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관 대통령실 대외협력특별보좌관의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 내정설이 돌고 있는 가운데 이동관 특보가 이명박 정부 청와대 홍보수석으로 재임했을 당시 홍보수석실 요청에 따라 언론장악 문건을 작성했다는 국정원 직원 진술이 확인됐다.

지난 2017년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의 국정원법 위반 등 혐의로 넘겨진 재판에서 국정원 직원들을 대상으로 한 검찰 수사 자료의 진술조서를 통해서다. 이명박 정부 청와대 홍보수석실이 국정원 문건 생산에 깊게 관여했다는 정황이 나왔는데 국정원 직원이 직접 보고자료의 요청 주체로 이동관 청와대 홍보수석 재임 당시 홍보수석실을 구체적으로 지목했다는 점에서 이동관 보좌관의 방통위원장 자질 논란이 더욱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2017년 국정원의 수사 의뢰로 원세훈 전 원장을 수사해 국가정보원법 위반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겼는데 원 전 원장의 재판 기록에서 이명박 정부 청와대 홍보수석실이 국정원과 함께 문화예술계·언론 장악에 나선 구체적인 정황이 나온다. 

▲2015년 12월15일 오후 서울 서초구에서 열린 이동관 전 청와대 홍보수석 출판기념회에 참석한 이명박 전 대통령과 이 전 수석. ⓒ연합뉴스
▲2015년 12월15일 오후 서울 서초구에서 열린 이동관 전 청와대 홍보수석 출판기념회에 참석한 이명박 전 대통령과 이 전 수석. ⓒ연합뉴스

당시 언론장악 문건 생산에 관여한 국정원 직원들에 대한 검찰 수사자료를 보면, 국정원 국익전략실 언론팀(여론팀) 정보분석관으로 근무한 A씨는 2017년 10월12일 검찰에 임의출석해 당시 홍보수석실로부터 언론장악 관련 문건 작성을 요청받았다고 밝혔다. 홍보수석실이 문건 제목뿐 아니라 소제목, 목차까지 정해 구체적인 보고를 요구했다는 것이다.

국익전략실은 국정원 지휘부서이자 두뇌부서라 불리는 부서로, 청와대나 지휘부 요청에 따라 현장 IO(정보담당관)가 수집한 자료를 이용해 정보를 분석하고 보고서를 작성하는 역할을 했다.

언론장악 문건 작성 직원 “홍보수석 요청…제목과 기한도 정해줘”

A씨는 진술조서에서 ‘라디오 시사프로 편파방송 실태 및 고려사항’ 문서 작성자를 확인하는 검사의 질문에 “내가 맞다”고 말했다. A씨는 문건 오른쪽 상단에 기재된 ‘12.18 홍보수석 요청자료’란 표시를 두고 “12월18일 홍보수석실로부터 보고서 작성을 요청받았다는 뜻”이라고 했다. 당시는 이동관 특보의 홍보수석 재임 시절이다. 이 특보는 2009년 9월부터 2010년 7월까지 홍보수석을 지냈다. 이후 2011년 1월부터 12월까지 청와대 언론특별보좌관을 지냈다.

▲2009년 12월24일 언론장악 관련 문건을 작성한 당시 국정원 국익전략실 소속 정보분석관 A씨는 홍보수석 요청으로 해당 자료를 작성했다고 검찰에 진술했다. 원세훈 국가정보원장의 국가정보원법 위반 혐의 수사자료 갈무리.
▲2009년 12월24일 언론장악 관련 문건을 작성한 당시 국정원 국익전략실 소속 정보분석관 A씨는 홍보수석 요청으로 해당 자료를 작성했다고 검찰에 진술했다. 원세훈 국가정보원장의 국가정보원법 위반 혐의 수사자료 갈무리.

해당 문건은 MBC 등 지상파 라디오 방송에서 ‘좌파 프로그램, 좌편향 직원, 출연자’를 분류해 퇴출 방안을 정리했다. 당시 손석희 <시선집중>이나 김미화 <세계는 그리고 우리는> 등 정부를 비판하는 방송이나 방송인을 겨냥해 “퇴출 및 교체권고, 프로그램은 개편으로 폐지” 등 구체적 지침까지 등장한다.

검사가 이 문건을 두고 “당시 홍보수석실에서 보고서 문건의 제목을 미리 정해줬는가”라고 묻자 A씨는 “BH 요청사항은 모두 청와대 각 수석실 등 요청 부서에서 제목 및 기한을 지정해 준다”며 “제목뿐만 아니라 중간 소제목이나 보고서 목차까지 지정해서 요청하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2011년 5월5일 오전 청와대 녹지원에서 열린 어린이날 행사에서 이동관 언론특별보좌관이 어딘가와 통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2011년 5월5일 오전 청와대 녹지원에서 열린 어린이날 행사에서 이동관 언론특별보좌관이 어딘가와 통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A씨는 작성 경위를 두고 “업무 프로세스상 청와대 홍보수석실에서 BH 요청사항을 팩스 또는 구두로 송부했을 것”이라며 “당시 내가 방송 파트 MBC 분석관이었기 때문에 내게 배당됐다”고 진술했다. 이어 “나는 국익정보국 담당 IO MBC, KBS 수집관에게 전화해서 BH(청와대) 요청사항 내용을 구체적으로 항목까지 알려주고, 약 이틀 정도 시간을 주고 해당 첩보를 수집 요청해서, 그 첩보 보고서를 토대로 최초 보고서 초안을 작성”한다고 말했다.

