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석희 전 JTBC '뉴스룸' 앵커. ⓒJTBC
▲손석희 전 JTBC '뉴스룸' 앵커. ⓒJTBC

저널리스트 손석희의 JTBC <뉴스룸> 마지막 방송일이던 2020년 1월2일은, 손석희 본인의 표현을 빌리자면 “앵커가 뉴스의 편집권과 인사권, 예산권까지 갖고 최종 책임을 지던, JTBC만의 유례없는 실험이 끝나는 날”(책 <장면들>)이었다. 그는 이듬해 10월 순회특파원으로 한국을 떠났고, 지난 9월을 끝으로 2년간의 특파원 생활도 마무리했다. 2013년 5월, 언론계를 떠들썩하게 했던 JTBC와의 만남을 떠올려보면 헤어짐은 꽤 조용한 편이다. 그는 JTBC를 떠났다. 

“제 선택에는 많은 반론도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제 나름대로 고민해왔던 것을 풀어낼 수 있는 자그마한 여지라도 남겨주시면 진심으로 감사하겠습니다. 최선을 다해서 제가 믿는 정론의 저널리즘을 제 의지로 한번 실천해보고, 훗날 좋은 평가를 받도록 노력하겠습니다.” (2013년 5월 10일 MBC <손석희의 시선집중> 클로징멘트) 2013년 10월 삼성그룹 노조 무력화 문건 단독보도, 2014년 4월 세월호 참사 ‘아젠다키핑’, 2016년 10월 최순실 태블릿PC 보도…. 그가 <뉴스룸> 앵커로 있던 6년 4개월간 JTBC는 압도적인 신뢰도·영향력 1위 언론사로 자리매김했고, ‘맥락 저널리즘’과 팩트체크를 언론계 화두로 올렸다. 누군가에겐 ‘비공식 공영방송’이기도 했다. 

앞서 그는 2020년 12월24일 JTBC 기자들에게 “오랜 레거시 미디어의 유산이라 할 수 있는 저는 이제 카메라 앞에서는 물러설 때가 되었습니다”라고 밝혔다. 그럼에도 그는 문재인 대통령의 마지막 인터뷰, MBC <100분토론> 1000회 특집 등을 통해 계속 ‘소환’되었다. 특히 윤석열 정부 들어 언론장악 시도가 노골화되며 그의 존재를 떠올리는 이들도 늘기 시작했다. 12일 서울에서 손석희를 만났다. 그는 다시 일본으로 떠난다. 아래는 일문일답. 

- JTBC와 계약이 완전히 끝났다. 앞으로 뭘 할 생각인가. 

“글쎄...뭘 하겠다고 특별히 생각한 건 없다. 무얼 해야 한다는 의무에서 방금 벗어났는데 또 뭘 할 거냐고 묻다니...(웃음)”

- 여전히 가장 ‘영향력 있는 언론인’이다. 그럼에도 ‘저널리스트’로서는 마침표를 찍는 건가. 

“뭐 산속으로 들어가 자연인이 되는 것도 아니니 마침표를 딱 찍을 수야 없을 것 같다. 현직에선 물러나지만 현업에는 있는 셈이다. 그렇다고 무슨 미련이 남아있는 것도 아니다. 무엇을 어떤 식으로 할지는 아직 모르겠다. 안 해도 그만이고...물 흘러가듯 순리대로 따라가면 된다.”

- MBC에서 ‘손석희 복귀’ 목소리가 있던데, MBC 프로그램을 맡을 계획은 없나. 

“감사한 일이긴 하나 저 때문에 오히려 MBC 후배들에게 부담이 돼선 곤란하다는 생각이다. 아시다시피 MBC는 지금 폭풍전야다. 제가 안에 있는 사람이라면 뭐든 하려 했겠지만, 밖에 있는 상황에선 뭐든 조심스럽다.”

- 유튜브 등 플랫폼을 바꿔 저널리즘을 실현할 생각은 안 해봤나.

