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통신위원회가 인터넷 언론 등에 대한 ‘가짜뉴스 심의’ 법적 근거로 작성한 보고서가 ‘가짜뉴스’ 개념을 혼용하고 관련 판례를 선택적으로 발췌·인용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방통위는 이를 지적한 KBS 보도가 정부 정책의 취지를 오도한 것이라며 반박하고 나섰다.

KBS는 지난 2일부터 방통위의 ‘가짜뉴스 근절 추진현황 및 법적근거’ 보고서를 분석한 보도를 이어가고 있다. 첫 기사에서 KBS는 “언론학자들은 방통위가 (가짜뉴스) 용어와 개념 정의를 혼용하고 있다며 제시한 개념대로라면 ‘허위조작정보’(disinformation)가 맞는 용어라고 지적했다”면서 “지난 9월26일 내부 반발 속에 ‘가짜뉴스 심의전담센터’를 출범한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불과 한 달도 안 돼 슬그머니 간판을 갈아 끼웠다”라고 했다. [관련기사/KBS: “용어는 오락가락, 근거는 발췌 편집”…방통위 보고서 살펴보니 [가짜뉴스]①]

KBS는 방통위가 ‘가짜뉴스’ 심의를 할 수 있는 근거로 인용한 판례들이 과잉 해석되거나 일부만 발췌·인용됐다고 지적했다. 먼저 2009년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방통위 설치법 21조4항 “건전한 통신윤리의 함양을 위해 필요한 사항”을 들어 포털 게시글 삭제를 요청, 작성자가 해당 조항 위헌 여부를 헌법재판소에 심판해달라고 신청해 헌재가 합헌 결정한 사례다. 방통위 보고서는 “(헌재가) 정보통신 영역의 빠른 변화속도 등을 감안하여 ‘건전한 통신윤리’라는 포괄적 개념으로 통신심의 범위를 규정할 수 있다고 판시”했다고 썼다.

▲KBS 뉴스 홈페이지 갈무리
▲KBS 뉴스 홈페이지 갈무리

그러나 KBS는 “헌재 결정이 ‘건전한 통신윤리 함양에 필요한 사항’에 대해 아무런 제한 없이 심의가 허용된다는 뜻은 아니”(김보라미 법무법인 디케 변호사)고, “‘건전한 통신윤리’를 확대·유추 해석하는 것은 '범죄와 형벌은 법률로 정해져야 한다'는 죄형법정주의 원칙에 위반될 수 있다”(최우정 한국언론법학회 부회장)는 법률전문가들 의견을 들어 방통위 판례 인용의 문제를 지적했다.

2008년 ‘미네르바’로 활동했던 인터넷 논객 박아무개씨가 검찰이 본인 구속기소 근거로 제시한 전기통신법 제47조1항에 대해 헌법소원을 제기해 위헌 결정이 난 사건의 판례도 잘못 인용됐다는 지적이다. 방통위 보고서는 “(헌재가) 일정한 범위의 명백한 허위통신에 대하여는 통상의 표현행위보다 엄격한 규제를 할 필요가 있어 과잉금지원칙에 반하여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볼 수 없다 판시”했다고 썼다.

그러나 KBS는 “재판관 가운데 7명은 위헌이라고 판단했고 2명은 합헌 의견을 냈는데 방통위가 주목한 건 해당 조항을 위헌으로 결정한 ‘다수’ 재판관 의견이 아니라 ‘소수의견’이었다”며 “방통위가 국무회의에 제출한 자료에는 당시 헌재의 위헌 결정 사유와 위헌이라고 판단한 재판관 7명의 의견은 찾아볼 수 없다”고 했다.

▲이동관 방통위원장. ⓒ연합뉴스
▲이동관 방통위원장. ⓒ연합뉴스

이 같은 보도에 대해 방통위는 3일 “KBS 가짜뉴스 관련 보도는 정부의 가짜뉴스 근절정책의 취지를 오도한 것”이라는 제목으로 보도설명자료(링크)를 냈다.

방통위는 먼저 ‘가짜뉴스’ 개념과 정의가 혼용되고 있다는 지적에 “보고서에 담긴 가짜뉴스의 사회적 개념은 ‘가짜뉴스 근절 추진’ 정책을 설명하고 일반 국민의 이해를 도모하기 위해 익숙하고 직관적인 표현을 사용한 것으로 해외사례, 학계에서 논의되는 개념을 정리한 것”이라는 원론적 입장을 냈다.

방통위 설치법령을 끌어와 심의 근거로 삼았다는 지적에 대해선 “(헌재 결정문은) 심의 대상이 되는 정보를 ‘정보통신망법에서 금지하는 정보’ 뿐만 아니라 ‘이와 유사한 정보’까지로 적시하고 있어 방통위 설치법령에 따른 심의가 명확성의 원칙에 반한다고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미네르바 사건’ 관련 전기통신법 제47조제1항 위헌 결정에서 소수의견만 따왔다는 대목을 두고는 “위헌 결정은 허위사실의 표현이 법률로 제한될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하고 있어 방통위 보고서가 헌법재판소 결정 취지를 왜곡한 것이 아니다”라며 “헌법재판관 다수(5인)의 보충의견으로 ‘허위사실 표현’도 헌법 제21조가 규정하는 언론 출판의 자유의 보호영역에는 해당하되, 다만 헌법 제37조제2항에 따라 국가 안전보장 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해 제한할 수 있는 것이라고 해석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고 밝혔다. 결정 요지를 두고 보충의견이나 소수의견을 발췌해 근거 삼은 것이 합당한가라는 의문 등에 대해선 명확한 설명이 없었다.

KBS 보도본부는 3일 방통위 자료에 대한 입장을 묻는 질의에 “가짜뉴스 문제에 대해선 지속적인 취재를 통해 후속 보도를 이어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한편 KBS는 이날 이어진 보도에서 방통심의위가 ‘뉴스타파’의 ‘김만배-신학림 인터뷰 보도’를 시작으로 인터넷 언론 심의에 나선 것을 두고 “‘비영리 민간단체’인 뉴스타파는 방심위 심의를 받을 필요가 없다”며 “전문가들은 비영리 기관이 아닌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인터넷 신문이라도 정보통신망법이 아닌 신문법의 적용을 받아야 한다고 말한다”고 했다. [관련기사/KBS: 비영리 민간단체 ‘뉴스타파’는 방심위 심의대상일까? [가짜뉴스]②]

방통위는 해당 보도에 대해서도 보도설명자료(링크)를 내고 “‘인터넷 신문 등’의 기사도 정보통신망을 통해 일반에게 공개되어 유통되는 정보에 해당하므로 방심위의 통신 심의 대상”이라며 “비영리 민간단체라 하더라도 전기통신사업법 제22조에 따라 과기정통부에 2014년 12월11일 최초 신고한 전기통신사업자이므로 정보통신망법상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라고 주장했다. 그간 방통심의위는 홈페이지에서 ‘통신심의 신청시 유의사항’으로 “언론사 등의 언론보도(방송, 신문, 정기간행물, 뉴스통신, 인터넷신문 등)”는 심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고 밝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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