 대상이었다. 대표적으로 지난 2020년 12월 당시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이승만에 대해 혹평하면서 파장이 컸다. 주 전 원내대표는 문재인 대통령이 백신 확보를 지시했다는 청와대 주장과 관련 “늘 중요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고구마처럼 침묵”하고 있다고 비판하면서 이승만 대통령에 비유했다. 주 전 원내대표는 “서울을 사수하겠다고 방송하고는 혼자서만 남쪽으로 갔던 이승만 대통령. 지도자의 책임 방기가 대표적 예”라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을 비판하기 위한 비유법이라고 하지만 여당 원내대표가 이승만을 ‘국민을 저버린’ 인물로 규정하자 여권 내에서도 논란이 됐다.

당시 우리공화당은 “보수정당이라는 국민의힘 주호영 원내대표는 역사를 왜곡하는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고 논평을 냈다. 이후 주 원내대표는 지난해 3월 원내대책회의에서 “이제 이승만 초대 대통령에 대한 합당한 재평가가 이뤄져야 할 시점이라고 생각한다”며 “집권 후반기의 커다란 잘못에도 불구하고, 이승만 대통령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기틀을 놓았고, 6·25 전쟁 승리로 이끌었으며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이끌어 냈다”고 말했다.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 지난 5일 ‘건국전쟁’을 관람하고 페이스북을 통해 “독립 운동과 대한민국 건국 주도, 북한의 침략을 막아내고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체결해 세계 10위권에 이르는 경제대국의 기반을 만든 공이 있다”면서도 “발췌개헌, 사사오입개헌 등 부정선거와 영구집권을 꾀하다 4·19 혁명으로 하야한 과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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