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파 방송사들의 프로그램 폐지 결정이 연일 시청자들의 비판을 받고 있다. SBS 장수 시사교양 프로그램 <순간포착 세상에 이런 일이>가 폐지 위기에 놓이자 시사교양본부 PD들이 반발 성명을 냈고 시청자 게시판에 폐지를 반대하는 글이 빗발쳤다. 앞서 KBS 2TV 예능 <옥탑방의 문제아들>, <홍김동전> 폐지가 결정된 뒤 이를 반대하는 시청자청원, 트럭시위 등이 이어졌다.

‘시청률이 낮아도 필요하다’는 시청자 목소리에 현장 제작진의 심경은 복잡하다. 미디어오늘은 지난 19일부터 23일까지 총 5명의 지상파 방송사 시사교양, 예능부서 제작진 등을 전화로 인터뷰했다. 

▲ KBS앞 '홍김동전' 폐지 반대 트럭 시위 모습. 사진=금준경 기자
▲ KBS앞 '홍김동전' 폐지 반대 트럭 시위 모습. 사진=금준경 기자

지상파 프로그램의 유일한 수입원 ‘광고’…평가 기준은 여전히 ‘시청률’

방송사 구성원들은 지상파 방송사에서 프로그램으로 수익을 낼 수 있는 독보적 요소는 여전히 ‘광고’라고 입을 모았다. A씨(KBS 제작부서 소속)는 “프로그램 전, 후, 중간 광고 등이 수익을 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변화한 미디어 환경에서 광고주들이 지상파에 투자할 동력이 줄고 있는 현실이다. A씨는 “광고가 유튜브나 OTT로 투자되면서 (방송) 광고 양 자체가 줄어들었다. 주말 프로그램이 아니면 기본적으로 광고가 안 붙는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B씨(SBS 예능PD)도 “사기업 입장에서 SBS는 프로그램을 만들수록 마이너스”라며 “프로그램을 유지하기 위해 단순히 시청자의 사랑만이 아니라 다른 돌파구를 찾아내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B씨는 “콘텐츠 시장 경쟁이 더 치열해지니까 투자자들 입장에선 투자할 곳이 다양해졌다. 협찬을 할 때도 유튜브에선 심의가 걸리지 않은 상태에서 브랜드나 이름이 다 노출될 수 있다”며 “내가 협찬주라고 해도 지상파 방송사에 마케팅 비용을 투자하는 게 이익이 있는지 의구심이 든다”고 말했다. 

▲ KBS 예능 프로그램 '홍김동전'. 2024년 1월18일 방송을 끝으로 폐지됐다. 사진=KBS 홈페이지 갈무리. 
▲ KBS 예능 프로그램 '홍김동전'. 2024년 1월18일 방송을 끝으로 폐지됐다. 사진=KBS 홈페이지 갈무리. 

광고와 연동되는 시청률 역시 지상파 프로그램의 주된 평가 기준으로 남아 있다. C씨(시사교양 PD)는 “전통적으로 시청률로 판단해오기도 했고 다른 객관적 기준을 마련하기 어렵기도 하다”며 “워낙 다양한 방식으로 사람들이 미디어를 소비하기 때문에 일률적 기준을 만들기가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D씨(SBS 시사교양 PD)도 “시청률이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다는 건 공감하지만 그럼에도 가장 객관적 지표가 아닌가 생각하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B씨는 “2049세대 위주로 (시청률을) 중요하게 본다. 2%가 넘으면 잘 된 거고, 1%는 넘어야 나쁘지 않은 점수”라며 “전체 시청률이 높아도 2049세대 시청률이 낮으면 광고가 안 붙는다. 협찬주들은 이 세대의 시청률을 높게 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정작 2049세대는 유튜브, OTT 이용 비중이 높다는 딜레마도 있다. A씨는 “<홍김동전>도 2049세대를 잡겠다고 런칭했는데 1년이 지나는 시간 동안 시청률 반향이 없다고 생각해 폐지하게 된 것 같다”고 말했다. 

변화한 환경에선 SNS상 ‘화제성’도 또 하나의 주요 기준이다. D씨는 “SNS에서 얼마나 언급되는지로 판단하는 경우도 많다”며 “광고를 구매하는 기업도 정확한 시청률을 반영하거나 프로그램 완성도를 반영하기보다 그 시기 가장 많이 회자되는 프로그램에 광고를 넣어야 한다는 식의 의사결정이 이뤄지고 있다”고 말했다. 

▲ OTT 플랫폼. ⓒ미디어오늘
▲ OTT 플랫폼. ⓒ미디어오늘

그러나 OTT 순위 등 호응이 곧바로 수익으로 연결되기 어려운 현실이 <홍김동전> 사례에서 단적으로 드러났다. <홍김동전>은 지난 1월1일 기준 OTT 플랫폼 ‘웨이브’에서 KBS 비드라마 30주 1위를 달성했고 지난해 10월 KBS 드라마·비드라마 통합 1위를 기록했다. A씨는 “OTT에서 해당 프로그램을 보는 시간이 눈에 띄게 길거나 하면 프로그램 성과 지표로는 인정해 주지만, 플랫폼 가입자가 늘어났다고 해도 프로그램 재원이 되는 구조는 아니다. 화제성이 높다는 정도로 밖에 표현이 안 된다”고 말했다.