A씨는 “최종결재자인 (원세훈) 원장이 선정적 문구를 좋아하기 때문에, 결재 과정에서 중간 간부들이 선동적이거나 자극적인 단어들을 집어넣는다”고도 말했다. 실행 경위를 놓고는 “(보고서에 적힌 계획을) 했다면 8국 담당 IO가 실행했을 것으로 생각된다”며 “윗선에서 회의를 통해 구두지시가 내려갔을 것 같다”고 했다.

▲국정원 국익전략실 소속 정보분석관 A씨는 2009년 12월24일자 언론장악 문건에 대해 홍보수석실(수석 이동관) 요청으로 작성된 것이라고 밝혔다. 원세훈 국가정보원장의 국가정보원법 위반 혐의 수사자료 갈무리.
▲국정원 국익전략실 소속 정보분석관 A씨는 2009년 12월24일자 언론장악 문건에 대해 홍보수석실(수석 이동관) 요청으로 작성된 것이라고 밝혔다. 원세훈 국가정보원장의 국가정보원법 위반 혐의 수사자료 갈무리.

“국정원 말 안 들으면 홍보수석실이 영향 행사할 것”

A씨는 당시 이 자료를 바탕으로 방송사가 국정원 뜻에 따라 움직일 배경을 묻는 검사 질문에 홍보수석실을 언급했다. 홍보수석실이 방송사 보도‧편성 담당 국장급 이상에 대한 세평을 요구해 국정원으로부터 받아보는 탓에, 이를 의식한 방송사에 국정원 입김이 작용한다는 것이다.

A씨는 검사가 “손석희·김미화 등 ‘좌편향’ 진행자 퇴출 및 고정 출연자 교체 권고 등을 위해 국정원에서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이 있느냐”고 묻자 “원장이 직접 방송국에 전화하거나 담당 IO가 방송사 간부급을 만나 부탁하는 방법이 있을 것”이라고 답했다.

이어 A씨는 “각 방송사 인사 시즌에 홍보수석실에서 각 방송사 보도국·편집국·시사교양국 국장급 이상에 대한 세평 보고서를 요구하면, B실(7국, 국익전략실)에서 작성돼 보고되기 때문에 아무래도 그런 점이 (방송사가 국정원에) 협조하게 된 이유가 아닐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국정원 요청에 (방송사가) 따르지 않는다면, 청와대 홍보수석실에서 영향을 행사하지 않을까 싶다”고도 했다.

▲2009년 12월 당시 국정원 국익전략실 소속 정보분석관으로 일한 A씨는 검찰 진술조서에서 방송사들이 국정원이 요구하는 바에 따라 특정 방송인 또는 프로그램을 퇴출하는 배경으로 홍보수석실의 영향력을 언급했다. 
▲2009년 12월 당시 국정원 국익전략실 소속 정보분석관으로 일한 A씨는 검찰 진술조서에서 방송사들이 국정원이 요구하는 바에 따라 특정 방송인 또는 프로그램을 퇴출하는 배경으로 홍보수석실의 영향력을 언급했다. 

“청와대 지시면…어떤 일이든 시키면 하는 상황이었다”
‘좌편향 배제’ 쓴 이유 묻자…“홍보수석 관점으로 작성”

A씨는 홍보수석실 요청으로 2010년 1월13일 ‘방송사 지방선거기획단 구성 실태 및 고려사항’ 문건도 작성했다고 진술했다. 이 역시 이동관 홍보수석 재임 당시다.

A씨는 “1월7일 홍보수석실에서 국정원에 요청한 자료”라며 당시 청와대 홍보수석실이 보고서 문건 제목을 미리 정해줬다고 밝혔다. A씨는 문건을 작성한 이유를 묻는 질문에 “청와대 홍보수석실에서 요청했기 때문에 작성된 것이고, 선거용으로 사용하려니 하고 생각했다”고 했다.

검사는 A씨에게 “청와대에서 국내 보안정보라 보기 어려운 방송사 지방선거기획단 구성과 관련한 내용에 대해 보고서 작성을 요청하는 이유가 무엇인가”라고 물었다. A씨는 “국정원에(의) 보고서 문서가 양질에(의) 문서가 작성되고, 청와대 지시 사항이면 빠른 시일 내에 작성돼 보고되기 때문에 이용을 많이 하는 것 같다”고 말한 뒤 “그 당시 회사 분위기가 어떤 일이든 시키면 하는 상황이었다”고 했다. 이명박 정부 시절 홍보수석실이 국정원과 적극 협업하거나 도구 삼아 언론장악에 나선 점이 확인되는 대목이다.