“그런 제안도 있긴 하다. 아마도 매스미디어에서 막히니까 다른 길을 뚫어보자는 의미에서인 것 같다. 하지만 아직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은 없다.”

▲2022년 5월 문재인 대통령과 인터뷰를 진행하는 손석희(왼쪽). ⓒJTBC
▲2022년 5월 문재인 대통령과 인터뷰를 진행하는 손석희(왼쪽). ⓒJTBC

- 지난 2년 가까이 일본에서 순회특파원으로 지냈다. 현직의 마무리를 현장에서 한 셈이다.

“마지막 몇 달을 빼놓고는 나름 분주하게 지냈다. 가서 얼마 안 있어서 문재인 당시 대통령과의 ‘대담’ 인터뷰를 제작했고, 그 이후에는 ‘세 개의 전쟁’이라는 세 편의 장기 기획물에 매달려 거의 1년을 보냈다. 말 그대로 순회를 한 셈이었다. 저널리스트로서 그런 마무리를 할 수 있었다는 건 복 받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나이 예순일곱에 전쟁 중인 나라에도 들어갔고, 북극해에서는 타고 가던 배가 암초에 부딪혀 가라앉을 뻔했다. 고생도 하고 보람도 느끼고 했던 것 같다.”

- 2013년 5월 JTBC로 갈 때 1년도 버티지 못할 것이란 비관적 전망이 많았다. 하지만 10년 넘게 JTBC와 함께했다. 처음 JTBC 출근할 때 어느 정도의 기간을 예상하고 갔었나.

“1년은 아니고, 그래도 대개 3년 정도는 버틸 거라고들 얘기했는데?(웃음) 갈 때부터 기간을 예상할 수는 없었다. 다만, 언제든 떠날 수는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JTBC 후배들에겐 ‘나는 몸과 마음이 가볍다’고 늘 얘기했다. 그 소리를 듣기 싫어해서 나중엔 안했지만...그런데 원래 어느 자리에 가든 그런 생각은 하고 살았다.” 

- JTBC를 떠나는 소회가 남달랐을 것 같다. 

“나는 뭐든 끝낼 때 생각보다 덤덤한 편이다. JTBC도 최대한 조용히 떠났다. 후배들하고도 따로 인사하지 않았다. 아마 이 인터뷰 보고 내가 떠난 걸 알게 된 후배도 있을 거다.(웃음)”

- 홍석현 회장은 영입 당시 보도에 대한 ‘전권’을 주겠다고 약속했다. 약속은 끝까지 지켜졌나. 

“지켜졌다고 본다. 그렇지 않았다면 내가 떠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홍 회장도 외부 압력 때문에 곤란한 상황이 많았던 걸 잘 알고 있다. 그런 일이 있을 때면 ‘그냥 제가 말을 들어 먹지 않아서 그렇다고 저한테 다 넘기시라’고 했는데, 홍 회장이 내 말대로 했을 리 없다. 조직의 수장으로서 누구에게 책임을 돌리겠는가.”

▲2014년 세월호 참사 당시 팽목항 현지 생방송을 진행하던 손석희. ⓒJTBC 보도화면 갈무리
▲2014년 세월호 참사 당시 팽목항 현지 생방송을 진행하던 손석희. ⓒJTBC 보도화면 갈무리

- <뉴스룸>은 한 때 한국 사회에서 가장 긴 메인뉴스였다. ‘어젠다 키핑’이란 개념을 정착시켰고, 팩트체크를 일상화했다. 손석희의 <뉴스룸>이 무엇을 남겼는지 자평해본다면. 