KBS의 경우 고질적 지배구조 문제에 수신료 분리징수로 인한 재정위기가 급속화로 정상적 논의가 어려운 환경이다. A씨는 “상징성 측면에서 만들어야 하는 프로그램이 분명히 있는데 그걸 만들지 못하면 KBS만의 차별점이 더 없어져서 경쟁력 저하로 이어질 것”이라고 우려한 뒤, 대규모 구조조정이 전망되는 현실에서 공영적 콘텐츠 제작은 “다른 나라, 다른 차원에 사는 사람 이야기처럼” 들리게 됐다고 했다. 그는 “다들 무력감을 느끼고 있다”며 “암울하다”는 분위기를 전했다.

E씨(KBS 제작부서 소속)는 “지금 KBS는 완전한 수신료 분리고지를 해야 하고, 매달 수익이 팍팍 떨어지고 있다”며 “콘텐츠 회사로서 지위보다는 당장의 목숨이 달려 있는 상황”이라고 했다. 그는 “수신료 분리징수 강행의 파장에 따라 공영방송에서 웃음을 담당하고 엔터테인먼트를 담당하는 콘텐츠들이 가장 먼저 타격을 입게 된다. 투자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이라며 “정치적 사태로 좋은 콘텐츠를 만들 수 있는 역량이 점점 깎이는 상황이 조직원으로서는 되게 안타깝고 걱정이 많다”고 했다.

▲ SBS 시사교양 프로그램 '순간포착 세상에 이런 일이'. 사진 출처=SBS '세상에 이런 일이' 홈페이지.
▲ SBS 시사교양 프로그램 '순간포착 세상에 이런 일이'. 사진 출처=SBS '세상에 이런 일이' 홈페이지.

“‘수익성’ 세 글자 앞에서 어떤 논리도 다 무너져”…새로운 기준·전략 필요

방송사 제작 현장에선 프로그램 존폐를 수치로만 결정해선 안 된다는 요구가 나온다. C씨는 <세상에 이런 일이> 폐지를 두고 “시사교양 프로그램의 존재 이유가 무조건적인 수익성의 추구는 아니다. 일반 시청자들의 목소리를 듣고 소외된 사람들 이야기를 듣는 의미도 있다”라며 “단순히 시청률로 보면 시사교양 프로그램이 얼마나 존재할 수 있을까”라고 되물었다. 

A씨도 “KBS <다큐 3일>이 폐지될 때도 비슷했다. 오랜 시간 프로그램을 유지해 온 건 그 프로그램만의 저력과 색깔이 분명히 있기 때문”이라며 “수익성이란 세 글자 앞에서 어떤 논리나 근거도 다 무너지는 것 같다”고 현 상황을 우려했다. 

E씨는 <홍김동전> 폐지 관련 시청자들의 강한 반발에 대해 “시청률이 단순히 안 나온다고 사람들이 방송을 안 본건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시청률 1% 밖에 안 나오는데 이렇게 시끄럽다고 놀랄 수 있겠지만, 시청자들이 예전만큼 TV를 보진 않아도 다양한 미디어를 통해 훨씬 집중해서 콘텐츠를 소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 답변 요건을 충족한 KBS 시청자청원 일부.
▲ 답변 요건을 충족한 KBS 시청자청원 일부.

프로그램을 살릴 전략을 적극적으로 모색할 필요성도 제기된다. C씨는 “OTT와 유튜브 강세로 기존 시청률, 평판은 당연히 영향을 받을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만의 강점이 뭔지를 찾는 전략이 중요하다”며 “그런 점에서 시사교양 프로그램의 강점이 크다고 보이기도 한다. 자극적 콘텐츠는 유튜브에서 얼마든지 만들 수 있지만, 다큐멘터리, 특집 시리즈물 등 교양 콘텐츠는 다른 매체에선 만들기 어려운 부분이다. 그간 우리가 쌓아온 노하우를 바탕으로 충분히 신선한 콘텐츠를 제작할 수 있다”고 말했다. 

B씨도 “고민 없이 돈 안 되니 없애자는 게 과연 시청자들과 제작진들에게 맞는 행보일까. 더 열어놓고 제작진과 소통하는 과정이 있었어야 한다”고 지적한 뒤 “이젠 변화된 시장에 적응해야 한다. 예능본부 분사로 인한 SBS의 ‘스튜디오프리즘’ 독립도 아마 변화된 시장에 적응하기 위한 형태일 것이다. 앞으로 어떻게 해나가는지 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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