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오전 서울 양천구 방심위에서 열린 전체회의를 마치고 입장 발표를 위해 이동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유진, 윤성옥, 옥시찬 위원. ⓒ연합뉴스
▲12일 오전 서울 양천구 방심위에서 열린 전체회의를 마치고 입장 발표를 위해 이동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유진, 윤성옥, 옥시찬 위원. ⓒ연합뉴스

여권 추천 방송통신심의위원 주도로 야권 추천 위원에 대한 ‘해촉건의’가 의결되자 야권 추천 위원들이 “위원장 ‘민원사주’ 의혹에 대한 진상 규명을 못 하게 하려는 것”이라며 “위원회를 통한 정부의 언론 검열·통제가 가능한 상황이 됐다”고 반발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 노동조합도 “사상 초유의 상황”이라고 우려했다.

12일 열린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통심의위) 전체회의(임시)에서 여권 추천 위원 주도로 옥시찬·김유진 위원(문재인대통령 추천)에 대한 해촉건의가 의결되자 야권 추천 위원 3인(옥시찬·김유진·윤성옥)은 서울 목동 방송회관 17층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부당함을 호소했다.

김유진 위원은 “진상 규명에 대한 요구에 대한 언급 자체를 못하게 하기 위해 무리한 일을 밀어붙이는 게 아닌가 싶다. 류희림 위원장이 정말 이 의혹에 대해 두려워하고 있는 것 같다”며 “명분과 논리로 설득하지 못하고 사람을 잘라야만 회의를 운영할 수 있다면 류희림 위원장은 이미 실패한 사람”이라고 했다.

해촉건의 의결 과정에 대한 문제 제기도 나왔다. 김유진 위원은 “회의 진행 방식에 대해 더 충격을 받았다”며 “지난번 1차 전체회의(1월8일) 때 류희림 위원장의 ‘청부민원’ 의혹에 관한 건 말고도 여러 안건이 있었는데 오늘 새롭게 열린 회의에서 그 안건들이 사라지고 저와 옥시찬 위원에 대한 해촉건의 결의안만 통과가 됐다”고 했다.

김 위원은 이어 “회의 비공개 여부를 논의하는데 거수로 결정해 야권 위원들은 의견을 밝힐 수도 없었다. 이후로도 발언권이 심각하게 제압됐다”며 “기타 안건에서 몇 가지를 좀 지적하고 싶어서 안건으로 올리겠다고 했으나 처음에는 보장해준다고 해놓고 기타 안건 없이 일방적으로 회의가 끝났다”고 말했다.

▲ 서울 양천구 방송회관 17층에서 기자회견하고 있는 방통심의위원들. 왼쪽부터 윤성옥, 옥시찬, 김유진 위원. 사진=박재령 기자
▲ 서울 양천구 방송회관 17층에서 기자회견하고 있는 방통심의위원들. 왼쪽부터 윤성옥, 옥시찬, 김유진 위원. 사진=박재령 기자

류희림 위원장은 지난 8일 전체회의 당시 ‘민원신청 사주’ 관련 안건 비공개 여부 표결에 참여해 ‘비공개’ 결정한 바 있다. 김유진 위원과 달리 표결에 참여해 ‘당사자가 회피하지 않았다’는 비판이 일었다. 윤성옥 위원은 “해촉을 하더라도 해촉 절차를 잘 지켰어야 한다”며 “모욕죄든 폭행죄든 법률 검토가 반드시 있었어야 했다. 이번 회의는 일부 위원들의 주관적 평가나 감정을 통해 의결됐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번 해촉의 근거는 ‘폭력행위’와 ‘비밀유지의무 위반’이다. 지난 9일 방송소위에서 류희림 위원장에게 욕설을 한 옥시찬 위원(폭력행위)과 지난 3일 여권 추천 위원 4인의 불참으로 무산된 전체회의 이후 기자간담회를 열어 회의 안건을 공개한 김유진 위원(비밀유지의무 위반)에 대한 해촉이 건의됐다. 현장에 있던 방통심의위 관계자에 따르면 모 위원은 김 위원의 ‘비밀유지의무 위반’이 수능 출제 문제 유출과 동일하다고 주장했다.

