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월 TV수신료 2500원. 사진=정철운 기자
▲한국의 월 TV수신료 2500원. 사진=정철운 기자

TV수신료 분리 징수가 이뤄져도 집에 TV가 있으면 지금처럼 2500원을 내야 한다. 방송법은 ‘TV수상기를 소지한 자는 수상기를 등록하고 수신료를 납부해야 한다’(제64조)고 명시했다. 정부 여당은 ‘국민의 납부 선택권’을 분리 징수 이유로 강조하지만 수신료는 전기요금과 분리해도 내야 한다. 안 내면 연체료(3%)가 붙는다. 분리 징수는 사실상 정부가 전 국민을 연체자로 만들기 쉽게 바꾸는 것이다.

분리 징수에 찬성하는 다수는 현재 ‘징수율 99%’인 수신료를 아예 안 내고 싶은 경우인데, 이를 위해선 방송법을 바꿔야 한다. 하지만 정부는 입법부인 국회를 무시한 채 중복투표가 가능했던 인터넷 여론조사 하나를 근거로 시행령 개정 속도전을 벌이고 있다. KBS는 수신료 수입이 크게 줄고, 한전은 수백억대 위탁수수료 수입이 사라지고, 수신료 납부자는 번거로워지는 미래를 위해서다. 

공영방송 수신료 제도가 있는 유럽의 23개 국가 중 7개국이 한국처럼 전력회사 위탁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영국에선 징수업무를 민간 기업에 아웃소싱하고, 독일은 공영방송이 별도 설립한 기관에서 징수한다. 프랑스는 세무 기관에서 징수하고, 일본은 NHK가 직접 징수한다. 한국은 NHK처럼 KBS가 직접 징수하다 1994년부터 한국전력에 위탁 징수했다. 한전 위탁징수로 53%에 머물던 징수율은 도입 이듬해 96%로 올랐고, 징수 비용도 크게 줄었다. 

수신료 징수 방법은 충분한 사회적 논의를 거쳐 달라질 수 있다. 수신료를 폐지할 수도 있다. 다만 공영방송의 공적 책무를 명확히 규정하고 그에 따른 공적 재원 구조를 구성한다는 전제가 흔들려선 안 된다. 지금 국면은 이 전제를 아예 무시하고 있어서 공영방송을 유지하겠다는 건지조차 판단하기 어렵다. 여당은 영국 BBC와 프랑스 FTV 사례를 언급하며 수신료 폐지를 언급하기도 하는데, 영국‧프랑스 사례는 오히려 여당에게 불리할 수도 있다.

프랑스는 2005년 이후 공영방송 FTV 수신료를 주민세와 통합 징수하다 2022년 재정법 개정으로 수신료 제도를 폐지했다. 대신 2025년까지 부가가치세 중 약 37억 유로(약 5조 원)를 FTV에 지원하기로 했다. 분리 징수에 따른 공적 재원 감소 대책이 없는 한국과 달리 수신료 수입 대체 방안을 마련한 것. 더욱이 수신료 폐지는 마크롱의 대선 공약이었던 만큼 사회적 논의가 이뤄졌다. 윤 대통령 대선 공약엔 사극 의무 편성은 있었지만 분리 징수는 없었다. 

2022년 영국 문화부 장관은 BBC 수신료를 2024년까지 동결하고, 2027년까지 폐지할 예정이라고 발표했다. 영국 정부는 BBC의 새로운 공적 재원 구조를 논의하는데 5년의 시간을 제시한 셈이다. 이후 BBC는 다수의 방송 서비스를 폐지하고 온라인 스트리밍에 집중하는 등 변화를 꾀하고 있다. 반면 한국 정부는 지난 3월 ‘국민제안’ 이후 5개월 만에 시행령을 바꿀 태세다. 보통 40일이던 방송법 시행령 개정안의 입법 예고기간도 이례적으로 10일로 단축했다.

▲KBS 신관. ⓒKBS
▲KBS 신관. ⓒKBS

 

공영방송 수신료 ‘공공서비스세’로 전환한 북유럽, 한국이 갈 길은 

KBS에 대한 호불호를 떠나 한국 공영방송의 현실을 해외와 비교해보자. 한국 TV 수신료는 한 달 2500원인데, 영국은 약 2만2000원, 독일은 약 2만5000원, 일본은 약 1만3000원 수준이다. 한국 수신료는 1981년 2500원 이후 2023년 현재까지 42년간 오르지 않았다. 같은 기간 영국은 27회, 독일은 8회, 일본은 4회 수신료를 인상했다. 영국은 소비자 물가지수를 반영해 자동적으로 수신료를 인상하는 물가연동제를 적용하고 있다. 그 결과 재원 구조에서 수신료가 차지하는 비중은 KBS가 46%, BBC는 75%, 독일 ARD와 ZDF는 87%, NHK는 98% 수준이다. 