▲2010년 1월13일 홍보수석 요청으로 언론장악 문건을 작성했다고 밝힌 A씨의 검찰 진술조서. 이명박 정부 시절 홍보수석실이 국정원과 적극 협업하거나 도구 삼아 언론장악에 나선 점이 확인된다.
▲2010년 1월13일 홍보수석 요청으로 언론장악 문건을 작성했다고 밝힌 A씨의 검찰 진술조서. 이명박 정부 시절 홍보수석실이 국정원과 적극 협업하거나 도구 삼아 언론장악에 나선 점이 확인된다.

A씨는 해당 문건이 청와대 홍보수석 관점으로 작성됐다고도 밝혔다. A씨는 문건에서 ‘방송사의 경영진과 협조, 좌편향 제작진 배제’라고 쓴 의미를 묻는 검사 질문에 “대통령 또는 홍보수석에(의) 보는 관점을 기준으로 보고서가 작성되는 것”이라며 “말 그대로 좌편향 제작진을 배제하기 위해 방송사 경영진과 협조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동관 재임 홍보수석실, 정부비판 연예인 마약설 실태 요청도

이동관 특보가 재임하던 당시 홍보수석실이 정부를 비판한 연예인들에 대해 미확인 마약류 사용설 실태 확인을 요청한 정황도 확인된다. 2017년 9월 국정원이 개혁발전위원회 조사를 거쳐 원세훈 전 원장 등에 대해 수사를 의뢰한 문서에서다.

2017년 국정원은 원 전 원장을 국정원법 위반 등 혐의로 수사의뢰하며 MB 시절 국정원이 청와대 요청에 따라 작성한 문화예술계 퇴출 관련 문건을 나열했다. 관련 붙임자료엔 2009년 11월 홍보수석이 국정원에 “연예인 B씨 관련 사항 및 사실관계와 세부 내용 확인”을 요청했다는 대목이 포함됐다. “프로포폴 소문이 B라는 의혹 및 좌파 연예인들간 프로포폴·마약류 유포 실태” 확인을 요청했다는 내용이다.

▲국정원이 2017년 9월13일 원세훈 전 국정원장 등에 대한 수사의뢰서에서 밝힌 문화·예술 블랙리스트 및 언론장악 보고문건 내역. 이명박 정부 당시 청와대 홍보수석 등의 지시와 국정원 이행 실태가 나열돼 있다.
▲국정원이 2017년 9월13일 원세훈 전 국정원장 등에 대한 수사의뢰서에서 밝힌 문화·예술 블랙리스트 및 언론장악 보고문건 내역. 이명박 정부 당시 청와대 홍보수석 등의 지시와 국정원 이행 실태가 나열돼 있다.

수사의뢰서에 따르면 MB 국정원은 이에 따라 “B 등 일부 연예인의 수면 마취제 중독설 점검” 관련 문건을 작성했다. 국정원은 의뢰서에서 “BH도 문화연예계 정부 비판 세력 조치 지시 사실이 있어 BH와 교감 하 (퇴출) 대상(을) 선정(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A씨는 이동관 홍보수석 당시 언론장악 계획이 담긴 ‘MBC 정상화 전략 및 추진방안’ 문건을 작성한 경위에 대해서도 진술했다. A씨는 2010년 3월2일자로 명시된 해당 문건에 대해 “내가 (작성)했다”고 했다.

‘MBC 정상화 戰略(전략) 및 추진방안’은 2010년 2월16일 원세훈 국정원장이 김재철 MBC 사장 취임을 계기로 작성을 지시해 노영(勞營)방송 잔재 청산, 고강도 인적 쇄신, 편파 프로 퇴출 등이 필요하다면서 구체적 이행 방안을 적시했다. 구체적으로 “좌편향 프로 제작진의 경우 담당PD는 물론, 프리랜서 작가·외부 출연자까지 전면 교체”라고 밝히고 있다.

A씨는 “시기적으로 업무에 익숙지 않아 본건 문서 내용은 거의 C 과장이 썼다고 보시면 된다”며 “이 문서가 청와대까지 갈지 몰랐었”다고 했다. 진술조서를 보면, 검사가 “국정원에서 MBC 정상화 방안에 대해 고민하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묻자 A씨는 “(한숨을 쉬며) 그때는 정말 시키는 일을 했었다”고 밝혔다.

이 특보는 20일 입장을 묻는 전화와 메시지에 응하지 않았다.

국정원 수사자료에선 이밖에도 이명박 정부 당시 국정원이 청와대, 고용노동부와 합작해 민주노조 사업장과 노동운동 진영을 상대로 노조파괴 공작에 나선 사실이 확인됐다. 앞서 참세상(워커스)은 2020년 5월 이명박 정부의 국정원 국정농단과 노조파괴 사건과 관련한 검찰 수사 자료를 입수해 연재 보도했다.

[ 관련 기사 : MB 국정원 작성 노조파괴 문건 ‘176개’ 드러나 / 참세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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