옥시찬 위원은 욕설소동에 대해 “순간적으로 감정을 다스리지 못하고 막말을 쓴 것은 변명의 여지가 없이 잘못된 일”이라면서도 “그것과 별개로 류희림 위원장의 ‘청부심의’ 사건은 이해충돌방지법 위반이 자명하다. 제 개인의 실수를 가지고 국면전환을 시도하고 있지만 류희림 위원장이 유발한 사태의 본질은 결코 달라질 수 없는 것”이라는 입장을 냈다.

김유진 위원은 “지난 3일 기자간담회에서 저희가 (안건으로) 발의했던 내용들을 페이퍼로 드렸다. 기자분들이 많이 오셔서 말로 하면 전달이 안 될 것 같아 출력한 것이고 사무처에서 만들었던 공식적인 자료가 아니었다”며 “제가 작성했던 것인데 그게 비교해보니 회의 자료 내용과 똑같더라. 그래서 회의 자료를 유출한 것이라는 주장”이라고 설명했다.

김 위원은 “기본적으로 (회의) 안건은 다 공개가 된다. 그 안건을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과정에서 제가 편의상 자료를 제공한 것인데 그게 어떻게 비밀 유지 의무 위반인가”라며 “‘회의 진행을 방해했다’는 근거도 있었는데 지난 9일 제가 의사진행 발언으로 위원장 사퇴를 요구하고 회의 참여를 하면 안 된다고 얘기한 것이다. 제 의견을 짧게 표현한 것이 ‘회의진행 방해’인지 이후에 회의록이 나오면 기자님들이 평가해달라”고 말했다.

▲ 5기 방송통신심의위원 명단. 괄호 안은 추천 기관, 방통심의위 제출 자료 참고. 디자인=안혜나 기자
▲ 5기 방송통신심의위원 명단. 괄호 안은 추천 기관, 방통심의위 제출 자료 참고. 디자인=안혜나 기자

전체회의 의결에 따라 윤석열 대통령이 해촉을 재가하게 되면 방통심의위 위원 구성은 여야 4대1 구조가 된다. 여권 위원 2인만으로 운영된 방송통신위원회처럼 ‘합의제 기구 정신에 어긋난다’는 지적이 가능하다. 이번 건 이외에도 윤석열 대통령 취임 이후 이미 야권 추천 위원 3인이 연달아 해촉됐다.

윤성옥 위원은 “이런 방식으로 위원을 해촉할 수 있는 제도라면 앞으로도 위원회가 독립적이고 공정한 심의 업무가 불가능할 것이다. 정부가 언제든 방통심의위를 통해 언론 검열이나 통제가 가능한 상황”이라며 “집권 여당이 언론을 통제하고 싶어 이런 상황들이 발생한다고 보는데 이 시대에는 사실 그런 방식으로 여론이 조작되거나 왜곡되지는 않을 거라고 본다. 최근 대통령 ‘지각체크’ 유튜브 영상이 차단됐는데 이런 일이 반복되면 다양한 방식으로 사회적 저항이 일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김준희 전국언론노동조합 방통심의위지부장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상식적으로 말이 되는 이야기인가하는 싶어 해촉 의결 가능성이 처음엔 높다고 보지 않았다”며 “이렇게 일방적으로 해척 건의가 의결된 것을 보고 전면적인 위원장 퇴진 투쟁에 나설 수밖에 없게 됐다고 생각한다. (위원장이) 적반하장으로 공익제보자를 처벌하겠다 하고 문제 제기하는 야권 추천 위원들의 해촉을 건의하는 건 방통심의위 사상 초유의 상황”이라고 말했다.

현재 최선영 연세대 커뮤니케이션대학원 객원교수(전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 비상임이사)와 황열헌 인천공항시설관리 사장이 해촉된 정민영 위원, 이광복 부위원장 후임으로 각각 추천돼 있지만 윤석열 대통령은 2개월 이상 임명을 미루고 있다. 방통위법 시행령 7조에 따르면 방통심의위 위원에 결원이 생길 시 30일 이내 보궐위원을 위촉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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