“제일 길었지만 하다보면 늘 시간이 모자랐다. 그래서 남들 다 하는 날씨 코너도 없었으니까. 글쎄...코너로 치자면 ‘앵커브리핑’, ‘팩트체크’, ‘문화초대석’ 등등이 모두 방송 뉴스에는 없던 것들이었다. 좀 거창하게 얘기해 보자면, ‘인본주의’와 ‘민주주의’를 뉴스가 실천할 수도 있다는 믿음을 가졌던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면 세월호 참사나 국정농단, 미투 등등 우리가 ‘어젠다 키핑’으로 지켜내려 했던 모든 뉴스들의 본질은 거기에 해당한다고 생각한다. 진영에 따라 ‘뉴스룸’이 남긴 것에 대한 평가는 다를 수 있는데, 다른 자리에서도 얘기했듯이, 세상에는 진영만 존재하진 않는다.”

- JTBC에서 하고 싶었으나 못한 것이 있다면.

“미디어 비평이다. 과거에 MBC에서도 내가 진행했었고, KBS에서도 형식은 몇 번 바뀌었어도 꽤 오랜 기간 해오긴 했다. 나는 JTBC도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야 명실상부한 언론사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전제가 있다. 자사 비판도 해야 한다. 과거 MBC에서 할 때도 그 부분이 갈등의 요소였고, KBS도 마찬가지였다고 들었다. JTBC의 대표이사가 됐을 때 미디어 비평 프로그램을 염두에 두고 추진하려 했지만, 그 문제 외에 예산·인력 등 제약이 너무 많아 결국 시작도 못해봤다. 나는 언론사의 언론비평이 살아날수록 언론이 당당해진다고 믿는다.” 

- JTBC에서 가장 운이 좋았던 순간을 꼽아본다면.

“아마 국정농단 사태를 염두에 두고 질문하는 것 같은데 내 생각엔 운이란 건 없는 것 같다. 더구나 뉴스는 대부분 사건 사고를 다루는 것이고, 그것이 대부분 부정적인 일들인데, 그걸 남보다 일찍 다뤘다고 해서 ‘운이 좋다’고 표현할 수는 없지 않은가. 그건 굳이 따지자면 운이 아니라, 결과일 뿐이다. 평소에 진심을 가지고 취재하고 방송하면 그 진심을 세상이 알아주고, 우리가 더 잘 할 수 있게 도와준다고 믿는다. 예를 들면 아까 예로 든 세월호 참사, 국정농단 사건, 미투 등은 서로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앞의 보도에서 진심을 다했기 때문에 그 다음의 보도가 가능했던 것이다.”

▲손석희가 JTBC를 떠났다. 디자인=미디어오늘 이우림.
▲손석희와 JTBC. 디자인=미디어오늘 이우림.

- “저희는 내일도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뉴스룸>을 상징하는 구호였다. 지금 JTBC 후배들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생각하나.  

“그때나 지금이나 최선을 다하는 경우도 있고, 게으른 경우도 있을 거다. 다만 매일 그렇게 얘기했던 것은 우리 자신을 위한 채찍질이었고, 다그침이었을 뿐이다. 지금의 ‘뉴스룸’은 물론 내가 있을 때와는 다르다. 리더쉽도 바뀌고, 앵커도 바뀌었으니 바뀐 상황에 맞게 뉴스도 변화한 것이다. 내가 하던 ‘앵커브리핑’을 다른 사람이 똑같이 할 수는 없지 않은가. 그래도 뉴스룸의 기본 방향을 잃지 않기를 바란다.”

2020년, JTBC는 방송사로서는 최초로 자사 보도 방향을 ‘합리적 진보’로 명시했다. JTBC의 정체성을 확고하게 하겠다는 의지였다. 그해 8월 손석희는 사내메일을 통해 “합리적 진보라 함은 누차 얘기하지만, 진보적 가치를 지향하되 그것을 실천하는 방법은 합리적이어야 한다는 것이고, 그것이 우리의 보도에 적용된다는 것이다. 진보적 가치는 우리가 추구하는 상위개념이며, 정파적 집단은 그 하위에 있을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 <장면들>(2021년)이 대만에서 번역‧출간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 <풀종다리의 노래>(1993년)에 이어 대만 출간이 두 번째던데. 

