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이재학 CJB청주방송 PD 부당해고의 직접 책임자가 위증 혐의로 법정에 섰다. 이재학 PD 직속 상관으로 그의 PD 직책과 프로그램 제작 사실을 알고도 법정에서 수차례 허위 진술한 혐의다.

청주지법 형사5단독 정우혁 부장판사는 지난 1일 하아무개 CJB청주방송 국장의 위증 사건 첫 공판을 진행했다. 앞서 청주지검은 지난 7월18일 고 이재학 PD 부당해고의 직접 책임자인 하아무개 전 기획제작국장을 위증 혐의로 기소했다.

▲이재학 PD 영정사진.
▲이재학 PD 영정사진.

하 전 국장은 2018년 이재학 PD가 부당해고를 당하고 제기한 근로자지위확인 소송에서 회사 측 증인으로 출석해 자신의 기억에 반해 이재학 PD가 자사에서 PD로 근무한 사실을 부정하는 진술을 한 혐의를 받는다. 하 전 국장은 이 PD가 기획제작국 회의에서 스태프 인건비를 올려달라고 말하자 즉각 구두로 해고 통보한 당사자이기도 하다.

검찰은 하 전 국장이 이재학 PD를 ‘PD’로 불렀음에도 이를 부인하고 ‘이재학’ 또는 ‘이재학씨’라고 불렀다고 답변한 것을 위증으로 판단했다. 하 전 국장이 이 PD가 ‘아름다운 충북’과 ‘쇼! 뮤직파워’ 등 청주방송 프로그램을 연출(PD)했음을 알고도 법정에서 ‘VJ’ 역할을 했다고 허위 진술한 점도 혐의에 포함했다.

또 이재학 PD는 2018년 4월 청주방송 기획제작국 조간회의에서 스태프 인건비 증액을 요청한 뒤 그 자리에서 하 전 국장으로부터 해고 통보를 받았는데, 법정에서 하 전 국장은 이 PD가 회의에 참여한 적이 ‘절대 없다’고 주장했다. 또 이 PD가 다수의 지역축제 프로그램을 제작하고 중계한 사실을 ‘모른다’고도 부인했다. 검찰은 이 PD의 직속 상관인 하 전 국장이 기억에 반해 이같이 허위 진술을 했다고 판단했다.

이날 재판에는 검사와 하아무개 전 국장, 대리인 변호사(법무법인 동인), 위증 피해자인 고 이재학 PD의 동생 이대로씨와 대리인 이용우 변호사(법무법인 창조)가 참석했다.

하 전 국장 측은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정 판사가 혐의를 인정하는지 묻자 하 전 국장 대리인은 혐의를 전부 부인한다고 밝혔다. 검사가 증인 2명을 증인으로 신청해 2차 공판에서 증인신문을 진행하기로 했다.

“유서·동료증언·진상조사로 확인돼도…반성 없어”

하 전 국장의 위증 혐의를 묻는 재판은 그가 법정에서 해당 증언을 한 지 4년 만에 열렸다. 이 PD가 숨진 지 3년 9개월 만이다. 이 PD는 사망 전 남긴 유서에 “억울해 미치겠다. 모두 알고 있지 않을까? 왜 그런데 부정하고 거짓을 말하나”라는 말을 남겼다.

법정에서 재판을 지켜본 고 이재학 PD의 동생 이대로씨는 통화에서 “그의 위증으로 인해 모든 사달이 났다. 형이 가장 억울해하고 참담해했던 지점이자 형이 죽음을 선택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10년 넘은 동료, 특히 직속 상관이던 하아무개 전 국장이 법정에 나와 눈앞에서 그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고 거짓으로 그를 대하는 것을 보고서였다. 그리고 재판 흐름이 그 위증을 따라 흘러가는 과정을 보면서였다”고 했다.

이씨는 “이는 형의 유서, 가장 친한 형의 청주방송 동료들의 증언, 사건에 대한 진상조사보고서에도 담겨 있는 만큼, 하씨가 일부라도 인정하지 않을까 싶었다. 그러나 재판정에서 하씨에게 반성의 기미가 전혀 없음을 느꼈다. 너무나도 뻔뻔한 모습이라, 위증에 대해 책임을 지우는 엄벌을 요청한다고 강조하고 싶다”고 했다.

▲고 이재학 CJB청주방송 PD가 스태프들과 청주방송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모습. ‘CJB 청주방송 이재학 PD 사망 진상규명, 책임자처벌, 명예회복,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위한 대책위원회(청주방송 故이재학PD 대책위)’
▲고 이재학 CJB청주방송 PD가 스태프들과 청주방송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모습. ‘CJB 청주방송 이재학 PD 사망 진상규명, 책임자처벌, 명예회복,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위한 대책위원회(청주방송 故이재학PD 대책위)’

이씨는 이 재판이 이재학 PD 사건뿐 아니라 앞으로의 재판에도 큰 선례라고 강조했다. “이번 사건을 바로잡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리뿐 아니라 다음 비정규직들이 싸우는 과정, 고통 받는 비정규직들을 위해 반드시 판례로 남아야 한다. 사측의 위증은 만연하고 그로 인해 피해자들이 받는 피해의 크기와 깊이는 어마어마하며 특히 이 사건은 그 피해가 노동자의 사망까지 이르렀다는 점에서 중대하게 봐야 한다.”

하 전 국장은 3일 혐의와 관련한 입장을 묻는 전화와 메시지에 응하지 않았다.

노동사건서 사측 위증 기소 흔치 않아

이번 사건은 방송노동 사건에서 검찰이 방송사 책임자의 허위 증언에 형사 책임을 묻는 첫 사례로 꼽힌다. 노동계 전체로 넓혀도 노동 사건에서 사측 증인의 위증이 재판에 넘겨진 경우는 이례적이다.

김유정 전국금속노동조합 법률원장은 “사측 증언에 위증죄로 재판이 이뤄지는 사례는 정말 찾기 힘들다”고 말했다. “재판에 나와 사측 책임자가 한 거짓말을 규명하려면 진실을 밝혀야 하는데, 보통 노동 사건에서 증거가 다 사측에 편제돼 있다. 사측이 가진 증거가 공개되는 일은 어떤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너무나 어렵다”는 것이다.

김 원장은 “사측이 이런 사정을 이용해 재판에서 위증을 많이 하는 것도 현실”이라며 “그만큼 흔하지 않은 사례이기에 검찰이 수사해 위증으로 기소한 경우는 ‘빼도박도’ 못할 증거가 확인됐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가깝게는 지난 3월 대법원이 삼성 해고노동자를 ‘MJ(문제) 사원’으로 지칭한 사실이 없다고 재판에서 위증한 임봉석 삼성중공업 상임고문에게 실형을 확정했다.

2차 공판은 오는 12월6일 오후 4시 청주지법 423호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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