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0원. 사진=정철운 기자
▲2500원. 사진=정철운 기자

출발은 1963년 TV시청료다. TV 1대당 월 100원을 냈다. KBS 운영자금 마련 명목이었다. 시청료는 1974년 500원, 1980년 800원으로 올랐다. 1980년 12월1일은 우리나라에서 컬러TV가 시작된 역사적 날이었는데, 이듬해인 1981년 4월1일부터 흑백TV와 구분해 월 2500원의 시청료를 책정했다. 당시 2500원은 지금 가치로 600원 정도다. 왜 하필 2500원이었을까. 1981년 당시 신문구독료가 월 2500원이었다. 오늘날 신문구독료는 월 2만 원이다.

1989년 방송법에서 시청료라는 이름은 수신료로 바뀌었다. 수신료는 시청의 대가가 아니라, 공공부담금이라는 의미를 강조하기 위함이었다. 한국전력이 수신료를 전기요금에 합산해 통합 징수하는 지금의 제도는 1994년 10월 도입했다. 그전까지는 KBS 징수원이 직접 수신료를 받으러 다녔는데 납부 회피가 많았다. 통합징수 효과는 뚜렷했다. 1995년 수신료 징수율은 53%에서 95%로 전년 대비 급상승했다. 정부는 수신료 통합징수를 도입하며 KBS 1TV 상업광고를 폐지했다. 이는 1995년 케이블TV 개국 등을 감안한 결정으로 풀이된다. 

20세기에는 수신료 금액을 문화관광부장관이 승인하는 구조였으나 2000년 방송법이 바뀌면서 21세기부터는 KBS 이사회가 수신료 조정안을 의결하면 방송위원회(현 방송통신위원회)를 거쳐 국회가 승인하는 구조로 바뀌었다. 이 구조에서 KBS 이사회는 여러 차례 수신료 조정안을 의결했으나 한 번도 국회를 통과하지 못했다. 가장 최근에는 2021년 6월30일 월 3800원 인상안을 의결했다. 현재 수신료 2500원 중 한전이 징수 위탁 수수료 명목으로 169원, EBS가 70원을 가져가고 KBS는 2261원을 가져가고 있다. EBS는 제대로 된 공영방송 책무를 위해 월 700원은 받아야 한다는 입장이다. 

▲서울 여의도 KBS 신관. ⓒKBS
▲서울 여의도 KBS 본관. ⓒKBS

KBS 수신료 수입은 현재 6200억 원 규모이며, KBS는 분리 징수가 이뤄지면 수입이 1000억 원대로 급감할 것이라 전망하고 있다. 2012년 6236억 원이던 KBS 광고매출이 10년이 지난 2022년 2642억원으로 추락한 점에 비춰보면 수신료 수입은 절대적이다. 한전은 KBS가 분리징수를 할 경우 약 1850억원의 추가 비용이 매년 발생할 것으로도 예상했다. 물론 분리징수를 하더라도 수신료는 TV가 있다면, 유료방송 가입 여부와 상관없이, KBS를 보지 않아도 내야 한다. 헌법재판소는 1999년 “수신료는 시청 여부와 관계없이 납부해야 하는 것”이며 “공영방송사업이라는 특정한 공익사업의 경비 조달에 충당하기 위해 부과되는 특별부담금”으로 법적 성격을 규정했다.  

독일의 경우 한발 더 나아가 TV가 없어도 월 18.36유로(약 2만5200원, 2022년 기준)의 수신료를 내고 있다. 독일 헌법재판소는 2018년 ‘언제 어디서나 공영방송 콘텐츠에 접근 가능하며 직·간접적 영향을 받는다면 실제 접근 여부와 상관없이 돈을 내야 한다’고 판단했다. 이와 관련 정준희 한양대 정보사회미디어학과 겸임교수는 “수신료는 단순한 공적 재원이 아니라 공영방송과 시청자 사이에 맺어지는 새로운 사회계약의 중요한 표현이 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수신료 분리 징수 논란은 21세기 들어 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반복되었다. 참여정부 첫해였던 2003년 한나라당은 수신료 분리 징수 법안을 추진했는데, 이명박 정부에선 수신료 인상을 추진했다. 이번엔 민주당이 수신료 제도 검토에 나섰고, 박근혜 정부 시기였던 2014년 노웅래 민주당 의원이, 2017년 박주민 민주당 의원이 분리 징수 법안을 발의했다. 문재인 정부에서는 다시 자유한국당이 수신료 분리 징수 법안을 내놨고(강효상 의원 등), 2019년엔 수신료 분리 징수 특위를 구성하기도 했다.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가 2019년 1월4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위-KBS의 헌법파괴 저지 및 수신료 분리징수 특위 연석회의'에서 발언하는 모습. ⓒ연합뉴스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가 2019년 1월4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위-KBS의 헌법파괴 저지 및 수신료 분리징수 특위 연석회의'에서 발언하는 모습. ⓒ연합뉴스

이처럼 수신료 징수방식에 대한 사회적 논란은 주로 야당을 중심으로, ‘공정성’ 비판을 중심으로 정치권에서 등장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야당이 아니라 대통령실이, 정부가 주도해 수신료 분리 징수를 사실상 지시했다는 점에서 전례가 없다. 전에는 야당이 법안을 발의해 공론을 모으려는 식이었다면 이번엔 대통령실이 직접 여론을 만들어 시행령으로 추진하는 상황이다. 현재 대통령실 권고에 따라 방송통신위원회와 산업통상자원부가 분리 징수 작업에 나선 가운데 KBS는 “수신료 분리 징수는 방통위‧산자부 등 행정부 소관이 아니라 입법부(국회) 소관”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준조세 성격의 수신료를 두고 ‘소비자 선택권’을 언급한 대통령실 발상이 문제라는 주장도 나온다. 

더욱이 이번 경우는 중복투표가 가능했던 대통령실 국민제안 인터넷 투표 하나만을 근거로 분리 징수를 추진하고 있어서 ‘국격’에 맞지 않다는 우려도 있다. 이런 가운데 한국언론학회장인 이준웅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는 12일 경향신문 칼럼에서 “공영방송 제도가 동네북처럼 이리저리 두들겨 맞아 만신창이가 되더라도 그게 ‘공중의 이익’을 침해하는 사태라고 아무도 생각하지 않는다는데 진정한 위기가 있다. 사태가 이렇게 되는 데 공영방송 스스로 기여했다”며 수신료 제도 개선방안을 놓고 공론조사를 벌이자고 제안했다. 수신료 분리 징수는 선‧악 개념이 아니다. KBS가 시대에 맞게 자신의 정체성을 강화하는 디자인이 필요한 시점에서, 사회적 합의를 통해 공영방송 책무를 구체적으로 규정하고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공영방송 재원 조달 방안을 논의할 필요가 있다.

독일은 정치권으로부터 독립된 ‘공영방송 재정수요 산정위원회’(KEF)를 통해 적정한 수신료를 판단하고 있다. 공적 책무에 따라 수신료는 늘어날 수도 줄어들 수도 있다. 한국에서는 2017년 문재인 대선후보가 독립적인 ‘수신료위원회(가칭)’를 설치해 공정하고 투명한 수신료 산정·징수·배분 등 관리·감독 강화를 공약했으나 지키지 않았다. 2022년엔 윤석열 대통령 인수위에서 수신료위원회를 설치해 적정한 금액에 대한 객관적 검토와 수신료 배분 기준 등을 마련하겠다고 예고했으나 현재까지 지키지 않고 있다. ‘분리 징수’ 논란에서 잊지 말아야 할 대목이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