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민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14일 대정부질문 때 공개한 국가정보원 작성 문건이 논란이 됐다. 고민정 의원은 2010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국정원이 작성해 이동관 청와대 홍보수석에게 보고한 문건을 언급하며 “이동관 대통령실 대외협력특보는 방통위원장에 절대 임명돼서는 안 될 인물”이라고 밝혔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문건으로 드러난 국정원의 방송 및 유관기관 개입 정황을 종합해보면 국정원은 ‘방송장악’과 ‘통제’ 과정에서 상당한 역할을 했다. 윤석열 정부 들어 국정원 국내파트 부활 가능성이 점쳐지는 상황에서 과거 국정원을 적극 활용해온 이동관 특보가 방통위원장이 되면 국정원의 ‘정보력’을 동원한 ‘방송장악’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 국가정보원 ⓒ연합뉴스
▲ 국가정보원 ⓒ연합뉴스

이동관-국정원 블랙리스트 작성·방송개입 정황

고민정 의원이 공개한 문건은 국정원에 의한 민간인 사찰 피해 언론인이 정보공개청구 소송 결과로 얻어낸 자료다. 문건은 작성 시점으로부터 6일 전인 1월7일 ‘홍보수석실’ 요청으로 생산됐다. 당시 홍보수석은 이동관 특보였다.

문건은 ‘방송사별 선거기획단 실태’라며 MBC에 관해 “좌편향 인물 포진으로 왜곡·편파보도 우려”가 있다고 했다. MBC에 대한 ‘평가 및 고려사항’으로 “좌편향 기자들이 침투, 과열·혼탁선거가 우려되므로 경영진에 대한 주의환기 및 실효성 있는 제재방안 강구로 건전보도 유도”가 필요하다고 했다. 또한 “경영진과 협조, 좌편향 제작진 배제 및 자체 모니터링 강화” 등 방안을 제시했다. 

▲ 고민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공개한 문건 갈무리
▲ 고민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공개한 문건 갈무리

국정원의 방송 개입을 드러내는 문건은 또 있다. 최승호 뉴스타파 PD 등이 국정원을 상대로 정보공개청구해 받아낸 문건 가운데 2009년 12월24일 작성한 ‘라디오 시사프로 편파 방송 실태 및 고려사항’ 문건은 김제동씨를 비롯한 라디오 프로그램 제작진·출연자를 ‘좌파’, ‘좌편향’ 등으로 분류했다. “좌편향 진행자 퇴출 및 출연자 교체”, “가시적 성과 미흡시 문제 프로그램 폐지·포맷 변경” 등 편파방송 대응 방안을 담았다. 이 문건 역시 홍보수석이 요청한 자료라고 명시돼 있다. 

방송 내용을 수시로 보고 받고 방송과 인사에 개입한 정황도 있다. 2010년 12월29일자 ‘PD수첩, 1월 중 정부 비판특집 연속 계획 관련 제작 동향’ 문건에는 “PD수첩이 내년 1월 중 정부의 예산 편성 문제, 공기업 낙하산 인사, 영포라인 문제 등 정부 음해·비판 특집 연속 방영을 기도 중”이라는 내용이 있다. 국정원은 “최승호CP의 ‘영포라인’ 문제 취재가 계속 불가능하도록 관련 인사·기관 등에 대한 보안유지 및 입단속 철저 촉구가 필요한 것으로 보임”이라고 썼다. 이후 국정원이 최승호 PD 등에 대한 인사 조치가 ‘미미’하다고 지적한 뒤 최승호 PD 등을 타부서로 발령했고, 해고로 이어졌다.

국정원, 방통위 ‘화이트리스트’ 작성·심의개입 의혹도

국민의힘 집권기 국정원은 방송통신위원회와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도 개입한 정황이 있다.

국정원은 방통위 인사 과정에서 이례적으로 사상검증 역할을 했다. 2017년 박홍근 민주당 의원이 방통위로부터 제출받아 공개한 2015년 ‘간부 승진 대상자 신원조회 결과 회보’는 국정원이 방통위 공무원들의 성향을 조사해 평가한 내용을 담고 있다. 규정상 3급 이상 간부 승진 때 신원조회를 지원할 수 있도록 돼 있지만 직무와 무관한 이념성향까지 평가해 논란이 됐다. 

▲ 국정원이 방통위 진급심사 때 실시한 신원조회 회보서.
▲ 국정원이 방통위 진급심사 때 실시한 신원조회 회보서.

승진대상자 A씨에 대해 국정원은 “KBS, MBC노조의 불법 파업에 강경한 입장을 피력하며 방송의 공영성을 위해 유관부처와 긴밀하게 대응”했다고 썼다. A씨는 해당 승진심사에서 3급 부이사관으로 승진했다. 국정원은 승진 대상자였던 B씨에 대해 “안보를 위해서는 국가기관의 감청 업무가 필수불가결하다고 주장”했다며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B씨 역시 당시 승진했다.