KBS는 상대적으로 상업광고에 의존할 수밖에 없고, 이에 따라 KBS 2TV처럼 민영방송과 유사한 프로그램 편성을 유지하게 된다. 이 경우 공영방송에 대한 차별성 또는 효능감을 느끼지 못하는 시청자들은 수신료 납부에 부정적일 수밖에 없어 악순환은 반복된다. 거대양당의 ‘정치적 후견주의’가 강하게 작용하는 공영방송 지배구조도 수신료 인상의 장애물이다. 2007년 월 4000원, 2011년 월 3500원, 2014년 월 4000원 수신료 조정안이 국회에 올라왔으나 매번 폐기됐다. 2021년에도 월 3800원 조정안이 올라왔으나 폐기가 예상된다. 

사실 수신료 분리 징수가 사회적 이슈로 떠오른 지금이야말로 공영방송 책무와 재원 구조 등을 재설계하는 적기일 수 있다. 공영방송 신뢰도가 높은 북유럽에선 수신료 제도를 조세화하는 국가가 늘고 있다. 디지털 환경에선 유튜브나 포털 등 다양한 플랫폼으로 공영방송 콘텐츠를 접하기 때문에 수상기 보유와 상관없이 국민 모두가 공영방송 재원을 부담하도록 제도를 변화시킨 것이다. 방송통신위원회 방송통계포털에 의하면 한국은 가구별 TV수상기 보유율이 95.4%이며, 여전히 TV수상기 중심 수신료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현재 노르웨이 덴마크 독일 벨기에 스웨덴 스위스 아이슬란드 프랑스 핀란드가 세금으로 공영방송 재원을 충당하고 있다. 북유럽 국가들은 공영방송 수신료를 ‘공공서비스세’로 전환했다. 스웨덴은 2018년 11월 정부가 가구 단위 수신료 제도를 개별 공공서비스요금으로 대체했다. 노르웨이도 2020년 1월부터 수신료를 공공서비스세로 대체했다. 공영방송의 독립적 운영을 위해 노르웨이 스웨덴 핀란드는 정부가 방안을 마련하고 의회가 이를 확정했다. 노르웨이는 전문가 그룹 제안을 정책수립에 적극 반영했다. 

▲KBS 뉴스9 보도화면 갈무리.
▲KBS 뉴스9 보도화면 갈무리.

2013년부터 수신료 대신 ‘공공방송세’를 납부하는 핀란드의 누진세 모델은 흥미롭다. 개인 소득의 평균 0.68%(상한선 143유로)를 내는 방식으로, 소득이 없으면 면제다. 또 다른 특징은 수입이 5만 유로 이상인 기업도 과세소득의 0.35%를 공영방송세로 납부해야 한다는 점이다. 징수된 세금은 국가 예산이 아닌 기금 형태로 관리한다. 2018년에는 연간 소득이 1만4000유로를 초과하는 개인의 경우 소득의 2.5%를 수신료로 납부하게끔 바뀌었으며 납부액 상한선도 163유로로 높였다. 핀란드 공영방송 YLE는 모든 채널에 광고가 없다. 노르웨이와 스웨덴도 마찬가지 누진세 모델이다.

당연히 북유럽 사례를 그대로 한국에 적용할 순 없다. 북유럽 공영방송은 한국 공영방송보다 훨씬 높은 신뢰를 받고 있다. 이곳에선 한국사회엔 생소한 ‘미디어 복지’ 개념도 존재한다. 결국 국가별 사회구조나 인식에 맞게 제도를 설계해야 한다. 독일엔 공영방송재정수요산정위원회가 있다. 연방제여서 16개 주마다 별도의 공영방송이 존재하는 탓에 16개 방송 각각의 재정요구를 모아 필요한 수신료를 산정‧분배하기 위해 별도의 기구를 두고 있다는 설명이다. 네덜란드 뉴질랜드 스페인 인도 호주 등은 정부기금으로 공영방송을 운영하고 있다.

여전히 세계 50여개 국가에서 공영방송 제도를 운영하고 있지만 디지털 시대 공영방송은 점점 과거보다 시청자와 멀어지고 있다. 이는 세계적 추세이며 KBS도 예외는 아니다. 그러나 현 지배구조나 재원 구조로는 장기적인 미래 전략 수립 대신 정권이 바뀔 때마다 여야가 공수를 바꿔 공정성 문제를 제기하고 분리징수 법안을 발의하는 상황만 반복될 수밖에 없다. 이래서는 공영성을 지킬 수 없고, 결국 ‘50년차 공영방송’ KBS는 역사 속으로 사라질 것이다. 이후 국내 언론 신뢰도 1위 자리는 튀르키예처럼 폭스TV가 대체할 수도 있다. 

정부의 비상식적 수신료 분리 징수 추진을 돌파하기 위해선 이번 국면을 공론화위원회 등을 통한 사회적 숙의를 거쳐 공영방송의 책무와 공적 재원 조달방식을 현실화하는 국면으로 키울 필요가 있다. 공영방송을 ‘전리품’ 대신 ‘공적 서비스’로 인식하고 일종의 공영‧중립지대로 내려놓는 정치권의 자세도 필요하다. KBS는 민영방송에서도 볼 수 있는 편성을 과감히 포기하고 ‘방만 경영’ 비판을 해소할 특단의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 

* 참고=국회입법조사처 <입법과 정책> 2020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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