“나도 처음엔 좀 놀랐다. 내 책은 순전히 한국의 언론 상황이나 내 개인의 경험에 근거한 내용들인데 대만 사람들에게 무슨 의미가 있지? 했다. 그러나 그건 나의 단견이다. 대만이나, 같은 중화권인 홍콩의 언론 상황이 녹록지 않다. 2019년에도 중국당국에 대한 홍콩 시민들과 언론들의 저항운동이 격렬하게 일어나지 않았나. 그들은 한국의 언론 운동과 시민운동에 매우 동질감을 느끼는 것 같았다. 지난 6월엔 대만의 언론 콘퍼런스에 다녀왔는데 그들도 코앞에 있는 중국이라는 존재를 고민하고 있었다. 흥미롭게도 홍콩이나 대만에서 가장 인기 있는 한국 영화는 송강호 씨가 주연한 <택시운전사>다.”

▲올해 초 방송된 JTBC 다큐멘터리 '세 개의 전쟁'의 한 장면. ⓒJTBC
▲올해 초 방송된 JTBC 다큐멘터리 '세 개의 전쟁'의 한 장면. ⓒJTBC

- 언론계를 완전히 떠나더라도 피곤한 삶은 계속될 것 같다. 몇 달 전부턴 ‘손석희’를 도용한 가짜 광고까지 나왔는데 사라지질 않는다. 

“그 가짜 광고는 나도 알고 있다. 어느 대기업 회장도 그렇고, 요즘 보니 유명 정치인도 그런 가짜 광고가 돌아다닌다고 한다. 내가 무슨 투자를 해서 돈을 벌었다고 사기를 치고 있던데 그런 엉터리 사기 광고에 넘어갈 사람이 있을까 싶지만, 혹시 모르는 일이라서 법적으로 대응할 방법을 찾고 있다. 말씀하신 대로 피곤한 건 맞다. 세상엔 좋은 사람들이 훨씬 더 많지만, 나쁜 사람들도 있다. 단지 가짜광고 건만 놓고 얘기하는 건 아니다.” 

- 지겹겠지만 ‘지금이야말로 정치를 해야 한다’는 제의도 있을 것 같다.  

“‘최강야구’에서 김성근 감독에게 자주 붙이는 자막을 빌려서 말하자면, 참 ‘오모시로이’(재미있는)한 질문이다. 아직도 내게 그런 질문이 들어오다니….(웃음) 김성근 감독은 여든 한 살의 나이에도 그렇게 야구를 사랑하고, 승리에 집요한 걸 보면 정말 대단한 분이다. 나는 저널리스트이고, 정치는 내 분야가 아니다. 김성근 감독에게 정치를 하시라 하면 그렇게 열심히 하시겠는가.”

- 한 언론 인터뷰에서 “모든 저널리즘의 시작은 질문”이라고 했다. 지금 언론이 놓치고 있는 질문이 있다면 무엇인가.

“언론이 공적영역인가 아닌가를 묻고 싶다. 권력에게도, 시민사회에게도, 그리고 언론 자신에게도 같은 질문을 던지고 싶다.”

- 이동관 방통위원장 임명을 기점으로 언론자유가 퇴행하고 있다는 우려가 거세다.  

“모두가 예상했던 바다. 누가 봐도 지금은 권력을 가진 쪽에 유리하게 언론 지형을 짜려고 하는 것이다. 아니라고 가리기엔 쏟아져 나오는 말과 상황들이 너무 험하다. 그뿐 아니라 언론을 둘러싼 경제·사회적 환경마저도 빠른 속도로 바뀌고 있으니 언론종사자들에겐 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한두 번 겪은 일도 아니다. 경험이 많다 보니 얻은 결론도 있다. 결국 언론은 완전히 길들여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게다가 대안언론의 세상이다. 길들이려 한다면 그건 오히려 손해 보는 장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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