국정원은 다른 승진 대상자들에 대해 “유학시절 태극기가 새겨진 가방 사용 등 애국심 투철” “일부 방송 영화의 북한(간첩) 미화에 우려 표명 등 안보관이 투철” “국론을 혼란스럽게 만드는 종북좌파 세력의 용어선점전술을 경계해야 한다며 北주체사상의 허구성을 강하게 비판” “실패한 체제인 북한에 동조하는 종북세력은 발본색원해야 할 대상이라 지칭” “종북사이트규제 업무 적극 수행” 등이라고 평가했다.

이명박 정부 작성된 국정원 문건 가운데는 “방통위는 방통심의위와 협조, 시사보도 프로 모니터링을 강화, 위반 시 제재를 확행하고 악성 프로그램 폐지 유도로 종북세력 기생환경 제거”를 ‘공정방송’ 방안으로 언급한 내용이 있다. 방통위뿐 아니라 방송 내용을 심의하는 민간기구 방통심의위에도 개입한 정황이다. 

실제 또 다른 문건은 국정원과 청와대의 심의 개입 정황을 담고 있다. 2017년 공개된 청와대의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사찰 문건에 등장하는 방통심의위 고위간부는 “국정원에서 제보가 왔는데 민원을 제기하는 사람이 없는 경우가 있다. 그런 경우에는 편법으로 게시판에 사람을 동원해 글을 쓰도록 하기도 한다”고 했다. 방통심의위가 ‘청부 심의’를 한 정황을 드러내는 대목이다.

▲ 2017년 미디어오늘이 입수한 청와대의 방송통신심의위원회 개입 문건(재작성 버전)
▲ 2017년 미디어오늘이 입수한 청와대의 방송통신심의위원회 개입 문건(재작성 버전)

국정원이 2016년 방통심의위 주관 ‘이달의 좋은 프로그램상’ 심사에 개입했다는 의혹도 있다. 미디어오늘 확인 결과 국정원 직원이 세월호의 실소유주가 국정원일 가능성을 조명한 SBS ‘그것이 알고 싶다’ 수상을 저지하기 위해 활동한 정황이 드러났다. 실제 해당 프로그램은 ‘이달의 좋은 프로그램상’ 예심 1위로 진출했으나 이후 국정원이 반발해 개입한 다음 본심에서 최하위 점수를 받아 수상을 하지 못했다. 

국정원 또 다시 언론개입하나

당시 국정원은 IO(Intelligence Officer, 정보담당관)들이 정부기관은 물론 기업, 방송 등에 전방위적으로 정보를 수집했고 관련 내용을 청와대에 보고했다. 정보 수집과정에서 ‘사찰’로 볼만한 정보도 다수 수집됐고 국정원이 정권을 대리해 방송사나 기관을 압박한 정황들도 있다. 이들은 스스로를 기자들처럼 ‘출입한다’고 표현하며 정보를 수집한다. 

방통심의위 관계자는 “(보수정부 때) ‘전무’라고 불리는 국정원 직원이 오곤 했다”면서 “실무부서에는 통계자료 등을 요청하는 게 있었고, 주로 위원장을 만났다. 구체적으로 하는 일은 모른다”고 말했다. 국정원 직원을 ‘전무’라고 부르는 이유는 고위관계자를 만나는 고위 직원이라는 의미라고 한다.

문재인 정부 국정원 국내파트가 폐지되면서 IO도 사라졌다. 서훈 국정원장이 취임 첫날인 첫 지시로 “국내정보 담당관 제도를 즉각 완전히 폐지하라”고 지시했다. 

그러나 부활 조짐이 보이고 있다. 경향신문은 국가정보원이 최근 신설한 경제안보국 산하에 옛 정보담당관(IO) 조직과 역할이 유사한 것으로 보이는 ‘경제협력단’을 설치했다고 보도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후보 시절인 2021년 12월14일 “국정원이나 경찰에서 갖고  있는 정보라 해도 사찰이냐 아니면 정당한 정보의 수집이냐는 것은 그 목적에 관련돼 있다”며 일부 기능을 부활시킬 수 있다는 취지로 발언했다. 

이동관 특보는 국정원 언론개입에 관여된 의혹이 있는 인물일뿐더러 언론개입과 통제에 역할을 한 국정원에 비판적 시선을 갖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이는 방송의 독립성을 보장해야 할 방통위원장으로서 직무 적합성과 관련 있다. 이동관 특보는 2015년 자서전을 통해 “정보기관은 대통령의 눈과 귀 역할을 해야 한다. 대통령의 국정 철학을 헤아려 선제적으로 행동하되, 대통령에게 부담을 지우지 않고 무한 책임을 진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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