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승만 대통령(왼쪽)과 영화 ‘서울의 봄’ 포스터.
▲ 이승만 대통령(왼쪽)과 영화 ‘서울의 봄’ 포스터.

다큐멘터리 ‘건국전쟁’을 놓고 정치권 공방이 가열되고 있다. 지난해 전두환 신군부의 정권 찬탈 과정을 그린 영화 ‘서울의봄’이 흥행에 성공하자 야권은 현 정부의 검찰 독재 행태가 하나회와 비슷하다며 이슈 몰이에 나섰는데, 반대로 이승만 전 대통령 일대기를 그린 ‘건국전쟁’을 놓고 여권이 공세 소재로 적극 활용하는 모양새다.

앞서 ‘서울의 봄’을 놓고 윤석열 정부의 검찰 독재를 연상케 한다는 야권의 주장에 여권은 김영삼 정부에서 하나회를 해체한 공적이 있다고 맞서면서 신경전을 벌였다. ‘서울의 봄’은 전두환 쿠데타를 정면으로 조명하고, 3당 합당 이전의 민주정의당과 국민의힘의 연관성 때문에 여권에 절대적으로 불리한 내용이었다. ‘서울의 봄’이 흥행하면 할수록 윤석열 정부가 ‘오버랩’되는 효과를 내면서 여권은 ‘서울의 봄’을 애써 무시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런 가운데 이원석 검찰총장과 대검찰청 간부들이 지난해 12월 ‘서울의 봄’을 관람하면서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검찰총장이 여야의 갈등 한복판에 뛰어든 꼴이 됐기 때문이다. 이원석 검찰총장은 영화 관람 후 “우리가 누리는 민주주의는 국민 모두의 희생과 노력으로 어렵게 이룩한 것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아야 하며, 법치주의를 지키는 검찰의 역할을 다해야 한다”고 말했고, 대검은 이 총장이 사법연수원 시절 구속된 전두환과 노태우 공판을 방청하고 기고한 글까지 소개했다. 이 총장은 “전두환 씨가 아닌 다음 세대에게 외쳐야 한다. ‘성공한 내란도 반드시 처벌받는다’”고 썼다. 여권에선 이원석 검찰총장의 서울의봄 관람에 불편하다는 얘기까지 흘러나왔다.

▲ 영화 '서울의 봄' 갈무리.
▲ 영화 '서울의 봄' 갈무리.

더불어민주당이 ‘대한민국에 봄이 오려면 총선에서 승리해야 한다’는 발언을 내놓는 등 영화 ‘서울의 봄’을 적극 활용했다면, 여권은 다큐멘터리 ‘건국전쟁’ 흥행에 반색하며 반격을 가하는 모양새다. 현재 ‘건국전쟁’ 누적 관객 수는 30만 명을 넘어섰다. 다큐멘터리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례적인 흥행으로 볼 수 있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12일 건국전쟁을 관람하면서 대중의 관심도 집중됐다.

한 위원장은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대한민국이 여기까지 오게 되는데 굉장히 결정적인, 중요한 결정을 적시에, 제대로 하신 분”이라며 “한미상호방위조약과 농지개혁이 없었다면 대한민국은 지금과 많이 달랐을 것”이라고 말했다. ‘건국전쟁’에선 한 위원장이 법무부 장관 시절 이승만의 ‘업적’을 평가하는 연설을 한 장면이 나오는데 여권 지지층 결집에 활용할 가능성도 있다. 언론이 일제히 ‘여당의 건국전쟁 띄우기’로 타이틀을 달고 보도한 것도 이런 배경을 깔고 있다.

이승만 정권에 대한 평가도 공방의 중심에 섰다. 홍익표 민주당 원내대표가 12일 라디오에 출연해 “(한동훈 위원장이 제기한 운동권 청산론) 이게 꼭 마치 해방 이후에 이승만 정권에서 독립 운동을 했던 사람들에 대한 청산론하고 비슷한 것 같다”고 주장하자 한동훈 위원장은 13일 “그분들(독립운동가)이 돈봉투 돌리고, 재벌한테 뒷돈 받고, 룸살롱 가서 여성 동료에게 쌍욕 했나”라고 비꼬았다.

▲ 다큐멘터리 '건국전쟁 포스터.
▲ 다큐멘터리 '건국전쟁 포스터.

한미 정재계 인사들이 건립 추진 모임을 발족하고, 주미 한국대사관 앞에 이승만 동상을 세우는 계획이 알려진 가운데 이승만에 대한 우호적인 재평가가 이뤄져야 동상 건립이 탄력을 받을 수 있는 상황에서 ‘건국전쟁’ 흥행은 호재(好材)가 될 수 있다. 시민사회는 헌법 전문에 불의(不義)에 항거한 4·19 민주이념이 명시돼 있다며 부정 선거를 일으킨 이승만을 동상으로 세우는 건 헌법 부정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여권은 ‘건국전쟁’ 이슈를 선점한다는 계획이다. 여권 관계자는 “‘서울의 봄’ 당시 여권을 향한 민주당의 공세가 얼마나 심했나”라며 “지금은 오히려 민주당이 ‘건국전쟁’ 붐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난감한 상황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어떠한 대통령이든 공과가 있는 상황에서 이승만 전 대통령의 공을 과감하게 인정해도, 보수우파 진영의 과몰입으로 몰아가도 공격받는 건 결국 민주당일 것”이라며 “국민의힘은 ‘건국전쟁’에 나오는 있는 그대로의 역사적 사실과 현상을 국민들과 함께 소통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런 가운데 최근에는 넷플릭스 시리즈 ‘살인자ㅇ난감’도 정치권 공방의 소재로 떠올랐다. ‘살인자ㅇ난감’에 등장하는 ‘형정국’이라는 인물은 비리를 저지르는 건설회사의 회장으로 나온다. 영화에서 형정국이 백발에 안경을 끼고 있어 생김새가 이재명 민주당 대표와 비슷하다는 얘기부터 형정국의 죄수번호 4421번이 대장동 개발사업 시행사가 챙긴 수익 4421억원과 숫자가 같다는 내용까지 논란이 됐다. 넷플릭스 측은 특정 인물과 관련이 없다는 입장을 냈지만 이재명 대표를 흠집내기 위해 원작에 없는 내용을 연출했다고 비난하거나 반대로 이 대표를 풍자한 것이라는 주장이 대립 중이다.

백지원 전 국민의힘 선대본부 상근부대변인은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횡령 비리와 초밥, 4421과 ‘형지수’라는 이름으로 누구를 연상하든, 사고의 회로까지 통제할 수는 없는 것”이라며 “문화계의 좌편향 강요도 이제 시정되길 바란다”고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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